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시계 분야에서 까르띠에의 행보는 놀라울 정도의 '진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파인워치 메이킹으로 대표되는 질적인 면에서나, 매년 새롭게 선보이는 신제품과 같이 양적인 면에서 까르띠에의 파워(?)를 유감없이 과시하고 있는 중입니다.
올해 역시 SIHH 2016을 통해 새로운 컬렉션 드라이브 드 까르띠에(Drive de Cartier)와 입노즈(Hypnose)를 런칭했습니다. 드라이브 드 까르띠에는 남성들을 위한 워치 컬렉션이며, 입노즈는 여성들을 위한 워치 컬렉션입니다. 까르띠에의 기존 컬렉션이 대부분 남녀를 아우르는 제품들로 구성되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확실한 차별화를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남성미 진한 쿠션형 케이스는 기존 까르띠에 워치 라인에서는 없는 새로운 형태로 컬렉션명 역시 드라이빙이라는 남성적인 취향이 반영되어 남성들의 니즈에 충실한 컨셉과 디자인입니다. 그런데 쿠션 케이스라는 점 외에는 기존 스포츠 워치 그 중에서도 레이싱 워치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가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드라이브 드 까르띠에라는 이름만 봐서는 남성들에게 인기높은 레이싱 워치의 까르띠에 버전으로 예측하는 사람들도 있을 듯 한데, 일반적인 레이싱 워치에서 볼 수 있는 타키미터가 새겨진 베젤이나 속도를 측정하기 위한 크로노그래프 모델이 없다는 점이 특이합니다. 오히려 기존 까르띠에의 전형적인 드레스 워치 느낌에 가깝습니다. 방수성능 역시 3 bar(약 30m/100ft)로 전형적인 드레스 워치의 스펙입니다.
< 드라이브 드 까르띠에 광고 이미지. John Balsom © Cartier >
< 드라이브 드 까르띠에 컬렉션. 크로노그래프 모델이 없다. Eric Sauvage © Cartier >
상당히 재미있는 부분인데, 까르띠에에서 공식 제공하는 이미지를 봐도 드라이빙에 대한 컨셉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드라이빙 장갑을 낀 터프한 남성의 손목에 착용된 제품 이미지는 누가 봐도 스포티하고 전형적인 레이싱 워치의 컨셉으로 기존 브랜드에서도 많이 봐왔던 이미지입니다.
단, 까르띠에에서 내놓은 공식 보도자료에 'Follow your inner DRIVE'라는 슬로건을 통해 유추해보면 드라이브라는 의미는 '운전'보다는 '삶의 가치'에 더 무게를 두는 듯 합니다. 사실 기계식 시계가 부활하면서 과거의 실제 레이싱에 쓰였던 레이싱 워치들이 다시 인기를 끌고 있는데, 실제 레이싱 경기에서 이 시계들이 더이상 사용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과거의 향수를 자극하는 아이템인 동시에 착용자의 라이프스타일을 표현하는 고급시계의 영역으로 해석해야 타당합니다. 그런 점에서 드라이브 드 까르띠에는 스포츠로서의 '레이싱'보다는 휴일 한적한 도로를 여유롭게 달리는 '드라이빙'이라고나 할까요. 영화로 따지면 '액션 무비'가 아닌 '로맨틱 무비'에 더 가까운 개념입니다. 의미없는 기능보다 리얼라이프 속에서의 정서적인 편안함을 강조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더 현실적으로 보입니다.
SIHH 2016을 통해 선보인 드라이브 드 까르띠에의 제품들은 기본적인 타임온리+날짜창 모델에 세컨드 타임존과 데이/나이트 인디케이터, 대형 날짜창이 결합된 스몰 컴플리케이션 모델, 뚜르비용 모델이 선보였습니다. 각 모델은 다시 골드 및 스틸 모델과 다이얼 컬러 베리에이션으로 다양성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 드라이브 드 까르띠에 오토매틱 18K 핑크 골드 모델. Vincent Wulveryck © Cartier >
< 드라이브 드 까르띠에 오토매틱 스테인리스 스틸 모델. Vincent Wulveryck © Cartier >
< 드라이브 드 까르띠에 스몰 컴플리케이션 18K 핑크 골드/스틸 모델. Vincent Wulveryck © Cartier >
< 드라이브 드 까르띠에 투르비용 모델. Vincent Wulveryck © Cartier >
오늘 리뷰는 그 중 기본형 모델에 해당하는 18K 핑크 골드 오토매틱 모델로 선정했습니다. 물론 가격에서 스틸 케이스가 더 대중적인 모델일 수 있겠지만 실버 다이얼에 매치되는 골드 케이스는 전형적인 드레스 워치의 모습이기도 하고 두 컬러의 대치가 주는 느낌은 확실히 더 높은 미감을 가진다는 점이 선텍의 이유입니다.
케이스 사이즈는 40X41mm로 가장 보편화된 사이즈입니다. 쿠션 케이스라 원형 케이스의 시계보다 조금 커 보이는 특징이 있습니다. 대부분 남성의 손목에 적합한 사이즈일 뿐만 아니라 최근 남성 시계를 선호하는 여성들에게도 충분히 착용 가능한 사이즈이기도 합니다.
드라이브 드 까리띠에 이름처럼 자동차의 여러 부분에서 디자인 요소들을 가져왔다는데, 라디에이터 그릴을 연상시키는 기요쉐 모티프 다이얼, 돔형 글래스, 6시 방향의 카운터, 볼트 형태의 와인딩 크라운 등 디테일들을 까르띠에 특유의 우아하고 기품있는 모습으로 완성시켰습니다.
피니싱에 민감한 시계 애호가들의 취향을 반영한 듯 시계 측면에는 내추럴 새틴 마감을, 상부와 하부에는 반짝이는 폴리싱 마감을 적용했습니다. 새틴 마감은 전체적인 볼륨감을 강조해주며, 폴리싱 마감은 섬세하고 세련된 매력을 더해 줍니다. 긴장감이 느껴지는 곡선형 디자인과 정교한 라인은 우아하고 모던한 스타일을 완성하며, 까르띠에의 탁월한 워치메이킹을 완벽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케이스와 같은 18K 핑크 골드 볼트 형태의 팔각 크라운에는 각면 사파이어가 세팅되어 아름다움을 더합니다. 단, 스틸 모델에는 합성 스피넬이 사용되어 골드 모델과 차별화를 두고 있습니다.
두께는 11.25mm로 살짝 두꺼운 감이 있습니다. 측면 쉐이프를 보면 슬림해 보이지만 돔형 글래스와 보록한 형태의 케이스백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입니다.
씨스루 케이스백을 통해 모습을 드러내는 까르띠에 매뉴팩처 무브먼트 1904 MC를 볼 수 있습니다. 기능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는데 1904-PS MC 칼리버는 시와 분, 스몰 세컨드, 날짜 표시 기능을, 1904-FU MC 칼리버는 세컨드 타임존과 데이/나이트 인디케이터, 대형 날짜창, 스몰 세컨드 기능을 탑재하고 있습니다. 드라이브 드 까르띠에 워치는 Poinçon de Genève 인증을 받은 9452 MC 플라잉 뚜르비옹 무브먼트를 탑재한 파인 워치메이킹 버전으로도 출시됩니다. 세 개의 무브먼트는 모두 스위스 라쇼드퐁에 위치한 까르띠에 매뉴팩처에서 자체 제작됩니다.
리뷰 시계에 탑재된 1904-PS MC는 가장 기본적인 기능을 가진 무브먼트라 할 수 있겠는데, 2010년 개발된 1904 MC 칼리버는 까르띠에 매뉴팩처에서 설계와 개발, 조립까지 전담한 최초의 무브먼트 중 하나입니다. 11 ½라인 사이즈의 이 칼리버는 두 개의 메인 스프링으로 작동시키는 더블 배럴을 통해 매우 안정적인 크로노미터 성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마감 역시 꼬뜨 드 쥬네브(Côtes de Genève) 장식이 적용된 로터와 브리지, 폴리싱 처리된 스크루의 헤드 등에서 상당한 정성을 들였음을 보여줍니다. 코스메틱에서 전통적인 워치메이킹에서의 기법을 사용하고 여기에 까르띠에 로고를 형상화한 레귤레이터 정도로 위트를 보여주어 시계 애호가 입장에서 과하지 않다는 인상을 주어 좋습니다.
실버 마감 플렝케 다이얼은 화이트와 실버 중간의 컬러감으로 여기에 매치된 검 모양의 블루 스틸 아워 및 미닛 핸즈, 블랙 로만 인덱스와 매우 뛰어난 가독성을 보여줍니다. 6시 방향에 위치한 스몰 세컨즈는 나뭇잎 모양의 블루 스틸 세컨드 핸드가 적용되었습니다. 케이스와 같은 쿠션 모양의 레일로드 미닛 트랙과 그 위 3시 방향에 위치한 날짜창은 시각적으로 밸런스를 잘 잡았으며, 기요쉐 문양이 우아함을 더한 다이얼이나 야광이 없다는 점은 이 시계를 드레스 워치로 봐야 할 또하나의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브라운 세미-매트 앨리게이터 가죽 스트랩과 조절 가능한 18K 핑크 골드 더블 디플로이언트 버클이 적용되며 스트랩 사이즈는 18mm입니다. 스틸 모델은 블랙 컬러의 스트랩이 기본 채용됩니다. 까르띠에 특유의 스트랩을 안으로 접어넣는 방식으로 깔금한 외양을 만듭니다. 하지만 스트랩이 완전히 꺽여 안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호불호가 갈리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착용감에서는 매우 편안함을 보여 특별히 지적할 부분은 없습니다. 쿠션 형태의 케이스는 시계가 커보여 시원한 개방감과 높은 가독성을 주는데 반해 착용에서의 불편함이 최소화됩니다. 남성적인 강직함도 있는데 여기에 까르띠에 특유의 세련미와 우아함이 믹스되었습니다.사실 오랫동안 시계 리뷰를 해 왔지만 쿠션 형태의 드레스 워치를 손목에 올려보는 것은 오랜만이여서 신선하고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드라이브 드 까르띠에는 메종 까르띠에가 선보이는 새로운 형태의 쿠션형 시계입니다. 하지만 까르띠에의 의도는 단순히 케이스 모양만이 아닌 새로운 컨셉과 라이프 스타일의 제안이 함께하는 것으로 봐야 될 듯 합니다. 강렬한 본능과 독립적인 태도, 격조 높은 품격 등이 까르띠에가 제시하는 이 컬렉션의 성격이기도 합니다. 까르띠에의 제안은 스타일리쉬하며 합리성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중들이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매우 궁금해지는 하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