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LC의 대표적인 컬렉션인 리베르소는 시계 업계에서는 아직 '젊은' 라인입니다.
1931년에 처음 등장한 시계를 두고 뭔 헛소리냐고 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근본은 있으나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연속성이 없으니 하는 소리입니다.
리베르소는 1931년 인상깊은 첫번째 등장 이후 아르데코 양식의 내리막길과 세계대전의 혼란, 스포츠 트랜드의 변화로 잊혀졌던 시계였고,
사실상 현재 JLC의 리베르소는 1991년 리베르소 60주년을 기해 리부트 된 30년이 갓 넘은 라인입니다.
그래서 그런가 리베르소는 아직도 변화하고 있습니다.
크게 보자면 1991년 최초 리부트 이후 2001년, 2011년 10년마다 큰 변화가 있었고, 대표적인 변화는 싸이즈 변화입니다.
최초의 리베르소는 당시 다른시계들이 의례 그렇듯 가로 38mm, 세로 24mm의 지금으로서는 상당히 '작은' 시계였고,
1991년 Reverso 60eme로 다시 태어났을때는 42.25mm X 26mm로 케이스 크기가 커졌습니다.
이 케이스는 '큰 싸이즈' 라는 뜻의 'Grande Taille(GT)' 라고 불리웠죠.
하지만 오리지날 싸이즈에 비해 커졌다는 뜻이지 지금 느낌으로는 여전히 크지는 않은, 작은편에 속하는 싸이즈 였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웠던 이 리베르소의 르네상스가 지나고 2001년, 리베르소의 싸이즈는 다시 변화합니다.
2001년 Reverso 70eme를 시작으로 케이스 싸이즈는 46.5mm X 29mm로 커졌습니다.
이 케이스를 '졸라 큰 싸이즈' 라는 뜻의 'Extra Grande Taille(XGT)' 라고 부르며, 이때부터 시작된 Grande Reverso 들은 48.5mm X 30mm의 케이스, Grande Reverso Ultra Thin은 46.8mm X 26.4mm의 크기를 가지게 됩니다.
2011년에는 여러분들에게 익숙할 'Tribute' 시리즈의 시초 Tribute to 1931 이 등장하였으나 1931의 정식 명칭인 'Grande Reverso Ultra Thin Tribute to 1931' 이 의미하듯 케이스의 크기는 사실상 XGT 케이스의 연장선인 46mm X 27.5mm의 싸이즈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2024년 현재 JLC의 리베르소 컬렉션은 클래식 시리즈로 다양한 싸이즈를 제공하고 있지만 그 주축이 되는 'Tribute' 시리즈들은 Tribute Monoface Small Seconds의 45.6mm X 27.4mm 부터 가장 큰 Tribute Chronograph의 49.4mm X 29.9mm 까지 XGT 케이스 크기를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Tribute Monoface가 40.1mm X 24.4mm의 새로운 케이스 싸이즈로 런칭 되었지만 리베르소의 '황금 싸이즈'로 선호되는 GT 케이스보다 작게 나와서 안타까움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여담이지만 이런 마치 정답을 일부러 피해가는 듯한 싸이즈 행보가 블랑팡의 피프티 패덤즈에서도 보여지는게 재미있습니다.
역시 근본중의 근본 시작점을 가지고 있으나 리베르소처럼 1997년 리부트된 아직 숙성되지 못한 '젊은' 라인인 피프티 패덤즈도 45mm 라인에 이어 38mm 바티스카프로 싸이즈가 갈팡질팡 하다가 새로운 라인이 42mm라는...정답지인 40mm를 애써 피해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죠 ㅋㅋㅋ(제 블랑팡-JLC 평행이론이 점점 힘을 받고 있습니다 ㅎㅎ)
암튼 저의 개인적인 리베르소 취향으로는...
GT 케이스는 원형시계 36mm 정도의 느낌이라 살짝 좀 작은 느낌이 들고...46mm 전후의 XGT 케이스가 원형시계 40~41mm 정도 느낌이라 제일 선호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결국, 저는 최초의 XGT 케이스인 리베르소 70eme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구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입니다...ㅠㅜ
리베르소 70eme, 정식으로는 Reverso Septantieme(쎕땅띠엠므?)로 불리우는 이 리베르소의 이정표(milestone) 같은 시계는 JLC에서 많은 '최초' 타이틀을 가지고 있습니다.
최초의 XGT 케이스,
최초의 8 days 롱파워리접 손목시계,
최초의 Big Date,
최초의 스완넥 레귤레이터Swan-neck Regulator를 사용한 리베르소
최초의 18K 골드 무브먼트(리베르소 60eme도 골드 무브먼트지만 60eme는 14K 골드였습니다 크하하~)...
여러모로 리베르소 70eme는 리베르소 뿐 아니라 JLC 전 역사를 통털어서 상당히 의미있는 타임피스 입니다.
다이얼도 격조있는 길로쉐 다이얼에 블루 핸즈로 클래식한 면모를 보이고 있지만 스몰 컴플리케이션 배치 또한 기가 막힙니다.
파워리저브, 데이앤나잇 인디케이터, 빅데이트의 실용적인 컴플리케이션 들이
4~5시 방향의 스몰세컨즈와 함께 네모난 다이얼 네 귀퉁이에 배치되어 자칫 난잡해 보일 수 있는 다이얼에 완벽한 균형을 잡아줍니다.
70eme의 유일한 단점은 두께입니다.
12mm의 두께를 가지고 있죠
흔히들 리베르소는 손목을 가린다고 하는데 그건 리베르소의 두께탓이 큽니다.
리베르소의 러그는 상당히 짦기 때문에 리베르소는 세로길이가 곧 러그 투 러그 길이와 유사합니다.
제 손목이 보통 러그 투 러그 50mm 까지는 소화하기 때문에 전 세로 길이 48.5mm의 리베르소 에나멜도 곧잘 차고다니는 편입니다.
그 이유는 리베르소 에나멜의 두께가 10mm대이기 때문입니다.
네모난 시계 특성상 체감 두께가 원형시계보다 크게 느껴지고 리베르소는 두께가 두꺼우면 마치 손목에 나무토막을 올려논 것 같은 느낌이 들게 됩니다.
12mm 대의 두께라면 사용자에 따라 불편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70eme의 무브먼트인 Cal.879는 그런 두께에 의한 불편감을 상쇄시킬 수 있는 충분한 이유를 제공합니다.
사실 8일 롱파워리저브와 빅데이트, 데이앤나잇 인디케이터의 컴플리케이션을 가지고 12mm의 두께이다? 거기에 리베르소의 2중 케이스로 12mm다?
이건 충분히 찬양할 만한 일입니다~ ^^
더불어 Cal.879는 GT 케이스에서 XGT 케이스로 케이스 싸이즈가 커질수밖에 없었던 당위성을 제공합니다.
22.6mm X 17.2mm의 작은 싸이즈를 가진 Cal.822이 GT 케이스에 최적화 되어 나온 무브먼트라면,
8일 롱파워리저브로 인해 더 커지고 더 두꺼워진 Cal.879에는 XGT 케이스가 가장 걸맞는 케이스 이니까요.
요컨데 무브먼트에 맞춰 케이스를 만들던 그때 그시절의 하이앤드 스웩을 보여주는게 70eme 입니다.
Cal.879는 2000년대 유행하던 롱파워리접 컨셉으로 나온 무브먼트 이지만 단순히 유행을 따라 제조된 무브먼트가 아닌 JLC 답게 근본있는 무브먼트 입니다.
JLC는 LeCoultre & Cie 시절 이미 손목시계용으로 8일 롱파워리접 무브먼트를, 그것도 사각에 듀얼배럴로 만들었던 역사가 이미 있었기 때문입니다.
1931년 JLC는 손목시계용 사각, 듀얼배럴 8일 롱파워리접 무브먼트 Cal.124를 개발해서 파텍 필립에 납품했었습니다.
당시 JLC는 Jaeger와 합병하기 전, 완성품 시계를 만들지 않는 무브먼트 제조사 LeCoultre & Cie 였기 때문에 이 무브먼트를 가지고 8일 롱파워리저브 손목시계를 만든건 파텍 필립이었습니다.
이걸 복각한 Gondolo 8 days도 가지고 있는 저는 도대체 어떤 인간일까요? ㅋㅋ
암튼 이 8일 롱파워리저브에 빅데이트, 파워리저브, 데이앤나잇 인디케이터가 있는 완전체 Cal.879는 오직 리베르소 70eme에만 사용되었지만,
879의 다양한 기능들이 가감되어 2000년대 Grande Reverso 들의 메인 무브먼트가 되었습니다.
Cal. 873(문페이즈), 874(파워리저브), 875(그랑데이트), 878(듀오페이스) 등 당시 Reverso 라인을 구성하는 주요 무브먼트 였으며,
Cal.879의 원형 무브먼트 버전인 Cal.877로 Master 8 days 라인을 운영하기도 하였습니다.
어디 그뿐일까요? 아직 리슈몽의 그룹 통합 무브먼트 제조사 발플러리에가 제구실을 하지 못하던 그때 그시절, 그룹의 모지리 자매 브랜드들을 위해 귀하디 귀한 8일 롱파워리저브 무브먼트를 아낌없이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그야말로 Cal.879는 2000년대 JLC의, 더 나아가 리슈몽 그룹의 빵과 버터였던 것이죠
지금은 Cal.879가 단종되어, 마치 팥 없는 찐빵처럼 Cal.879라는 앙꼬는 빠진체 커져버린 XGT 케이스만 무의미하게 남아있는 리베르소 라인을 보고 있자면...
'시계는 옛날 시계가 좋았다...' 라는 선배 덕후들의 격언이 새삼 뼈아픕니다.
Cal. 879는 사실 그리 사용하기 쉬운 무브먼트는 아닙니다.
JLC라는 브랜드의 후광과 근본있는 역사, 지금은 단종되어 현행으로 구할 수 없는 exclusive한 면을 빼고 들여다보면,
핵기능이 없고 시간 조정시 분침이 앞으로 튀는 단점이 있습니다.
사실 저는 핵기능이 없는 시계를 제법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핵기능의 부재가 딱히 단점으로 다가오지 않지만...
Cal. 879는 롱파워리저브로 인한 메인스프링의 강한 토크로 인해 용두를 거꾸로 돌렸을 때 초침을 멈추기가 쉽지 않습니다.
https://www.timeforum.co.kr/index.php?mid=brand_HighendIndependent&search_target=nick_name&search_keyword=mdoc&document_srl=20124219
(핵기능 없는 시계로 시간을 맞추는 방법은 링크의 알뜰신시<6>을 참고해 주세요~)
이런 단점은 사실 무브먼트의 설계 잘못이라기 보다는 무브먼트의 특성으로 이해하셔야 합니다.
https://www.timeforum.co.kr/index.php?mid=brand_HighendIndependent&search_target=nick_name&search_keyword=mdoc&page=2&document_srl=18607521
(기어 & 기어스 참고)
초침을 멈추는건 용두를 2-3바퀴만 돌려서 메인스프링의 토크가 약할때 하면 되고, 시간조정시 분침이 튀는 문제도 풀와인딩 전에 살짝만 와인딩 한 상태에서는 분침이 잘 튀지 않습니다.
실수로 풀와인딩을 했다면 시간조정 후 뽑은 용두를 한번에 누르지 않고 날짜조정하는 1단까지 살짝 누르고 다시 와인딩 포지션까지 2번에 걸쳐 누르면 분침이 잘 튀지 않습니다.
이런 까다로운 녀석이지만, 역시 얼굴이 이쁘면 용서가 되지요...
최초이자 완전체 Cal.879는 브릿지의 분할도 독특하고, JLC 답지 않게(응?) 앵글라쥐도 잘 해놔서 보는맛이 있습니다.
예쁜 스완넥도 달려 있고...
아...저 우측 배럴 부분이 포인트인데 배럴 뚜껑이 JLC 마크(JL) 모양으로 스켈레톤 가공이 되어있어요...사진찍을때 돌아가서 안보이는데...
저...저 빨간 원 부분의 JL 마크 보이시나요? ㅎㅎ
리베르소 답게 무브먼트가 보이게 거꾸로 뒤집어서 차기도 쉽고요...
(아...저는 왠지 좀 창피해서 뒤집어 찬 적은 없습니다. 껌스님이 증언해 주실거예요...ㅎㅎ)
쥬른에게 누군가 왜 무브먼트를 18K로 만드는가 물어봤을 때 쥬른의 대답은 '그냥 최대한 고급스럽게 만들기 위해...' 였습니다.
럭셔리한 Cal. 879의 18K 골드 무브먼트 증명사진으로 오늘의 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그나저나...
이렇게 2개면 이제 리베르소는 졸업해도 되나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