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쉐론 콘스탄틴 메티에 다르 시리즈 3편 - 기요셰
바쉐론 콘스탄틴(Vacheron Constantin) 메티에 다르(Metiers d’art) 시리즈 1편-에나멜링(>>관련 컬럼 보러 가기)과 2편-인그레이빙(>>관련 컬럼 보러 가기)에 이은 3편의 주제는 기요셰(Guilloché)입니다. 예술 공예를 일컫는 메티에 다르의 한 갈래인 기요셰는 독특한 구석이 있습니다. 작은 도구를 손에 쥔 인간에게 의존하는 다른 예술 공예와는 달리 기계가 개입합니다. 다시 말해, 기요셰는 인간과 기계가 혼연일체가 되어 만들어내는 합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요셰의 기원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나 16세기 이탈리아 예술가들이 돌로 만든 건축 장식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구전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어로 물방울을 뜻하는 고치아(Goccia)가 기요셰를 의미하는 고어(古語) 기오치아레(Ghiocciare)로 변형됐다는 추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기요셰의 어원이 시계 장식으로 적합한 인터레이스 곡선을 새길 수 있도록 페달로 작동하는 기계를 개발했던 프랑스인 기요(Guillot)의 이름에서 비롯했다고 보기도 합니다.
- 전통 방식으로 기요셰 패턴을 새기는 기요셰 머신.
기요셰 패턴을 결정하는 원판인 로젯(Rosette)을 이용해 일정한 패턴을 다이얼에 새긴다.
예술 공예의 마스터 바쉐론 콘스탄틴과 기요셰의 인연은 메종이 설립된 18세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6세기 중반 종교의 자유를 찾아 제네바로 몰려든 신교도의 상당수는 전문직이었습니다. 그 중에는 금은 세공사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종교개혁의 일환으로 보석과 장신구 착용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자신들의 기술과 역량을 시계 제조에 접목시킵니다. 그리하여 제네바는 17세기말부터 고급 시계의 중심지로 각광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고급 시계에서 가장 중요했던 요소 중 하나는 예술 공예였습니다. 전문 기술과 독창성이 요구되는 기요셰 또한 이런 예술 공예의 하나로 여겨졌습니다. 1755년 제네바에서 태동한 바쉐론 콘스탄틴은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주요 기요셰 기법
- 레이옹 드 글루아르 기요셰(점핑 아워 회중 시계 Ref. 10152)
- 라인 기요셰(캐비노티에 미닛 리피터 투르비용 스카이 차트 레오 컨스텔레이션 주얼리)
- 패브릭을 모방한 기요셰(메티에 다르 엘레강스 사토리얼 컬렉션)
- 태피스트리(에제리 문 페이즈)
기요셰 장인들은 뛰어난 손재주와 타고난 미적 감각을 바탕으로 기요셰를 구현합니다. 클루 드 파리(Clous de Paris)를 비롯해 그랑 도르주(Grains d’orge), 그로 그랑(Gros grains), 레이옹 드 솔레이(Rayons de soleli), 플랭케(Flinqué)로도 불리는 레이옹 드 글루아르(Rayon de gloire), 파니에(Panier) 등 여러 기요셰 패턴을 지속적으로 개발하는가 하면 꽃이나 나무 같은 모티프를 더해 시계를 아름답게 보이도록 연출하는 능력도 갈고 닦았습니다. 심지어는 메티에 다르 엘레강스 사토리얼(Métiers d'Art Élégance Sartoriale) 컬렉션에서 보여준 클래식한 남성복에 활용하는 패브릭을 모방하는 형태까지 개발하기에 이릅니다. 헤링본이나 프린스 오브 웨일즈 체크, 타탄, 윈도우패인, 핀스트라이프 같은 패턴으로 장식한 독창적인 기요셰 다이얼은 바쉐론 콘스탄틴의 넘치는 창작욕을 여과 없이 보여줍니다.
- 바쉐론 콘스탄틴의 조형적 기요셰를 만끽할 수 있는 메티에 다르 유니버스 인피니 엔젤(Métiers d'Art Les Univers Infinis Angel)
기요셰의 영역에서 바쉐론 콘스탄틴이 이룩한 눈부신 성취 가운데 하나는 조형적 기요셰(Figurative guilloche)의 개발입니다. 점과 선으로 단순한 패턴을 새기는 것을 넘어 다양한 대상을 마치 그림을 그리듯 기요셰로 구현합니다. 일정하지 않은 무작위 형태를 제작하는 이러한 아방가르드적 기요셰 기법을 통해 사물이나 동물 같은 기하학적이지 않은 디자인을 아무렇지 않게 구현할 수 있는 능력은 어디에서도 쉽게 접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바쉐론 콘스탄틴은 조형적 기요셰의 높은 자유도를 기반으로 창작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기요셰와 다른 예술 공예 기법과의 초월적 결합을 통해 혁신을 추구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모든 활동은 전통적인 노하우는 곧 혁신이라는 바쉐론 콘스탄틴의 지론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기요셰 장인을 칭하는 마스터 기요셰어(Master guillochéur)는 기요셰 머신과 번뜩이는 상상력을 벗삼아 다양한 디자인을 창조해냅니다. 마치 화가가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은 새하얀 도화지 위에 형형색색의 물감을 뿌리듯 골드나 실버와 같은 얇은 금속판이나 케이스 혹은 무브먼트의 로터 같은 작은 부품에 패턴을 한 땀 한 땀 채워 넣습니다. 날카로운 끌로 금속 표면을 파낸다는 점에서 인그레이빙과 유사하지만 입체적이고 질서정연한 무늬를 만들어낸다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바쉐론 콘스탄틴의 어느 마스터 기요셰어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기요셰에서 중요한 것은 장식의 아름다운 가독성과 명암의 대비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섬세한 세련미와 가시적 존재 간의 합의점을 끌어내야 하죠. 즉, 절제된 매력과 탁월한 혁신을 드러낼 수 있는 균형점을 찾는 게 중요합니다."
이렇게 탄생한 기요셰는 빛이 만들어낸 음영에 교차하는 선과 얽히고 설킨 곡선이 빚어내는 기하학적 패턴이 어우러지며 시계에 무한한 생명과 예술성을 부여합니다. 인간의 따스한 손길과 정성에서 나오는 매력은 오로지 전통 방식 그대로의 기요셰에서만 느낄 수 있습니다. 현대적인 공정으로 얻은 결과물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매력과 광채를 지닌 탓에 바쉐론 콘스탄틴은 기요셰 앞에 "수공"이라는 단어를 덧붙여 표현하기도 합니다. 기요셰에 대한 메종의 자부심과 철학이 묻어나는 지점입니다. 대대로 물려받은 오래된 기계(주 : 바쉐론 콘스탄틴의 기요셰 공방에 있는 기요셰 머신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1800년대에 생산됨. 가장 최근에 생산된 기계는 1950년대에 만들어짐)를 이용해 옛날 방식 그대로 기요셰를 새기는 모습에서도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대하는 바쉐론 콘스탄틴의 자세를 엿볼 수 있습니다.
- 라인 기요셰
기요셰 작업에는 서로 다른 두 개의 기계가 필요합니다. 하나는 길게 뻗은 직선과 선형을 위한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곡선과 원형을 디자인하는데 쓰입니다. 작업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기요셰 패턴을 새길 다이얼의 크기를 측정하고 디자인을 구상합니다. 패턴을 결정하는 커다란 원판인 로젯(Rosette)을 장착하면 마스터 기요셰어와 기계에게로 공이 넘어갑니다. 장인은 한 손으로는 동그란 크랭크(Crank)를 좌우로 돌려가며 다이얼을 이리저리 분주하게 움직입니다. 나머지 손으로는 뾰족한 끌이 달린 캐리지(Carriage)를 앞으로 밀었다 당기며 무늬를 새깁니다. 이때 마스터 기요셰어의 시선은 다이얼에 고정되어 있습니다. 다이얼을 회전시켜 무늬의 간격을 맞추고 속도를 조절하며 끌을 제어해 얼마나 깊이 파낼지(깊이 약 0.03mm~0.04mm)를 조절하는 섬세한 작업은 오랜 경험과 절륜한 손재주, 경이로운 집중력, 빼어난 미적 감각이 뒤따라야만 가능합니다.
- 태피스트리
매트릭스(Matrix)라고 부르는 기요셰 패턴의 원본 디자인을 다이얼로 옮기는 태피스트리(Tapisserie)는 반복적인 모티프를 구현하는 기요셰 기법으로, 다이얼 중앙과 가장자리를 오뜨 꾸뛰르 패브릭을 연상시키는 플리츠(Pleats) 패턴으로 장식한 에제리(Égérie) 컬렉션에서 볼 수 있습니다.
# 주요 워치 셀렉션
기요셰 기법이 가미된 메종의 여러 작품 중에서도 눈여겨볼만한 제품을 추려 소개해 드립니다. 멀게는 18세기부터 가깝게는 현행 컬렉션에 이르기까지 바쉐론 콘스탄틴의 기요셰는 시대와 상관 없이 예술의 극단을 추구해 왔습니다.
- 1780년에 출시된 인그레이빙 골드 포켓 워치
메종 역사상 처음으로 케이스와 다이얼을 기요셰로 장식한 포켓 워치. 에나멜 로마 숫자와 샹르베 플로럴 부케를 더해 고전적이면서도 화려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기요셰 다이얼을 완성했다. 여기에 파운싱 장식으로 알려진 양각 인그레이빙 기법을 더한 케이스밴드와 보리 낟알 형태의 발리콘 기요셰 패턴으로 장식한 케이스백이 시계를 한층 더 풍성하게 만들어 준다. 과일, 나뭇잎, 꽃 모티프에 악기 등의 디테일을 더하는 방식으로 미니멀한 기하학 구조에 전원적 감성을 담아낸 루이 16세 스타일에 완벽히 부합한다.
- 2000년에 제작된 살타렐로 시계
19세기부터 제작된 바쉐론 콘스탄틴의 점핑 아워 포켓 워치를 손목 시계로 재구성한 제품. 기요셰, 페인팅, 에나멜링 기법을 총망라한 다이얼과 점핑 아워 및 1997년에 첫 선을 보인 독창적 컴플리케이션인 레트로그레이드를 접목시켰다. 수공 기요셰로 새긴 선버스트 패턴이 다이얼 하단에 위치한 분침의 축을 기점으로 핑크 골드 다이얼 전체를 아우른다. 무브먼트의 골드 로터도 기요셰로 장식했다.
- 2011년에 출시된 메티에 다르 유니버스 인피니 도브 시계
그래픽 아티스트의 선구자로 불리는 모리츠 코르넬리스 에셔(Maurits Cornelis Escher)가 즐겨 사용했던 테셀레이션(Tessellation, 모자이크 세공)에서 영감을 받았다. 에나멜링, 젬세팅, 인그레이빙 기요셰 기법을 동원해 제작한 호화로운 다이얼에서 비둘기 무리를 감상할 수 있다. 인그레이빙 장인이 먼저 옐로 골드 플레이트에 비둘기의 외곽선을 그린 다음 샹르베 기법을 활용해 에나멜링 장인이 빈 공간을 채우고, 젬세팅 장인이 보석을 박아 풍성한 매력을 더하면 마지막으로 기요셰 장인이 여러 비둘기가 서로 얽힌 듯한 이미지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섬세한 작업의 특성상 에나멜링 기법을 적용한 시계의 최종 제작 단계에 기요셰 작업을 수행하는데 이런 방식은 흔치 않다.
- 메티에 다르 플로리에쥬(Métiers d'Art Florilège) 시리즈
1799년에 출간된 영국 출신 식물학자 로버트 존 손턴(Robert John Thornton)의 저서 <꽃의 신전(The Temple of Flora)>의 일러스트에서 영감을 받은 제품. 마스터 기요셰어는 다이얼이 될 골드 플레이트에 식물을 디자인한다. 그 다음 꽃잎을 그려 볼륨과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모델에 따라 45~73개의 영역을 일일이 장식한 뒤 가마에서 여러 번의 소성 공정을 거치는 그랑 푀 클루아조네(Grand Feu Cloisonné) 에나멜링 과정을 통해 강렬한 힘과 생동감을 부여한다.
- 2022년에 제작된 캐비노티에 "레 흐와욤 아쿠아티크" 투르비용 주얼리 – 씨 홀스
레 흐와욤 아쿠아티크(Les Royaumes Aquatiques®, 바다의 왕국)이라는 테마를 주제로 한 유니크 피스. 메종의 다양한 예술 공예 기법이 얼마나 유기적이고 상호 보완적으로 다뤄질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샹르베 기법으로 옐로 골드 플레이트의 윤곽선을 그리고 기요셰 및 인그레이빙 기법으로 해마가 살아 숨쉬는 바닷속을 연출할 공간을 확보한다. 뒤이어 투명한 에나멜 레이어 코팅을 더하고 가마에서 3~4번의 소성 과정을 거치는 클루아조네 에나멜링 기법을 적용한다. 젬세팅 장인은 카보숑 컷 사파이어로 해마의 눈을 표현한다.
기요셰에서 기계가 담당하는 역할이 아무리 크다한들 기계를 다루고 기계와의 조화를 추구하는 것은 결국에는 인간의 몫입니다. 기계는 인간의 손을 확장한 수단일 뿐이라는 바쉐론 콘스탄틴의 외침은 기요셰와 예술 공예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습니다. 단순한 점과 선의 나열에 그칠 수도 있는 기요셰를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메종의 기요셰 장인들은 오늘도 기계와 무언의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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