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 브릿지
빈센트 칼라브레제
독립 시계제작자 학회로 잘 알려진
AHCI의 공동 창립자의 한 명 빈센트 칼라브레제는 캐리어의 말년에 블랑팡에서 월급쟁이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AHCI의 멤버라고 해서 꼭 독립성을 고집하면서 고독하지만 고고한 제작자의 삶을 살아야 하는 건 아니지만요. 다만 칼라브레제가 걸어온 길을 보면 그가 메이커에 속해 있다는 사실이 조금 의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칼라브레제는 정식으로 시계 교육을 받은 적 없이 독학으로 시계를 배웠고, 시계를
연구하고 만들기 시작한 시점도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서니까요. 그렇게 독립 제작의 정신을 몸소 체득한
칼라브레게였던 만큼 AHCI를 세우는데 동기가 되었을 테고 그 의미 역시 컸을 텐데 말이죠.
칼라브레제의 대표작의 하나. 손목시계 플라잉 투르비용
코룸 골든 브릿지의 리뷰를 시작하면서 난데없이 빈센트 칼라브레제의
이야기를 꺼낸 건 다름 아니라 그가 실질적인 골든 브릿지의 제작자이기 때문입니다. 독립 제작자 시절
그가 남긴 대표적인 모델은 1980년의 골든 브릿지가 단연 돋보이고 블랑팡과의 작업이 많았는데 손목시계용
플라잉 투르비용의 원조 블랑팡 투르비용이 그의 손에서 태어납니다. 비교적 최근에는 블랑팡 까루셀의 제작자로
빈센트 칼라프레제가 거론되면서 이 사실이 함께 알려졌고, 그 무렵 블랑팡에 입사 선언도 함께 이뤄지게
됩니다.
독립 제작사로서 자신의 이름으로 제작했던 시계에 비해 아무래도 메이커의
이름과 함께 언급되는 만큼 앞의 모델이 잘 기억되고 있는데요. 대표작 골든 브릿지는 말 그대로 금으로
만든 길다란 다리 모양의 무브먼트가 들어간 시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배럴에서 시작되어 기어 트레인을
통해 밸런스 휠로 이어지는 길은 직선적이며 이러한 형태는 흔하지 않으며 또 굉장히 독특합니다. 모양이
그러한 만큼 제약 역시 따르는데 우선 같은 조건(시, 분의
타임 온리)의 원형, 각형 무브먼트에 비해 각종 부품이 돌출되어
무브먼트 자체만으로는 부품을 보호하는 기능이 약할 것이며 무엇보다도 범용성을 갖추기 어렵습니다. 다양한
기능을 더할 수 있는 토대가 되는 베이스 무브먼트로 활용할 수 없다는 말로 타임 온리에서 벗어나기 어려우며, 최근에
실린더 방식의 자동 무브먼트나 롱 파워리저브(트윈 배럴), 파워리저브
인디케이터 기능이 등장하긴 했지만 크로노그래프나 정보가 많은 캘린더 모델을 만들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또
그러면 골든 브릿지의 매력이 크게 반감될테고요. 그런 이유로 줄곧 수동에 타임 온리로만 만들어져 왔고요. 그럼에도 골든 브릿지가 코룸의 대표모델로 꼽히는 이유는 이런 각종 제약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개성적이면서
또 멋지다는 것이겠죠.
골든 브릿지라는 이름에 맞게 메인 플레이트와 브릿지(사실 구분은 없지만)가 금으로 성형되어 있습니다. 프랑소아 폴 쥬른이 '내 시계 이제 더욱 프리스티지임'을 선언하면서 무브먼트의 플레이트를 금으로 만든 바 있는데요. 아무래도
제작비용의 문제가 크기 때문에 이것을 쉽사리 따라 할 수는 없지만, 누릴 수 있다면 누리고 싶은 호사입니다. 골든 브릿지의 경우 폭이 좁아서 금이 많이 들어가지 않는 게 흠이라면 흠(?)이지만 18k 레드 골드를 사용합니다. 브릿지는 영롱한 금빛으로도 충분하지만
렐리프+조각 가공을 병용한 듯한 멋진 표면이 눈을 즐겁게 합니다. 브릿지를
따라가다가 보면 플레이트가 한 장으로 된 통짜(?)는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조립이나 수리시 어느 정도 용이함을 가질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위 이미지는 초창기 골든 브릿지인데요. 케이스 측면까지 글라스로 덮어 가능한 한 높은 개방감을 보일 수 있도록 했습니다.
지금은 모든 면에 사파이어 크리스탈을 사용하여 어떤 각도에서도 보이도록 한 케이스는 골든 브릿지의 아름다움을
증폭시키는 데 최적의 형태입니다. 특히 측면에서의 밸런스, 기어의
움직임을 봤을 때 또 다른 매력이 발견됩니다. 시계 구조를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다는 점도 있고요. 기다란 무브먼트를 만들기 위해 몇 가지가 더 고안되는데, 배럴의
역회전을 방지하기 위한 클릭의 구조나 키리스 워크(Keyless Work)를 수행하기 위한 기어 유닛이
눈에 띕니다. (가로로 긴 티타늄 브릿지의 경우는 양 끝을 연장하여 알파벳 대문자 I를 눕힌듯한 모양을 하는데 이것에는 일반 형태의 키리스 워크 구조를 붙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개방감은 좋지만, 저처럼 칙칙한 피부를 지닌 사람이 착용한다면
아름다움을 반감시키는 단점 아닌 단점이 있습니다. 게다가 털까지 많다면 대단한 그림이 나올 것 같은데요. 시계의 완성도 때문이 아닌 이런 사소한 이유가 구매의 발목을 잡지나 않을까 걱정도 됩니다.
케이스를 좀 더 보죠. 골든
브릿지로 시선이 집중된 탓에 케이스는 다음 순위가 되었는데, 골든 브릿지 만큼이나 독특한 형태입니다. 정면에서 보면 토노이고 측면에서 보면 윗부분은 커백스 케이스 백은 평평합니다.
측면 시점 기준으로 케이스 가장 높은 점에서 시작된 라인이 이어지는 러그는 케이스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 아닐까 합니다. 티타늄 브릿지(Ti-Brigde)처럼 가로가 긴 모델도 나오는데
어떤 모델이건 브릿지의 끝 부분에 크라운이 달립니다. 골든 브릿지처럼 세로로 길다면 12시 혹은 6시에 위치해야 하고요.
크라운은 6시 방향에 있군요. 크라운 지름은
제법 큽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케이스 구조, 착용시, 조작시 등을 고려했을 때 최적의 지름이 아닐까 싶은데, 보통의 크라운과
달리 두 손가락으로 집지 못합니다. 두 손가락으로 크라운을 집는 것도 쉽지 않지만 그러면 케이스 밖으로
크라운이 돌출되면서 손목에 압박을 가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한 손가락으로 살짝 크라운을 누르면서 조작을
해야 합니다. 이런 조작을 충분히 예측하고 만든 크라운은 쉽게 미끄러지지 않도록 홈이 제법 크고 깊게
가공을 했습니다. 조작에서 약간의 핸디캡을 안고 있지만 조작 자체에는 무리가 없습니다. 0과 1 두 개의 포지션 사이를 오가기 위해 크라운을 당기는 것도
쉽고, 탄성이 강한 스프링이 아니어서 수동 와인딩에도 불편함이 없습니다. 수동이라 크라운과 친해져야 하는 시계가 조작감이 좋지 않다면 상당한 마이너스라 이 부분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을 겁니다. 와인딩 뿐 아니라 포지션 1에서 시간 조정을
비롯 크라운 조작에서는 좋은 점수를 줄 수 있겠습니다.
케이스 디자인은 재미난 러그와 러그와 케이스의 경계지역에서 오목한
라인을 넣어 포인트를 주었습니다. 이 부분에서 저는 왠지 건축물이 떠올랐는데요. 골든 브릿지가 작고 정교한 건축물이기도 하지만 세 줄의 라인에서 희미하게 고대 건축물의 이미지를 느꼈습니다. 티타늄 브릿지의 경우에는 한눈에 현대 엔지니어링으로 만든 초고층 구조물의 일부가 연상되기도 합니다. 케이스 가공은 전반적으로 좋습니다만, 케이스 백 부분의 모서리 부분에
다소 날이 서 있습니다. 폴리시 가공되어 매끄러운 전면과 다른 헤어 라인 가공을 하여 가공 방식이 다르다는
점을 고려해야겠지만 피부와 직접적으로 접하는 부분이라 모서리를 둥글게 하는 것이 어땠을까 하고 조금 신경이 쓰이는군요.
사고 싶다는 욕망이 활활 타오르게 만드는 골드 케이스(금은 다 좋습니다. 암요) 에 잘 어울리는 검정색 악어
스트랩입니다. 케이스 디자인과 통일성을 지니도록 라인을 넣은 버클이 눈에 띕니다. 금 버클의 두툼한 양감이 깨물어 보고 싶게 하는데, 그러면 안되겠죠.
골든 브릿지는 그야말로 눈으로 즐기는 시계로 시각의 의존도가 높은
남자라면 눈길을 보내지 않을 수 없는 시계입니다. 한눈에 반하기에 충분한 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 컬렉팅을 시작했다면 골든 브릿지만 사서 모을 만큼 말이죠. 하지만
일반적인 형태에서부터 차근차근 하나씩 모으는 정석적인(?) 컬렉팅이라면 골든 브릿지는 특유의 개성으로
인해 순위에서 밀릴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도 됩니다. 취향과 선택의 문제에서 제가 길게 말하지 않는
게 좋기 때문에 이 정도에서 제 생각을 마무리 하겠습니다만, 마지막으로 한가지. 컬렉션의 숫자가 늘어나면 날수록 그 안에 포함하고 싶어질 것은 틀림없습니다.
골든 브릿지는 아름다우니까요.
촬영 및 착샷은 겨울철 피부 관리가 자신 있는 Picus_K님이 용감하게 진행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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