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귤레이터 Ref. CH 1241.1R
티파니의 레귤레이터 크로노그래프 회중시계. 이런 형태가 크로노스코프 개발에 영감을 주지 않았을까요?
크로노스위스의 시그니처는 단연 레귤레이터입니다. 시그니처는 바뀐 라인업의 이름이기도 한데요. 공교롭게도 레귤레이터가
속한 라인업이기도 합니다. 스몰세컨드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하나의 축에 있어야 할 시, 분침이 각기 다른 축에 배치된 형태인데요. 한 눈에 모든 정보를
읽을 수 있는 센터세컨드에 비하면 이런 형태는 시간을 읽는 데에 시간이 더 소요됩니다. 익숙하지 않기도
하거니와 각각의 바늘의 분산되어 눈이 하나씩 확인을 하고 와야 하기 때문이죠. 이런 불편한 시계를 만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레귤레이터라는 이름을 한 번 따져봐야 하는데 레귤레이터는 기준이 되는 시계, 즉 기준시를 표시하는 시계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시계 공방에서
완성된 시계를 출하하기 전에 시간을 맞추거나 오차를 측정하거나 할 때 기준시의 초를 확인하거나, 천문대처럼
정확한 시간이 필요한 곳에서 사용된 시계인데요. 이런 레귤레이터는 벽에 세워놓는 형태나 회중시계로 만들어졌습니다. 이처럼 특수한 용도로 만든 시계라 일반적인 용도로는 조금 불편할 수 밖에 없죠.
이것을 손목시계로 끌어낸 메이커가 크로노스위스입니다. 레귤레이터가 처음으로 런칭된 때가 1987년이고 올 해로 30주년을 맞이한 크로노스위스가 1983년 설립되었으니, 레귤레이터가 당시 크로노스위스의 성장에 얼마나 큰 역할을 했고 상징성을 지녔다는 건 현재에도 라인업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걸로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레귤레이터는 크로노스위스가 내놓는 제품마다 연속
히트를 치게 되기 전, 크로노스위스를 알리는 선구자적 역할을 하면서 시그니처로 자리잡는데요. 그 비결은 레귤레이터의 불편한 다이얼이었습니다. 요즘에야 레귤레이터를
만드는 메이커가 적지 않지만 기계식 시계가 되살아 날 꺼라 확신이 없었던 1980년대에는 지금보다 더
신선하고 새롭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기계식 세대에게는 향수로도 다가왔었을
테고요.
크로노스위스에게 가장 각별한 레귤레이터는 스스로를 기념하기 위해
종종 사용되며 위상을 드러냈습니다. 올 해 점핑 아워를 사용한 30주년
기념 모델, 빨간색으로 25를 표시한 25주년도 있었고 투르비용, 크로노그래프로도 베리에이션이 등장했었습니다. 현재는 수동의 그랜드 레귤레이터와 자동인 레귤레이터로 레귤레이터 라인업이 꾸려지는데요. 가장 핵심인 자동 레귤레이터는 바젤월드 2013에서 예고된 바와
같이 리디자인되어 신모델로 등장했습니다. 바젤월드가 개최될 무렵의 뉴스(https://www.timeforum.co.kr/7298785)를
보면 이미지가 작아서 잘 알아보기는 어렵지만 지금의 다이얼과도 다른 패턴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레귤레이터는
고심을 거듭하지 않을 수 없는 모델이니까요.
새로운 레귤레이터
Ref.CH1241.1R(스테인리스스틸은 Ref.CH1243.1)은 핵심적인 부분. 즉 무브먼트와 같은 기능하기 위한 부분을 제외하면 많은 부분에서 변화가 감지됩니다. 구형이 된 Ref. CH1223보다 2mm 커진 40mm의 지름이 되었고 무엇보다도 크로노스위스 디자인의
상징이었던 코인엣지 베젤이 스무스하게 변화했습니다. 코인엣지의 흔적은 측면에서만 찾을 수 있게 되었는데요. 사실 이 변화는 급작스러운 것이 아니라 그랜드 레귤레이터 등의 여러 모델에서 이미 측면 코인엣지가 적용된 바
있습니다. 새로운 레귤레이터에 대한 저항감 중 가장 큰 것이 이 부분인데요. 다른 모델에서는 큰 저항 없이 수용된 디자인이 왜 레귤레이터에서는 크게 부각되는가 한다면 역시나 크로노스위스의
시그니처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단일 디자인으로 장시간 생산되다가 보니 신모델에 대해 면역체계가
반응하는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구형이냐 신형이냐 어떤 디자인을 선호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취향의
영역입니다만, 아마 결말(?)은 신형 서브마리너처럼 나지
않을까 합니다. 두꺼워진 러그를 지닌 신형 서브마리너가 뚱뚱하다, 못생겼다, 세라믹 베젤이 지나치게 번쩍거린다라는 반응이 발매 당시에는 적지 않았지만 지금은 봐 줄만(?) 하니까요. 개인적으로 스무스 베젤을 선호하기 때문에 신형 케이스가
더 세련되어 보입니다. 코인엣지 베젤 말고도 케이스 측면의 헤어라인 가공의 심도가 살짝 더 깊어진 듯싶고, 케이스 지름은 늘어났지만 러그 길이가 살짝 짧아져 착용시 살짝 긴장감을 주는데요. 케이스와 스크랩 사이의 틈이 약간 줄어 줄면서 스트랩이 손목을 따라 그리는 커브의 시작점이 더 빨라졌기 때문입니다. 미세한 변화지만 나쁘지 않은 변화입니다. 크로노스위스 디자인의 또
다른 특징인 양파모양 크라운은 그대로 유지되었습니다. 이 부분이 변화했다면 저도 실망했을지 모르지만
그런 위험한 시도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라는 건 크로노스위스가 가장 잘 알고 있겠죠.
다이얼은 깨끗한 종이 위에 정갈하게 프린트를 한 것 같았던 구형 Ref.1223과 달리 매우 화려해졌습니다. 뉴스로 소개될 시점에서는
발리콘(Baleycone) 기요세 패턴으로 추정되나 빛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패턴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음영을 드러내는 밝은 실버 다이얼로 시침과 초침이 있는 구역은 다른 기요쉐 패턴이 사용되었군요. 다이얼이 빛을 받으면 화려함이 한층 더 해지는데요. 차분한 Ref.1223과 명확한 대비를 이룰 만큼 캐릭터의 변화를 읽을 수 있습니다.
청량한 블루 핸즈가 구형에서는 포인트 역할을 했다면 여기서는 반대가 아닐까 하는데요. 화려한
다이얼을 살짝 눌러주는 느낌입니다. 방사패턴의 다이얼은 레일웨이 미니트 인덱스로 한 번 조여주고 그
바깥에는 5분 단위로 숫자를 배치했습니다.
무브먼트는 칼리버 C.122로
변화가 없습니다. 베이스 무브먼트는 에니카(Enicar)의
칼리버 165인데요. ETA의 칼리버 2892 같은 범용 무브먼트가 주로 탑재되는 크로노스위스 브랜드에 적합한 마당쇠(Workhorse) 스타일의 비범용 무브먼트입니다. 이것은 에니카의
칼리버 165가 원래 고급성향은 아니었다는 의미기도 합니다. 크로노스위스가
사용하는 칼리버 165는 NOS로 알려져 있었는데 이제는
크로노스위스의 인 하우스로 봐야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NOS치고는 지금까지 사용된 숫자가 너무
많으니까요. 칼리버 C.122는 칼리버 165를 그대로 사용한 것은 아닙니다. 양방향 와인딩이 되는 칼리버 165를 단방향 와인딩으로 변경하는 기능적 수정이 이뤄졌고요. 로터
브릿지의 루비는 골드 샤톤을 사용해 세팅하거나 로터가 금색으로 변하는(골드인지 도금인지는 확인 못했습니다만
로터에 금 함량의 표시가 없습니다) 등의 고급스럽게 보이도록 하는 코스메틱과 연관된 수정을 거쳤습니다. 표면 가공에서도 제네바 스트라이프와 페를라쥬를 병용해 과거의 에니카와 비교하면 전혀 다른 수준의 무브먼트로
보일 만큼 아름답게 변했습니다. 바로 앞에서 말한 비범용이라는 점도 어딘가 매니아의 심리를 자극하는데요. 무브먼트의 성능이 ETA와 같은 범용에 비해 월등히 우월하지는 않다고
해도 크로노스위스에서만 즐길 수 있다고 한다면 이 또한 매력의 하나지 싶습니다. 레귤레이터로 다이얼이
복잡해 보이나 기능상으로는 타임온리로 크라운 포지션은 0과 1이
됩니다. 30m 방수이기 때문에 스크류 다운 크라운은 아니고 바로 크라운을 돌리면 태엽이 감기는데요. 다소 빡빡함이 없지 않습니다. 오버 사이즈의 양파모양 크라운이 생김새
뿐 아니라 기능적으로도 활용될 수 있는 포인트겠군요. 한 칸을 당기면 시간 조정이 이뤄집니다. 조정 시 딱히 거슬리거나 하는 것 없이 무난한 반응을 합니다.
무브먼트를 드러내는 씨스루백은 다이얼 만큼 화려해 졌습니다. 케이스 백을 돌려 열 수 있도록 기능적인 가공만을 한 구형에 비하면 담고 있는 정보가 상당히 많아졌네요. 메이커 명, Ref. 넘버, 시리얼
넘버, 케이스 소재, 방수 성능 표시에 스위스 메이드 다이얼에
이어 한차례 더 강조됩니다. 본사를 독일에서 스위스로 이전했다는 사실을 한 번 더 상기시킵니다. 시스루 백의 링 부분은 다소 급한 경사를 그립니다. 두께 11mm 드레스 워치로는 살짝 두꺼운(Cal.122가 살짝 두껍다 보니)편이나 케이스 백을 볼록하게 만들어 시각적으로는 두께를 느낄 수 없도록 하는 기교를 부렸습니다.
스트랩은 정식 제품이 아닌 까르네라서 커멘트를 생략하겠습니다. 이미지로 이러한 컬러의 스트랩이 장착된다 정도로 보시면 될 것 같네요. 버클은 이미 친숙한 크로노스위스의 로고가 살짝 돌출된 모양이고, 러그에서처럼
버클에서도 머리가 볼록한 다소 오버사이즈의 나사를 사용해 멋을 냈습니다.
크로노스위스와 그들의 팬에겐 이미 고전이 된 레귤레이터. 이것을 굳이 바꾸려고 하지 않았다는 게 제 결론입니다. 물론 Ref.1223에 비하면 무척이나 화려해졌지만 화려해졌다고 본질이 변화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사랑 받고 있는 레귤레이터와 그 정체성이 잘 유지되어 다행이다라고 말할 수 있어서 저로써도 다행인 리뷰였습니다.
촬영&착용모델 Picus_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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