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쉐론 콘스탄틴 패트리머니 컨템퍼러리(Vacheron Constantin Patrimony Contemporary)
바쉐론 콘스탄틴(이하 VC)의 정장용 시계 중 심플한 클래식 라인 패트리머니. 그 중에서도 케이스의 크기를 ‘현재의 요구’에 맞춘 패트리머니 컨템퍼러리가 이번 리뷰의 주인공입니다.
무브먼트(Movement)
21세기에 접어들 무렵 VC는 자사 수동 무브먼트 Cal.1400을 선보이게 됩니다. 그 이전까지는 Cal.1003 (JLC 베이스)이라는 걸작 수동 (울트라 슬림) 무브먼트를 사용했지만 아무래도 빅 3라 불리는 메이커에서 남이 설계하고 생산한 무브먼트를 가져다 쓰는 것은 썩 보기 좋은 모양새는 아니었기 때문에, ‘자사제’ 라는 수식어를 달 필요했고 1400이라는 결과물을 얻어냅니다.
비슷한 시기에 또 다른 빅 3의 하나인 AP(오데마 피게)에서도 자사 수동 무브먼트Cal. 3090을 발표하게 됩니다. 그 때문에 자주 비교 대상이 되는데 그 둘은 성격이 많이 다릅니다. AP는 기존의 클래식한 무브먼트들과는 차별을 두는 진화라는 방법을 선택했고 이에 반해 VC는 클래식함의 연장선을 긋게 됩니다. 이는 단적으로 두 메이커가 추구하는 스타일을 그대로 반영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AP가 자이로맥스를 사용한 프리스프렁 방식과 양방향 밸런스 브릿지와 같은 현대적인 유행을 취하면서도 진동수는 하이엔드 메이커들이 부품 마모를 이유로 고집하는 21,600bph이하의 로우 비트를 유지한 반면, VC는 레귤레이터 방식에 브릿지의 분할을 통해 볼 수 있는 클래식한 외관을 갖추었지만 정확성을 이끌어내기가 비교적 용이하다는 28,800bph를 수동을 비롯한 자동에도 동일한 비트수를 이식한 것을 보면 전통의 고수라는 측면에서 다소 앞뒤가 맞지 않아 보입니다. 또 파워리져브가 40시간에 불과한데 수동이야 그렇다고 쳐도 자동 무브먼트까지 굳이 40이라는 짧은 숫자에 고집한 이유에 대해서는 다소 의문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1400의 직경은 20mm를 조금 넘습니다. 일반적인(남성용) 수동 무브먼트와 비교해서는 작은 편인데, 무브먼트를 작게 만드는 이유의 하나는 범용성을 키우기 위해서입니다. 남성용에 비해 케이스가 작은 여성용에도 사용할 수 있는 등 폭넓은 활약이 가능합니다. 그 점은 메이커로서는 현명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지만 케이스의 대형화에 대해서는 무시한 부분이 있지 않았나는 생각이 듭니다. 1400은 피니싱에 대한 규정인 제네바 씰 을 받아 뛰어난 피니싱을 자랑하지만 씨스루 백이 아닌 솔리드 백으로 마무리 해 무브먼트를 구경할 수 없도록 한 것은 케이스에 비해 너무나 작은 무브먼트를 보여주기가 민망해서가 아닌가 합니다. 아쉬운 부분입니다.
직경 20mm를 조금 넘는 9리뉴(ligne)대 무브먼트이지만 직경에 비해 밸런스 휠은 상당히 큽니다. 밸런스가 클 수록 안정성(오차와 직결)에 유리하기 때문에 최대한 큰 것이 좋습니다. 다만 밸런스 휠을 제외한 나머지 공간이 부족하여 무브먼트를 단순히 보았을 때 느끼는 것은 ‘다소 답답하다’ 는 기분입니다. 직경이 넉넉한 26mm 정도였으면 구성에도 훨씬 여유가 있었을 텐데 범용성을 크게 염두 한 탓이라 보여집니다. 배럴(태엽통)과 2번 기어 등을 덮는 큰 브릿지는 파도 치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한 번 더 분할 되었으면 이스케이프먼트 휠과 4번 기어의 멋진 브릿지들과 어울려 클래식하면서도 정말 아름다운(더 이상은 나오지 않을 것 같은) 5 브릿지 무브먼트가 될 수 있었다는 아쉬움이 두고 두고 남습니다.
크라운을 통해 느껴 볼 수 있는 무브먼트의 성격은 이전까지 (JLC를 통해) 알 던 그러한 느낌과는 다소 단절감이 느껴집니다. 토크는 그리 크지 않으나 실크와 같은 감촉을 느낄 수 있었던 (느끼게 해줘야 하는) 그런 섬세함과는 거리가 있는, 즉 고급스러운 와인딩이라 볼 수 없습니다. 시간 조정시의 반응은 다소 미끄럽습니다.
디자인(Design)
JLC에 전적으로 의존하면서 기술력이 쇠태 하게 되면서도 지금까지 빅 3라는 칭호를 잃지 않게 해 준 것은 뛰어난 마케팅(역사성), 우아한 디자인과 무엇보다 예술에 가까운 다이얼이었습니다. (거기에 무브먼트에 별 관심이 없는 부자들의 지름)
샴페인 골드 또는 밝은 실버계 다이얼은 가히 최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매트(matt)와 샤이니(shiny)의 사이에서 절묘하게 밸런스를 잡았고 입자입자의 섬세함을 눈으로 느끼게 되면 절로 탄성이 나옵니다. 너무 건조하지도 또 너무 반짝이지도 않으면서 은은한 다이얼의 질감은 빅 3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것 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진으로 그것을 살리지 못한 것이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베젤이 극히 좁으면서 정장 시계로는 대형인 40mm 케이스를 가지고 있습니다. 때문에 다이얼이 극도로 강조된 시계인데 광활한 다이얼 위를 바 & 도트 인덱스와 타임 온리의 간결한 바늘 두 개가 지키고 있지만 생각 외로 썰렁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다이얼은 마치 금을 녹인 샘을 담은 듯 기품있으면서 여유가 넘칩니다.
무브먼트 부분에서 아쉬운 이야기를 많이 했지만 여전히 슬림한 시계가 주는 매력은 잘 간직하고 있습니다. AP의 3090이 두께를 희생하였기 때문에 슬림한 시계 만들기와는 작별을 해야 했지만 2.6mm의 1400의 두께로는 충분히 슬림한 시계를 만들 수 있습니다. 측면에서 보이는 슬림함의 매력. 거부하기 어렵습니다. 케이스 백은 솔리드 백으로 무브먼트를 볼 수 없다는 것이 저로서는 불만이지만 모델 넘버와 소재 등의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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