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퍼스로의 여행, 세번째
오퍼스 시리즈를 캐기 시작하면서 독립 시계 제작자라는 집단에 대해서도 조금씩 지식이 늘어갑니다. 아직 몇개 파지도 않았습니다만.. 보면 볼수록 시계와 제작자는 뗄래야 뗄수없는 불가분의 관계라는 생각이 들어요. 자식이 부모의 유전자를 타고나듯이 시계라는 작품도 결국엔 제작자의 DNA가 아로새겨질수밖에 없는거라는 숙명론이랄까요. 그런면에서 외모가 샤방하면 시계도 왠지 그럴거라는 편견아닌 편견이 슬슬 자라나고 있습니다. 오퍼스 세번째 이야기는 제작자의 외모와 시계에 대한 상관 관계의 탐구로 시작해 봅니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F4는 꽃미남의 대명사로 쓰이는 단어가 되었습니다. 시계판에도 F4가 있다면 누구를 꼽으시고 싶으신가요?? 제멋대로 꼽아본 F4는 아래와 같습니다.
[사람좋은 웃음이 잘 어울리는 브레게의 계승자 프랑소와 폴 주른, 1957년생]
[포스만은 영화배우 뺨치는 앙뜨완 프레지우소, 왠지 사탕발림(!)에 능할것 같아 좋은 소리 못듣는 나쁜 남자 컨셉 담당. 1957년생]
[해리 윈스턴이 선택한 남자, 시대의 총아. 퓨전시대의 기린아. 막시밀리안 뷔세(움라우트가 있으니 뷔세가 맞을것 같습니다.) 1967년생으로 추정]
[쿨한 미소가 이지적인 남자, 신세대의 아이콘 펠릭스 바움가트너 : 1974년생으로 추정, 추정이라고 써놓은 나이는 인터뷰에서 공개된 나이에서 역산한 것입니다. 자료 정리하다 보니 오퍼스3가 아니라 독립 시계 제작자 열전이 될 것 같아서 틀리면 나중에 고칠 요량으로 스킵~!! 머.. 나란 남자 가벼운 남자.. -_-;; ]
요정도가 아닐까 싶네요. 각자가 만든 시계를 떠올려보면 왠지 인물과 시계가 그럴듯하게 매칭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혼자서 해봅니다. 그런데.. 여기서 비에니 할터(혹은 바이에니 할터)가 출동한다면 어떨까요??
[이 사진을 보면 마치 데이빗 보위를 연상시킵니다. 시계가 아니라 기타를 들어야할 것 같은 이미지.. ]
[하지만 역시 그의 진면목은 이 사진이 아닐까 싶네요. 미치광이 과학자 같은 필이 마구 뿜어져 나오는 모습. 1963년생]
서두에 제작자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 이유는 바로 오퍼스 3가 시리즈 사상 가장 독특한(사실은 좀 웃기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고 그 이야기가 제작자와도 상관이 있으며 거기에 대해 매우 자세하게 정리된 자료가 있기 때문입니다.(핵심적인 자료 두개가 타임포럼에 올라와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이제부터 슬슬 풀어 봅니다.
오퍼스는 매년 바젤페어에서 발표되는 해리 윈스턴의 프로젝트. 오퍼스3는 2003년에 공개되었습니다. 데뷔부터 충격적인 비쥬얼과 기능으로 보는 사람을 압도했지요. 기존의 시계에 대한 고정관념을 모두 전복시키고 과연 이것이 가능한가?? 라는 의문에서부터 비에니 할터는 역시 천재다~!! 라는 환호까지 다양한 반응의 스펙트럼을 이끌어낸 시계였습니다. 도대체 어쨌길래??
가히 점핑 와치의 끝판왕이라 할만한 이 시계는 시간과 분을 디지털 디스플레이로 나타내고 날짜또한 그러합니다. 헬멧을 눌러쓴 외계 생명체 같기도 하고.. 미스테리한 고대 유물에서 언뜻 본것 같기도 한 외양은 오퍼스 시리즈가 지향하는 혁신과 도전의 끄트머리까지 날아가고 만 느낌입니다. 처음 보면 어떻게 읽어야할지 알수도 없는 이 시계가 나타내는 바는 14일 오후 8시 37분이군요.
무려 53개의 보석이 박힌 무브먼트 또한 이렇게 복잡한 시계에 이렇게 아름다운 무브가?? 라고 할만큼 (까지는 아닌듯도 하지만..-_-) 아름답습니다. 동력을 공급하기 위한 배럴이 두개 들어가 있고 그 복잡함이 엄청난 구동 메커니즘에도 불구하고 보이는 무브는 상당히 단정해 보이는군요. 뭐, 숫자가 재깍 재깍 넘어가는게 뭐 그리 힘든가?? 라고 하신다면.. 그럴수도 있는 문제입니다만.. 그게 사실은 그렇지가 않거든요. 아날로그로 표시되는 것이 당연한 시계 매커니즘에서 디지털로 시간을 표시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런 디스크를 돌리는 동력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큰 일이지요. 여기에 대해서는 와치메이커의 굴욕이라는 명문을 통해 fert32님이 주옥같이 정리하신 바가 있습니다. 타임포럼에서도 명문에게만 주어지는 타포클래식에 빛나는 글인데.. 사실 여기에 오퍼스3에 대한 흥미진진하면서도 기술적인 세부사항이 모두 망라되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거기에 비하면 저의 이글은 일종의 사족이자 주석서인 셈이죠. ^^
결과적으로 오퍼스3는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바젤페어에서야 프로토 타입이니 그럴수도 있다고 했고.. 일년이면 해결되겠지 하던 대기 예약자들은 해가 갈수록 내년에는 꼭, 내년에는 반드시.. 내후년에는 어쩌면.. 하는 희망고문을 당하게 됩니다. 그 상황이 무려 2011년까지 이어지는 것이죠. 아이폰 출시가 내년이다, 내달이다, 내일 모레다.. 했던 건 아주 양반입니다. 오퍼스3를 기대하고 고대하던 예약자들은 죽기전에 보게 된다면 다행이겠다는 생각까지 들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찍어 봅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끝이 있는 법이고 대기 예약자들은 2011년에 드디어 고대하던 오퍼스3를 손에 쥐게 됩니다.
그 자세한 내용은 이 링크에 있는데요. (https://www.timeforum.co.kr/index.php?mid=TFClassic&document_srl=2961531&parent_srl=2961531 위대한 와치 메이커의 굴욕 : 점핑와치, 왜 어려운가?? ) 이 글은 세번 이상은 읽으셔야 합니다. 읽을때마다 재미있습니다. 어찌됐거나 비에니 할터는 프로젝트에서 손을 떼고 원래의 모습과도 다소 다른 오퍼스3가 슬그머니 대기 예약자에게 인도됩니다. 해리 윈스턴 홈피에는 오퍼스3가 55개 생산되었다고 나와 있습니다만.. 실제로 전달된것은 일반 버전이 25개, 다이아가 박힌 스페셜 버전이 5개로 상이합니다.
구조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역시 저 링크에 있습니다만 르노 파피 공방의 프레드릭 가히노( Frederic Garinaud) 가 이대로는 안되겠다 뜯어고치자..라고 전면 개보수를 한것으로 보입니다. 천재라고 추앙받던 비에니 할터에게는 가장 가슴아픈 장면이 아닐까 싶네요.
새롭게 제작된 오퍼스3는 시간을 가로가 아니라 세로로 읽게 되어있습니다. 카운트 다운은 맨 왼쪽 위에 나타나고.. 날짜는 예전과 동일하게 가운데의 빨간 글씨를 읽습니다. 지금은 25일 새벽 1시 18분이군요.
무브먼트도 애초의 모양과는 다르게 못생기게 깔끔하게 바뀌었네요. 접사가 없어서 뭐라 말하기 힘들지만 첫인상에는 뭔가 만들다 만듯한 어설픈 느낌입니다. 저걸 좋다고 받아들었을 대기 예약자들의 모습을 상상하면.. 역사는 역사이되 흑역사에 당첨된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스멀스멀 밀려온다고 할까요. 뭐 돈이 지천으로 많은 사람들일테니 동정은 3초만 하고 맙니다.
다이아 버전은 간지가 좀 짱입니다만.. 같은 값이면 저런 다이아 팔찌를 너댓개는 더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뭐 개인의 취향이요 선택입니다만..
지금까지 쭈욱 늘어놓은 이야기들이 오퍼스 3에 대한 비판 일색처럼 보이기는 합니다만 사실 이 시리즈는 앞으로 시간이 지나도 오퍼스 시리즈의 전설로 남을 가능성이 큽니다. 편안하게 호텔에서 호텔로만 다닌 여행에는 이야깃 거리가 없지요. 모름지기 여행이란 안타깝고 황당하고 어이없고 그와중에 골때리게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어야 시간이 지날수록 아름답고 좋은 추억으로 남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오퍼스3는 이미 전설이라고 불러도 되겠지요.
이런 괴짜같은 시계를 구상하고 실제로 만들 생각을 한 비에니 할터에 대해서도 좀 알아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프랑스에서 태어나 철도 기관사였던 아버지를 둔 어린 비에니 할터는 시계 장인의 길에 들어서기 전부터 아버지가 집에 가져오는 기차의 부속에 매료되었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기계덕후가 된 것이죠. 그리고 가장 섬세한 시계라는 장르의 자신의 변태적인 독특한 취향을 심어 넣습니다.
그의 대표작중에 하나라고 할만한 Antiqua. 비대칭의 케이스에 마치 증기 기관차에 달려있을법한 게이지들이 각각 시간과 요일, 날짜와 윤년까지 나타내는 독특한 작품입니다.
마치 파스타 뽑는 기계를 연상시키는 까베스탕은 태엽을 감고 시간을 보고 부속품의 움직임을 보는 과정까지 하나 하나가 참 아날로그이면서도 디지털이기도 한 묘한 느낌을 줍니다.
클래식이라는 작품은 또 어떻습니까? 리벳을 사용한 케이스는 증기 기관차의 몸체와 거기에 딸린 창문을 떠올리게 하고 용두에 박아넣은 구슬은 해바라기 남성성의 상징임과 동시에 변태 독특한 취향을 강변합니다. 기계와 남성의 결합이랄까요?? 이것은 이웃나라 일본에서도 각광받을만한 퓨전 괴수물의 아이디어 같기도 하군요.
골드파일이라는 작품에서야 비로소 정상적인 시계를 만들기도 했구나 싶지만 이것도 그리 녹녹한 시계는 아닙니다. 점핑와치에 분과 초, 우상단의 인디케이터 분할은 모던하면서도 아방가르드한 감성을 보여주네요. 가장 클래식한 감성으로 가장 혁신적인 시계를 만드는 장인이라는 평가는 결코 짤짤이로 딴게 아닌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미스테리 로터라고 불러야할 이 무브먼트를 대충 보면 수동이라고 할만한 이 시계는 놀랍게도 오토매틱 와인딩입니다. 이렇게 자세하게 설명해놓으면 에이.. 별것도 아니잖아 싶습니다만 이런 아이디어 하나를 무시할 것이 아니죠. ㅎㄷㄷ한 시계 장인입니다. 닥치고 찬양해야할 레벨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그가 오퍼스3를 만든다고 했을때 기대도 컸을 것이고 희망고문을 당하면서 그의 작품을 기다린 사람들이 존재했던 것이겠지요.
아버지가 기관사여서인지.. 비에니 할터의 정서는 스팀펑크의 세계와 닿아 있습니다. 스팀 펑크가 뭐냐 하면...
[스팀펑크(Steampunk)는 과학소설의 한 갈래이다. 1980년대부터 유행하기 시작했으며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과 유럽을 배경으로 하거나 증기기관에 의한 산업혁명시기를 다룬 것이 많다. 기존 과학소설의 건설적인 해체를 지향하던 사이버펑크 소설의 방향성을 시간축에 적용한 일종의 대체역사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다. 스팀펑크라는 용어를 처음 쓴 사람은 미국의 과학소설 작가인 K. W. 지터이다. 지터는 당시의 과학소설계를 휩쓴 사이버펑크 운동에 빗대어 "컴퓨터 대신 증기기관이 등장하는 우리 소설은 스팀펑크라고 불러야 한다"라는 농담을 했다. 현재 이 장르를 대표하는 소설가로는 지터의 동료 작가인 팀 파워즈와 제임스 P. 블레이록이 있다.]
이런 겁니다. (위키피디아 펌)
하울의 움직이는 성도 스팀펑크 정서와 밀접하구요.
요런 코스프레..
요런 시계..(증기로 가는걸까요?? 증기로 움직이면 대박~~!! 이겠지만 그럴리가요.. ㅎㅎ 뜨거워서 손목이 익을텐데..)
요렇게 착용해주는 센스등등이 스팀 펑크 필이라고 하겠습니다. 어쩐지 비에니 할터님의 정서나 이미지와 비슷하다 싶지 않으신가요?? 이래서 청소년기의 교육과 성장환경이 참 중요하다 싶은 또 하나의 교훈을 얻습니다. 비에니 할터를 또라이 괴짜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많고 타임포럼의 인터뷰에서도 그런 느낌이 강하게 전해집니다.
2008년 바젤에서 이뤄진 인터뷰에서 그는 부품 하나하나의 품질과 거기에 들어간 노력에 대해 강조하는데요. 이런 장인 정신은 일면 대충 대충 엉뚱하게 만든것 처럼 보이는 그의 시계들에 사실은 앤틱 워치 메이커들의 숨결이 숨어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태도는 다른 모든 이들에게서도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특성이기도 합니다. 소재와 기술은 새롭게 개발될 지언정 모든 시계 기술은 루이 아브라함 브레게로부터 시작해서 그에게서 끝났다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요. 거기에 대한 경외감과 거기에서 출발하지만 전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겠다는 열정이 우리 시대의 흐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비에니 할터는 그 흐름에 몹시도 앞서있었고 현재도 한가운데 있는 시계 장인중에 한명이겠지요. 괴짜라는 그의 이미지는 어쩌면 신중하게 연출된 영리한 계산일것도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괴짜 천재 장인의 이미지가 강한 비에니 할터이지만 사실은 의외로 평범하고 상식적인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한 사진입니다. 옆에서 쳐다보고 있는 아가씨는 그의 딸인 빅토리아양, 아빠의 뒤를 이어 시계 장인의 길을 걷고 있다고 합니다. 아마도 아빠를 넘어서는 장인이 되겠다고 큰소리치기엔 너무 힘든 가정환경에서 태어나고 만 것이 그녀의 불행일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있는 법이지요. ]
스팀펑크의 세계는 비에니 할터의 작품으로 즐길 수도 있지만 카시오에서 출시한 스팀펑크 모델로 즐길 수도 있습니다. 모델명 조차 스팀펑크인 이 시계는 보기만 해도 뭔가 복고적인 것과 미래적인 것이 만나있는 것 처럼 보이는군요. 게다가 풀 디지털에 퍼페츄얼 캘린더, 내진과 방수성능도 짱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역시 보기만해도 어질어질, 저걸 어떻게 차고 다니냐 싶은 해리윈스턴의 복잡시계에 끌리고..
그것이 찬사이던 혹평이던간에.. 역사의 일부가 되어버린 오퍼스3에 끌리게 됩니다. 아마도 비에니 할터가 말했듯이 하나 하나 부품에 들어간 공과 숨결과 작품에 담긴 DNA에 우리의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혼이 공명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이건 역시 대량 생산되는 공산품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아름다움일테니까요. 오퍼스3는 시간이 갈수록 더 아름다워지는 말많고 탈많은 여행의 추억처럼 앞으로도 시계 매니아들에게 많은 이야깃거리와 추측과 제작자가 심어놓은 DNA의 진수를 전해줄 여러모로 멋진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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