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라드 페리고 1966 애뉴얼 캘린더 & E.O.T
제라드 페리고를 상징하는 모델이 쓰리 골드 브릿지라면 히트 모델은 아마 칼리버 GP03300(구 GP3300, GP3300을 개량한 것이 GP03300이며 그 위로 그 보다 더 올라가면 GP3100이 됩니다) 같은 자동 무브먼트일 겁니다. 요즘에야 그룹 내 메이커끼리만 무브먼트를 공급하고 있지만 그룹화가 심화되지 않던 예전에는 지금보다 무브먼트(에보슈) 거래가 자유로운 편이었는데요. 예전부터 제라드 페리고는 예거 르쿨트르, 블랑팡(프레드릭 피게), 제니스처럼 무브먼트 공급원의 하나였고 공급시장이 더 심화된 요즘에는 유효한 무기이며 GP03300은 가장 대표적인 그 하나입니다.
리뷰의 모델은 칼리버 GP03300을 탑재한 제라드 페르고 1966 애뉴얼 캘린더 앤 이퀘이션 오브 타임입니다. 칼리버 GP03300은 지름 26.20mm의 자동 무브먼트입니다. ETA의 칼리버 2892가 25.60mm로 이 무브먼트의 주 사용처를 생각해 보면 GP03300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입니다. 주로 남성용 모델에 탑재되며, 드레스 워치에 적합한 형태지만 씨호크 같은 스포츠 워치에서도 활약합니다. 외부 공급 분까지는 모르겠으나 제라드 페리고의 시계 중 상당수는 이 무브먼트를 베이스로 삼습니다. 케이스 지름이 커지는 빅 워치 트렌드가 나타나면서 약 30mm 지름의 칼리버 GP4500 리네임 된 GP01800이 등장했지만 아직 그 사용처가 많지 않습니다. 게다가 요즘 드레스 워치에서는 사이즈가 조금씩 작아지는 추세도 보이고요. 무브먼트의 캐릭터를 본다면 제라드 페리고에서는 범용처럼 사용되는 만큼 무난합니다. 해야 할 일을 잘 수행하는 워크호스 타입이라고 하겠는데요. 앞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GP 3300을 개량한 것이 GP03300이라 차이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 까지 둘이 혼용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리뷰 모델은 개량이 된 형태면서 이름은 GP 3300입니다) 베이스(?)인 GP 3300은 최신형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연륜이 있는 무브먼트입니다. 프리스프렁이 일반적으로 자리잡기 이전의 것으로 트리오비스 레귤레이터를 사용합니다. 개량된 GP03300은 프리스프렁 구조에 변형된 스와넥 레귤레이터를 갖추고 있습니다. 레귤레이터 방식이 좋은가 프리스프링 방식이 좋은가는 미적인 관점, 선호에 따라 의견이 나뉘는 편인데요. 프리스프렁이 대체로 고급 무브먼트에 사용되는 경우가 많아 대체로 정확성이 높습니다. 이건 단순히 프리스프렁이라서 정확성이 높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문젠데, 메이커의 정확성 기준 같은 것도 작용할 테고 고급 무브먼트를 사용하는 메이커가 정확성의 기준이 엄격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어느 정도는 고급 무브먼트 구성의 상징처럼 받아들일 수 있지 싶습니다.
GP03300은 데이트 기능을 기본으로 가지는데 애뉴얼 캘린더와 이퀘이션 오브 타임(E.O.T 이하 균시차)을 구현하기 위해 모듈을 더했습니다. 이들 기능이 더해지고도 케이스 두께는 10.72mm인데요. 제가 후덕한 슬림 워치의 기준인 10mm를 살짝 넘지만 기능을 고려했을 때는 얇은 시계라고 봐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다이얼을 보면 포인터 데이트, 월(Month), 초침, E.O.T의 배치가 재미있습니다. 무심하게 늘어놓은 것 같기도 하지만 각각의 기능을 보는데 있어 산만하지 않고 다이얼만 봐도 한번에 ‘이 시계는 뭐구나’라고 알 수 있을 만큼 개성적입니다. 9시 방향의 스몰 세컨드는 다소 중앙에 치우쳐 있는 편입니다. 일반적인 스몰 세컨드, 즉 6시 방향에 있었다면 더 도드라져 보일 수도 있었는데 다른 기능의 배치에 의해 가려집니다. 2시 방향은 포인터 데이트이며 31일과 1의 표시방법이 재미있습니다. 그 아래 4시와 5시 방향에는 균시차고 데이트 방식을 사용한 기능은 월입니다. 풀 캘린더에서 요일을 생략하고 날짜와 월만을 표시하는 애뉴얼 캘린더입니다. 요일이 있다면 더 실용적이지만 적지 않은 수의 애뉴얼 캘린더가 날짜와 월만 표시합니다. 롤렉스의 스카이드웰러, 오메가 아쿠아테라 애뉴얼 캘린더가 그런 예죠. 요일을 표시하지 않으면 단순하게 생각했을 때 메커니즘이 보다 간단해지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특히 애뉴얼 캘린더는 실용성에 중점을 맞춘 모델인 만큼 보다 간단한 메커니즘으로 가격을 장점으로 내세워야 하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균시차 그래프의 예
애뉴얼 캘린더는 나름의 레시피를 가진 메이커들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제니스의 애뉴얼 캘린더 같은 모델을 조작해 보면 날짜의 전환 방식이 독특합니다. 이 모델 역시 그러한데요. 크라운을 당기지 않은 포지션 0에서 와인딩, 1에서 날짜 조정이 이뤄집니다. 케이스 측면에 조정을 위한 별도의 버튼은 없고 오직 크라운으로 조작을 하게 됩니다. 월을 단독적으로 조정할 수 없기 때문에, 최초 세팅이거나 한참 시계를 차지 않았다면 날짜를 계속 돌려야 하므로 시간이 걸립니다. 이 같은 형태가 된 것은 균시차와의 연동이 이유지 싶습니다. 시태양시와 평균태양시의 차이를 표시하는 균시차는 실제 태양의 움직임과 달력처럼 평균을 낸 태양의 움직임 사이의 차이를 보여주는 기능입니다. 실제의 태양시는 타원형의 공전궤도를 지나므로 그 길이 일정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24시간에 비하면 그보다 길기도 혹은 짧기도 하는데 이 차이를 보여주는 게 균시차죠. 이것은 프로그램, 내부의 메커니즘을 본다면 계산된 캠에 의해 표시되는데요.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완전한 시간 표시가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퍼페츄얼 캘린더와 주로 조합되는데 애뉴얼 캘린더와 조합되는 이러한 예는 다소 독특하다고 하겠습니다.
크라운만 사용하는 조정 방식은 가장 단순하지만 확실합니다. 그렇다고 융통성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한 달의 사이클(길이)가 31일인 달에는 날짜를 앞, 뒤 마음대로 돌릴 수 있습니다. 다만 31일이 지나서 월이 바뀌면 다시 이전의 31일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30일과 31일을 구분하는 애뉴얼 캘린더의 매커니즘 때문이지 싶은데요. 애뉴얼 캘린더 유일의 약점 2월에는 28일에서 31일까지 날자 조정 없이 그냥 놔둔다면 일반적인 데이트 메커니즘처럼 작동합니다. 28, 29, 30, 31을 전부 표시하고 3월 1일로 변경되므로 일년에 딱 한번 직접 변경을 해줘야 하죠. 균시차의 눈금은 +15에서 -15까지 되어 있고 단위는 분입니다. 이것은 하루, 이틀 정도로는 움직임을 느끼기 어려운 기능이며 실용성이 높다고 할 수 있는 기능은 아닌 듯 합니다. 월의 표시는 날짜가 흐름에 따라 서서히 변화하게 됩니다.
케이스는 40mm 지름이며 요즘 40mm 미만의 모델을 보면서 눈이 간사해졌는지 조금 크다 싶기도 합니다. 1966이라는 라인업의 이름대로 빈티지 드레스 워치를 떠올리는 케이스 라인인데요. 크라운의 모양도 이를 연출하는데 한몫 합니다. 전체적으로 남성적인 느낌이 강하며 마초적이라기 보다 부드러운 남성이 연상되는 라인입니다. 사실 케이스 지름이 40mm의 다이얼은 디자이너가 이것을 어떻게 구성해야 할까 고민할 만큼 넓은 면적입니다. 베젤이 다소 두툼해 다이얼 면적을 줄였고 다이얼 가득 기능이 채우고 있어 리뷰 모델에게는 고민사항이 해당되지 않을 듯합니다. 다이얼은 은은한 하얀색으로 그 위의 로즈 골드 바늘과 파란색 인디케이터를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케이스 백은 시스루 백을 사용하며 케이스 지름과 무브먼트 지름 사이의 여백이 나타나는 게 조금 아쉽습니다.
한 때 제라드 페리고는 스트랩 내부에 두꺼운 심을 넣어 스트랩이 평평하지 않고 중간 부분이 볼록 솟은 형태의 스트랩을 애용한 적이 있습니다. 예전 CEO였던 고 루이지 마카루소가 브리프 케이스의 손잡이를 보고 고안한 것으로 착용했을 때 입체적인 모양을 연출했죠. 이것이 제라드 페리고 스트랩을 단번에 알아보는 요소이기도 했는데 요즘에는 스티치가 없는 스티치리스 스트랩을 애용합니다. 이 모델에도 스티치리스 스트랩이 사용되었고 측면을 가죽으로 덮어 버리는 기법으로 완성되었습니다. 로즈 골드 케이스에 어울리는 고급스러운 스트랩입니다. 탱버클은 케이스 같은 소재이며 매력적인 측면 곡선을 그립니다.
애뉴얼 캘린더의 실용성에 균시차를 더해 보다 가격적, 균시차 기능의 대중적인 접근을 꾀한 모델입니다. 둘의 흔치 않은 조합도 인상적인데요. 현재 제라드 페리고가 속한 소윈드 그룹이 케링이 흡수되면서 변화를 꾀하고 있는 시점이라 모델들도 변동사항이 많습니다. 그래서 퍼페츄얼 캘린더가 부재 중으로 이를 대행해야 하므로 더 큰 역할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라인의 가장 기본 모델인 데이트 모델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1966 라인인 만큼 여기에 더할 나위 없는 디자인에 기능성이 잘 녹아 든 시계라고 생각합니다.
촬영 : 2nd Round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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