마티에 다르 위대한 탐험가에 대한 헌정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원정대
오늘의 주인공 마티에 다르 위대한 탐험가에 대한 헌정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원정대
단종된 메르카토르
대항해시대, 유럽이 빠르게 세계로 팽창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정확한 지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네덜란드의 지도학자(지리학자) 제라르 메르카토르가 고안한 메르카토르 도법으로 그려낸 지도가 그것이죠. 구(球) 모양의 지구를 평면으로 옮겨낸 도법으로 지금의 세계지도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메르카토르 사망 400주기를 맞이해 바쉐론 콘스탄틴은 1994년 그의 이름을 딴 모델을 하나 발표했습니다. 지도를 배경으로 컴퍼스 하나가 놓여진 구성이었습니다. 다이얼은 금을 엣칭하거나 에나멜로 만들어졌고 여러 대륙 혹은 국가가 그려지며 리미티드 에디션 아닌 리미티드 에디션이었는데요. 2000년 초, 이것을 처음 본 저로써는 망치로 머리를 세게 얻어 맞은 듯 아름다움으로 인해 문화컬쳐 컬쳐쇼크를 받았습니다. (물론 가격을 알게 된 이후 영원한 드림워치가 되긴 했지만)
왼쪽이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오른쪽이 마르코 폴로
바쉐론 콘스탄틴이라는 메이커를 알게 된 계기이기도 했는데 메르카토르가 알게 모르게 단종이 되고 새로운 시리즈가 등장합니다. 2004년, 메르카토르의 뒤를 이은 'Tribute to the Great Explorers(위대한 탐험가에 대한 헌정)'로 한 층 더 아름다우며 레트로그레이드 메커니즘으로 컴퍼스를 표현한 메르카토르의 기믹을 이어 받았습니다. 그 때문에 다이얼의 공예적 아름다움에 집중되는 메티에 다르중에서 부각되는 모델입니다. 중국의 정화(Zheng He), 포르투갈의 마젤란이 바쉐론 콘스탄틴이 선정한 위대한 모험가로 발탁되어 각 60개가 생산됩니다. 두 번째로 선정된 모험가들은 마르코 폴로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로 이번 리뷰의 주인공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Ref. 47070/000J-9085)입니다.
시계라면 있어야 할 바늘과 인덱스는 어디에도 없고 대신 콜럼버스가 이끄는 원정대가 바다 위를 누비고 있는 모습. 콜럼버스 모델과 조우에서 가장 먼저 시선이 향한 곳입니다. 컬럼버스 원정대라는 주제를 담은 다이얼은 바쉐론 콘스탄틴이 즐겨 사용하는 에나멜 기법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클로아조네로 에나멜 기법의 하나인 이것은 금으로 된 실로 격벽을 세우고 그 속을 에나멜로 채워 넣어 만듭니다. 완성된 클로아조네 다이얼의 화려함을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콜드 에나멜(합성수지, 그랑푀와 구분하기 위해 사용)에 대해 매우 마뜩잖은 시선을 보내며 전통적 에나멜 기법을 수호(?)하고 있는 바쉐론 콘스탄틴의 장기가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이기도 하죠. 클로아조네 다이얼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밑그림을 그리고 그것을 다이얼의 지름에 맞게 축소시킵니다. 격벽, 즉 윤곽선 역할을 하는 금실을 세운 뒤 에나멜을 채우는데요. 보통의 에나멜일 경우 색상 하나를 사용하고 700~800도 온도의 오븐에서 굽고 식힌뒤 다시 다른 색상을 사용하는 이것을 반복하는데 클로아조네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파생기법이니까요. 이런 에나멜 다이얼을 하나를 완성하는 데 색상의 수에 따라 달라지긴 하겠지만 약 30회 정도의 굽기와 식히기를 반복하는데요. 요즘은 온도 조절이 용이한 오븐이 있다고 해도 에나멜 장인이 고려해야 할 부분이 적지 않습니다. 그 날의 온도, 습도에 따라 적절한 온도 조절과 굽는 시간을 결정해야 합니다. 더군다나 이 반복 과정에서 한 번의 실수로 인해 표면에 기포가 생기거나 크랙이 생기면 모든 것은 원점으로 되돌아 갑니다. 콜드 에나멜과 전통적인 에나멜을 그랑푀라고 일부러 부르며 구분 짓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정면에서 보면 색감이 훨씬 진합니다. 유리질인 에나멜이 반사를 하기 때문에 측면에서 보면 정면보다 연하게 보입니다. 측면 컷이 많아서 실제보다 밝게 보이는군요
콜럼버스의 다이얼은 이런 어려운 공정을 거쳐 완성됩니다. 특이한 점은 에나멜 다이얼의 베이스인 다이얼 플레이트가 22k 골드라는 것인데요. 보통 황동(Brass) 소재를 베이스로 사용하는 것과 확연한 차이가 있습니다. 골드 플레이트 위에 에나멜이 겹겹이 올라가 금의 소재감이 대부분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도 말이죠. 위대한 탐험가 시리즈에 사용된 메커니즘을 구현하기 위해 다이얼은 두 조각으로 구성되고 단차를 두는 형태인데요. 여기서 다이얼 플레이트의 소재 감이 테두리와 측면에서 살짝 드러나는데 뭐랄까요. 한없이 고급스럽습니다. 다이얼의 질감은 일반적인 라커 다이얼과 다릅니다. 유리질인 에나멜의 특성으로 인해 뽀얗게 빛나며 또 특유의 기법도 함께 드러나는데요.바다를 나타내는 연한 하늘색을 배경으로 대륙이 표현되어 있고, 다이얼 위의 그림, 로고, 기호는 모두 에나멜 장인이 털 한, 두 가닥에 불과한 얇은 붓으로 그려낸, 사람의 '손'만이표현해낼 수 있는 맛입니다. 그야 말로 'Metier d’Art(메티에 다르)'라고 부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케이스는 40mm, 케이스 소재는 요즘 핑크 골드 계열에 주도권을 내어준 옐로 골드인데요. 콜럼버스에서 케이스는 액자 역할로 그림을 더욱 돋보이도록 하는 것이며 그러기 위해 다름 아닌 옐로 골드가 선택되었다고 합니다. 케이스는 볼륨감 있습니다. 단차를 통해 멋을 낸 케이스 디자인 때문이기도 하겠고, 두 장으로 구성된 에나멜 다이얼과 새틀라이트 메커니즘에 의해 두께가 다소 증가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군요.
새틀라이트 메커니즘 <www.thehourlounge.com>
시간의 표시는 아름다운 다이얼의 아래에서 이뤄집니다. 오데마 피게가 1990년대 초반 발표한 스타휠, 이것의 영감을 받지 않았을까 싶은 Urwerk, 해리 윈스턴의 오푸스X에서 사용되고 응용된 새틀라이트 메커니즘을 사용합니다. 별의 주위를 도는 위성의 움직임처럼 공전과 자전이 작은 시계 속에서 이뤄지는데요. 윗단 다이얼 아래에서 나온 아라비아 숫자가 아랫단 다이얼의 10에서부터 나와서 60까지 도달하면 다음 숫자가 나오는 방식입니다. 이 숫자가 시침의 역할을 하는데요. 1에서 12까지의 숫자 모양이 전부 다른 관계로 아주 정확하게 몇 분인지 파악하기는 어렵습니다. 가상의 선을 그려서 읽는 것이 최선이지 싶은데 이점이 콜럼버스에서 흠이 될 만한 요소는 아닙니다.
칼리버 1126
이 메커니즘을 구동하는 것은 칼리버 1126 AT로 베이스 무브먼트는 예거 르쿨트르의 칼리버 889입니다. 889의 개량형인 899, 프리스프렁 방식에 세라믹 볼 베어링을 사용한899가 나온 상황입니다. 바쉐론 콘스탄틴이 2004년 첫 이 시리즈를 발표하고 지금까지 계속 되는 동안 칼리버 889가 899로 바뀐 변화인데요. 공식 홈페이지에도 칼리버1126이라고 표기가 되어 있긴 한데 실제로는 칼리버 1226(JLC 칼리버 899)이 탑재되지 않았나 넘겨 짚어 봅니다. 물론 계속 칼리버 1126을 고집할 수도 있겠지만 일종의NOS 개념으로 바쉐론이 확보한 게 아니라면 칼리버 1226이 정황상 합당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쉽게도 케이스 백은 방위를 양각한 솔리드 백이라 직접 확인할 수는 없었습니다. 새틀라이트 메커니즘을 사용하지만 기능상으로는 초침이 없는 타임 온리입니다. 그러므로 크라운 포지션은 0과 1로 간단합니다. JLC 칼리버 889도 수동으로 와인딩 할때 별 느낌이 없는 편인데요. 감기는지 어쩌는지 사각거리는 소리도 안나고 걸리거나 반발력으로 크라운을 뒤로 되돌리려고 하는 것 없이 조용히 감깁니다. 크라운을 한 칸 당긴 표지션 1에서는 시간 조정인데요. 일반적인 칼리버 1126(1226)이라면 날짜 조정을 위해 0, 1, 2의 포지션이 되었겠지만 날짜 기능이 없는 관계로 생략되어 있습니다.시간 조정을 위해 크라운을 돌려보면 숫자가 10 단위 숫자를 따라가다가 다음 숫자가 나오는 것이 확인되며 숫자 위치의 미세 조정은 어렵지 않습니다.
스트랩은 바쉐론 콘스탄틴의 시계를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최상의 퀄리티입니다. 케이스와 매치되는 색상, 표면 패턴, 스티치까지 메이커가 기본으로 제공하는 스트랩으로서 더 뛰어난 스트랩을 찾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연한 스카이 블루가 주된 색상인 다이얼과 옐로 골드 케이스에 잘 어울리는 브라운 악어 가죽입니다. 버클은 착용했을 때 말테 크로스의 절반이 보이는 하프 말테 크로스의 디플로이언트 버클입니다.
콜럼버스는 마르코 폴로나 첫 번째 시리즈인 정화, 마젤란과 같이 60개가 생산됩니다. 개수 자체로만 봐도 쉽게 볼 수 있는 모델은 아닌데(60개가 전부 생산된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특별히 우리나라에 들리게 되는 기회가 있어 운 좋게 실물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바쉐론 콘스탄틴의 리뷰가 등장한지 얼마 안되어 다시 리뷰가 올라 오게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놓치면 후회할 시계인데요. 멋진 시계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은 저로서도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또 하나의 드림워치로만 남겨둬야 할 시계가 생겼다는 것은 Fail) 리뷰를 쓰는 와중에도 계속 촬영한 이미지를 다시 보게 만드는 콜럼버스는 시계 예술이 무엇인지를 (눈을 통해) 쉽고 명료하게 전달하는 몇 안되는 시계가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진정한 아름다움엔 장황하기만 한 제 리뷰같은 설명이 필요 없을 테니까요.
촬영 : 2nd Round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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