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토리크 어메리칸 1921 (Historiques American 1921)
올 해는 슬프게도 바쉐론 콘스탄틴의 에센셜이라 할 수 있는 히스토릭 라인에서 새로운 모델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9월에 등장할지도 모릅니다. 사실 며느리도 모릅
니다) 가장 긴 역사를 지니는 메이커인 만큼 풍부한 유산이 남아있는 바쉐론 콘스탄틴의 역사적인 모델을 부활시켜 그 과거를 들쳐보는 재미가 쏠쏠한 라인인데요. 톨레도
1957처럼 디자인만을 되살려 살짝 흥미가 떨어지는 모델이 있는 반면, 울트라 파인 1955나 1968처럼 현재에도 사용되고 있는 무브먼트 덕분에 재현도 100%를 달성해 가슴
뛰게 하는 모델도 있습니다. 저로써는 가장 재미있어 하는 라인업인데 2008년 말 등장한 어메리칸 1921은 최근의 히스토릭 모델 중 가장 강렬했습니다. (쿠션 케이스면 다 좋
아하는 성향이 리뷰에 들어가 있음을 미리 알려드리며 시작합니다)
타임온리의 이 시계는 기능적으로 특별하지 않지만, 이 시계가 처음 발표되었던 1919년에는 좀 특별한 시계였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참전과 연합군의 승리를 통해 초강
대국으로 발돋움하기 시작한 미국. 1920년대 미국은 활기와 자신감에 차 있었고,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운 시대였습니다. 스위스 시계 메이커들은 자연스레 성장시장으로 지
금의 중국처럼 미국을 주목했을 테죠. 바쉐론 콘스탄틴이 1919년을 시작으로 북미지역에만 판매했던 시계가 지금의 히스토릭 어메리칸 1921의 기원입니다. 시계 역사로 보
면 회중시계의 시대에서 손목시계의 시대로 변화하던 때이기도 합니다. 어메리칸 1921 쿠션 케이스에 달린 짤막하고 그리 도드라지지 않는 수줍어하는 러그는 이런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1919년의 첫 오리지날 모델은 지금의 어메리칸 1921과 달리 크라운이 10시 방향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12시 방향이 45도 정도 돌아가 있는 이유
는 이 모델의 기원과 관련이 있습니다. 가장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내용이 드라이버(Driver's) 워치로 드라이브를 좋아하는 부호가 스티어링 휠을 잡은 상태에서도 시간을 쉽
게 읽을 수 있는 시계를 요청했다는 것입니다. 바쉐론 콘스탄틴에 정통한 소식통은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해주었는데요. 이런 형태의 시계를 요청한 것은 한 주교였다
고 합니다. 그가 종교의식을 행할 때 스티어링 휠을 쥔 것과 마찬가지로 강단에 손을 뻗은 상태에서 자유롭게 시간을 볼 수 있기를 원했기 때문이라고 하는군요.
어메리칸 1921의 원조 빈티지 모델
12개만 만든 빈티지 모델의 디자인에 더 가까운 뉴욕 부틱 에디션(64개 한정)
어메리칸 1921은 크라운의 위치가 10시가 아닌 2시에 위치합니다. 1920년대에는 크라운이 10시와 2시. 두 개의 버전이 있다고 전해지는데, 크라운이 2시에 있는 버전은 10년
간 12개 생산되었다고 알려져 있었습니다. 소량인데다가 특정 지역에만 생산되었던 탓에 긴 시간 숨겨진 보물처럼 잠들어 있었던 셈이죠. 이것이 경매시장에 등장하면서 존
재를 드러냈고, 어쩌면 바쉐론 콘스탄틴조차도 잘 몰랐을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먼지 케케묵은 아카이브를 뒤졌을 지도 모릅니다.
가로 40mm, 세로 40mm의 케이스지만 수치보다 더욱 크게 보이는 것은 쿠션 케이스 특유의 라인 덕분인 것 같습니다. 베젤의 존재 없이 글라스에서 바로 케이스로 연결되
며, 네 개의 면이 8개의 점으로 연결되는 케이스는 볼륨감과 기분 좋은 포만감을 선사합니다. 정면에서 봤을 때 러그의 끝이 볼록하게 처리된 것은 충실한 재현입니다. 물론
빈티지 버전에 따라서는 디테일이 다르기도 하지만 분명한 건 러그가 러그의 자리로 찾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으로 회중시계에서 손목시계로의 전환기 특유의
매력입니다.
왼손잡이가 (오른손에) 착용하면 이렇게 보입니다
핑크 골드 케이스 속에는 아이보리 다이얼이 들어가 있습니다. 바쉐론 콘스탄틴의 다이얼을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다이얼 완성도는 하이엔드 중에서 가장
돋보입니다. 샌드 블라스트 가공으로 조밀한 알갱이 패턴을 드러낸 다이얼의 질감과 색감은 뛰어납니다. 스몰세컨드가 한 바퀴 그려내는 작은 공간은 다른 패턴의 레이어를
사용했고요.
검정색 바늘은 예전 크로노그래프 리뷰에서 언급되었던 금 소재의 바늘을 'Black Oxidized' 해 검정색으로 만든 호화스러움입니다. 어메리칸 1921에서 아르누보적인
구석이 보이는 것은 아라빅 인덱스의 폰트가 아닐까 싶은데요. 폰트 자체의 매력도 매력이지만 여러 번 겹쳐 찍어 입체감을 드러낸 것이 발군입니다. 그 주위로는 레일웨이
인덱스를 배치해 다이얼을 살짝 조여 긴장감을 만들어냅니다. 심플한 타임 온리의 구성이지만 허전하지 않습니다. 스몰 세컨드의 위치. 당시에는 크라운, 12시 인덱스, 스몰
세컨드의 중심축이 일직선을 그렸던 것에 반해, 지금은 90도를 그려냅니다. 어느 쪽이 더 시간을 읽을 때 유리한 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나뉘겠지만, 좀 더 매력적인 형태가
어떤 것이냐고 한다면 저는 지금의 배치라고 하겠습니다.
케이스 백은 시스루 방식으로 다이얼과 마찬가지로 글라스에서 바로 케이스로 이어집니다. '케이스 백이 다소 허전하다, 입체감이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다이얼
면과 같은 방식으로 글라스에서 케이스로 이어지기 때문인데요. 실제 착용을 하면 이 부분이 상당한 장점이 됩니다. 피부와 밀착되어 좋은 착용감을 만듭니다.
탑재된 칼리버 4400은 주력 수동 무브먼트인 칼리버 1400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등장합니다. 브릿지 숫자가 좀 적은 것만 빼면 클래식 형태로는 괜찮은 무브먼트인
칼리버 1400의 결정적인 문제(무브먼트 구성 요소의 유행을 따르지 않은 점은 결점은 아니지만 튀어 보이긴 합니다)는 지름까지 클래식했던 것에 있습니다.
1999년 발표된 시점에서는 문제가 없었지만 2000년대 초, 중반부터 빅 워치가 등장하면서 케이스 지름 급격하게 확대되자 이것에 대응할 수 없다는 문제점이 드러납니다.
이것은 비단 바쉐론 콘스탄틴만의 문제는 아니었지만요.
칼리버 1400의 짧은 파워리저브를 의식한 듯 65시간의 파워리저브를 지닌 칼리버 4400은 지름 28mm의 만족할만한 사이즈로 이미지에서 보시듯 40mm 케이스에도
충분합니다. 브릿지 숫자를 최소화(?)하는 것은 1400에 이은 전통(?)인지 좀 더 잘게 잘라도 될 것 같은데도 양감 넘치도록 분할한 부분은 불만입니다.
(바쉐론 콘스탄틴의 커뮤니티를 보면 두께 때문이라고 하는데, 두께 2mm에 미치지 못하는 무브먼트 중에서 더 잘게 자른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이 불만(?)은 케이스 모서리에 이채롭게 달린 크라운을 통해 4400을 느낄 때에도 이어집니다. 크라운 포지션 0에서 크라운을 돌리면 반응이 반박자 느리다고 할까요?
한 번 돌릴 때 크라운 지름의 절반 정도를 돌린다고 하면 1/3정도는 동력을 감지 못하고 헛돌다가 회전의 2/3가 되어서 감기기 시작합니다.
자동이 아닌 수동 무브먼트라면 쫀득한 감기의 즐거움이 떨어지는, 즉 개선이 필요한 내용이죠. 크라운을 한 칸 당긴 포지션 1에서 시간을 조정해 보면 즉각적이며
묵직하다는 느낌대신 바늘이 다이얼 위에서 미끌거리는 느낌과 손끝에 신경을 집중해야 할 필요를 느낍니다. 크라운이 조금 헐겁게 붙어 있다는 인상도 듭니다.
제네바 실을 받은 피니싱은 충분히 아름답습니다. 무브먼트를 분해 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지만, 좀 예전에 살짝 게을리 했던 페를라쥬도 완벽하게 되어 있음을 자료를
통해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다이얼과 마찬가지로 악어 가죽 스트랩의 퀄리티는 가장 만족스럽습니다. 오랜 착용을 해보지 못했지만 적어도 눈으로 느끼는 만족감은 독보적입니다. 케이스 컬러와의 조
화, 가죽의 패턴이나 질감. 스프링 바는 케이스를 따라 곡선을 그리며, 이미지에서는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지만 쉽게 분리되도록 처리했습니다. 버클은 탱 버클로 반을 자른
말테 크로스입니다.
국내에는 최근 비로소 소량이 들어와 실물을 접해 볼 수 있었습니다. (연말 정모에서 전시되어 있었죠) 바쉐론 콘스탄틴에 따르면 생산량이 적은 것이 입고지연의 이유라고
하는데요. 그 덕분에 해외에서는 발매 초기 바쉐론 콘스탄틴의 현행 모델로는 보기 드물게 프리미엄을 형성하던 적이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지금은 발매되고 시간이 흐른 시
점이라 예전에 비하면 구입하기가 수월해졌다고 할 수 있지만 여전히 예전에 비해서 입니다. 바쉐론 콘스탄틴이 소비자의 애를 태우는 일은 그들의 점잖은 이미지만큼이나
보기 어렵습니다. 어메리칸 1921은 좀 예외적입니다. 타임 온리의 기능 대비 4천만원대의 가격을 생각이란 것을 생각하면 역시나 좀 이례적인 반응입니다. 가격은 솔직히
저항감이 없는 것이 아니지만 그 만큼 매력적이라는 반증이 아닐까 싶군요.
촬영과 착샷 모델은 Picus_K님이 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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