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토 매뉴팩처 방문기
Suunto Manufacture Visit
Valimotie 7, 01510 Vantaa, Finland
최근에야 매체에 자주 등장하기 시작한 순토(Sunnto)는 혈통이 깨끗한 스포츠 위치 브랜드입니다. 역사도 깊고, 자신들이 무얼 해야 되는지, 어떤 면을 어필해야하는지 잘 알고 있는 브랜드입니다. 다만 본사가 핀란드에 있기 때문에 다른 브랜드와 달리 매뉴팩처 방문이나 언론의 접근이 쉽지 않았습니다. 또한 국내에는 근래 들어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기 때문에 '신숨브(신이 숨겨놓은 브랜드)'의 대우를 받으며 간간히 마니아들의 입에 오르내릴 뿐이었습니다. 매뉴팩처 담당자의 입을 빌려 말씀을 드리자면, "파워셀러가 아닌 이상, 여기(매뉴팩쳐)까지 직접 브랜드를 방문하는 딜러와 프레스는 거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일까요? 한국인 컬럼니스트의 방문에 적잖은 관심을 보여주고, 되려 이쪽보다 많은 질문을 던지던 직원들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공장의 방문은 기행부터 시작됩니다. 순토의 본사는 헬싱키에서 2시간 정도 떨어진 반타(Vantaa)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사실 헬싱키 도심보다 헬싱키 국제공항(반타에 위치)에서 접근하는 것이 더 가깝습니다. 그러나 반타는 공장 및 기업들이 모여있는 단지이기 때문에 관광지로 추천드리고 싶진 않습니다. 가까운 곳에 아웃렛 매장과 핀에어 어셈블리 팩토리가 위치하고 있습니다.
핀란드 사람들은 정원을 가꾸는 것을 좋아합니다. 도심 근교 주거단지를 걷다보면 심심치 않게 화분을 발견하곤 합니다. 그 많은 화분을 어디서 가져오나 했는데, 이렇게 도/소매가 가능한 식물원이 매뉴팩처 근처에 있었습니다. 들어가보진 않았지만, 그 규모를 보아하니 핀란드 사람들의 자연 사랑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순토 매뉴팩처 전경입니다. 백야의 영향으로 아침부터 해가 강력합니다.
드디어 도착한 순토 본사입니다. 5층 건물이며, 보기보다 내부가 더 넓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미팅이 오전 9시에 잡혀있었기에 날씨는 정말 아침 분위기. 그래도 좋아하는 일을 하러 간다고 생각하니 발걸음이 가벼웠습니다.
건물에 들어가면 리셉션 데스크와 함께 이렇게 멋진 디자인의 로비가 나타납니다. 인테리어는 간결한 듯 생각을 많이 한 배치입니다. 뒤로 보이는 것은 직원 식당입니다. 투명하게 비치는 직원 식당이 순토가 모두에게 열려있는 브랜드임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안찍어도 되지만, '리얼리티'를 위해서 찍었습니다. 다른 테이블에 슬랜더 스타일의 누님이 앉아있었는데, "리얼리티를 위해 같이 나와주세요"라고 부탁했더니, 자긴 '내일부터 휴가'라 리얼리티와는 안어울린다고 한사코 사양해서 이 분만. 그나마 이 사진도 찍기 쑥스러워 하길래 덩달아 저도 쑥스러워 혼났습니다. ^^;;;;
매뉴팩쳐에 왔으니 작업복을 입고 움직여야지요. 저 작업복은 정전기를 최대한 예방할 수 있는 소재로 제작되어 있습니다. 정전기, 사람 몸에 흐르는 전류가 전자제품에는 치명적이라고 하더군요. 이것 외에도 어셈블리 직원들은 특수 제작된 부츠를 신고서야 어셈블리 룸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합니다.
방문객인 저에게 어셈블리 부츠가 있을리 없을 터. 저는...
신발에 스티커 같은 것을 붙이고 나서야 어셈블리 룸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ESD(Electrostatic Discharge)라고 불리는 이것은 인체의 몸에 흐르는 미량의 전류가 정전기를 발생시켜 미세 조작기구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셈블리 직원들은 작업장에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ESD 테스트를 하고 들어가야 합니다.
쿼츠시계가 뚝딱 만들어질줄 알았다면, 오산입니다. 순토의 시계는 전량 수제작이며, 전량 테스트 및 검증을 거친 제품입니다. 제가 "표본조사로 랜덤하게 찍어서 검사하고, 오차율에 따라 그 양을 조절하면 되지 않느냐?"고 묻자, 어셈블리 책임자가 손사래를 치며 이야기 합니다.
"모든 제품은 반드시 테스트를 거쳐야 합니다. 순토 제품의 경우 라이프스타일과 아마추어-프로를 위한 제품을 모두 커버해야 하기 때문에 기기의 결함 자체가 곧 죽음을 의미합니다. 제가 있는 한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라고.
순토의 1969년 초창기 나침반 모델과 오늘날 나침반 모델(SK7)
순토는 설립자가 공돌이(?)인 몇 안되는 브랜드입니다.
그나저나 1969년에 대한민국은 뭐 하고 있었죠?
이 곳에서 뭔가 단단한 신뢰가 느껴졌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심지어 '나침반'에도 테스트를 거치고 있더군요. 다이버를 좋아하는 회원님들이 많기에 다이버 시계에 대해 물어봤더니 더욱 활기를 띕니다. 다이버 시계는 기본적인 충격, 방수, 밴드 탄성, 정확도 테스트 이외에도 '압력' 테스트와 '습기' 테스트를 거친다고 합니다. 습기 테스트는 시계를 물에서 사용한 이후에 마르면서 올라오는 습기가 있는지 없는지 테스트 하는 것으로, 기계의 힘을 빌려도 천천히 말라야 하기 때문에 이 테스트에만 최소 2시간이 걸린다고 합니다. 다른 곳의 쿼츠는 어떨지 몰라도, 순토 매뉴팩처에서 생산되는 쿼츠는 100% 수제작에 전량 테스트를 거친 제품입니다. 쿼츠 매뉴팩처에서 전율을 느끼게 될 줄 몰랐는데, 모든것이 철저한 그들의 모습에 어쩐지 소름이 돋았습니다.
게다가 어셈블리 데스크는 소벨라(Sovella)라는 인체공학 디자인의 어셈블리 데스크입니다. 제가 "어? 이거 소벨라꺼 아니야? 너희들 대단하다."라고 했더니 자기는 모른다며.. 아니나 다를까 소벨라 홈페이지에 갔더니 '순토'가 딱 있었습니다. 소벨라는 실험실 데스크계의 롤렉스로 철저한 인체공학적 디자인과 편리한 구조로 유명한 제품입니다. 그만큼 제품 하나 하나의 가격이 만만치 않은데, 150명이나 되는 어셈블리 직원들을 위해서 이 데스크를 사용하는 모습을 보면서, 순토의 저력을 느꼈습니다.
※ 어셈블리에서는 사진촬영이 전면 금지였습니다. 생생한 사진을 전해드리고 싶었으나, 기계 부품을 조립하는 곳이기 때문이라는 고집스런 정신에 굴복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어셈블리룸은 3000 평방미터로, 조립 프로세스 자체가 기밀이었습니다.
보다 자세한 이야기를 위해 시계들을 잠깐 살펴보자면,
제가 가장 좋아하는 앰빗 라인입니다. 특히 하단 왼쪽에 있는 앰빗2는 상남자가 착용했을 때 빛을 발합니다. 평평한 사파이어 글라스가 베젤과 절묘하게 만나 빛을 발합니다. 아시다시피 앰빗2 사파이어는 다른 앰빗 모델보다 가격이 약간 높은 편입니다. 프리미엄이라고 하죠. 제작 프로세스가 조금 더 들어간다고 합니다. 물론 다른 모델도 멋집니다. 특히 세번째 앰빗2 S의 빨간 베젤은 알파 로메오의 이탈리안 레드를 연상시키는 연상시킵니다.
약 2년 동안 제작한 이 시계는 전문 산악인과 MTB 라이더를 위한 모델입니다. 때문에 케이스백이 둥근 형태로 손목에 전혀 무리를 주지 않으며, 직관적인 버튼과 푸시 버튼의 적합한 강도로 빠른 조작이 가능합니다.
쿼츠 모델 하나에 2년 제작입니다. 보통 한 개의 쿼츠를 제작하는데 몇 개월이 걸리느냐? 고 묻자 적어도 1년 반 이상은 걸린다는 대답. 순토는 라이프스타일 모델을 위해 다양한 스트랩을 판매할 생각이 없느냐고 묻자, 품질검증이 안된 제품을 만들 생각이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대량으로 만들고 문제가 생기면 '교환'이라는 정책을 고수하는 것보다 이쪽이 더 정이 가는 이유는 뭘지.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앰빗 라인업의 시계들. 맨 왼쪽의 메탈릭 버전은 실물로 어필을 하는 모델이며, 일본에서 가장 잘 나가는 제품이라고 합니다. 라임 베젤과 오렌지 베젤도 눈에 들어오는군요.
러그 부분의 툭 튀어나온 부분은 GPS 모듈 수신부입니다. 순토는 세계에서 가장 정확한 시계 GPS 수신 모듈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압과 GPS를 혼합하여 고도를 측정하는 방식 역시 순토가 가지고 있는 고유 기술입니다.
캐주얼한 라이프스타일을 위한 순토 퀘스트(Quest)와 M 시리즈 입니다. 가벼운 운동을 하거나 다이어트에는 퀘스트가, 트레이너나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는 사람에게는 M5가 적합합니다. GPS 수신기능, 나침반 수신기능은 당연히 포함되어 있고, M5의 경우에는 운동 스케쥴이나 자신이 운동을 무리해서 하고 있거나 루즈하게 하고 있는지 측정하여 알려주는 게이지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순토 M5입니다. 이름만 들으면 BMW의 M 시리즈가 떠오르기도 하면서 베젤을 보면 나이키 퓨얼 밴드가 생각납니다.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 여성용 피트니스 브레이슬릿으로 인기가 가장 높은 제품입니다. 여성분께 순토 시계를 선물한다면 이 모델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디스플레이 상단에 보이는 '7kg'은 사용자가 목표로 한 무게 감량치를 나타냅니다. 하단부에 'Exercise Day'는 시계가 설정하거나 사용자가 직접 설정한 운동 날짜를 표시하는 것으로, 목표 감량치와 운동 규칙성을 시계 스스로 판단하여 다이얼에 표시해줍니다. 또한 사용자가 운동을 할 때, 평소보다 무리해서 운동을 하거나 루즈하게 하지 않도록 베젤을 따라 화살표 모양의 게이지가 올라가는 기능이 있습니다.
즉, 사용하면 사용할 수록 그 사용자에게 커스터마이징되는 시계인 것이죠. 가벼운 러닝과 피트니스클럽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제작되었으며, 조작과 모드 변환이 아주 간편합니다.(직접 사용해보고 말씀드리는 것입...)
물론 처음부터 모든 여성분들이 직관적으로 사용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규칙적인 운동과 생활을 습관화하고 싶으신 분들이라면, 금방 적응 할 수 있는 수준의 UI(User Interface)를 가지고 있습니다.
순토는 시계 인디케이터에도 신경을 많이 쓰는 브랜드입니다. 베젤에 들어간 인디케이터는 프린팅이 아니라 레이저 각인으로, 시간이 지나도 뜯어지거나 닳는 일이 없습니다. 실제 제품을 육안으로 보면, 베젤 인디케이터에 레이저 각인 고유의 홈을 볼 수 있습니다. 어셈블리 파트 역시 다이얼 제작부를 따로 두고 있으며, 레이저 각인의 경우 전량 현미경으로 인덱스를 검사합니다. 사진은 앰빗 라인업의 시계로, 시간, 날짜는 물론이고 심박수, 고도, 기온까지 표시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스포티하면서도 개성있는 사용자를 위한 순토의 시계입니다. 러그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것으로 충격은 물론이고 격렬한 운동에도 손목에 무리를 주지 않도록 제작되었습니다. 참고 자료가 필요하신 분들을 위해 간단히 모델 정면 사진을 찍었습니다.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위한 라인업
순토 벡터의 경우 미국에서 인기가 많다고 합니다.
다이버를 위한 최초의 시계 사이즈의 다이빙 컴퓨터 시리즈입니다.
순토의 다이버 시장 점유율은 세계 1위이며, 측정 알고리즘 역시 유명합니다.
프리다이버를 위한 제품인 D4i 시리즈(상단)
다이버 전문 계측장비(하단)
순토의 엘레멘텀 테라입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모델. 크로노그래프 맨 위에 있는 버튼의 러프한 처리는
제작자가 크로노그래프를 좀 만져본 사람이라는 것을 시사합니다. 시계는 좋아하는 사람이 만들어야죠.
엘레멘텀 테라의 가죽줄 버전. 운동을 사랑하시면서도 얌전한 디자인을 원하시는 분들께 좋은 선택이 될 것 같습니다.
순토는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를 두 번이나 받은 시계 브랜드입니다. 최신 모델인 앰빗2가 그렇고, 다이버 전문 모델인 D9x가 그랬습니다.
순토는 환경 문제와 탐험에도 관심이 많은 브랜드입니다. 태생이 '와일드'였기 때문에 왠만한 아웃도어 활동에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다이빙과 산악은 물론이고, 요트, 스노클링, MTB, 러닝, 오리엔티어링 등 순토가 지원하는 활동은 인간과 자연이 함께하는 곳이면 어디든 함께 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순토의 시계 모듈은 모두 같은 기능을 지원하지 않습니다. 쉽게 말해, 라인업 이름이 다르면 기능이 다릅니다. 앰빗2가 스포츠 활동 모델이라면, 앰빗2S는 전문가 마운틴 러너를 위한 제품입니다.
그리고 각 모델에 맞추어 세부 설정과 조작이 바뀝니다. 순토의 UI(User Interface)와 UX(User Experience)활용도는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약 200 정도 되는 전문 스포츠맨들의 피드백과 2,000 명 이상의 고객들이 제품 제작에 적극적으로 피드백을 주고 있다고 합니다. 스포츠가 직업인 사람들에게 기계식 시계는 너무 제약이 많은 아이템입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쿼츠로 눈이 가게 마련인데, 분야는 달라도 그 끝은 순토가 되도록 하겠다는게 순토의 목표라고 하더군요. 다이버, 산악 계측장비 점유율 1위라는 기록은 그들이 목표에 얼마나 가까이 다가갔는지 보여주는 부분이었습니다.
회사 전면에 붙어있는 포스터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을 한 장 찍어봤습니다. 볼보 오션 레이스에 참가하는 세일링 보트의 디자인으로, 순토가 대문짝만하게 찍혀 있습니다. 볼보 오션 레이스는 1973년부터 시작된 유서 깊은 레이스입니다. 흔히 화이트 브레드 라운드 레이스라고 불리며, 3년에 한 번 열립니다. 스폰서로는 퓨마, 롤스로이스, 휴고 보스, DHL, 소니 에릭슨, 레드불, IWC 등의 브랜드들이 있습니다.
유럽을 여행하며 많은 기업을 거치며 느낀 점이 있다면, 유럽 기업들은 한 국제적인 경기에 스폰서가 된다는 것을 굉장히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그것이 비록 승패와 관련이 있건 없건 말이죠. 물론 F1 처럼 자본이 잠식해버린 경기는 차원이 다른 얘기가 되어버립니다만, 체스 챔피언십이나, 순토의 환경 다큐멘터리 지원 같은 것들은 기업이 순수한 스폰서의 의미를 간직하고 있음을, 사회 문제를 남의 일마냥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표식입니다.
국가가 그리고 개인이 하지 못하는 것을 기업이 하는 것은 절대로 당연한 일이 아닙니다. 물론 교과서는 그것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고 떠넘기고 있습니다만...
책임은 의무가 아닙니다.
멋진 뮤지션을 데려와서 내한 콘서트를 하는 것 역시 쉬운 일은 아닙니다만, 오래도록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일을 하길 자처하는 기업은 그보다 조금 더 멀리 바라보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핀란드에서는 '오리엔티어링(지도를 읽고 원하는 곳으로 움직이는 능력)'이 의무 교육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과목 시간에 학생들은 순토의 나침반을 이용하여 학습을 합니다. 교보재 납품이라는 것에 아무 생각이 없는 대한민국의 기업이 배워야 할 점 이라고 생각됩니다. 아이들이 자연스레 성장하면서 보고 자라는 것. 소비자의 눈높이로 바라본다는 것이 이런 것이 아닐까요?
서두에 순토가 '퓨어(pure)'한 브랜드라는 표현을 썼는데, 그 근거가 여기에 있습니다. 순토는 시작이 나침반이었습니다. 1969년 창립자가 자기가 쓸 나침판을 직접 제작하면서부터 가족 비즈니스로 발전시킨 것이 순토의 시작이었습니다. 순토 직원들은 모두 이 스토리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침판이 그들의 뿌리라고 생각합니다. 마케팅 담당자가 얘기합니다.
"우리도 알고 있습니다. 나침판 기능을 쓰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그런데도 우리는 나침판 기능을 시계에서 빼놓지 않고 넣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들의 본질이고, 시작임을 상기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이제 프리젠테이션 룸으로 들어갑니다. 프리젠테이션에는 디자인 총 책임자와 아웃도어, 다이버 총 책임자, 커뮤니케이션 담당자가 함께 했습니다.
제가 남자 사진을 잘 안찍는데 굳이 이 분 사진을 찍은 이유는....
앰빗2로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를 수상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왼쪽에 보이는 분이며, 이 분은 자국내 트라이애슬론 챔피언십에서 동메달을 따기도 했던 분입니다. 남자 중 남자며, 프리젠테이션에도 이탈리아 남성의 분위기를 풍기며 저를 압도(?)하시더군요. 가뜩이나 유리심장인데, 깨져버리는 줄 알았습니다. 순토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으며, 수영시 스트로크(헤엄)의 세기, 측정 방식에 자신이 기여를 했다는 이야기를 해주더군요. 저는 이 날 이 분과 디자인 총 책임자(맨 오른쪽 두 번째)를 만났습니다.
순토의 디자인 철학은 '속이지 않는다' 입니다. 비록 스칸디나비안 디자인엔 해당되지 않는 핀란드입니다만, 언제나 열린 태도로 디자인의 지평을 넓혀놓고 있었습니다. 시계를 디자인 할 때 개발 초창기부터 엔지니어가 함께 들어간다고 합니다. 컨셉 디자인 실컷 해놓고 "이거 만들어줘" 하는게 아니라, 처음부터 엔지니어가 함께하면서 디자인와 기능의 최적화를 논한다고 합니다. 앰빗2의 디자인 컨셉은 메탈이 메탈다워 보이며, 기능 속에 디자인이 녹아들어가는 것이라는 설명. 미학을 위해 불필요한 부분을 추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이 수석 디자이너는 순토에 입사한지 2년차로, 이전에는 노키아에서 제품 디자인을 담당했다고 합니다. "제품 디자인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 무엇이 있는가?"라고 묻자, "휴대폰과 전혀 다른 차원에서 이뤄지는 테스트와 유저의 요구에 맞는 디자인"이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Q: "제품을 디자인하는 프로세스가 있는지?"라는 질문에는,
A: "없다."고 말하며, 첫째, 장인정신을 해치지 않으며. 둘째, 정제된 디자인의 추구. 셋째, 아이콘적인 디테일. 넷째, 유저의 편의를 지키는 디자인. 이라는 원칙 아래 모든 제작이 이뤄진다고 말했습니다.
Q: "아시아 시장은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한다. 경쟁 포지션을 보면 스와치는 물론이고 지샥과 함께 진열되는데, 그들은 콜라보레이션과 대량 판매로 유저를 공략한다. 콜라보레이션에 대한 욕심은 없는지?"라는 질문에는,
A: "열려있는 문제다. 콜라보 디자인은 매년 나오는 이야기인데, 아직 우리에게는 디자인을 확고히 할 시간이 필요하다."라고 답했습니다.
Q: "카모플라주 스트랩이나 스트랩의 바리에이션으로 기분을 바꾸는 것도 좋은 수단이고, 실제로 스트랩 전략은 파네라이가 그렇게 하고 있다. 순토의 아이코닉 디자인과 스토리에 밀리터리가 빠질 수 없는데, 카모플라주 스트랩을 제작할 의향은 없는지?"에는
A: "좋은 아이디어다. 혹시 입사할 생각 없나?"라는 재기 넘치는 대답을 했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디자인 책임자는 마지막 질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듯 했으며, 머지 않은 미래에 반영할 지도 모른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습니다.
(왼쪽) 마케팅 총 책임자인 이와(Ewa)
(오른쪽) 아웃도어 워치 총 책임자인 안나(Anna)
출근 복장이 자유롭죠?
다음은 마케팅 총 책임자와의 만남이었습니다. 순토는 현재 70%의 물량을 이곳에서 직접 제작하고 있으며, 중국 시장과 동남아 시장을 위해 30% 정도를 중국에서 생산하고 있다고 합니다. 제작과 관련된 부분은 모두 이곳에서 담당하고 있으며, 일본과 한국 시장을 눈여겨 보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한국의 라이프스타일에 관심이 많다고 하는데, 한국의 생활 수준 향상에 아주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상단 이와의 손목에 있는 시계가 올해 9월에 등장할 여성용 M 시리즈인데, 실제로 보면 굉장히 예쁩니다. 엠바고가 걸린 제품이라 상세한 이미지를 보여드릴 순 없지만, 순백의 스트랩에 포인트로 들어간 레드가 아주 조화로웠습니다.
M 시리즈는 피트니스 유저를 위한 제품으로, 사용자에 따라 운동량을 측정하고 피드백을 주는 기능의 스마트한 시계입니다. 운동량에 대한 표준은 US Agency for Healthcare의 표준을 따르고, 동-서양의 인종적 특징을 초월하여, 오로지 '사용자'초점에 맞춘 기능의 시계입니다. 매주 사용자의 운동량을 체크하고 운동 날짜를 알려주며, 운동 중에는 게이지를 통해 얼마나 더 운동 강도를 조절할 지를 보여주는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M 시리즈의 모습.
피트니스 클럽이 운동과 러닝이 주를 이루는 우리나라에 적합한 모델입니다.
미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빅터입니다. 순토는 이 디자인을 '컴퓨터' 디자인이라고 불렀습니다. 인디케이터 하나 하나가 모두 디자인 요소라는 것인데, 이 모델이 스포츠 워치로는 순토에서 가장 오래된 모델이라며, 자랑스러워 했습니다.
순토는 '하는 척(pretend)'하는 시계를 만들지 않는다는 말도 남겼습니다. 마케팅 담당자의 말에 의하면 순토는 프리미엄 브랜드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즉, 유저가 운동을 하지 않는 사람이더라도 필요한 순간에는 언제든 작동하는 시계를 만드는 것이 순토의 목적이라고 합니다. 단순히 예쁘기만 하고, 스포티해보이는 시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진짜 스포티할 수 있고, 그것에 적합한 디자인을 만드는 것이 순토의 목표라고 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정제된 디자인'이 순토의 핵심 가치입니다. 말수가 적은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내실있듯, 순토는 프리미엄 브랜드의 근원을 기능에 입각한 디자인에서 찾고 있었습니다.
프리젠테이션이 끝나고, 식사를 하러 직원 식당으로 이동합니다.
'리얼리티'를 위해 식사 사진을 찍는다고 했더니 직원들이 모두 빵.... ㅎㅎㅎㅎ
식사를 하면서, 한층 더 편해진 분위기에서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네."라고 말을 꺼내자, 이와가 "우리 직원 중에는 올림픽에 도전하는 직원도 있고, 아까 만난 분도 트라이애슬론을 진지하게 하고 있어."라고 말합니다. 얘기를 듣자하니 오리엔티어링 대회에서도 동메달을 타는 직원도 있고, 모두 스포츠를 좋아한다고 하더군요.
"너희 CEO는 그런 너희들 휴가를 그렇게 잘 줘?"라고 물었더니
"CEO가 스포츠를 엄청 좋아하는데? 며칠 전에는 CEO 운동하는 모습 취재하겠다고 CEO를 막 굴리던데? 그게 얼마나 웃겼는지 몰라."라며 웃습니다.
"그래? 그런데 CEO는 어디서 밥먹어?"라고 했더니. 고개를 으쓱 하면서, 손가락으로 '여기'를 가리킵니다.
이어서, "순토 CEO는 운동을 좋아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래야 좋은 시계를 만들고, 그 시계를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고 말이야. 식사는 당연히 우리와 함께 해. 물론 이건 핀란드의 기업이라도 보통 일은 아니야. CEO가 직원이랑 식사 하는 것. 그런데 우리 대표는 순토라면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 가끔 합석하는데, 대화 주제는 '운동'이야. 자기가 뭘 하고 있고, 요새 직원들은 무슨 운동을 하고 있는지 묻지."라고 말합니다.
시계와 운동에 대한 얘기를 나누다보니 주제는 자연스럽게 테스팅으로 넘어갑니다.
오자모(Ojamo)라는 곳에 위치한 이 호수는 순토가 인공 바위와 터널을 만들고 테스트를 진행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테스트는 날씨와 계절 상관없이 매주 목요일에 이뤄진다고 합니다. 순토 다이버 테스팅 팀은 매주 목요일마다 자사 제품 20개씩(10개씩 양쪽)을 차고 테스트를 들어갑니다. 한 가지 재미있었던 점은 테스팅 대상이 신형 모델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것 입니다. 순토 다이버들은 나온지 오래 된 모델(품질 보증 기간 이내 그리고 보증 기간이 지난 모델 모두)을 차고 들어가 수중 조작, 기압 적응 테스팅을 한다고 합니다.
인상깊은 점은 순토가 수중 조작을 테스팅한다는 사실 입니다. 보통 브랜드들은 시계의 수중조작에 상당히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는데, 사실 수중 조작은 다이버가 가장 흔히 하는 행동입니다. 심지어 물놀이를 가도 시계를 물에 담그고 백라이트를 켜보는데 말이죠. 단 순히 시계를 주고 테스트 하는 장면을 찍거나, 기압계가 딸린 압력 장치로 수압을 테스팅 하는 것 뿐만 아니라, 날씨와 계절에 관계없이 얼음을 뚫고 들어가 버튼을 누르며 테스트를 진행하는 모습을 보면서 순토의 시계 철학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순토를 선택하자면, 순토의 경쟁 모델에 대한 이야기가 빠질 수 없습니다. "순토는 어떤 브랜드와 경쟁을 한다고 생각하나?"라는 질문에 마케팅 담당자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진열장에 놓이는 브랜드들이 순토의 경쟁모델이 맞다. 그러나 그런 브랜드(여타 여러분들이 떠올리시는 쿼츠 브랜드들을 언급했습니다)와 달리, 순토는 '하는 척(pretend)'하지 않는다. 비록, 유저가 다이버가 아니더라도, 다이버를 위한 시계를 만들고, MTB 러너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MTB 러너의 운동량과 업/다운힐 파워를 측정할 수 있는 센서를 시계에 집어 넣는다. 사용자가 수영을 한다면, 스트로크의 파워와 운동량을 측정하는 프로그램을 집어 넣는다. 이것이 순토의 프리미엄이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순토가 운영하는 홈페이지인 무브즈카운트(http://www.movescount.com/)에는 이러한 측정을 웹으로 기록하며 공유할 수 있는 커뮤니티를 운영 중입니다. 이 곳에서 시계를 위해 제작된 앱을 다운받을 수도 있으며, 자신만의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 있습니다. 현재 순토 시계에 적용할 수 있는 어플리케이션의 수는 1000개가 넘으며, 휴대폰 어플리케이션도 있습니다. 순토는 새로 등장하는 피트니스, 아웃도어 시장과 커뮤니티를 주의깊게 관찰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커뮤니티의 제작은 사용자의 편의를 도모하기도 하지만, 날카로운 피드백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현대인들의 손은 수화기보다 키보드와 가까우니까요.
순토는 오히려 이러한 점을 두 손 벌려 환영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전문가를 위한 장비는 전문가의 것만이 아니기에 순토는 프리미엄 브랜드와 건전한 문화를 제공하는 기업으로 남고 싶다고 말합니다. 적지 않은 수의 브랜드 담당자들과의 만남이 있었기에 '가짜'와 '진짜'정도는 구분할 수 있는 눈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순토는 진짜입니다. 핀란드, 북유럽에 대해 한국에 알려진 바는 많이 없지만, 100개국이 넘는 국제 시장과 2,000명 이상의 전문가 스포츠맨의 피드백을 받는 기업은 순토가 유일합니다.
순토는 '다른 나라에 비해 대한민국 시장은 늦게 접근하게 된 시장'이라며, 사실 아시아에서 가장 표준화된 데이터를 얻기에 적합한 시장은 대한민국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일본의 시장 규모가 다른 아시아 국가의 시장 규모에 비해 상당히 커서 그동안 집중하지 못했으나, 이제부터는 한국의 팀과 더욱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귀를 열어놓겠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약 4시간 가량 쉴 새 없이 자기 브랜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업이 몇이나 될까 생각해보면 전혀 공수표로 느껴지지 않는 발언이었습니다. '쿼츠 시계지만...' 같은 발언은 100% 수제작, 전 물량 테스트라는 단어 앞에 꺼낼 수 없는 말이 되어버립니다. 핀란드 고유의 철학으로 자신만의 길을 걷고 있는 순토의 길을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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