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올해는 그랜드 세이코(Grand Seiko)의 탄생 6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를 기념하는 다양한 리미티드 에디션이 이미 출시되었고, 코로나19 대유행(팬데믹) 이슈만 아니었다면 연초 성대한 60주년 기념 행사도 열렸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올해 그랜드 세이코 관련해서는 유독 화제거리가 많은데요. 일련의 신제품들뿐만 아니라, 얼마 전 개관한 그랜드 세이코 스튜디오 시즈쿠이시(Grand Seiko Studio Shizukuishi)도 리스트에 추가됩니다. 그리고 여기 또 하나의 흥미로운 소식이 있습니다. 어제(9월 3일)자로 기습적으로 공개한 T0 콘스탄트 포스 투르비용(T0 Constant-force Tourbillon)이 그 주인공입니다.
- T0 콘스탄트 포스 투르비용
T0(T제로) 콘스탄트 포스 투르비용은 아직 출시로 이어진 완제품은 아닙니다. 일종의 컨셉 피스로 무브먼트 프로토타입과 테크니컬 자료 일부만 공개된 상태입니다. 집요하리만치 철저함을 추구하는 그랜드 세이코가 이렇듯 무브먼트 먼저 공개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경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브랜드 60주년을 맞아 서둘러 자랑하고 싶을 만큼 특별한 타임피스임을 짐작할 수 있는데요. 베일을 벗은 T0 콘스탄트 포스 투르비용은 그랜드 세이코(나아가 세이코 브랜드 전체를 통틀어) 최초로 선보이는 콘스탄트 포스 메커니즘과 투르비용을 결합한 하이 컴플리케이션 모델입니다.
세이코는 앞서 2016년 하이엔드 라인인 크레도르(Credor)를 통해 후가쿠 투르비용(Fugaku Tourbillon)으로 명명한 브랜드 최초의 투르비용 모델을 출시한 바 있습니다. T0 콘스탄트 포스 투르비용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아브라함-루이 브레게(Abraham-Louis Breguet)가 중력이 야기하는 오차를 상쇄하기 위해 발명하고 1801년 특허를 획득한 오리지널 투르비용 메커니즘을 재해석하면서 전통적인 크로노미터에서 유래한 배럴에서 기어트레인으로 항구적으로 동력을 전달해 등시성을 유지하는 콘스탄트 포스 메커니즘을 결합했습니다. 콘스탄트 포스 메커니즘하면 가장 흔히(?) 접할 수 있는 퓨제-앤-체인(Fusée-and-chains) 방식이 아닌, 코일화된 스프링(혹은 블레이드)으로 이뤄진 특수한 부품을 추가해 비교적 컴팩트한 구성으로 콘스탄트 포스 메커니즘을 가능케 하는 일명 레몽투아 데갈리테(Remontoire d’égalité)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F.P. 주른, 랑에 운트 죄네, 안드레아 스트레흘러, 그뢴펠트 등 최근 여러 하이엔드 제조사들이 취하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T0 콘스탄트 포스 투르비용은 우선 더블 배럴 설계를 통해 메인스프링으로부터 발생하는 토크의 안정적인 공급과 배분, 그리고 전달에 포커스를 맞췄습니다. 평행으로 대칭을 이루는 더블 배럴 디자인은 시각적으로도 보는 재미를 더하는데요. 이렇듯 평행을 이루는 더블 배럴 구조의 그랜드 세이코 무브먼트도 이번에 최초로 선보이는 것입니다. 무브먼트 디자인과 개발에는 세이코 워치 코퍼레이션(구 SII) R&D팀의 젊은 수석 엔지니어이자 무브먼트 디자이너인 카와우치야 타쿠마(Takuma Kawauchiya)가 참여했습니다. 그는 올해 첫 선을 보인 새로운 하이비트 자동 칼리버 9SA5의 개발 프로젝트를 주도하기도 했습니다. T0 콘스탄트 포스 투르비용 역시 모든 기계식 그랜드 세이코 모델이 탄생하는 시즈쿠이시 워치 스튜디오(Shizuku-ishi Watch Studio, 雫石高級時計工房)에서 개발, 제조 및 완조립까지 이뤄집니다.
T0 콘스탄트 포스 투르비용 관련해 크로노스 저팬 편집장인 히로타 마사유키(Masayuki Hirota)가 카와우치야 타쿠마와의 대담을 통해 술회한 내용에 따르면, 더블 배럴 설계로 물론 토크는 배가 되었지만 기어트레인의 내구성을 기하기 위해 센터 휠과 3번째 휠에 각각 스페셜 코팅을 입혀 마찰에 대응하고 있습니다. 또한 동력의 흐름을 제어하는 일명 스탑 휠(Stop wheel)을 추가하면서 관련 부품(기어)을 고성능 세라믹 소재를 사용함으로써 역시나 마찰계수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관련 스토리 바로 가기 클릭 >>
그리고 무엇보다 주목할 만한 점은, 투르비용 케이지와 콘스탄트 포스 관련 스프링 부품을 한데 통합시킨 것입니다. 이러한 시도는 필자로서는 처음 접합니다. 그리고 브랜드 역시 세계 최초라고 당당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투르비용 케이지(아치형의 브릿지 아래 절지류의 다리를 연상시키는 블루 코팅 처리한 부위) 안에 동축(코액시얼)으로 콘스탄트 포스 스프링을 함께 배치한 것입니다. 그래서 해당 부위 측면을 자세히 보시면 프리스프렁 밸런스 휠과 밸런스 스프링 외에 위쪽에 훨씬 가느다란 스프링 부품이 포개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투르비용 이스케이프먼트 및 콘스탄트 포스 관련 기어 부품 역시 기존의 그랜드 세이코 이스케이프먼트 부품들과 마찬가지로 MEMS(Micro Electro Mechanical System, 정밀전자제어기술)로 불리는 첨단 반도체 웨이퍼 제조 기술을 응용한 방식으로 1/1,000mm의 오차 정밀도로 매우 정교하게 가공되었습니다.
T0 콘스탄트 포스 투르비용 관련해 브랜드는 아직 구체적인 상용화 언급은 생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컨셉 피스도 분명 미래의 상용화를 목표로 개발하는 것이기에 머지 않아 제품 형태로 출시될 것으로 예상해봅니다. 참고로 T0 콘스탄트 포스 투르비용 컨셉은 지난 7월 20일 일본 이와테현 모리오카시 시즈쿠이시 마을에 문을 연 그랜드 세이코 스튜디오 시즈쿠이시 2층 라운지에 현재 전시 중입니다. 코로나19 시국인지라 외국인들이 방문하기엔 아직 시기상조지만, 혹시 일본에 거주 중인 타임포럼 회원분이 계시다면 한 번쯤 방문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