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메가 드 빌 트레져
작년 바젤월드에서 오메가(Omega)는 몇 가지 흥미진진한 신제품들을 공개해 바젤월드의 인기 스타로 군림했습니다.
클래식 다이버 워치의 부활을 알린 씨마스터 300 라인업에서부터
전작 다크 사이드 오브 더 문의 성과를 이러간 그레이 사이드 오브 더 문,
아폴로 11호 달착률 45주년을 기념한 스피드마스터 프로페셔널 한정판,
빈티지한 배럴 형태 케이스가 돋보이는 복각 에디션 스피드마스터 마크 II,
항자성이 강화된 무브먼트로 중무장한 씨마스터 아쿠아테라 마스터 코-액시얼 등 유난히 눈에 띄는 신제품들이 많았었는데요.
저 개인적인 베스트로는 드 빌 트레져(De Ville Trésor)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드 빌 트레져를 바젤월드 2014 프레젠테이션에서 처음 접했을 때, 저는 이 시계가 자동이 아닌 수동이라는 점과
그 케이스 디자인이며 전체적인 생김새가 과거 초창기 드 빌 모델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무척 반색했습니다.
사실 드 빌은 전 세계적인 메가 히트 컬렉션인 씨마스터나 스피드마스터 컬렉션에 비해 존재감면에서 다소 부족한 점이 없질 않습니다.
하지만 드 빌은 오메가에서 출시되는 가장 정제된 클래식 정장 시계 라인으로서 두터운 입지를 갖고 있고 40~50대 중장년층 사이에서 선호도가 높습니다.
그럼 이번 기회에 드 빌 컬렉션의 역사를 간단히 개괄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로 타 매체에 제가 외고를 썼던 내용인데, 타임포럼 회원님들께도 재공유해 봅니다.)
프랑스어로 도시 내지 마을을 뜻하는 드 빌(De Ville)이란 이름이 오메가 시계에 처음 등장한 건 1960년.
당시 출시된 오토매틱 사양의 방수시계인 '씨마스터 모노코크'라는 모델을 홍보하는 과정에서 처음으로 드 빌이란 표현이 사용됐으며,
1963년 다이얼 하단에 씨마스터 드 빌이라고 표기된 모델이 등장했습니다. 케이스백에 씨마스터를 상징하는(또한 방수 지원을 뜻하는)
해마 문양을 새기고, 튼튼한 자사 오토매틱 무브먼트(55* 시리즈)를 탑재한 씨마스터 드 빌 라인은 출시 당시 무척 인기가 좋았습니다.
- 2013년 방영된 미국의 인기 TV 시리즈 매드맨(Mad Men) 시즌 6서 돈 드레이퍼가 착용한 1966년 생산 오메가 씨마스터 드 빌 빈티지 시계.
주연 배우 존 햄은 같은해 잡지 '롤링스톤즈(Rollingstone)' 커버에도 자발적으로 씨마스터 드 빌 시계를 착용하고 나와 애정을 드러냈습니다.
하지만 태생적으로 방수시계, 나아가 다이버 시계로 발전할 운명이었던 씨마스터인지라
드 빌이라는 단어는 같이 사용하기에는 뭔가 좀 어울리지 않는 것도 사실이었지요.
이를 모를 일 없는 오메가는 1960년대 후반부터 생산된 씨마스터 시계에서 드 빌이란 단어를 빼버리고
1967년부터는 아예 드 빌을 따로 독립시켜 별도의 컬렉션으로 만들었습니다(당시 자동, 수동 모델 공존).
- 1967년 생산된 초창기 드 빌 시계 중에서. 케이스 형태가 다른 라운드형 모델과 다른 차이점이 있습니다. 참고로 필자인 저의 개인 소장 컬렉션이기도 합니다.
스캔 이미지 출처: 오메가 공식 홈페이지 빈티지 워치 데이터베이스(http://www.omegawatches.com/planet-omega/heritage/vintage-watches-database)
하지만 드 빌을 한 컬렉션으로 분류하는 과정에서 혼선도 없질 않았지요.
기존의 씨마스터 드 빌을 비롯해 컨스텔레이션, 제네브 같은 컬렉션과의 경계도 모호했고,
실제로도 같은 케이스에 다이얼의 프린트된 컬렉션명만 다른 시계들이 적지 않게 생산되던 시기였던 것입니다.
이후 드 빌이 새삼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건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입니다.
영국의 시계제작자 조지 다니엘스가 고안한 혁신적인 코-액시얼 이스케이프먼트를
1999년 가장 먼저 적용한 컬렉션도 스피드마스터나 씨마스터가 아닌 드 빌이었지요.
전통적인 형태의 이스케이프먼트보다 구조가 복잡하고 정교한 코-액시얼 이스케이프먼트는 적은 오일 주유로도 매우 안정적으로 동력을 전달할 수 있는 장치로서,
시계 브랜드로서는 오메가가 처음으로 상용화에 성공했고 몇 차례의 시행착오를 거쳐 2000년대 중반부터는 오메가의 거의 모든 무브먼트에 적용되는 전매특허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지요. 진보적인 구조의 새 이스케이프먼트를 전 컬렉션 중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드 빌에 최초로 적용했다는 것은 다분히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 1999년 컬렉션 최초로 코-액시얼 이스케이프먼트를 장착한 드 빌 크로노미터 한정판 시계.
그리고 새 밀레니엄의 시작과 함께 드 빌의 반격이 시작됩니다.
- 비영리 인도주의 단체 오르비스(ORBIS)의 후원을 기념한 드빌 아워 비전 블루 에디션과 이 시계에 탑재된 인하우스 자동 8500 무브먼트.
- 현행 드 빌 트레져의 모태가 되는 1949년 오리지널 모델.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드 빌이라는 이름이 컬렉션명에 단독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건 1967년부터입니다만,
드 빌 컬렉션의 원형이 되는 디자인은 이미 1940년대 오메가의 시계들에서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씨마스터 드 빌에서 드 빌을 분리시키는 시점에서 오메가는 드 빌을 정통 드레스 워치 라인으로 키울 계산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사의 이전 드레스 워치 디자인을 많이 참고할 수 밖에 없었지요. 특히 명기로 통하는 30mm 칼리버군을 탑재한 1940~50년대의 모델들은 드 빌의 선조가 되었습니다.
오메가의 2014년 신모델 드 빌 트레져가 더욱 빛나는 대목은 바로 이 지점입니다.
반 세기도 전에 이미 확립된 자사의 헤리티지 디자인을 완벽히 이해하고 재현한 것은 물론,
이로써 드 빌 컬렉션의 원류를 다시 한번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도를 한 것입니다.
이미 여러 베리에이션을 갖춘 자동 무브먼트가 아니라, 드 빌 트레져를 위해 아예 수동 무브먼트를 제작한 것도
원조 드 빌인 1949년 모델과 수동 30mm 칼리버를 탑재한 일련의 시계들에 바치는 오메가식의 오마주인 셈입니다.
드 빌 트레져는 3가지 케이스 버전으로 출시되었습니다.
이 포스팅 맨 처음 사진으로 첨부한 18K 옐로우 골드 모델 외에,
위 사진으로 보시다시피 18K 화이트 골드 버전과 오메가만의 레드 골드 합금이라 할 수 있는 세드나™ 골드 버전으로 말이지요.
3종류의 골드 케이스에 동일한 실버 바탕의 클루 드 파리 패턴 처리한 다이얼을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다이얼 베리에이션은 이게 다가 아닙니다.
시계를 옆에서 보시면 느끼실 수 있겠지만, 다이얼은 살짝 위로 솟은 돔형을 띄고 있습니다.
바탕에 실버 오펄린톤으로 처리를 하고 전체 '파리의 못'을 뜻하는 특유의 요철이 있는 'Clous de Paris' 패턴으로 마무리를 했습니다.
테두리 미닛 인덱스는 얇게 프린트 처리했으며, 아워 마커는 케이스와 동일한 소재의 골드 바 형태의 아플리케 인덱스를 부착했습니다.
여기서 특기할 만한 디테일은 12-3-6-9 방향의 바 인덱스만 더블 형태로 겹쳐서 위치시키고 나머지는 얇은 싱글 바 형태라는 점입니다.
클루 드 파리 패턴 다이얼은 전체가 매트하고 빛을 반사시키지 않기 때문에
다이아몬드 페이스트로 각 면을 하이 폴리시드 처리한 골드 소재의 바 인덱스와 핸즈와 만났을 때 가독성에 결정적인 기여를 합니다.
시계를 살짝 살짝 기울여 빛에 비출 때마다 핸즈와 인덱스가 번쩍이는데 은근한 멋스러움을 느끼게 하지요.
각 핸즈는 또한 끝이 살짝 아래로 구부러져 있는데 이 또한 의도적으로 고전적인 요소를 고려한 결과입니다.
프린트 역시 최소화한 다이얼은 그 자체로도 단순미의 정수를 보여주며,
날짜창을 3시 방향이 아닌 6시 방향에 위치시킨 점 또한 전체적인 디자인 면에서 보다 안정감을 느끼게 합니다.
만약 센터 세컨드가 아닌 스몰 세컨드 형태로 6시 방향(날짜창 위)에 독립 초침 다이얼이 위치해 있었다면 시계의 인상은 지금과는 또 많이 달라졌겠지요?!
케이스 두께는 10.6mm.
박스형 사파이어 크리스탈이 아닌 플랫 사파이어 크리스탈이었다면 두께는 한 2mm는 더 줄었을 겁니다.
어찌됐든 10mm 안팎의 두께 정도는 드레스 워치로는 얇은 편에 속합니다.
최근 몇 년간의 인하우스 자동 베이스 자체가 두껍고 이를 탑재한 시계들 역시 두께가 제법 되는 것과 비교했을 때
현행 오메가에서 비교적 얇은 시계를 찾는 분들에게 드 빌 트레져는 뜻밖의 반가움을 선사하리라 봅니다.
골드 크라운 중앙에는 다른 오메가 시계들과 마찬가지로 오메가의 심볼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크라운 길이가 너무 길지도 짧지도 않아 특유의 우아한 형태를 거스르지 않으며,
푸쉬 인 형태라서 플루티드 처리된 테두리를 살짝 잡아 당기면 크라운을 뺄 수 있습니다.
크라운 0 포지션에서 수동 감기를 하면 되는데, 초반 와인딩 촉감은 스무스하지만 10회 이상 넘어가면 텐션이 제법 강하게 느껴집니다.
더블 배럴 설계에 파워리저브가 제법 긴 시계인지라 이러한 기능적인 부분은 와인딩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크라운을 1단 뺀 상태에서는 시침만 단독 조정이 가능한데요.
이는 GMT 시계에서 주로 사용되는 방식입니다. 또한 최근 오메가 자사 무브먼트의 한 주요 특징이기도 하지요.
시침의 앞뒤 움직임에 따라 날짜 역시 변경이 되며, 특히 외국 여행시 간편하게 로컬 타임을 조정할 수 있어 유용합니다.
크라운을 2단까지 뺀 상태에서는 보통의 시계들처럼 시침과 분침이 함께 움직이고요.
사파이어 크리스탈 케이스백을 통해서는 스위스 공식 크로노미터 기관(COSC) 인증을 받은 자사 수동 8511 칼리버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8511 칼리버의 브릿지 형태를 보고 어딘가 낯이 익다라고 생각하셨다면 네, 맞습니다.
기존 자동 8500/8501을 베이스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8501 칼리버에서 로터만 제거한 형태로 보셔도 무방할 듯 합니다.
전체 플레이트는 로듐 도금 처리되었으며, 8500/8501 칼리버에서도 볼 수 있었던
아라베스크풍의 휘몰아치는 제네바 웨이브 형태를 수동 베리에이션인 8511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골드 소재의 밸런스 브리지를 사용하고 각 브리지 모서리도 얕게 나마 사면 처리를 해서 고급스러움을 더하고 있습니다.
이미 설계면에서나 성능면에서나 높은 평가를 받았던 8500/8501을 베이스로 하고 있기 때문에 수동 베리에이션 또한 이슈가 될 만한 점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스트랩은 브라운 색상의 매트한 엘리게이터 스트랩이 적용되었습니다.
해당 리뷰 모델은 판매용이 아닌 촬영용 까르네 모델인 관계로 스트랩 퀄리티는 감안해서 봐주시길 바랍니다.
러그 쪽을 인위적으로 구부리지 않아도 러그 길이가 짧기 때문에 케이스 본체에 스트랩이 밀착되어 시각적으로도 보기가 좋습니다.
패턴이 굵직하고 적당한 두께의 스트랩은 유연하면서도 고급스럽습니다.
길이 역시 마찬가지로 너무 짧지도 길지도 않고 딱 좋고요.
여기에 케이스와 동일한 골드 소재의 핀 버클이 장착되었습니다.
참고로, 러그 간 길이는 20mm이며, 버클 쪽은 16mm입니다.
케이스 지름 40mm에 러그 투 러그 길이가 짧기 때문에 누구나 부담없이 착용할 수 있는 사이즈입니다. 단, 시각적으로는 좀 더 커보이는 효과도!
두께 또한 10.6mm로 얇은 편이라서 손목에서의 밀착력 또한 좋으며, 옐로우 골드 소재의 특성상 너무 튀지 않고 은은하게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리뷰 촬영 스튜디오 실장님 손목이 아닌 이번엔 제 손목에서의 착샷입니다.
아시아 남성 평균 손목 둘레를 자부하는 저로서는 ㅋ 아주 만족스러운 사이즈입니다.
물론 정장용 시계로는 더 작은 사이즈 시계도 좋아하는 저이지만,
드 빌 트레져는 지금의 40mm가 더도 덜도 없이 딱 제격인 사이즈라는 생각입니다.
1949년에 발매한 미니멀한 디자인의 오리지널 모델을 재현하며 첨단 기술을 투영한 모던한 새 자사 수동 무브먼트를 탑재한 드 빌 트레져.
품격 있는 히스토리컬 피스를 단순히 복각하는 차원에서 그치지 않고 현대의 고급 정장용 시계애호가들에게 어필할 만한 요소들을 창의적으로 배합한
드 빌 트레져는 16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메가 매뉴팩처 오메가의 과거의 영광과 기술력의 현 주소를 동시에 보여주는 흔치 않은 조합의 시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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