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의 시계 시장은 전통의 기계식, 쿼츠, 이 둘을 아우르는 하이브리드, 스마트 워치가 각자의 국경선을 그리고 있습니다. 쿼츠 손목시계의 등장에 미처 대처하지 못했던 기계식 시계는 잃어버린 1970년대를 겪으며 큰 교훈을 얻었고, 기적적으로 부활한 이후에는 새로운 위협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방법을 깨달은 모양입니다. 시계 브랜드들은 스마트 워치가 등장하자 발 빠르게 IT업계와 손을 잡고 다양한 방식의 대응책을 선보였고, 이 과정에서 잘못된 판단을 한 브랜드는 본래의 국경선을 크게 상실하기도 했습니다. 스마트 워치의 등장은 분명 기존 시계 시장에 자극을 준 것이 사실이며 국경선에도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하지만 당분간은 강력한 게임 체인저가 등장하지 않는 이상, 더 큰 땅을 가지기 위한 대규모 충돌은 벌어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국지적인 충돌은 계속 일어나고 있고 가민은 그 가운데에 있는 회사입니다. 지난 컬럼을 통해 소개한
마크(MARQ) 시리즈는 고급 시계의 상징인 기계식의 여러 요소를 접목해 스마트 워치의 새로운 형태를 보여준 바 있습니다. 마크 시리즈가 내세운 역사와 장르에 기반한 디자인, 고급 소재를 이용한 디테일은 기존 스마트 워치에서 보기 어려운 요소였습니다. 이번
피닉스(fēnix) 6는 플래그십에 해당하며 어찌 보면 실험적인 마크 시리즈와 달리 볼륨 모델의 상단에서 이들을 이끄는 성격을 지닙니다. 때문에 기계식 시계의 접점 일부와 스마트 워치 장르를 형성하며 축적한 기술과 노하우, 용도를 한데 묶어 노련하게 풀어가는데 중점을 둡니다.
무엇보다도 피닉스 6의 진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늘어난 구동시간입니다. 기계식에 비유하면 롱 파워리저브를 위한 길이 긴 메인스프링을 사용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보다 바쉐론 콘스탄틴 트래디셔널 트윈비트의 퍼페츄얼 캘린더 기술에 녹아 든 듀얼 기어 컴파운드 시스템에 가까울 것 입니다. 이 같은 동력 소모를 줄이기 위한 가민의 노력은 센서제어를 포함, 배터리를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파워 매니저 기술을 등장시켰습니다. 피닉스 6 라인업의 피닉스 6X 프로 솔라 에디션은 태양광을 보조 전력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선조인 쿼츠 시계의 광 혹은 태양광 충전인 솔라 패널에서 힌트를 얻은 듯한 기능입니다. 태양광 충전을 하면 스마트 워치 모드에서의 21일 구동에 3일이 더해지고 GPS 모드에서는 6시간이 추가됩니다. 사용자가 익스트림 스키처럼 생과 사가 아주 가깝게 공존하는 스포츠의 장면 속이라면 증가한 숫자가 결코 가볍게 느껴지지 않을 것 입니다.
일상생활에서 활용하는 피닉스 6의 기능
내장한 지도를 이용해 최적의 경로와 환경 데이터를 제공한다
산악 등반 사용시의 정보표시 화면
스포츠 중 사용자로부터 습득한 각종 데이터를 보기 쉽게 제공해 운동 효율성을 강화한다
일상생활에서 활용하는 스마트 워치의 기능은 시리즈를 거듭하며 피닉스 6에 축적되었습니다. 이제는 당연하게 여기는 스마트 폰과 연동해 메일, 알림의 수신은 물론 음악 저장, 커넥트 아이큐 스토어(Connect IQ Store)를 통해 필요한 앱과 위젯을 다운로드 받을 수 있습니다. 일상생활에서 의 편리함을 제공하는 피닉스 6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다양한 스포츠(멀티스포츠)에서 사용하기 위함입니다. 지도를 내장하고 있는 점이 특징으로 런닝, 등산, 수영, 자전거, 하이킹, 스키, 골프 등의 스포츠에서 통신망에 원활하게 접속할 수 없는 상황과 환경을 고려한 듯 합니다. 일상 환경이 아닌 통신망이 불안정한 높은 산이나 깊은 숲에 있더라도 GPS 신호에 의지하면 지도를 활용할 수 있습니다. 이는 일상 환경에서 런닝을 할 때 최적의 경로를 찾아주거나 비일상 환경이라고 할 수 있는 산악 등반에서도 거리, 경사 같은 환경정보를 파악해 제공하는 기반이 됩니다. 사용자가 스포츠에 열중하고 있을 때 피닉스 6는 데이터를 축적합니다. 센서를 통해 심박수, 산소량을 저장해 두었다가 정리된 데이터 형태로 제시해, 다음 스포츠에 임할 때 보다 효율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합니다. 덕분에 다양한 스포츠를 아우르며 그 시작과 마무리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러닝 메이트나 다이빙의 버디 같은 역할을 맡길 수 있겠죠.
시계의 전통 디자인 답습과 케이스 소재, 표면 피니시 기법을 활용해 고급화를 꾀한 피닉스 6
케이스 디자인은 스포츠용 스마트 워치의 정형적인 형태가 아닐까 합니다. 다이얼에 해당하는 커다란 라운드 디스플레이를 지녔고, 케이스 측면에 배치한 여러 개의 버튼이 크라운을 대신합니다. 베젤은 글라스 측면을 보호하는 기본적인 역할을 제외하면 구성의 필수요소이거나 디자인적인 접근이 크게 다가옵니다. 모델에 따라 베젤 디테일이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각 버튼의 위치에 용도를 각인해 조작의 용이함을 돕습니다. 케이스 소재는 스테인리스 스틸이 기본이며 PVD(DLC) 같은 표면처리를 거칩니다. 글라스는 사파이어 크리스털입니다. 이런 소재 선택은 기계식 시계에서 차용해 온 고급 요소에 해당하며, 가민의 볼륨 모델에서 상위에 위치하는 프리미엄 스마트 워치라는 포지션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큇핏(Quickfit)이라고 명명한 스트랩 교체 시스템을 채택했습니다. 케이스와 연결되는 스트랩 부분에 손쉽고 빠르게 교체가 가능하도록 추가적인 디테일을 더해 기계식 시계가 선도하는 편의성을 따릅니다.
위에서부터 피닉스 6S, 피닉스 6, 피닉스 6X, 태양광 충전 기능을 더한 피닉스 6X 프로
피닉스 6의 라인업은 프리미엄 스마트 폰으로 분류되는 아이폰과 닮았습니다. 피닉스 6S, 피닉스 6, 피닉스 6X로 라인업을 구성하며, 케이스 지름을 42mm, 47mm, 51mm로 나누고 있는 점도 아이폰과 유사합니다. 케이스 지름에 맞춰 디스플레이의 크기 역시 달라지나 배터리 용량을 제외한 스펙이나 기능에서의 차이는 두지 않았습니다. 피닉스 6X는 피닉스 6X 프로 솔라 에디션이라는 파생 모델을 두고 있으며, 태양광 충전 기능을 갖춰 충전을 할 수 없는 상황을 대비합니다.
피닉스 6의 등장은 가민이 추구하는 방향성을 온전히 반영하는 멀티스포츠용 스마트 워치의 지속과 발전을 의미합니다. 피닉스 6의 역할은 피닉스 5에 이어 성능과 기능을 향상시키면서 하위의 멀티스포츠 스마트 워치 라인업을 이끄는 것 입니다. 동시에 기계식 시계의 고급 디테일을 더해 기계식 시계의 화법에 익숙한 사용자층도 염두하고 있습니다. 이는 온건한 시계 국경선 넘나들기가 아닌가 합니다. 2007년 린데 베들린은 기계식 시계인 바이포미터의 애드온인 랜드 인스트루먼트에 피닉스 6과 같은 역할을 맡겼습니다. 태그 호이어가 스마트 워치 커넥티드를 시작했을 때 파격적인 프로그램의 내용은 커넥티드 구매자가 2년 뒤 추가금을 지불하면 기계식 시계로 교환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각자의 생태계를 기반으로 다른 생태계의 장점을 취하거나 유도하는 평화적인(?) 선례를 참고한 듯 합니다. 피닉스 6은 이미 구축된 가민의 라인업에서 프리미엄 멀티스포츠 스마트 워치라고 하는 새로운 시작을 알렸습니다. 이는 단순히 선택지의 확장으로 볼 수 있지만, 기계식 시계 사용자 입장에서는 좀 더 반가운 일입니다. 목적성에 충실해 감성적으로 투박한 스포츠용 스마트 워치에서 부족했던 디테일과 고급 요소를 피닉스 6가 채워주기 때문입니다. 일상에서 기계식 시계를 사용하고 스포츠를 즐길 때는 피닉스 6를 착용함으로, 기계식 시계와 스포츠용 스마트 워치의 감성적 간극을 줄이면서 편의성과 효율을 누릴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