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is Erard 1931 Chronometer Chronograph Ref. 77 220 AA23
대한민국 시계 마니아들은 정보가 없습니다. 우리는 가격대비 합리적인 브랜드나 나의 취향과 나의 지갑 사정을 알아주는 중가의 시계를 찾고 있지만. 아직도 정보는 턱없이 부족하고, 론칭한 브랜드는 적고. 그나마 들어온 브랜드들도 원하는 시계를 오더하고 받으려면, 저렴한 주제에(?) 'R'사의 데이토나 기다리듯 아리수 떠놓고 치성이라도 드려야 할 판입니다. 하지만 이번 리뷰에서 소개해드릴 루이 에라르라는 국내에 론칭한진 얼마 되지 않았지만 특화된 아시안 마케팅과 모토(무엇보다 가격) 그리고 특유의 디자인으로 발빠르게 신흥 시장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중저가의 합리적인 시계’라는 재미있는 모토를 가진 이 브랜드는 공식 홈페이지에 위트있는 멘트를 날릴 줄 아는 즐거운 브랜드입니다.
빨간 줄 역: 루이 에라르의 연금술사들이 스틸을 핑크골드로 연금하는데 성공했습니다!!
(핑크골드가 들어간 시계를 합리적인 가격에 판매한다는 이야기를 위트있게 써 놓은 것)
위의 자료는 루이 에라르의 본사 홈페이지의 Key dates(번역하자면 '연혁'정도 되겠습니다.) 카테고리에서 가져왔습니다. ( http://en.montres-louiserard.ch/historique/dates-cle/) 회사 연혁에 '연금술'을 언급할 정도의 위트가 있는 브랜드는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런 멘트를 적어 놓을 정도의 용기(?)를 가진 브랜드라면, 루이 에라르는 적어도 자신의 시계를 구매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를 잘 알고 있고, 그 사람들이 어떤 것을 원하는지를 다른 어떤 브랜드보다 잘 파악하고 있다는 자신감을 표현한 것이겠지요. 하지만 이 브랜드는 ‘즐거운’ 브랜드이긴 해도 결코 ‘가벼운’ 브랜드는 아닙니다. 루이 에라르는 80년 이라는 장구한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 브랜드일 뿐 아니라 대중적으로 사랑을 받는 시계를 만들기 위해 진지하게 연구하는 브랜드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잠깐 루이 에라르 80년 역사를 훑어보자면,
1931년. (지금으로부터 딱 80년 전이네요.) 루이 에라르는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건 시계를 내놓습니다. 이전 Pikus_K님의 리뷰에서 1929년에 라쇼드퐁에서 시작된 브랜드 라는 언급을 하셨는데 이 역시 맞는 말입니다. 1929년 루이 에라르와 앙드레 페렛이 함께 브랜드 론칭을 했고, 1931년에는 처음으로 루이 에라르라는 이름으로 시계를 만들었습니다. 원래 이 브랜드의 수입원은 여러 시계 브랜드들에게 자금조달을 해주는 것 이었습니다. 그리고 루이 에라르는 본업(cashing)과 부업(watchmaking)에서 썩 잘하고 있었죠. 하지만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듯, 80년대부터 90년대는 기계식시계의 '암흑기'였고, 루이 에라르는 이 시기에 앙드레 페렛 가문과의 독립을 하게 되면서 긴긴 휴식기간을 갖게 됩니다. 이후 밀레니엄이 되고 나서야 루이 에라르는 다시 시계를 제작하기 시작했지요.(2003년) 비록 그들의 역사에서 쿼츠쇼크인 1980년부터 2003년까지의 역사는 공백으로 남아있긴 합니다만, 다른 유수의 워치메이커들도 대부분 이 기간의 역사를 공백으로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크게 개의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지난 리뷰에서 마니아분들께서 신랄하게 지적해주셨던 ‘가격’문제까지 해결한 거품 없는 브랜드니 역사성 정도야.
어쨌든 루이 에라르의 (상대적으로)짧은 역사가 시계를 ‘대충 만든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위에서 역사를 언급한 이유는 루이 에라르가 한 번 '희미해졌다가' 재 론칭을 하기 시작하면서 홍보와 대응에 자연스럽게 후발주자가 될 수 밖에 없었고, 이는 브랜드 인지도에 있어서 큰 타격이었음을 시사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품질이나 퀄리티 면에서 루이 에라르는 분명 '저평가'된 브랜드입니다. 독일차에서 한국에서 찾을 수 없는 특유의 감성과 신뢰를 발견하는 것처럼, 루이 에라르 역시 나름의 철학을 가지고 진지하게 기계식 시계에 접근하고 있습니다. 원가 절감을 위해 ‘중국산 무브먼트’를 쓰지 않는다는 것이 그 첫번째이고, 꾸준한 한정판 발매로 새로운 모델의 생산 주기를 당기고 대중문화와 소통하는 디자인을 완성한다는 것이 두번째. 9명의 워치메이커가 있다는 것이 세번째. 마지막으로 스위스를 제외하고 40개국에 시계를 수출하고 있다는 점이 그렇습니다.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보자면, 흔한 ‘패션브랜드’ 시계들이 품질 보증도 안되는 중국산 무브먼트를 집어넣고 루이 에라르와 비슷한 가격으로 시계를 팔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신다면, 시계에 대한 정보가 없는 대중들은 패션 브랜드들의 ‘봉’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드실겁니다. 자유시장은 ‘선택’의 자유도 있지만 ‘정보가 완전히 주어지지 않았을 때의 선택’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선택’이 아니지요. 그리고 그런 선택은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함부로 말을 할 수 없습니다.(경제학 용어로 정보의 비대칭(Information asymmetry, George Akerlof, Michael Spence, Joseph E. Stiglitz)이라 하는데, 더 많은 것을 원하신다면 위키백과로..) 어쨌든. 그런 의미에서 루이 에라르 같은 브랜드는 가히 노다지라 볼 수 있습니다. 프레드릭 콘스탄트와 오리스 사이에서 어떤 ‘느낌’을 망설이고 있으신 분들이라면, 루이 에라르가 그 대안으로 충분할 것 같습니다.
다이얼
다이얼의 느낌은 스포티합니다. 44mm의 케이스가 주는 시원함과 탄소섬유(또는 타이어의 바닥 패턴)같기도 한 풍경 위로 크로노그라프 핸즈와 데이트 모듈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베젤에는 타키미터가 각인되어 있으며, 12시 방향의 서브-다이얼은 ‘분’단위 적산을, 6시 방향의 서브-다이얼은 ‘시간’단위 적산을. 9시 방향의 서브다이얼은 주 시간(main-hour)의 초를 표시합니다.
핸즈는 블록형태(Block-form hands)에 구멍이 뚫려있으며 케이스의 크기 만큼이나 시원시원하게 뻗어있는 핸즈는 드라이빙이 가져다주는 상쾌함을 함축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12시 방향의 서브 다이얼은 핸즈 대신 디스크가 회전하는 형태입니다. 이러한 형태는 최근 까르띠에의 론드-드 까르띠에 센트랄 크로노그라프나 몽블랑의 스타 니콜라스 뤼섹 크로노그라프에서 볼 수 있는 모습으로, 크로노그라프를 스탑-리셋시에 디스크가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이 인상 깊습니다. 1931 크로노그라프 역시 이러한 디스크의 역동성을 디자인에 염두한 것 같습니다. 리셋시 “촤락”소리를 내며 감기는 디스크의 소리와 감촉은 루이 에라르의 독특한 시계 철학을 상기시키며 즐거움을 안겨주었습니다.
케이스
이 시계는 루이 에라르의 1931년 시계 제작을 기념하기 위한 ‘1931’라인에 위치해 있으며. 300점 한정판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케이스 왼쪽에는 상단와 같이 Chrono 1931이라는 글씨가 인그레이빙 되어 있습니다. 케이스는 샌드위치 형태로 유광 케이스 캡 사이에 무광 케이스가 겹쳐 있어서 단조로울 수 있는 디자인에 활력을 불어넣습니다. 케이스 재질은 스테인레스 스틸이며, 방수 능력은 5 ATM입니다. 시스루백은 44mm 케이스와 7750의 무브먼트를 보여주기 위한 나름의 합의(?)로 인해 약간 어색해 보이는게 사실입니다. 이야기가 나온김에 아쉬운 이야기를 한 번 더 하자면, 44mm의 케이스 때문에 손목 둘레가 17cm이하이신 분들에게는 조금 큰 디자인입니다.(앞서 루이 에라르가 아시아 마케팅에 특화되어있다고 언급했었는데, 루이 에라르는 컨셉별로 ‘케이스 직경’을 지정해서 만드는 몇 안되는 브랜드입니다. 44mm의 이 시계는 루이 에라르가 만드는 모든 시계 중 가장 큰 사이즈입니다.)
케이스를 찬찬히 관찰하면서 크라운과 케이스 사이에 미세한 간격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이는 어셈블리(조립) 과정상의 문제가 아니라 케이스와 케이스 사이의 마찰로 발생하는 스크래치를 방지하기 위한 루이 에라르의 세심한 배려로 보입니다. 물론 이렇게 디자인을 바꾸면 방수 능력에 문제가 생길 수 있지만, 이 시계는 드라이빙 컨셉의 크로노그라프 시계이고, 실제로 대부분 브랜드의 드라이빙 크로노그라프워치의 방수능력은 5 – 10 ATM입니다. 여러분이 제이슨 본이나 제이슨 스타뎀이 아닌 이상 아우디를 탄 채로 물 속으로 뛰어들 일은 없으니까요. 루이 에라르는 워치 컨셉이 주는 일종의 ‘자유’를 유저를 위한 배려로 베풀어 냈습니다. 크라운과 케이스 사이의 약간의 유격에서 저는 왠지모를 신뢰를 느꼈습니다.
스트랩
스트랩의 안감은 스웨이드로 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일반적(?)인 악어가죽의 느낌과는 다른 부드러움을 느낄 수 있는데, 스웨이드가 땀, 물과 같은 오염에 민감하다는 사실만 제한다면 촉감적 만족감은 훌륭합니다. 스트랩 안쪽에는 Cuir Veritable이라고 적혀있는데, ‘소가죽’이라는 뜻입니다.
많은 분들께서 공감하고 계시듯 스트랩은 ‘소모품’입니다. 루이 에라르는 이러한 사실과 촉감이 주는 만족감을 잘 알고 있어서, 교체비용을 생각한 ‘소가죽’과 부드러운 촉감의 ‘스웨이드’를 선택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타임포럼 활동을 하면서 생각보다 많은 시계들을 만져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스웨이드를 스트랩 안감으로 사용하는 시계는 이 시계가 처음이어서 나름 신선했습니다.
무브먼트 & 조작감
무브먼트는 발주(Valjoux) 7750을 사용하였습니다. 시스루로 보이는 것 과 같이 7750 에보슈 무브먼트에 로터를 교체하고 코스메틱을 추가한 형태입니다. 일반적인 7750 무브먼트의 특징인 착착 감기는 푸시 텐션과 부드러운 데이트 체인징, 로터의 박력있는(?) 움직임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무브먼트 코스메틱은 아름답습니다. 로터 센터에 반짝이는 블루 스크류와 로듐 플레이트의 로터는 시원시원하고, 그 뒤로 보이는 페를라주 역시 아름답습니다.
시원하게 7750 크로노그라프의 매커니즘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7750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많은 분들이 해주셨으니, 저는 이번 리뷰에서 코스메틱의 의미에 대해서 잠깐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오늘날 ‘필립듀포’ 옹 님께서 피니싱의 극한을 공중파로 몸소 실천하신 바. 많은 마니아들께서 ‘피니싱’을 장식적인 기능으로서만 알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불에 구운 블루스크류나 루비가 ‘장식적인’기능만을 하고 있지 않듯. 무브먼트의 피니싱 또한 미적 기능 이외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두 가지 모두 인과과정의 전이로 극한의 미적 표현이라는 영역으로 올라가버렸지만, 블루스크류는 산화와 부식에, 루비는 회전으로 발생하는 마찰과 마찰열을 최소화하는데 사용됩니다. 마찬가지로 피니싱은 제작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미세 먼지나 쇳가루, 무브먼트 조직이 받을 힘의 ‘고른 분산’을 위한 최적의 형태입니다.
크로노그라프의 푸시전과 푸시 후의 모습. 캐링암이 움직이는게 보입니다.
다만 완전히 수작업으로 진행되는 앵글라쥐의 경우에는 피니시의 비용과 무브먼트의 완성도 사이에서 찾아 낼 수 있는 균형 가격이 높게 형성되기 때문에 대부분 하이 클라스의 시계에서 찾아 볼 수 있다는 것 입니다. 하지만 기계와 수작업이 동시에 진행 될 수 있는 코트 드 쥬네브나 페를라쥐의 경우에는 합리적인 가격대를 형성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브랜드들이 사용하고 있습니다.(그렇지만 이 역시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절대로 아니죠.) 루이 에라르의 시계는 이러한 ‘기본’을 충실히 지키고 있습니다. 아무리 현대 기계식 시계에서 의미가 없어진 코스메틱일지라도, 루이 에라르의 최소한의 과거는 지키고 보존하려는 태도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굳이 ‘R’사나 ‘P’사의 고집스러움과 다른 브랜드들의 피니싱을 언급하며 시시비비(是是非非)하지 않겠습니다. 이는 시비를 가릴 수 없는 문제일 뿐만 아니라 어떤 선택이 ‘합리적’인 행동일지는 모두 소비자의 판단아래 이루어지니까 말이죠. 어쨌든 저는 루이 에라르의 이러한 기본을 지키는 모습을 높게 평가합니다.
기본스펙
케이스 재질: 스테인리스 스틸 |
마치며
최근 루이 에라르에 대한 타임포럼 회원분들의 관심이 많아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여러 브랜드의 시계를 소개하고, 만져보고, 이렇게 리뷰하면서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면서도 그것을 부담으로 느끼면서 즐겁게 리뷰를 하는 이유는. 여러분의 깨알같은 조언과(가끔씩 던져주시는 악플) 그리고 변함없이 보내주시는 응원과 추천.. 이기도 합니다만(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또한 한 시계를 지켜보면서 그 브랜드의 현재와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갖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이관지(一以貫之)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의 이치로서 모든 것을 꿰뚫는다는 이 말은 제가 루이 에라르의 시계를 리뷰하면서, 과거의 시계를 리뷰하면서, 앞으로의 시계를 리뷰하면서 제 글을 보시는 회원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이기도 합니다. 한 가지 시계가 이쁘네, 안이쁘네, 가격이 비싸네, 싸네. 이렇네 저렇네 하는 이야기도 재밌고 좋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조금 더 진취적이고 다각도로 시계를 바라보는 마니아들이 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예쁘고 안이쁘고, 비싸고 안비싸고 밖에 할 말이 없다면, 마니아와 일반인들과.. 무엇이 다를까요? ^^;) 비록 제가 여러분들게 수준 높은 안목을 올려드릴 수 있을 만큼의 글을 쓸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말이죠..(최소한 'P'님과 'A'님.. 'M'님 'T'님은.. 굉장히 열심이십니다.^&^)
이번 루이 에라르의 시계는 아름답습니다. 클래식한 시계를 선호하는 제 취향과는 약간 거리가 있지만, 시원시원한 다이얼과 7750 크로노그라프의 쿨한 매력, 합리적인 가격대를 원하시는 분들께는 최선의 선택이 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그런 제가 이번 리뷰를 즐겁게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시계 곳곳에서 느껴지는 루이 에라르의 정성과 시계(timepiece)에 대한 진지한 접근 때문이었습니다.
언젠가.. 어떤 분을 만났을 때, 그 '어떤' 분의 손목 위에서 루이 에라르를 발견할 수 있다면. 저는 그 분에게서 '위트 있는 신사'를 발견 할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마니아 분들께서 공감하시듯. '손목 위의 시계'가 주는 첫 인상은 제법 맞는 편이고, 또 오래가는 편이지요. ^^ 위트가 있으려면, 탄탄한 기본이 있어야 합니다. 루이 에라르는 '어떤' 사람에게서 그러한 '편견'을 갖게 해주기에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널려있는 흔한 보석이 아니라, 숨겨진 보석을 찾을 수 있는 사람.. 은은한 향기가 나는 사람..
루이 에라드는 그러한 '편견'을 심어줄만한 자격이 있는 브랜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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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어: 소고
사진촬영 : 2nd Round studio 김두엽
루이 에라르 1931 Chronometer Chronograph Ref. 77 220 AA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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