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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프한데 은근히 섹시한 것'


베로니크 나샤니앙(Veronique Nichanian, Hermès 수석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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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mes mens 2013 spring summer collection 


 에르메스는 프랑스에서 건너 온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브랜드 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이 브랜드를 입에 올리면, 여성들은 "버킨백! 캘리백!"이 반사적으로 터져 나오고, 뭘 좀 안다는 남자들은 점잖은체 하면서도 흘긋거리는 동공을 감추지 못합니다. 소위 '잘 나가는' 브랜드들은 그들만의 색깔이 있는데, 에르메스는 '톡'하고 치면 '팡' 하고 터져버리길 기다리고 있는 오렌지색 물풍선 같은 브랜드 입니다. 어떤 제품을 가져다놔도 '프랑스(+에르메스) 같다.' 는 느낌이 물씬 나는데, 그 이유는 그들만이 낼 수 있는 특유의 낭만(Romance)이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낭만이라니. 하는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미국식 효율주의와 한국의 성과주의 정서, 마지막으로 일본의 절차중시 성향이 한데 버무려진 조선 땅에서는 '럭셔리'도 효율, 가성비, 그리고 뿌리까지 순종이어야 한다는 3대 전제가 뿌리를 깊숙이 내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참... 나쁜 것은 아닌데, 돈이 있으면서도 낭만적인 사람들을 한국에서 찾기 힘든 이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앞서 언급한 두 개의 국가에서도 '낭만주의자'를 만나기란 쉽지 않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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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도 프랑스는 국가 고유의 맛을 잘 우려내고 있습니다. 극도의 긴장감과 갈등, 화려함으로 대변되는 주류 영화들과는 달리, 프랑스 영화는 배우의 매력으로 관객들을 조였다 푸는 맛이 있는 작품들이 많습니다. 시덥지 않은 내용을 가지고 시더운 일을 만들어버리는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에 사람들은 자석처럼 끌리는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는 것이죠. 이것들은 모두 프랑스에 대한 편견(또는 동경)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끼는 편견을 우리는 '보편'이라고 합니다. 에르메스는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프랑스의 보편을 대변하는 브랜드입니다. 지금은 잣대가 아니라 감상이 필요한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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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계의 이름은 르땅 쉬스빵뒤(Le temp suspendu). 영어로는 타임 서스펜디드(Time suspended)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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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멈춘다'는 컨셉의 이 시계는 시간을 멈춰야 할 때와 되돌려야 할 때를 아는 것에 대한 기계식 무브먼트의 해석입니다. 이 시계는 수 많은 시계들이 존재하는 의미(심지어 이 시계조차도)를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리는 파격적인 컨셉으로 <Montres Passion>지에서 2011년 '올해의 시계(Watch of the year)'에 선정된 바 있으며 같은 해 GPHG(Grand Prix de Horologerie Geneve)에서 '최고의 남성 시계상'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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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메스의 '타임 서스펜디드'가 최초의 시간 정지/복원 기능을 가진 기계식 시계는 아닙니다. 

사진은 토마스 프레셔의 '템푸스 비벤디' 에디션.


하지만 이렇게 시간을 멈췄다 되돌리는 기능의 시계가 에르메스가 최초는 아니었습니다. 공중에서 회전하는 투르비용과 레트로그레이드로 유명한 AHCI(독립시계 제작자) 토마스 프레셔의 <템푸스 비벤디(Tempus Vivendi, 시간과의 타협)> 시리즈는 시간을 멈췄다가 되돌리는 컨셉의 시계를 라인업으로 생산하며, 프랭크 뮐러는 <시크릿 아워스(Secret Hours, 베일의 시간)>이라는 시리즈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 두 시계 모두 에르메스의 그것보다 최소 5년 전에 발표된 시계입니다. 그러나 이 두 시계는 수상의 영예를 안지는 못했습니다. 셋 다 같은 기능을 구현하는데 어떤 시계는 두 개의 어워드에서 수상을 하고, 다른 두 시계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에르메스에는 어떤 비밀이 숨어있는 것일까요?


 정답은 60초 뒤에... 정답은 관점의 차이에 있습니다.


프랭크 뮐러와 토마스 프레셔의 두 시계는 '시간 정지 기능과 복원' 기능에 장식적 의미와 재미로서의 컨셉을 핵심에 두고 있습니다. 즉, 포괄적 의미로서의 현대 기계식 시계가 갖추고 있던 '아름다움'과 '흥미'로서의 컨셉을 답습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 두 가지 개념은 고급 기계식 시계 사용자들이 이미 충분히 타성에 젖어있던 감성입니다. 프랭크 뮐러의 시계는 재밌어야 해. 라는 기대감과 토마스 프레셔의 레트로그레이드는 정지했을때가 제일 멋있어. 라는 유저의 기대감을 충족시키는 결과물인 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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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타임 서스펜디드는 기계식 시계에 조금 다른 관점을 제시합니다. 기존 시계의 의미가 시간을 전달하는데 있는 것에 있었다면, 오늘날에는 '시간을 보지 않아야만 하는' 순간을 구현하는 시계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 이 시계의 존재 철학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이 시계를 두 개의 어워즈에서 쟁쟁한 브랜드들과 함께(2011년 Watch of the year는 바쉐론 콘스탄틴, 오데마 피게, 브레게, 로저 드뷔가 공동 수상했다) 이름을 올릴 수 있었던 이유였습니다.


올해는 여기서 한 번 더 생각을 뻗어나가, 소중한 시간을 되돌린다는 컨셉의 시계를 내놓았습니다. 이 모델의 데이트 인디케이터 대신 초침이 역회전 하는 모델로, 기능 구현과 인하우스 무브먼트가 만나 한층 더 높은 수준의 시계를 제작했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필자는 이 시계에 조금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제가 선호하는 초침이 없는 '침묵형' 시계일 뿐만 아니라 레트로그레이드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스네일 캠(Snail cam)으로 모든 기능을 구현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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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얼 전면의 프린팅 디테일 (무보정 리사이즈)



무브먼트에 대한 자세한 메커니즘에 앞서, 다이얼 프린팅 퀄리티는 훌륭합니다. 인덱스의 프린팅은 총 네개의 층에 걸쳐서 이루어져 있는데, 각 층마다 다른 질감의 다이얼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프린팅의 통일감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장 평평하고 포멀한 부분(상단 사진의 4, 5 인덱스)의 프린팅 퀄리티를 각각의 다이얼 레이어에서 얼마나 유사하게 구현해내냐 하는 것이 핵심인데, 먼저 시간 인덱스인 '3'자는 글자 상단부의 간격이 서로 붙을 듯 붙지 않았고, 획의 끝 부분이 4 인덱스 끝부분의 곡률과 유사함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데이트 부분의 경우, 경사진 다이얼에 프린팅을 해야 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도료가 닿는 시작점부터 끝부분까지 균일한 도포 상태가 가장 중요합니다. 또한 경사진 인덱스이기 때문에 윈도우의 위 아래 사이의 간격을 유지하는 것이 포인트입니다.(저가형 쿼츠 시계의 경우 평평한 부분의 간격마저 맞지 않는 경우가 흔하게 발견되곤 합니다.) 위 사진에서 보이는 1일과 31일 하단 여백이 조금 아쉽습니다만, 도료 도포 상태와 인덱스 시작점과 끝점 사이의 분포에 균형이 잘 잡혀 있고, 인덱스 내부에 기포가 생겨 구멍이 생긴 부분이 보이지 않으므로 다이얼 양쪽으로 균일한 힘이 분배되어 찍힌 다이얼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Le temps suspendu'의 프린팅이 가장 어려운 부분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표면이 오돌도돌 하기 때문에 다이얼을 누르는 강도가 지나칠 경우, 글자가 심하게 번지고 반대로 강도가 너무 약하게 될 경우, 필기체의 연음부(이어지는 부분 글자 'p' 참조)가 끝까지 찍히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이 부분 역시 도료가 튀거나 유실된 부분 없이 깔끔하게 인쇄가 됐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물론 하나의 프린팅 퀄리티가 좋다고 해서 다른 시계들의 프린팅 퀄리티를 이야기 할 순 없지만, 이 시계 만큼은 다이얼에서 결함을 찾는다는 행위가 결벽에 가깝다고 결론 지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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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즈의 디테일 (밝기와 사이즈만 조정)


 핸즈의 곡률과 굽기 역시 훌륭합니다. 블루핸즈의 경우 변색되는 표면의 면적이 크진 않기 때문에 색조가 달라지는 경우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 부분입니다만, 핸즈의 퀄리티를 논함에 있어 간과할 순 없는 부분입니다. 이 핸즈는 나뭇잎 모양을 하고 있기에 '리프 핸즈(Leaf hands)'라고 하는데, 핸즈를 따라 수직으로 뻗어나가는 흰 빛이 왜곡되지 않는 모습에서 핸즈의 완성도를 가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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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그의 이음새 역시 자연스럽습니다. 9시 방향의 버튼은 '시간 정지/복원' 버튼으로 칼럼휠 두 개와 연결되어 있어 가벼운 느낌으로 시계를 조작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보이는 상태에서 이 버튼을 누르게 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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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f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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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ter


이렇게 핸즈가 '춤을 추며' 사라집니다. 정지(suspend)버튼을 누르게 되면, 시간을 가르키는 핸즈는 지금과 같이 12를 마주보며 붙어있게 되고, 데이트 핸즈는 4시 방향 쪽으로 숨어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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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꼭 숨어라~


다시 시간을 복원하기 위하여 9시 방향에 있는 버튼을 누르게 되면, "찰칵"하는 소리와 함께 핸즈는 현재 시간을 가르키게 됩니다.


가령 [1일 10시 10분]에 시간을 '정지'했다가, 깜빡 잊고 5일 뒤인 5시 10분에 시간을 '복원'한다면, 시계는 "찰칵"하는 기분 좋은 소리와 함께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6일 5시 10분]을 표시합니다. 다만, 파워리저브가 40시간이므로, '정지'한 채 5일 동안 와인더나 손목 위에 올라가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하죠.


얼핏 생각해보면 이렇게 시간을 '기억'하는 매커니즘은 구현상 많은 캠과 캐링암(팔 같이 생긴 동력을 전달해주는 긴 부품)이 필요할 듯 하고, 항상 시간을 기록하는 부품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복원' 매커니즘이 쉽지 않은 것이, 만약 크로노그래프처럼 캐링암을 타고 '톱니로 맞물려' 시간이 정지/복원이 될 경우, 부품의 마모가 심각할 것이고, 이 부품이 맞물리기 전/후의 힘의 차이가 다르기 때문에 심각한 오차로 이어질 것입니다. 톱니 바퀴를 올리고 내려서 동력을 전달하는 일반적인 크로노그래프 매커니즘으로 이 방식을 구현한다면, 기분 좋게 시간을 정지했다가 멋지게 복원하는 타이밍에서.... 크라운을 빼서 시간을 다시 조정 하는 김빠지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죠. 사실 프랭크 뮐러나 토마스 프레셔 둘 중 하나는 크로노그라프 매커니즘을 사용했습니다. 누가 사용했는지 궁금하시다구요? 궁금하면 500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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쟝-마크 비더레이트


그러나 이 시계에서는 그런 부분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 시계는 레트로그레이딩 방식으로 앞서 말한 모든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게다가 이 부분에 대한 특허까지 가지고 있습니다. 이 무브먼트를 설계한 쟝-마크 비더레이트는 '아장호(Agenhor)'의 수장으로, 에르메스와 손잡고 무브먼트를 독자적으로 개발한 시계제작자입니다. 그가 이 시계의 등시성과 내구성을 지켜낸 마법의 비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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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은... 봉인되어 있습니다. 꽁꽁.



솔리드백으로 가려져 있습니다. 닫혀있는 솔리드백의 표면에는 에르메스의 문장이 디테일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케이스는 케이스백과 러그 사이에 단차가 없는 구조를 하고 있기 때문에 착용시 손목 위에서 시계가 흔들거리거나 걸리적거릴 일은 없습니다. 이러한 케이스 디자인은 승마와 같이 상하 진폭이 큰 운동을 할 경우 시계가 흔들리는 것을 막아주기 위한 디테일을 계승한 결과입니다. (올해 발표한 제품들은 인하우스 무브먼트 & 시스루백입니다)



무브먼트의 동작부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상단의 동영상에서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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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서스팬디드에 사용된 무브먼트의 모듈의 다이얼부 입니다. 컬럼휠 아래로 캐링암이 연결되어 있는 것이 보입니다. 많은 블루 스크류와 루비는 이 모듈이 움직임이 많은 캐링암과 휠을 다수 가지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구현에 대한 자세한 매커니즘이 궁금하신 분들께서는 [이곳]을 참조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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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 방향에 위치한 용두로는 시간을 조정할 수 있습니다. 용두는 총 2단으로 분리되며, 처음 1단에서는 데이트 인덱스를, 2단에서는 시침과 분침을 조작할 수 있습니다. 이 시계의 매커니즘상 시간을 조작할때, 분침 핸즈가 11시 방향을 지날 때, 360도 레트로그레이드를 하는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는데, 이것은 고장이나 이상이 아니라 모듈의 구현상의 부분으로 사전에 충분한 인식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물론 이러한 매커니즘을 이해하고 있지 않더라도 조작을 하고 시간을 조정하는 것은 문제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컴플리케이션을 전문으로 설계하는 비더레이트의 무브먼트와 정갈하고 깔끔한 다이얼이 함께 이루어내는 조화는 이 시계를 처음 경험하는 유저들에게 '분자요리'를 시식하는 것 만큼의 신선한 충격을 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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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핸즈와 파란 나비(Bleu Papillon)


핸즈의 조작감은 기존의 다른 시계를 만지는 것에 비할 수 없을만큼 가볍습니다. 시간 조작 중 다이얼 위를 뛰어노는 시침과 분침의 조화는 마치 두 마리 나비가 날아와 한 마리는 다이얼 위에서, 다른 한마리는 가슴 속에서 날아다니는 것 같은 환상을 일으킬 정도입니다. 이러한 가벼운 조작감은 핸즈가 휠을 통해 맞물려 조정되는 것이 아니라, 스네일 캠을 통해 조정하는 방식을 채택하였기 때문입니다. 민첩하고, 역동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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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그는 상단이 하단보다 긴 구조를 하고 있으며 율동성 있는 곡선이 끊어짐 없이 이어져 있습니다. 러그를 사이로 끼워진 가죽은 악어가죽이며, 에르메스는 이 스트랩을 수공으로 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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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클은 디플로이언트 버클로, 스트랩의 연결부는 상단과 같이 갈고리 모양으로 구부러져 있기 때문에 가죽의 휘어짐과 손상을 최소한으로 할 수 있습니다. 가죽과 디자인에 조예가 깊은 브랜드임이 여실히 드러나는 디테일입니다. 금속과 가죽 사이의 손상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 본 브랜드라는 인상을 받기에 충분한 요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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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단 디플로이언트 버클이지만 양쪽에 있는 푸시 버튼을 눌러 오픈하는 버터플라이 형태로, 시계의 착용과 분리가 수월합니다. 특징이 있다면 다른 브랜드의 버클과 달리 스트랩-버클 사이의 연결부(왼쪽 스트랩 끝부분)를 가죽이 고정하고 있다는 점인데, 이런 형태를 취함으로서 손목에서 버클이 차지하는 면적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유저에게 조금 더 편한 착용감을 선사합니다. 이 부분 역시 에르메스만의 노하우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손목이 얇은 저로서는 디플로이언트 버클은 고문과도 같은 형태인데, 이 시계에서만큼은 움직임이나 러그 사이가 뜨는 일이 없이 손목에 감기는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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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메스 프랑스 아뜰리에 © LUCIE & SIMON, Hermès


가끔 시계 애호가 선배님들과 고견을 나눌때면, 약속이나 한 듯 내려지는 결론이 몇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시계 브랜드의 전통은 해석하기 나름이라는 것과(몇몇을 제외하고), 아무리 따지고 들어도 결국엔 자기가 좋아하는 시계를 산다는 것이죠. 그리고 예상 밖의 시계를 선호하는 여러 고수(?)님들의 취향에 혀를 내두를때도 제법 있습니다. 여러분, 알라롱님의 다음 시계가 궁금하시지 않으십니까? 결국 인간은 감성과 이성이 엎치락 뒤치락하며 호불호를 결정하며 산다는 스토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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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선택은 대단히 정교한 과정의 집결체인 반면, 이성이라는 관념에 대해서는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춤을 추듯' 선택을 할 수도 있고, 책상 위에 앉아 골머리를 싸매다가 선택을 하기도 하는 알 수 없는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기준이 다 다르죠. 어쩌면 프랑스는 다른 사람들보다 춤을 추는 빈도가 높은 민족이라고 비유할 수 있겠군요.


합리적 이성은 없습니다. 그냥 사는 거죠. 어떤 사람이 이 시계가 "비더레이트옹의 손길을 느낄 수 있는 가장 저렴한 엔트리 컴플리케이션이야."라는 표현을 한다면, 그 사람이 이 시계를 알아보는 것 입니다. 동양의 고전 사마천에도 '사위기지자사(士爲知己者死 女爲說己者容,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목적어가 이성에서 문장으로 바뀌었을 뿐. 말하고자 하는 바는 같습니다. 같이 춤을 추자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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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글을 읽어주신 분이시라면, 댄스에는 어느 정도 감각이 있는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남은 문제는 같이 춤을 출 파트너가 내 마음에 드냐는 것이겠지요. 그렇지만 여러분, 파트너를 고르기 앞서 "ETA가 어떻고, 자사무브가..."하면서 파트너의 발을 꾸욱 밟는 실수는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브랜드가 먼저 "저희 브랜드의 정통성..." 하면서 선수를 치고 나오는 것도 적잖이 당황스럽겠군요.(웃음) 


잘 만든 시계입니다. 기존에 없던 무브먼트 감성은 이 시계가 특별하다는 것을 손끝으로 말해 줍니다. 얌전하게 생긴 다이얼과는 달리,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핸즈를 보다보면, 괜시리 심장 박동이 빨라집니다. 반전이 이 시계의 매력입니다. 역사 이야기를 하자면, 에르메스 시계 역사로 한 바닥을 쓸 수 있습니다. 게다가 워치메이킹의 뿌리 이야기에서 프랑스가 빠지면 말도 안되죠. 그런데도 이렇게 춤, 나비, 비더레이트 이야기만 하는 이유는 이 시계가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이 시계는 '누구 브랜드냐'와 '누가 했냐'라는 시계 선택의 두 가지 면에서 둘 다 밀리지 않는 한 마리 나비입니다.


* 사진 Picus_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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