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nd Seiko HI-BEAT Ref.SBGH005
그랜드 세이코 61GS
세이코는
일찍이 36,000vph의 무브먼트를 개발하여 사용한 바 있습니다. 1968년의 61GS, 45GS가 그것입니다. 조금 딴 길로 빠지면 크로노미터
콩쿨용으로 360,000vph의 클락을 내놓은 적도 있죠. 높은
진동수의 장점은 정확함을 구현하는데 유리한 조건이 됩니다. 오차가 일어나는 원인은 매우 복합적이지만, 하나의 요인은 충격입니다. 손목시계가 하루 동안 어떤 동선을 그리는지는
생각보다 가혹합니다. 1분 1초를 다투는 출근길 지각을 면하기
위해 계단을 뛰어 오른다던가, 회식자리의 과음 때문으로 꽐라가 되어 길바닥에 자기도 모르게 쓰러져 버린다던가
말이죠. 이런 격한 사용자의 움직임 속에서 시계는 시도 때도 없이 충격과 싸워야 하죠. 정확한 시간을 표시하기 위해 매우 일정한 박자를 두드려야 하는 밸런스와 이스케이프먼트에게 충격은 박자를 일그러뜨리는
큰 적입니다. 고속으로 진동하는 하이비트는 충격이라는 측면에서 보았을 때 장점이 됩니다. 김연아를 예로 들어보죠. 빠르게 스핀 할 때와 상대적으로 느리게
스핀 하고 있을 때 중 어느 쪽이 외부충격의 영향이 적을까요? 답은 빠르게 스핀 할 때이고, 밸런스도 빠르게 진동하는 편이 외부 영향을 덜 받게 됩니다. 밸런스와
이스케이프먼트의 박자가 흐트러지지 않는다면 정확할 수 있겠죠. 문제는 빠르게 진동하는 만큼 잃는 것도
있다는 건데요. 잘 아시다시피 오일 열화가 빨라지고 빨리 뛰는 만큼 마모도 빨라집니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대표적인 36,000vph인 엘 프리메로는 최적화
된 오일을 개발했고, 요즘 36,000vph가 무색해지게
만드는 브레게의 72,000vph나 쇼파드의 57,600vph는
실리시움이나 그와 유사한 방법을 해결책으로 들고 나왔습니다. 이야기가 다른 데로 샜군요.
무브먼트
–보이지 않는 부분-
하이비트 계보인 만큼 'HI-BEAT 36000'이라고 표시되어 있습니다
2009년 세이코가 발표한 그랜드 세이코 하이비트는 36,000vph의 계보를 잇는 모델입니다. 기존 자동 무브먼트인 9S65를 베이스로 28,800vph에서 36,000vph로 올리기 위한 대규모의 수정을 가하게 됩니다. 이 부분은 무브먼트를 분해하지 않으면 알기 어렵습니다. 하이비트 모델에 탑재된 9S85는 우선 토크를 상당 폭 증가시킵니다. 9S65대비 50%가량의 토크 증가를 꾀했다고 하는데, 실제로 와인딩을 해보면 ‘내가 태엽을 감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전해옵니다. 토크가 너무 강한 나머지 크라운이 와인딩 반대 방향으로 되돌아 가는 강한 탄성력까지는 아니지만, 묵직함에 조금 미치지 않는 정도의 느낌이 옵니다. ETA 2892처럼 휘릭휘릭 크라운을 돌리는 느낌에 비하면 확실히 차이가 느껴집니다.
그냥 단순한 작대기 같지만 말 그대로 마법을 부리는 작대기 입니다. 한쪽은 끌고 한쪽은 미는 역할을 합니다. 매직 레버. 61GS에서 사용되었습니다
MEMS 가공으로 완성된 이스케이프먼트 휠, 앵커. 이스케이프먼트 휠의 끝은 오일을 머금을 수 있도록 홈이 있어 윤활성을 강화합니다
9S에서는 와인딩 시스템이 완전히 바뀝니다. 세이코는 전통적으로
독자적인 와인딩 시스템인 ‘매직 레버’를 사용했습니다. 매우 단순한 나머지 조금 볼품없게 보이는 것도 사실이지만, 극도로
간략하면서 효율적이며 공간도 차지하지 않습니다. 9S는 그 대신 ‘리버서’ 방식을 채용하는데 이것은 ETA의
2892나 롤렉스의 313X가 대표적입니다. 재미있는
건 세이코가 리버서를 9S에 사용하고, 최근에는 스위스 메이커들이
매직 레버를 응용한다는 거죠. 대표적으로 까르띠에가 사용중입니다. 리버서를
사용한 이유에 대해서는 실제로 본사의 들었는데 토크가 강한 9S의 효율적인 와인딩을 위해서라고 합니다. 기존의 매직레버로는 와인딩 효율이 떨어졌다고 합니다. 이스케이프먼트
휠과 앵커는 MEMS(Micro Electro Mechanical System)를 이용하여 가공되어 있습니다. 반도체 기술을 응용하여 만들어낸 이들 부품은 가공의 정밀성, 경량화가 가능했고 이스케이프먼트의 톱니는 오일을 머금을 수 있도록 되어 있어 윤활성에서 향상을 보이게 됩니다. 다른 부분으로는 헤어스프링의 소재가 ‘스프론
610’으로 변했다는 점으로 내자성과 같은 실제 사용상 편의를 위한 개선이 이뤄졌다고 합니다.
무브먼트
–보이는 부분-
무브먼트
자체의 디자인만 봤을 때는 세이코 스타일이랄까요? 군더더기가 없고 깔끔합니다. 표면의 피니싱은 제네바 스트라이프를 사선으로 넣은 방식으로 ‘도쿄
스트라이프’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제네바 스트라이프에 비하면
스트라이프와 스트라이프 사이의 간격이 좀 더 넓고 더 깊어 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빛과 닿았을 때, 로터의 위치에 따라 스위스 무브먼트와 다른 느낌을 보여주게 됩니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앵글라쥬가 생략되어 있다는 건데요. 그랜드 세이코와 같은 하이엔드영 무브먼트인 9R(스프링드라이브)에는 앵글라쥬가 들어가 있습니다. 9S에서 앵글라쥬가 없다고 해서 모서리의 날이 서있다거나 아니면 모서리가 울퉁불퉁하다거나 하는 그레이드에 맞지
않는 가공이 되어있는 것은 아니지만, 앵글라쥬가 들어가면서 더욱 고급스럽게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조작을 해보면 데이트
기능을 갖춘 시계로서 0단에서 수동 와인딩, 1단에서 날짜
조정, 2단에서 시간 조정입니다. 시간 조정시의 크라운의
느낌도 가벼운 편은 아닙니다. 너무 가벼워서 바늘을 이리저리 굴려야 하는 조작감도에 비해서는 다소 무거운
편을 더 선호합니다. 그 편이 섬세한 조작을 하기에 더 쉬우니까요. 시침과
초침을 원하는 위치에 놓고자 한다면 큰 어려움은 없어 보입니다. 크라운의 크기도 적당한 편이고요.
디자인
1960년 첫 발매가 된 그랜드 세이코는 벌써 50년이 넘은 모델입니다. 세이코의 최상위 모델로서 기품과 무게를 갖추어야 했고 칼리버 넘버에서 궁극를 의미하는 숫자9를 사용한 것처럼 디자인에서도 그것이 반영 되어야 했을 겁니다. 그랜드 세이코의 현재 라인업에서는 몇 개의 케이스 디자인이 있는데 가장 주된 형태는 리뷰의 Ref.SBGH005이 보여주는 라인입니다. 이 케이스를 바탕으로 크로노그래프에 최근에는 다이버 워치까지 만들어집니다. 심플하지만 매우 단단해 보이는 러그이고, 거울 같은 폴리시 가공과 헤어라인 가공을 병행했습니다. 롤렉스의 오이스터 케이스에서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싶을 만큼 제게 전해진 느낌은 비슷했습니다. (디자인이 비슷하다는 게 아니라 필~이 그렇습니다) 케이스 가공은 흠잡을 데가 거의 없습니다. 헤어라인의 질감이나 표면을 손 끝으로 더듬어 보았을 때의 부드러움, 폴리시 가공의 투명도. 모서리의 처리처럼 살릴 데는 살리고 또 아닌 곳은 매끄럽게 처리해야 하는 것에서는 세이코의 최고 모델답습니다. 이것은 브레이슬릿에서도 마찬가지로 측면의 폴리시 가공과 함께 전체의 헤어라인 가공도 매우 빼어납니다. 원 터치 식의 클라스프는 쉽게 탈착이 가능케 합니다. 촬영을 도와주신 picus-k님의 말을 빌리면 손목의 착 감기는 착용감이 마음에 든다고 하셨습니다. 아무래도 동양에서 만든 시계이니 동양인의 체형에 더 어울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유일한 단점은 예전부터 주의 깊게 보고 부분이기도 한데, 케이스와 브레이슬릿의 결합 지점입니다. 둘이 완전히 밀착되지 않기 때문에 틈이 벌어져 있고 보기에도 좋을 리가 없습니다. 틈은 약간의 유격을 유발시킵니다. 이 유격이 꼭 나쁘지 만은 않은 게 좋은 착용감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유격이 전혀 없는 브레이슬릿을 장시간 착용하면 손목에 압박을 느낍니다. 착용감은 개인적인 감각이라 다른 분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제 경우에 유격을 크게 나쁘게 보지는 않지만, 시각적으로 결점인 것은 사실입니다. 다른 모델도 아니고 그랜드 세이코라면 더 크게 보이는 부분입니다.
다이얼, 인덱스, 핸즈의 가공에서 흠 잡을 부분은 없어 보입니다. Ref.SBGH005은 블랙 다이얼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중심에서 바깥으로 퍼져나가는 패턴이 숨어 있습니다. 이것은 눈으로 봤을 때보다 카메라를 통했을 때 더 잘 보이네요. 조금
과하다 싶을 만큼의 입체감(인덱스가 높아서 그런가요?)의
인덱스의 가공, 로흐에 반사된 인덱스는 심플함 속의 화려함입니다. 면과 면을 잘 살려내어 흔한 모양이지만 흔하지 않은 핸즈를 만들어 낸
가공, 데이트 윈도우에서도 허술함이란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너무 완벽을 추구한 가공이 조금 차갑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그랜드 세이코에
어울리는 디테일 겁니다.
화이트 다이얼인 Ref.SBGH001
손목협조 picus-k님
Ref.SBGH005의 가격은 우리나라 돈으로 8백만 원 중반, 일본 현지의 가격이 세금 포함 577,500엔으로 요즘 1400원 언저리에서 왔다갔다 하는 환율로 봤을 때 현지 가격과 마찬가지라는 게 큰 장점입니다. 게다가 이 모델의 경우 마스터 샵 전용 모델이라는게 또 하나의 메리트입니다.
그랜드 세이코를 전문으로 하는 샵을 마스터 샵이라고 하는데 여기에서만 취급하는 모델입니다. 일반적인
샵의 경우 재량에 따라 할인이 발생하는데 마스터 샵은 이 부분이 더 엄격한 편입니다. 할인률 같은 실제
구매시를 가정하면 가격 메리트는 더욱 커 보입니다. 8백만 원 정도의 돈으로 선택한다고 했을 때, 그랜드 세이코를 처음부터 고른다는 것은 조금 어려운 일입니다. 국내에서
중저가 라인으로 전개되었던 그 동안의 세이코를 봐서는 인지도나 인식을 바꾸기 위한 시간이 필요할 테죠. (가격적인
부담이 있다면 하이비트가 아닌 9S65를 탑재한 대안도 있긴 합니다만…)
제가 드릴 수 있는 확실한 부분은 시계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랜드 세이코의 기계식은 6포지션의 3개의 온도변화라는 조건 아래 17일 동안 테스트를 거쳐야 합니다. 그랜드 세이코에 탑재되기 위한 무브먼트는 GS규격을 만족해야 하는데
하루 -3~+5초라는 오차 범위는 하루 오차 -4~+6초라는 COSC보다 엄격한 수치입니다. 정확하고 실리적이며 자신의 독자적인
디자인을 고수하는, 여기에 매뉴팩처라는 점은 롤렉스와 유사합니다. 롤렉스와
가장 큰 차이는 앞서 말한 브랜드 인지도겠군요. 물론 이 부분이 크긴합니다만…
‘동양의 롤렉스’를 원하신다면 그랜드 세이코가 정답일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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