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추세 중 하나는 여성용의 비중이 증가한다는 점. 또 하나는 기계식 무브먼트를 탑재한 여성용이 증가한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여성용으로 보다 높은 부가가치를 얻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기계식 시계의 재미를 공평하게 누리게 위함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기계식에 대한 약간의 이해가 요구되므로 조금 어려운 일이죠. 랑데부는 이 문제에서 나름의 해법을 제시하고 있는 모델인데 왜 그런지 한번 보시죠.
달과 밤 하늘이 그려진 디스크가 회전하며 달의 모양을 보여주는 방식의 울트라 씬 문
리뷰의 랑데부 문은 올해 새로 발표된 모델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셀레스티얼(Celestial) 기능에 해당합니다. 천체의 움직임을 표현하는 기능인 셀레스티얼은 사실 정의가 명확하지 않은데요. 파텍 필립의 스카이문 투르비용이나 랑에의 리하르트 랑에 퍼페추얼 캘린더 테라루나처럼 천체의 움직임을 정교하게 재현해 낸 기능부터 예거 르쿨트르의 랑데부 문이나 랑데부 셀레스티얼처럼 단순화한 것까지 형태나 범위가 다양합니다. 랑데부 문은 랑데부 셀레스티얼에 이은 셀레스티얼 시리즈의 두 번째 모델로 밤하늘 별자리를 배경으로 한 커다란 문 페이즈가 특징입니다. 스몰세컨드가 있었다면 그것의 자리라고 해도 좋을 면적을 문 페이즈가 차지하는데요. 달과 밤 하늘이 그려진 디스크가 회전하며 달의 모양을 보여주는 방식이 아닌 별자리의 일부를 절개한 디스크가 자개로 만든 달을 가리며 오늘의 달 모양을 그려냅니다. 사실 문 페이즈는 여성용, 남성용 구분 없이 실용성이 크다고 말하기 어려운 기능이나 반대로 이 만큼 아름다운 기능도 없는데요. 여기서는 철저하게 아름다움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요즘의 남성용이라면 몇 백 년에 하루 오차라는 문 페이즈의 정확성에 관한 언급이 있었겠지만, 그것보다는 크고 아름다운 달을 만드는데 더 집중했습니다. 남성용이었다면 으레 별자리가 회전할 거라 생각하지만 이 모델에서는 문 페이즈의 배경처럼 고정되어 있습니다. 별자리의 프린트, 골드 도트를 이용한 장식, 다이얼의 은은한 방사형 패턴은 만족스럽지만 문 페이즈를 위해 절개한 다이얼의 절단면 처리는 이에 비해 다소 거칠지 않나 싶습니다.
다이얼은 문 페이즈, 별자리가 있는 부분과 이를 둘러싼 부분으로 나뉩니다. 오버사이즈의 아라빅 인덱스를 사용했으며 12을 중심으로 그 좌우로 점점 글씨가 작아지는 형식을 선택해 개성을 표출합니다. 하지만 4에서 8시까지는 아라빅 인덱스를 사용하지 않는 디자인으로 인해 가독성이 떨어지는 편이죠. 이를 보완하기 위해 별자리 주위에 도트 인덱스를 부착했으나, 타원형의 별자리 다이얼과 시, 분침의 중심축이 일치하지 않아 떨어지는 가독성을 크게 보완하지 못하는 부분은 아쉽습니다. 별자리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의 다이얼은 자개 소재를 사용해 빛을 받으면 만개한 달과 함께 아름다운 빛깔을 드러냅니다. 자개 다이얼의 윗 부분은 다이아몬드를 세팅해 화려함을 더했고 이것을 보면 랑데부 문의 다이얼은 여러 개의 타원으로 구성된 것을 알 수 있죠.
시, 분과 문 페이즈의 간단한 기능이나 한가지 궁금증을 자아내는 인디케이터가 있습니다. 위 이미지 다이얼 7시에 위치한 별 모양 인디케이터 인데요. 예거 르쿨트르에서는 랑데부 인디케이터라고 부르는 기능입니다. 2시 방향의 크라운으로 위치를 바꿀 수 있는 랑데부 인디케이터는 이것과 시, 분침이 일치했을 때 일어나는 랑데부를 위해서입니다. 어찌 보면 문 페이즈 이상으로 비 기능적이지만 대신 매우 감성적인 기능인 셈이죠. 굳이 이를 실용적으로 활용하겠다면 약속 시간을 알려주기 위한 알림 인디케이터로 사용할 수 있겠죠. 물론 시계를 보지 않으면 쉽게 지나칠 수도 있겠지만 말이죠. 랑데부 인디케이터의 조작성은 무난한 편입니다.
시계 기능은 4시 방향의 크라운으로 조작 합니다. 포지션은 0, 1, 2이며 0에서 수동 와인딩 할 수 있습니다. 감는 느낌은 대체로 가벼운 편이나 크라운이 남성의 손가락에 비해 지름이 좀 작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여성용인 만큼 큰 불편함은 없을 것 같습니다. 한 칸을 당기면 문 페이즈 조정이 가능하며, 케이스 측면의 커렉터를 눌러 한 칸씩 이동시켜 변경하는 보통의 문 페이즈 방식과 달리 크라운을 돌리는 만큼 문 페이즈도 돌게 됩니다. 표시 수단만 다를 뿐 시간을 조정하는 감각과 크게 다르지 않는데요. 이것은 하루 단위(한 칸)로 딱딱 나눠 이동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의미인데요. 정확한 문 페이즈의 세팅을 위해서는 눈대중을 요구하게 됩니다. 이것을 남성용의 시각에서 보면 좀 답답한 부분이 될 수 있지만 유용한 기능이라기보다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위함이라는 장치라는 여성용의 시각에서 바라 본다면 그리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한 칸을 더 당긴 포지션 2에서는 시간 조정이 가능하며 조작성은 비교적 즉각적이며 가볍습니다.
무브먼트는 자동의 칼리버 935입니다. 40시간의 파워리저브를 지녔고 문 페이즈 모듈을 얹고 있어 두께는 4.63mm로 다소 두껍습니다. 케이스 지름이 39mm이기 때문에 무브먼트의 두께는 크게 도드라지지 않는데요. 케이스 두께는 10.8mm로 무브먼트 두께에 비하면 제법 두께를 억제했다고 볼 수 있을 듯 하군요. 예거 르쿨트르 로고 모양의 골드 로터를 사용했으며 루비, 블루 스크류와 어우러져 보는 재미를 꾀했습니다. 표면 피니시는 전반적으로 깔끔한 편이나 메인 플레이트와 브릿지의 모서리 처리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은 모습입니다.
직선을 이용한 러그를 사용하나 몸체 대비 길이가 짧기 때문이 직선의 강함이 아닌 귀여운 느낌이 듭니다. 베젤, 러그, 러그의 측면과 케이스로 이어지는 측면에 다이아몬드 세팅을 해 화려한데요. 남성용과 달리 신경을 많이 쓰고 있는 부분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랑데부 분에서는 다이얼, 케이스를 모두 망라해 총 208개의 다이아몬드를 세팅했습니다. 케이스 전체를 유광의 폴리시 가공 했으며, 대체로 무난한 디자인이나 카메라 렌즈의 보호필터처럼 생긴 독특한 베젤이 케이스에 특징을 부여합니다.
스트랩은 가죽 위에 고급스러움을 띄는 새틴(Satin)을 씌워 여성적인 면을 강조합니다. 디-버클과 조합해 착용의 편의성을 꾀했군요.
여성스러운 디자인과 다이아몬드 세팅을 통해 아름다움을 최우선으로 추구하는 여성용 시계의 공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여느 여성용 시계와 다른 점은 앞서처럼 기계식 무브먼트를 탑재한 점이며 이해하기 쉽고 아름다운 기능을 넣어 기계식을 친숙하게 느끼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기계식 사용의 기초적인 개념이 있어야 하지만 착용을 통해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는 예거 르쿨트르가 기획에서 완성까지 인 하우스에서 해결할 수 있으며 여성용 시계와 무브먼트를 생산해 온 매뉴팩처이기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부분이 분명이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여성용 기계식 시계라는 트렌드를 주도적으로 끌고 갈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랑데부 문과 같은 이해하기 쉬운 기능을 지닌 모델이 앞으로의 고급 여성용 시장을 이끌어 가지 않을까 싶군요.
촬영 : 2nd Round 스튜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