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시계를 좋아하는가?★ Part 3. 감성적 측면
안녕하세요, 아롱이형입니다!
" 우리는 왜 시계를 좋아하는가? "
그 세 번 째 시간입니다.
<세번째 시간>
앞서 살펴 본 것처럼 시계는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기도 하고, 실용적인 측면도 있지만,
현대 사회에 있어 시계에 대해 논할 때 감성적 측면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시계의 감성적 측면>
III. 감성적 측면
1. 언제나 나와 함께 - 친구
'Out of Sight, Out of Mind' 라는 말이 있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떨어져 있을수록 마음에서 멀어진다는 뜻이죠.
그리고 그 말은 반대로 말하자면 볼
수록 정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찌는 듯이 더운 날이건, 추운 겨울날이건 상관 없이 말이죠.
이렇게 함께 하는 시간이 많다 보니, 마치 시계가 내 몸의 일부인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있어 오랜 시간 함께 한 시계는 오랜 친구와도 같은 존재 입니다.
<우린 평생 친구지?>
예전에 한참
유행했던 '다마고치'라는 게임이 있습니다.
<추억의 게임>
일본어로 'たまご 다마고(알) + watch (시계)'의 합성어인데,
애완동물을 알에서부터 직접 부화시켜서 기르는 게임입니다.
때가 되면 밥을 주고 화장실에 보내야 하며, 산책도 시키고 같이 놀아주기도 해야 합니다.
이렇게 딱 봐도
번거롭기만 할 것 같은 게임이 어떻게 세계적인 히트를 칠 수 있었을까요?
<과연 어떻게?>
이유는 의외로
간단합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신경 쓰고, 보살필 대상' 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죠.
이 세상에 내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존재가 있다는 것.
내가 아니면
안되는 존재가 있다는 것.
사람들은 그런
관계를 통해 자신이 세상에서 꼭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기계식 시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정확하고, 무겁고, 충격에도 약한 주제에, 유지
비용까지 만만치 않습니다.
태엽을 감아
줘야만 움직이고, 하나부터 열까지 신경써야 하는 것 투성이죠.
하지만, 이렇게 우리를 필요로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더 기계식
시계에 애정을 쏟게 되는지도 모릅니다.
기계식 시계란
말썽을 잔뜩 부려도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아기 고양이와 같은 존재입니다.
어렸을 때 우리는
아주 작은 것들에서 기쁨을 얻곤 했습니다.
길바닥에 이어져
있는 개미들의 긴 행렬과,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작은 잠자리 한 마리,
계절마다 피어나는
이름 모를 수많은 꽃들,
몇 푼 안되는
용돈을 모아 사먹던 불량식품,
동네 친구들과
가지고 놀던 내 손안의 작은 장난감.
<작은 세상>
작은 것들을
통해서 우리는 세계와 소통할 수 있었고, 행복했었습니다.
지만 자라면서 더 넓은 세상에 나가게 되었고,
세상은 우리에게 점점 더 크고, 더
빠르고, 더 많은 것들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어렸을 때 찾았던 조그마한 행복들을 들여다 볼 여유가 없어지게 되었죠.
<글로벌 시대>
항상 차로만
지나던 길을 느긋하게 걸어가 본 적이 있으신가요?
천천히 걸어가
보면 그 곳은 평상시와 같은 곳이면서도 또 전혀 다른 곳이기도 합니다.
빠른 속도로
지나쳐 가던 그 곳에는 많은 가게와 사람들이 있고,
작고 귀여운 강아지와, 나무들이 있고, 올려다 본 하늘엔 밝은 달이 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무척이나 행복한 기분이 들었죠.
그렇습니다.
우리는 한없이 바쁜 세상에 떠밀리듯 살아가고 있지만,
때로는 작고, 느리고, 익숙하고, 별
의미 없을 것 같은 것들에서 마음의 위안을 얻기도 합니다.
시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있어 시계라는 조그만 손목 위 세상은,
세상의 풍파에 지친 '제제'의 '라임 오렌지 나무' 와
같은 안식처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기계식 시계의 역사는
도전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도 뻔히
한계가 보이는 불가능한 도전 말이죠.
사실, 쿼츠 시계의 진동수는 1시간에 1억 번 이상의 진동수를 가지며,
이는 초당 3만 번 이상 진동함을 뜻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기계식 시계의 4000배 이상의
진동수지요.
진동수의 차이
만큼이나 태생적으로 기계식 시계는 결코 쿼츠 시계의 정확성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불가능에 대한 도전>
하지만, 이러한 명백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기계식 시계는 새로운 소재와 아이디어를 통해
정확성을 위한 도전을 계속해서
이어 나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계가
뻔히 보이는 기계식 시계의 도전은 과연 어리석은 짓일까요?
우리가 이신바예바에게
박수를 보내는 것은 그녀가 새보다 높이 날 수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리고 우사인 볼트를 칭송하는 것 역시 그가 자동차보다 빨라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것은 순수한 인간의 힘과 노력만으로 얻어낸 과정과 그 결과에 가치를 두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마보다 느릴 뿐>
기계식 시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의 손길을 통한 순수한 기계적 매커니즘을 통한 '정확성'에의 도전은,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에게 감동을 전해 줍니다.
실패할 것을
알고 있지만, 도전할 수 있는 용기.
그것은 우리가 그 동안 잃어버리고 살았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기계식 시계의 도전이 반드시 성공으로 끝나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비록 실패로 끝날 것을 알고 있더라도 그 불굴의 도전 정신만은,
내 손목 위에서 오늘도 나에게 힘을 북돋아 줄테니까요.
영화 속 007이 찬 오메가 시계가 내 손목 위에 놓여 있으면
그 순간만큼은 나도 완벽하고 매력 넘치는 스파이가 된 듯한
기분입니다.
<남자의 로망>
태그호이어의 모나코를 차고 있으면
잠시나마 '르망'의 스티브 맥퀸처럼 멋진 F1 드라이버가 된 듯한 기분이 들죠.
<우주를 향한 도전>
인류 최초의 달 착륙 순간에 함께
한 오메가의 문워치를 보면서 우주의 신비와 달에 대해 생각하기도 하고,
<상남자 스타일>
비록 근육질하고는 거리가 멀다 할지라도
파네라이를 차는 순간만큼은 영화 속 실베스타 스텔론처럼 마초맨이 된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늘을 나는 꿈, Top Gun>
어렸을 적 봤던 영화 ‘TOP GUN(탑건)’의 탐 크루즈는 또 얼마나 멋졌던가요.
내 손목 위의 파일럿 시계를 보면서 하늘을 나는 상상에 빠져 보기도 합니다.
<체 게바라의 시가, 그리고 로렉스>
젊은 시절, 체 게바라의 입에 물려 있던 시가와 그의 손목에 채워져 있던 로렉스는 나의 로망이었습니다.
사람은 꿈을 먹고 사는 존재입니다.
그것이 어떠한 꿈이든 간에, 꿈이 있고 꿈을 꿀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것입니다.
시계가 우리에게 주는 꿈.
설령 그것의 실체가 마케팅적 환상에
불과할지라도 상관 없습니다.
시계는 우리에게 주는 꿈을 가슴 속에
간직한 채,
우리도 각자의 꿈을 향해 열심히 걸어
나가고 있으니까요.
누구나 인생에 있어 중요한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 순간은 입시에 합격한 날일 수도
있고,
결혼을 한 날일 수도 있으며,
내 아이가 처음으로 세상에 태어난
날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누군가가 하늘로 떠났거나,
오랜 시간 몸 담았던 직장을 잃은
날일 수도 있겠죠.
<기쁜 일, 슬픈 일>
사람들은 그러한 순간에 함께 했던
물건을 보며
그 당시의 추억들을 떠올리곤 합니다.
그리고 그 물건이 시계라면 그 의미는
더욱 특별할 수 밖에 없습니다.
시계는 시간을 기록하고 새기는 역할을
하는 것이니까요.
인생의 기쁜 날, 혹은 슬픈 날에 내 손목 위에서 언제나 말없이 함께 해 준 존재.
시계에는 개인의 역사와 기록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개인의 역사를
기록하고 새겨 나갈 것입니다.
<개인의 역사>
그동안 우리는 왜 시계를 좋아하는가에 대한 저 나름대로의 이유를 적어 보았습니다.
하지만, 시계를
좋아하는 이유는 시계를 좋아하는 사람의 수만큼이나 많이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그럼, 화두를 던지는 의미에서
故
"여러분이 시계를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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