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밀턴 카키 테이크 오프 오토 크로노
미국 북동부의 펜실베니아주 랭카스터에서 시작한 해밀턴은 아직 본거지를 스위스로 옮기기 이전까지 아메리카 대륙을 무대로 활약하고 있었습니다. 그 활약상의 하나가 1919년 미국 최초의 정기우편 항공기의 공식시계로 채용된 것인데요. 이후 미국이 참전한 제2차 세계대전에서 해군의 마린 크로노미터와 필드 워치의 대명사인 카키를 선보이며 군용시계와 인연을 맺은 이후, 각 군의 비행대에 시계를 공급하며 파일럿 워치로도 나름의 족적을 남기고 있습니다. 해밀턴이 파일럿 워치의 기능면에서 독특한 부분은 편각(Dritf Angle) 계산이 가능한 X-윈드, 미터-야드 환산이 가능한 X-패트롤처럼 자동 항법장치가 등장한 이래 소멸된 비행보조 기능을 꾸준히 내놓고 있는 점과 비행기뿐 아니라 헬리콥터까지 영역에 두고 있는 점입니다. 이것은 스위스에서 헬리콥터를 이용한 구조와 수송을 하는 에어 체르마트(Air Zermatt)와 함께 비행 로그 기록이 가능한 카키 플라이트 타이머를 개발하는 것에서 나타나는데요. 이번에는 카키 테이크 오프 오토 크로노로 또 다른 모습을 선사하게 되었습니다.
카키 테이크 오프는 시계가 담긴 케이스를 먼저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은색을 두르고 ‘No Step’, ‘Pull to open’같은 단어와 리벳으로 장식한 케이스는 마치 기체를 떠오르게 하는데요. 이것을 열면 콕핏의 계기반을 마주하고 있는 것 같은 각종 고도계, 수평계 같은 계기들이 들어차 있습니다. 이것이 움직였다면 더욱 재미있긴 하겠지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계기반의 만듦새가 꽤 괜찮습니다. 리뷰의 주인공은 이들 가운데에 고정되어 있습니다. 카키 테이크 오프는 검정색 라운드 케이스를 왼쪽으로 살짝 돌린 뒤 들어올리면 데크 워치처럼 고정되어 있던 시계가 분리됩니다. 이 상태로 사용하면 스톱워치처럼 활용이 가능하고, 케이스 두께가 다소 두툼해 책상 위에 세워둘 수 있어 탁상시계처럼 쓸 수 있습니다. 케이스 지름이 46mm인데다가 블랙 PVD로 표면처리를 해 하얀색 아라빅 인덱스가 뚜렷하게 대비되어 탁상시계용으로도 충분히 활용가능한 시인성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계기반을 들어올리면 카키 테이크 오프를 결합하여 손목에 착용할 수 있는 케이스 백과 이것에 연결된 스트랩이 보입니다. 주황색 해밀턴 로고가 매달린 열쇠고리 같은 것도 보이며 열쇠고리 용도로도 사용할 수 있지만 날짜를 수동으로 변경할 때 사용하는 핀이 매달려 있습니다. 이것을 이용해 케이스 8시 방향에 있는 오목한 푸시 버튼을 눌러 날짜를 바꾸게 됩니다. 카키 테이크 오프는 처음 계기반에서 분리했을 때와 반대 방향으로 돌리면 스트랩과 연결된 케이스 백과 체결됩니다. 고정 후 다시 한번 잠그는 장치가 없기 때문에 약간 불안한 기분이 들지만, 체결 된 이후에는 물리적으로는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습니다. 칼리버 H-31 자체의 두께, 카키 테이크 오프의 케이스 두께, 손목시계용 케이스 백의 두께가 더해지고 러그가 구조상 상당히 아래쪽에 위치하기 때문에 손목에서 돌출되어 보입니다. 블랙 PVD라 케이스 지름만큼 크게 보이지 않지만 멋지게 소화하기 위해서는 평균 이상의 손목 둘레가 필요하겠군요.
스톱워치 상태에서 크라운이 12시 방향, 스타트/스톱 버튼이 2시 방향, 리셋 버튼이 4시 방향으로 배치된 일명 불 헤드(Bull head) 스타일입니다. 크라운과 푸시 버튼이 그리는 실루엣이 마치 소의 머리 같은 실루엣을 그리는 데서 기인한 것으로, 스톱 워치처럼 사용할 경우 불 헤드 배치가 좀 더 사용하기에 편리합니다. 두 손을 사용하지 않고 한 손으로 조작이 가능하기 때문이죠. 손목시계로 변신해서도 이 배치는 그대로 유지됩니다. 케이스는 측면에서 멋을 냈습니다. 케이스처럼 기체를 연상시키는 장식과 손목시계로 사용하기 위한 고정 방향을 ‘Lock’과 함께 나타냅니다. 코인 엣지처리한 베젤은 좌우로 돌릴 수 있고, 다이얼 바깥쪽의 눈금이 베젤을 돌릴 때 함께 돌아갑니다. 다이버 워치와 5, 10, 15 같은 숫자 배치가 있으나 위치는 대칭됩니다. 이것은 카운트 다운 기능을 사용하기 위해서이며, 베젤은 상당히 무겁게 돌아갑니다. 물론 다이버 워치처럼 1클릭씩 회전하지 않고 스무스하게 걸림 없이 돌아갑니다.
크라운 조작을 할 때에는 손목시계보다 스톱워치 형태가 더 편안합니다. 크라운은 스크류 다운 방식이며 조작을 위해서는 크라운을 풀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크라운을 푼 포지션 0에서 수동 와인딩, 한 칸 당긴 포지션 1에서 시간 조정을 합니다. 날짜는 앞서 케이스 8시 방향의 버튼을 눌러 개별 조정이 가능한데요. 이것은 칼리버 H-31의 베이스 무브먼트인 ETA 칼리버 7753의 특성을 그대로 따르기 때문입니다. (칼리버 7753의 기본 형태에서 날짜변경은 케이스 10시 방향에 있습니다. 여기서는 무브먼트를 90도 시계 반대방향으로 회전시키면서 날짜 변경 버튼도 8시로 변경되었습니다) H-31은 칼리버 7753이 베이스이나 몇몇 해밀턴 전용 사양으로 수정된 부분이 있습니다. 스톱워치 상태에서 시스루 백을 통해 보이는 H-31의 브릿지를 보면 해밀턴 이니셜을 반복적으로 각인해 장식했고, 레귤레이터의 형태로 일반적인 7750, 7753과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성능 면에서 어떻게 다른지는 같은 7753이라고 해도 그레이드가 각기 달라 단순비교가 어렵지만, 브리지 같은 수정에서는 그 차이가 대번에 드러납니다.
크라운을 와인딩을 해보면 쫀득하다고 할까 찰지다고 할까 돌리는 느낌이 좋습니다. 크라운을 돌리는 느낌이 약간 무겁다고도 할 수 있지만 칼리버 7750 중에서는 와인딩 감촉이 최상위권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다만 크라운을 풀어 조작이 가능한 상태에서는 다소 불안한 느낌이 드는데요. 이 때 크라운에 강한 충격을 가하면 크라운과 크라운 스템이 연결되는 부분이 부러지거나 구부러질 수도 있을 것 같아 보이는군요. 크라운을 한 칸 당겨 시간 조정을 해보면 와인딩과 비슷하게 무겁게 바늘이 돌아가며 원하는 위치로 분침을 옮기기에 용이합니다. 캠을 사용하기는 하나 스타트, 스톱 시 푸시 버튼의 압력차는 그렇게 크지 않습니다. 비교적 매끄럽게 크로노그래프 작동이 이뤄지며 리셋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전반적인 조작성을 우수한 편이며, 핀을 이용해 오목한 버튼을 날짜를 바꾸는 동작도 무난합니다. 간혹 정확하게 누르지 않으면 날짜가 바뀔 듯하다가 바뀌지 않는 까탈스러운 무브먼트도 있으니까요.
다이얼은 콕핏, 콕핏의 데크 워치를 이미지하고 있습니다. 노란색 화살표를 사용한 크로노그래프 바늘이 주목성이 뛰어나며 9시 방향에 있어야 할 12시간 카운터를 삭제하고, 12시 방향 30분 카운터와 9시 방향 영구초침의 크기를 키워 비교적 간결한 구성을 얻어냈습니다. 폰트는 카키(카키 필드)의 것을 사용해 라인업의 통일성과 또렷한 가시성을 추구합니다.
케이스 백의 스티커는 제거 가능하나 까르네인 관계로 제거하지 않고 촬영했습니다. 양해바랍니다.
스트랩은 두툼한 심을 넣은 점을 빼면 전면에서는 큰 특징이 없습니다. 손목과 닿는 후면은 미끄러움 방지 혹은 통풍을 고려했고, 버클은 케이스와 느낌이 유사한 크고 단단한 형태로 손목에서 두꺼운 케이스를 잘 고정하도록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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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으로 비행이라는 테마를 시계 자체에서 또 시계를 수납하는 케이스를 이용해 120% 살려내고 있습니다. 데크 워치를 손목 위에서 살려내며 인기를 얻은 B모 브랜드의 시리즈를 카키 데이크 오프 하나로 저렴하게 대체할 수도 있겠고요. 어쩌면 시계를 수납 케이스에 고정한 뒤 책상 위를 콕핏으로 바꿀 수 있는 좋은 아이템이 될 수도 있겠군요. 위 동영상에서는 에어 체르마트의 카키 테이크 오프 활용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계 자체로 본다면 일상생활에서 사용하기에 충분한 성능을 지니고 있으나, 앞서 말한 것처럼 구조적인 형태로 인해 손목에서 돌출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무게 중심이 높아지면서 착용시 다소 불안하게 작용할 수도 있고, 특히 손목이 가는 편이라면 손목과 케이스 백의 접하는 면이 좁아지면서 더욱 불안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시계가 손목 두께를 가리는 편이라는 점이 좀 아쉽긴 하나, 손목 두께에서 여건(?)이 된다면 반대로 상당히 멋지게 소화할 수 있으리라 생각되며, 이런 재기 발랄한 파일럿 워치가 해밀턴에서 계속 나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촬영 : Picus_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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