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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onoswiss ::

아티스트 컬렉션

Picus_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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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듀포의 다큐멘터리를 보고 기계식 시계에 매료된 사람이라면 스위스 워치메이커의 메뉴팩쳐를 방문했을 때 실망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컴퓨터와 최신 CNC 머신들로 가득 찬 작업장 안에서 당신이 상상했던 소박한 아뜰리에나 장인이 한땀한땀 시계를 만들던 모습은 이미 없습니다. 


달리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것이겠습니다. 첨단 기계들은 수십년 시계 장인이 아니면 불가능할 품질을 젊은 시계공들로도 가능하게 만듭니다. 컴퓨터로 제어하며 깍아낸 부품은 더 정밀하고 편차가 없을 뿐 아니라 생산성도 훨씬 높아 인건비 높기로 유명한 스위스에서 만든 시계를 그나마 저렴하게 살 수 있게 해 줍니다.


하지만 뭔가 아쉬움은 있습니다. 기계식 시계를 좋아하는 근원적 정서에서 우러나오는 아쉬움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좀 더 정확하고 튼튼한 시계임에는 틀림없지만 대량생산 체제 하에서의 몰개성화된 나의 시계가 마치 현대를 살아가는 나와 같은 처지인 듯 한 동질감마저 듭니다.


그런 점에서 지난해 크로노스위스가 전한 아티스트 컬렉션 소식은 시계 애호가의 한사람으로서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아티스트 컬렉션이란 이름처럼 전통적인 수작업에 의해 제작된 다이얼을 바탕으로 기존의 시계에서 느낄 수 없는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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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체른(Lucerne)의 크로노스위스 본사 내 특별하게 마련된 작업장에서 1924년 라쇼드퐁(시계제조 계획도시 지명)에서 제작한 앤틱 로즈 엔진을 비롯해서 1960년대의 직선 길로쉐 커터 등 크로노스위스만이 보유하고 있는 앤틱 툴을 이용해 전통적인 기법으로 다이얼을 완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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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4년 제작된 로즈 엔진(Rose engine) 장치>


1924년에 만들어진 기계라니 90살 먹은 기계군요. 아직 폐기처분 되지 않고 살아남아 오늘날 다시 과거의 아름다운 다이얼을 만드는데 사용된다니 대단한 일입니다. 스위스나 한국이나 이런 유무형의 전통공예를 전승한다는 건 어려운 모양입니다.


크로노스위스의 신임 CEO 올리버 엡스타인은 이런 전통적인 제조방식의 전승을 위해 18년 동안 에나멜링을 연구한 마이크 판지에라(Maik Panziera)와 함께 에나멜 워크샵을 만들었고, 전통적인 시계 제조를 위해 당시의 기계들을 찾아 어렵게 구입하였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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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컬렉션은 길로쉐 패턴의 다이얼에 전통적인 에나멜 도료를 입힌 플린케 기법으로 완성되었습니다. 길로쉐 패턴이 화려하고 아름다운 문양에 투명한 에나멜 처리로 만들어낸 다이얼은 마치 3D 입체처럼 보이는 효과를 주어 보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에나멜 다이얼의 역사는 오래되었습니다. 17 세기 중반부터 성행했는데, 다이얼에 인쇄를 하는 기술력이 높아짐에 따라 다이얼 제작 비용이 10배 넘게 비싼 에나멜 다이얼은 점점 경쟁력을 잃어가게 됩니다. 시간이 많이 드는 수작업과 상당한 기술력을 요하는 에나멜링은 숙련된 에나멜러를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았고, 그나마 생산된 에나멜 다이얼은 결함율이 50%에 육박해  점점 더 경쟁력을 잃어가는 악순환이 이어지면서 20세기 초에 와서는 명맥조차 끊길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하지만 최근의 기계식 시계는 20세기 산업화 시대의 대량생산 개념이 쿼츠 쇼크로 무너지면서 럭셔리  부문으로 옮겨 갑니다. 이것이 도리어 과거의 경쟁력을 상실했던 전통 기법의 부활을 가능케 한 이유가 되었습니다. 장인의 성격에 따라, 또는 그 장인의 그날 컨디션에 따라 만들어진 미세한 차이점이 도리어 내 시계의 개성이 되는 역설의 시대가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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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컬렉션은 그레이, 브라운, 블루 컬러의 총 3가지 버전으로 선보고 있으며, 브라운, 블루 다이얼 버전이 다이얼 전체를 에나멜 처리 한 것에 반해 그레이 다이얼 버전은 가장자리 부분을  에나멜 처리 하지 않고 그 위로 블랙 인덱스를 프린팅했습니다. 이는 가독성을 위한 절충으로 보입니다. 


에나멜 시계 다이얼은, 일반적으로 구리 또는 금도금 소재를 사용하는데, 크로노스위스의 아티스트 컬렉션의 다이얼은 솔리드 실버 소재를 사용합니다. 인그레이빙 처리한 다이얼 위에 길로쉐 패턴을 입히고 그 다음 에나멜로 빈 공간을 채워주어 투명하고 영롱하게 빛나는 다이얼을 완성시켰습니다.


아름답고 매끄러운 표면을 위해 엄선된 염료의 사용은 필수이며, 이 염료 가루의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하여 7번을 헹궈내는 과정을 거칩니다. 모든 불순물이 제거된 후에야 물과 섞인 에나멜 파우더를 다이얼에 도포할 수 있기 때문에 세심한 작업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또한, 여러 겹의 에나멜이 가마에서 구워지는 동안에도 매끄러운 표면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아주 조심스럽게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러한 일련의 작업들은 매우 까다로워서 손상율도 높고 손상된 다이얼은 더 이상 복구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앤틱 로즈 엔진으로 만든 길로쉐 패턴과 그 위로 도포된 에나멜 도료가 만든 두께의 차이로 만들어진 소용돌이 문양은 계속 바라보고 있으면 진짜 소용돌이가 움직이며 빨아들일 듯 착시를 일으킬 만 합니다.


핸즈와 인덱스는 크로노스위스의 아이코닉 스타일인 브레게 로상즈(losange : 마름모꼴) 핸즈(브레게 로잔 핸즈라도고 표기)와 클래식하면서 우아함 가득한 로만 인덱스를 채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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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다이얼에 비해 케이스는 많이 익숙한 모습일 듯 합니다. 최근에 새롭게 적용된 세미 코인 베젤 케이스입니다. 현행 카이로데이트 모델과 같은 케이스인데, 아티스트 컬렉션에서도 이 세 모델은 양산품 개념에 더 가깝기 때문인 듯 합니다. (물론 양산품은 아니며 모델당 33개 리미티드 에디션입니다.) 좀 더 판매가를 낮추어 대중에게 어필하기 위한 이유일 수도 있겠습니다. 수공예의 아름다움이 빛나는 다이얼과 18k 레드 골드 케이스가 클래식한 멋을 풍기며 잘 어울립니다. 40mm의 전형적인 드레스 워치 크기를 갖고 있으며 두께는 11m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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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델의 특별함은 케이스백을 통해 보여지는 무브먼트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칼리버 642 로 명명된 이 무브먼트는 지금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소형 무브먼트 유니타스 6462 를 베이스로 아티스트 컬렉션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수정을 했습니다. 부분 스켈레톤 가공 및 길로쉐 패턴, 블루 스크류가 붉은색 루비와 함께 한껏 멋을 낸 모습입니다. 크로노스위스의 NOS 무브먼트는 과연 어디까지인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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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랩은 그레이 다이얼 모델에는 블랙 악어가죽 스트랩이 적용되며, 브라운, 블루 다이얼 모델에는 다크브라운 악어가죽 스트랩이 적용됩니다. 단 리뷰를 위한 모델은 까르네 제품으로 판매용 모델의 스트랩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버클은 18k 레드골드 소재의 크로노스위스 로고가 장식된 핀 버클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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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용샷입니다.


개성 넘치는 다이얼 컬러가 각 모델마다 독특한 매력을 만들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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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노스위스 아티스트 컬렉션은 시계 자체의 매력적인 완성도 뿐 만 아니라 요즘엔 거의 사용되지 않아 잊혀져 가는 역사적인 기법들을 소생시킨다는 점에서 매우 소중하고 의미 있는 컬렉션입니다. 


사실 100년 넘는 전통을 가진 워치메이커가 수두룩한 스위스에서 비교적 연혁이 짧은 크로노스위스가 이런 전통의 계승을 자처하고 나섰다는 것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게르트 랑에서 올리버 엡스타인으로 경영권이 이양되는 과정에서 과거 크로노스위스의 창립 정신과 같은 '기계식 시계에 대한 사랑'이 게르트 랑의 퇴진과 함께 사라지지 않고 다음 세대로 잘 이어지고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아티스트 컬렉션 역시 계속 새로운 시도가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온리 워치: 세마리 원숭이(Only Watch: The Three Apes)를 통해 보여준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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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nly Watch: The Three Apes >


 

"Omnia praeclara rara"

좋은 건 왜 늘 구하기가 힘든거야, OO!!


로마의 정치가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가 한 말입니다. "모든 최고의 물건은 드물다(all the best things are rare)"라는 뜻인데 이렇게 감정을 실어 해석하면 마음에 쏙 와닿습니다.


좋은 것이 살아남는 것은 아니라는 건 역사를 통해 우리는 이미 알고 있고, 그래서 누군가 의무감을 갖고 지켜내지 않으면 훌륭한 전통이나 기술이 너무나 쉽게 사라질 수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필립 듀포가 심플리시티를 만드는 이유도 크로노스위스가 아티스트 컬렉션을 만드는 이유도 이런 의무감에서 역사의 연결고리를 자처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크로노스위스에 박수를 보낼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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