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틴 그랜드 데이트 문페이즈
수년간 제니스의 마케팅 전략은 '엘 프리메로' 에 집중하는 듯 보였습니다. 이 전략은 성공적이어서 이제는 제니스와 엘 프리메로를 떼놓고 생각하는 것이 어색할 지경까지 왔습니다. 하지만 엘 프리메로 무브먼트가 장착된 제니스의 크로노그래프 모델들로 편중된 스포트라이트 때문에 제니스의 심플 워치 라인은 늘 관심의 뒷전으로 밀리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많았습니다. 제니스라는 브랜드에 조금만 관심을 갖다 보면 150년 가까운 역사 속에서 수 많은 심플 워치의 명작들을 만나 볼 수 있으며, 그 명맥을 오늘날에도 이어 오고 있는 아름다운 시계들이 있습니다. (제니스의 화려한 과거에 관해서는 링고칼럼 중 "시계 탐험 5 - 수동 무브먼트 이야기 제 1 부 크로노미터" 를 읽어 보시면 좋은 참고가 될 듯~)
특히, 2010년 이후 울트라 씬(Ultra-Thin) 무브먼트 Elite 670 (센터 세컨드) 과 Elite 681 (9시 서브 세컨드) 를 장착한 심플 워치를 선보인 후 Elite 681에 모듈을 추가한 캡틴 그랜드 데이트 문페이즈, 캡틴 파워리저브, 캡틴 듀얼 타임 같은 이른바 '캡틴 3종 세트'를 연속해서 출시되면서 제니스의 비(非) 엘 프리메로 라인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었습니다.
< 캡틴 그랜드 데이트 문페이즈 스틸 모델과 파워리저브, 듀얼 타임 골드 모델 >
1952년 탄생한 캡틴 컬렉션을 오늘날의 감성으로 재해석 해 놓은 신형 캡틴 라인은 오리지날 모델의 특징을 그대로 반영한 클래식한 느낌의 시계로 유선형의 날렵한 디자인에 남성적인 우아함이 공존합니다. 물론 사이즈는 지금의 트렌드를 반영하여 40mm로 커졌습니다. 항해를 위해 바다를 헤쳐나가는 캡틴(선장)을 상징하는 시계로 출발했지만 오늘날 캡틴(리더)의 시계로 손색이 없는 품격과 아이덴티티를 갖추고 있습니다.
오늘은 '캡틴 3종 세트' 중 하나인 캡틴 그랜드 데이트 문페이즈 골드 모델을 리뷰해 보겠습니다.
심플하지만 우아한 느낌의 유광 케이스와 베젤, 앤틱한 플랙시 글래스 느낌이 나는 곡면 형태의 사파이어 크리스털 글래스는 기계식 시계의 황금기인 5~60년대(제니스의 황금기이기도 하다)의 감성을 그대로 이어 받았다는 것을 바로 알아 차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스타일의 드레스 워치들이 갖고 있는 공통점이겠지만 스틸 케이스는 가격이 저렴한 대신 시인성이 떨어지고 좀 차가운 느낌이 듭니다. 반면 골드 케이스는 따뜻한 감성과 좋은 시인성을 동시에 만족시킵니다. 드레스 워치로서 40mm 사이즈는 현재 가장 선호도가 높은 사이즈이며 개인적으로도 가장 좋아하는 사이즈이기도 합니다. 방수 성능은 50m 입니다.
독특하게 러그 윗부분만 새틴 브러쉬 처리한 것은 자칫 밋밋한 느낌을 줄 수도 있을 케이스에 나름 포인트가 되었고 양면 무반사 코팅이 적용된 글래스는 측면에서도 시인성이 좋습니다.
두께는 11.2mm 로 얇은 편이며 당연히 무게 또한 손목에 편안히 착용할 수 있는 가벼운 느낌을 줍니다. 크라운에는 제니스 특유의 별 모양 엠블럼이 장식되어 있고 드레스 워치로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적당한 크기입니다. 아래 살짝 케이스에 걸쳐 있는 모습이 크라운의 작동 시에도 불편함이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0단에서는 수동 감기 기능이 있고 1단에서는 데이트 조정 기능이 있습니다. 데이트는 양방향으로 조정이 가능합니다. 2단은 스톱 세컨드 기능과 함께 시간 조정 기능이 있습니다.
8시 방향에 문페이즈 조정을 위한 매립형 버튼이 있습니다.
독특하게 제니스는 무브먼트의 이름을 그들의 서브 브랜드로 써 왔습니다.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인 엘 프리메로 무브먼트를 기반으로 한 '엘 프리메로'라인과 심플 워치를 위한 엘리트 무브먼트를 기반으로 한 '엘리트' 라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2010년 울트라 씬 무브먼트를 기반으로 하는(이 무브먼트의 이름도 엘리트가 붙는다) 시계들이 출시되면서 캡틴 라인과 헤리티지(Heritage) 라인으로 재편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엘리트가 무브먼트 이름으로만 존재하게 됩니다. 하지만 아직 과거의 잔상이 남아 있는데, 제니스 제품은 소개한 뉴스나 판매 사이트에서는 아직도 '엘리트 캡틴'으로 표기하는 곳도 있고 본 제품의 케이스백에 아직 캡틴 이란 이름 대신 엘리트라 새겨 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케이스백으로 보이는 무브먼트는 엘리트 691 무브먼트입니다. 베이스 무브먼트는 엘리트 681 입니다. 여기에 문페이즈와 빅데이트 모듈을 추가하였습니다. 엘리트 681 무브먼트의 직경은 11 ½ 리뉴(25.60 mm)에 두께가 3.81mm 인 슬림 무브먼트입니다. 여기에 문페이즈와 빅데트 모듈을 추가한 두께가 5.665 mm 이니 엘리트 691 무브먼트 역시 비교적 슬림한 무브먼트라 하겠습니다.
부품 수 228, 27석, 28,800 vph (4 Hz), 파워리저브 50시간의 성능을 갖고 있습니다. 양방향 감기 로터는 스켈레톤 타입에 멋지게 별 모양과 '코트 드 제네바' 문양으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그 아래 브릿지 역시 원형 코트 드 제네바 문양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페흘라쥬 문양을 세심하게 넣었습니다. 하이엔드는 아닌 만큼 완벽한 앵글라쥬까지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 생각됩니다.
아쉬운 것은 25mm 의 작은 직경을 가진 무브먼트가 40mm 케이스에 장착되다 보니 뒷태가 좀 엉성해 졌습니다. 사실 이 문제는 비단 제니스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기계식 시계의 역사는 좀 더 작고 정확한 무므먼트를 만드는 과정이었고 이런 역사적 성과를 이룩한 브랜드 중 하나인 제니스가 시대의 트렌드에 맞춰 큰 케이스의 시계를 시장에 내놓아야만 하는 비애가 엿보이는 부분이라 아쉬움이 있습니다. 엉성한 뒷태보다 더 마음을 짠하게 하는 것은 다이얼에서 보여지는 중심부로 치우친 서브세컨드 다이얼과 문페이즈, 빅데이트창이 그렇습니다. 옛날처럼 36mm 케이스의 시계였다면 완벽한 다이얼 밸런스를 만들어 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즘 누가 36mm 시계를 사겠습니까... ^^;
어떻게 보면 이런 시대적 조류는 우리가 감내해야 할 부분입니다. 슬림 무브먼트라는 역사적 성과를 이룩해 놓은 매뉴팩처에게 큰 시계를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바로 우리들 대중이기 때문입니다. 매뉴팩처 입장에서는 시계의 역사를 되돌리는 큰 무브먼트를 만들기에는 자괴감을 들만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제니스의 디자이너들은 이런 시대의 불편함을 최대한 디자인으로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볼륨감 넘치는 아워 마크와 기요셰 패턴의 다이얼은 시각적 밸런스를 잘 맞춰 주고 있습니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빅데이트 창의 숫자가 위쪽으로 치운친 듯 보입니다. 두 숫자의 정렬도 약간 어긋나 보이는 점은 아쉬운 부분입니다.
다이얼 색상은 실버와 화이트의 중간에 가깝습니다. 리뷰하는 시계는 골드 모델이기 때문에 케이스는 물론 다이얼 위의 시침, 분침, 아워마크 역시 골드 색상입니다. 그래서 시인성이 좋지만 스틸 케이스 모델의 경우에는 시인성이 좀 떨어질 듯 합니다. 스틸 모델은 문페이즈의 달과 별 역시 실버 색상 입니다.
이 모델은 다크브라운 색상의 악어 가죽 스트랩을 기본으로 채용하고 있습니다. 스트랩의 뒷면이 고무 코팅 처리된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내구성은 더 좋아지겠지만 가죽 특유의 보송보송한 느낌은 떨어집니다. 러그 사이즈는 20mm 입니다. 탱 버클은 제니스의 별 모양 앰블럼이 멋지게 박혀 있습니다.
착용샷입니다. 역시 드레스 위치는 골드 모델이 이쁩니다. ^^
1865년 창립된 제니스는 150년 가까운 역사에서 뛰어난 무브먼트 제조사로 이름을 떨쳤습니다. 창립 때 부터 매뉴팩처 방식을 도입한 제니스는 뛰어난 경쟁력으로 2330개의 수상 경력과, 1447개는 최초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습니다. 현재도 수 많은 스위스 시계 브랜드 중 100% 자사 무브먼트 만으로 시계를 제조하는 몇 안 되는 브랜드 중 하나입니다. 70년대 쿼츠 쇼크 이후 회사의 존립이 위태로웠던 때도 있었고 브랜드의 정체성이 혼란했던 때도 있었지만 LVMH 그룹에 통합된 후 과거 전성기 때의 모습을 되찾아 가고 있습니다.
시계 애호가 중에는 심플하면서 우아한 시계를 찾는 사람이 많습니다. 당신이 그런 사람들 중 하나 라면 제니스의 캡틴 라인은 한 번 눈여겨 보라 권하고 싶습니다. 기호에 따라 심플 워치부터 다양한 기능을 탑재한 3종 세트, 심지어 엘 프리메로 무브먼트를 탑재한 크로노그래프 모델까지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개인적으로는 문페이즈가 있는 모델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빅데이트 역시 상당히 실생활에서 편리를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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