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 temps suspendu 38mm
기계식 손목 시계에는 꽤 많은 기능들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시계라면 당연히 해야 할 시간 표시부터 시작해서 날짜, 요일 표시를 지나 연도, 월, 문페이즈, 크로노그래프, 라트라팡테, 퍼페추얼 캘린더 등등..
작은 시계 안에 들어갈 수 있는 기능들은 꽤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기계식 시계의 역사에서 기술과 시계의 발전은 크게 두가지 형태로 일어났습니다.
첫번째는 얼마나 정확하게 시간을 표시할 수 있는가,
정확하게 시간을 맞추기 위한 노력했던 천문대 크로노미터 경연용 시계
그리고 두번째로는 얼마나 많은 추가 기능들을 손목 시계라는 작고 한정된 공간 안에 표현할 수 있었냐하는 것이었죠.
가장 많은 기능이 한번에 들어간 프랭크 뮬러.
36개의 기능이 들어갔다고 하는데, 정확히 뭐가 들어갔는지는 알 수 없으니 그냥 넘어가도록 합니다..
하지만 과연 이러한 기능이 실생활에서 얼마나 쓰임새가 있는가? 라는 질문은
사실 기계식 시계애호가들이나 제작자들이 어쩌면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질문일런지도 모릅니다.
기계식 손목시계에 있어서 실제로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기능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시간표시 이외에 날짜창은 어느정도 의미있게 쓰이지만, 그 외의 기능들은, 심지어 크로노그래프도, 일반 사용자들에게 유용하게 쓰이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크로노그래프가 가장 유용하게 쓰일 때는 라면 끓일 때라고 하지요.)
특히나 요즘처럼 온갖 전자장비들과, 누구나 들고 다니는 휴대전화기가 예전에 기계식시계로 할 수 있었던 모든 일들을 훨씬 더 정확하고 간편하게 해내는 시대니까요.
하지만 기계식 시계에 있어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라는 것은 그래도 의미있는 것이죠.
실제로는 하던 하지 않던 말입니다.
얼마나 작고 얼마나 중요해 보이지 않는 기능일지라도, 단순히 ‘마음 먹으면 이걸로 할 수 있다’ 라는 것은,
제품에 있어서 차별성을 부여하고, 구매자의 소유욕을 자극하고, 또 그로 인한 기술의 진보를 가져오게 됩니다.
그래서 더 많은 기능이 들어간 시계는 일반적으로 더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고,
이것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소비자들에게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편이죠.
그런 기계식 시계의 기능에 있어서 ‘무언가를 하지 않을 수 있다’ 라는 것은 꽤나 새로운 시선이기는 합니다.
특히 그것이 시계 본연의 목적인 “시간 표시”를 ‘하지 않을 수 있다’ 라는 것일 경우에는 말입니다.
시간을 잠시 멈춰놓는 기능의 “타임 서스펜디드.” 이미 소고님의 리뷰에서 자세히 소개된 시계입니다.
뒤에 영어책은 뭔가 하고 읽어보려니 정말로 시간이 정지된것 같은 마법의 사진..
어차피 손목 시계에 쓸데없는 기능들을 넣느니 정말로 쓸데 없는 기능을 넣어보겠다는 역발상일까요?
아니면 손목 시계에서 흐르는 시간을 멈추어보겠다는 예술성의 발산일까요? 의도야 어쨋던 결과물은 재미있고 독창적이며 우아합니다.
앞선 리뷰에서 보였던 시계는 2011년에 수상을 한 43mm 케이스의 남성용 시계였고, 이번에 볼 것은 38mm 케이스의 시계입니다.
케이스 외적인 요소 이외에, 그리고 날짜창 대신에 초침이 있다는 점 이외에 무브먼트에서 시간을 정지시키는 기능은 동일하므로,
그 부분에 있어서는 소고님의 리뷰를 참조하시면 됩니다. --> https://www.timeforum.co.kr/8054989
(그리고 저는 이렇게 리뷰 하나를 날로 먹는거죠 엣헴)
이미 소고님이 리뷰하신 시계와 큰 특징적 차이는 3가지입니다.
첫번째로는 우선 케이스의 지름이 줄어 들어 38mm가 되었고, 두번째로 레트로그레이드 날짜창 대신에 초침이 생겼으며,
그리고 마지막으로 뒷면이 디스플레이백으로 무브먼트를 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 38mm 시계에도 다이얼에는 여러가지 문양들이 복합적으로 들어가서 아름다운 모양을 내고 있습니다. 특히 초침이 돌아가는 곳은 자개판으로 비춰지는 빛에 따라 영롱한 빛깔들이 나오는 포인트입니다. 사진에서 그 모습이 잘 비춰지지 않는게 약간 안타까울 따름이네요.
시선이 약간씩 움직임에 따라 빛의 움직임이 변화하는 자개판의 빛깔은 실제로 보지 않으면 그 아름다움을 가늠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소고님의 리뷰에서도 언급하셨지만 여러가지 문양이 복합적으로, 그리고 매우 고급스럽게 마감된 이 다이얼에 자개판의 서브 다이얼이 더해져서, 43mm 타임 서스펜디드보다도 다이얼사이드의 화려함과 아름다움은 더 강렬합니다.
그동안 에르메스라는 브랜드의 시계 품질에 대해서 크게 신경을 쓰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주된 상품은 가죽 상품이고 시계는 그저 구색을 맞추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 시계의 다이얼을 보면 꽤나 본격적인 시계 시장으로의 진입을 엿볼 수 있습니다.
에르메스라는 브랜드가 고급 패션시장에서 가지고 있는 브랜드 파워가 시계 시장에서도 그대로 이어질만한 충분한 다이얼 품질입니다.
12시를 기점으로 얇은 부채꼴 형태가 펼쳐진 곳이 No Time Zone이라고 부를만한 공간입니다.
9시의 버튼을 누르면, 분침과 시침이 이 위치로 이동해서 시간 표시하는 것을 정지하고 멈춰 있습니다.
43mm에서는 시간이 정지하면 날짜를 표시하는 바늘이 다이얼 안쪽으로 숨어서 현재 시간이 정지했음을 보여 주죠.
하지만 이 시계는 숨는 바늘은 없이 초침은 계속 운행을 하며, 이 시계가 실제로 멈춰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계속 재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특이한 점은 초침이 거꾸로 돌아간다는 것이죠. 6에서 12로, 18로, 그리고 24로 반시계 방향으로 초침이 돌아갑니다.
의도적으로 반시계방향으로 돌아가는 초침이 시계가 멈추지 않았음을 재미있게 보여줍니다.
시곗 바늘의 품질 또한 훌륭합니다. 특히 다이얼 내부에서 읽어야 할 정보가 있고 (초침의 움직임) 그리고 그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분침과 시침의 가운데를 비워놓은 것이 인상적입니다. 저렇게 비워놓은 것이 뭐 큰 차이가 있나 싶으실 수도 있겠지만, 다이얼 안에 있는 정보를 읽는데에는 저런 세심한 배려 하나가 큰 차이를 낳습니다.
뒷면 무브먼트로 가면.. 소고님의 리뷰에서 보였던 복잡한 시간정지 기능의 무브먼트는 보이지 않고 일견 평범해보이는 자동 무브먼트의 모습이 보입니다. 타임 서스펜디드에 사용된 모듈이 다이얼 사이드에 있기 때문입니다.
무브먼트의 크기는 38mm 케이스의 사이즈에 적절한 크기의 무브먼트가 들어가 있습니다. 아마도 43mm 타임서스펜디드에 들어간 것과 거의 같은 무브먼트일것인데, 이 케이스에는 적절한 사이즈라고 생각해서인지, 디스플레이백으로 뒷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시간을 멈추는 모듈들이 다이알 사이드에서 보이고, 뒷백을 통해 볼 수 없다는 점이 참 아쉽기는 합니다.
뒷면으로 보이는 H1912 무브먼트는 플레이트에 H 로고가 양각/음각으로 번갈아 들어간 것을 제외하면 크게 특별할 것은 없어 보입니다.
H 로고들의 프린팅은 첫 눈에는 고급스러워보이는 부분도 있기는 합니다만, 전체적으로 이 시계가 가지는 특별한 기능과 둥근 케이스의 곡면과는 딱히 잘 어울리는것 같지 않아 개인적으로는 조금 아쉬운 부분입니다. 조금 더 부드럽고 유려한 플레이트 각인이 더 나았을것 같네요.
9시에 보이는 시간을 멈추는 버튼. 컬럼 휠을 통한 버튼이라 클릭은 부드러운 편입니다. 다만 버튼을 누를 때, 어느 한 지점에서 약간의 저항감이 더 생기고, 그 때 바늘이 중간쯤으로 이동했다가, 버튼을 완전히 누르면 정해진 포지션으로 이동하는데, 이것은 아마 컬럼휠을 이용한 무브먼트 구조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 싶습니다.
케이스는 심플 워치처럼 생긴 외관치고는 약간 두꺼운 편입니다. 이것은 43mm 아쏘 타임 서스펜디드도 마찬가지입니다.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복잡한 타임 서스펜드 기능의 모듈이 무브먼트의 두께를 더했을테니, 어느정도 두께는 피할 수 없는 결과일 것입니다.
하지만 두께에 비해서 잘 선택된 러그 포지션은 착용감을 무척 좋게 하는 요인입니다.
아쏘 케이스 특유의 러그와 시간 조정하는 용두가 보입니다.
당연히 시계 가죽줄은 에르메스입니다. 가죽줄의 품질에 대해서는 굳이 제가 여기서 더 이야기하지 않아도 충분하리라 믿습니다.
현수교 (Suspension Bridge) 옆에 걸린 타임 서스펜디드 (Time Suspended).
그런데 여기까지 읽으셨으면 의문이 드시는 분도 계실겁니다.
'아니 왜 남자회원이 절대다수인 타임포럼에서 이렇게 다이아몬드가 박힌 빨간 가죽줄의 여자 시계를 리뷰하고 있지?' 라고요.
우선 이 38mm 타임 서스펜디드는 다이아몬드가 베젤에 없는 모델도 존재하고, 가죽줄 색상도 빨간색 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색깔이 존재합니다.
가죽줄 색깔만 바뀌어도 시계의 느낌이 확 달라져서 충분히 남성용 시계 같아짐을 아실 수 있습니다.
베젤에 다이아몬드가 없는 시계는 깔끔하니 정장용으로 매우 잘 어울리는 시계 모습이기도 하고요.
로즈 골드 모델들도 있습니다. 역시 로즈 골드 모델에 짙은 갈색 가죽줄이 잘 어울립니다.
38mm의 케이스 사이즈는 요즘의 오버사이즈 워치 트렌드에서는 작게 느껴질지 몰라도, 예전에는 충분히 큰, 남성 시계 사이즈였습니다.
특히나 이 타임 서스펜디드처럼 가죽줄의 정장용 시계와 같은 모습이라면, 38mm 정도의 크기라면 남성용으로 차기에 충분한 크기죠.
43mm가 너무 크게 느껴지는 가는 손목의 소유자들이 반길만한 크기입니다.
물론 요즘 트렌드를 생각하면 여성이 착용할 수도 있는 크기이지만, 유니섹스로 남여 구별 없이 누구나 잘 찰 수 있는 크기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그 말은..
유부남들의 경우에는 오렌지 박스를 선물해놓고 실상 내용물은 자신이 차지하는 결과도 어쩌면 기대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요.
아니면 사놓고 사실은 자기하고 같이 착용하려고 샀다..라는 속이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하거나.
예전의 에르메스 시계에 대한 평 중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에르메스는 가죽줄을 사면, 그 위에 시계를 하나 얹어준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만큼 에르메스 시계는 브랜드가치에 비해 가격대가 높지 않은, 오히려 합리적이라고 (고급 기계식 시계에서 과연 합리적 가격이라는 것이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는 따로 논평이 필요하겠습니다만;;;) 여겨질만한 가격의 시계들이었습니다만,
그저 그런 에보슈나 쿼츠 무브먼트를 끼우지 않고 본격적인 자사 무브먼트를 탑재한 에르메스 시계는, 가격대도 본격적이 되었습니다.
아직 국내 판매 가격은 미정인 부분이 많지만 골드모델의 경우에는 4천만원대부터, 스틸 모델의 경우에는 2천5백만원대부터 시작한다고 합니다.
스틸 모델의 경우 베젤에 다이아몬드가 있는 모델들의 가격인지, 없는 모델도 포함한 것인지 정확하지 않습니다만,
다이아몬드가 없는 스틸베젤 모델의 경우에는, 가격대가 적절하게 책정될 때, 많은 소비자들에게서 좋은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패션 업계에서 독보적인 위치의 에르메스가 과연 본격적으로 시계 시장에 들어와서 어떠한 브랜드 가치를 얻을 수 있을지,
그리고 앞으로 얼마나 이 타임 서스펜디드와 같이 독창적이고 의미있는 시계들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그 행보는 앞으로 많은 기대가 됩니다.
리뷰협조: 에르메스 시계 코리아
촬영협조: 2nd Round Studio
Photographer 김두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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