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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F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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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I-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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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장르든 법칙과 관습이란 게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작고 얇은 케이스와 정제된 다이얼의 드레스 워치, 야광과 단방향 회전 베젤을 갖춘 다이버 워치, 파일럿 워치의 검은색 다이얼과 커다란 크라운처럼 말입니다. 이런 이유로 같은 계열의 시계를 모아놓으면 생김새가 비슷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유심히 들여다 보면 다들 저마다 개성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큰 틀 안에서 세부 사항을 입맛대로 꾸미고 발전시켜 나가면 그것이 축적되어 스타일이 완성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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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랑팡(Blancpain)을 대표하는 빌레레(Villeret) 컬렉션은 뚜렷한 스타일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이 싹트기 시작한 건 1980년대입니다. 오데마 피게를 거쳐 오메가로 자리를 옮긴 장-클로드 비버와 프레드릭 피게의 아들 자크 피게는 쿼츠 파동을 틈타 오메가, 티쏘 등을 거느린 스위스시계산업협회(SSIH)로부터 블랑팡의 이름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취득합니다. 두 사람은 쥬 계곡의 르 브라쉬에 터를 잡고 블랑팡, 더 나아가 기계식 시계의 부활을 위한 청사진을 그렸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시계 역사에 길이 남을 6대 걸작이었습니다. 1983년, 트리플 캘린더 문페이즈를 시작으로 위대한 여정에 돌입한 블랑팡은 1988년까지 울트라슬림, 퍼페추얼 캘린더, 투르비용, 스플릿 세컨드 크로노그래프, 미니트 리피터를 차례로 선보이며 시리즈를 완성합니다. 6개의 작품은 지름이 약 34mm인 골드 케이스, 더블 스텝 베젤, 리프 핸즈, 로마 숫자 인덱스, 화이트 다이얼 같은 규칙을 공유했습니다. 이는 아직까지 빌레레 컬렉션을 규정하는 요소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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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빌레레 라지 데이트

블랑팡은 빌레레 컬렉션에 실용성을 더하는 작업을 꾸준히 이어왔습니다. 라지 데이트(2015년), 애뉴얼 캘린더 GMT(2016년), 8 데이 위크 인디케이션(2017년)처럼 타임 온리보다는 화려하고 심오한 컴플리케이션보다는 부담이 덜한, 그러면서 가격은 합리적인 시계로 포트폴리오를 빈틈 없이 채웠습니다. 여기에 골드와 스테인리스스틸 케이스를 함께 출시해 선택지를 넓혔습니다. 이런 흐름은 올해도 계속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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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레레 라지 데이트 레트로그레이드 데이(Villeret Large Date Retrograde Day)는 시간, 날짜, 요일 기능을 갖춘 스몰 컴플리케이션입니다. 라지 데이트 모델에서 날짜 창을 살짝 오른쪽으로 밀어내고 좌측 하단의 빈 공간을 활용해 레트로그레이드 요일을 추가했습니다. 비대칭 다이얼이 주는 위화감이 낯선 분들도 있겠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단조로움을 깨는 이 시계만의 묘미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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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시드 마감한 레드 골드 케이스는 차분하고 단정합니다. 지름은 40mm, 두께는 11.1mm, 방수 능력은 30m입니다. 둥글게 굴린 케이스 측면과 계단처럼 솟은 베젤은 입체감을 살리는데 기여합니다. 크라운은 블랑팡의 로고를 양각으로 장식했습니다. 크라운을 뽑지 않고 돌리면 와인딩을 할 수 있습니다. 한 번 뽑으면 날짜를, 두 번 뽑으면 시간을 조정할 수 있습니다. 요일은 크라운으로 설정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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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얼 11시 방향의 러그 밑에는 은밀한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블랑팡이 2004년에 특허로 등록한 언더-러그 커렉터(under-lug corrector)입니다. 기능이 많은 시계는 필연적으로 버튼을 수반합니다. 크라운 하나로 모든 게 해결된다면 좋겠지만 기술적으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불쑥 튀어나온 버튼은 시계의 외관을 어지럽힙니다. 케이스에 삽입한 버튼은 이보다 낫지만 전용 핀이나 뾰족한 도구가 없으면 조정이 불가능하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블랑팡이 도출해낸 결과물은 영리하고 간편합니다. 손가락으로 버튼을 누르면 레트로그레이드 바늘을 이동시킬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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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 오팔린 다이얼 가장자리에는 곡선을 살린 로마 숫자 인덱스가 빙 둘러싸고 있습니다. 인덱스가 작고 얇은 데다가 미니트 트랙이나 별도의 표시가 없어 다이얼에는 여백이 많습니다. 빅 데이트와 레트로그레이드 요일 인디케이터는 다이얼의 빈 공간을 적당한 수준으로 줄여주는 역할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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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들잎처럼 생긴 구멍 난 바늘은 우아함과 위트를 동시에 표현합니다. 블랑팡의 로고로 장식한 초침은 로마 숫자 인덱스 끝에 닿을 정도로 길게 뻗어 있습니다. 분침과 초침은 끝을 살짝 구부렸습니다. 분과 초를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 시계가 아니기 때문에 큰 의미는 없습니다. 하지만 융통성 없는 모습이 워치메이킹의 순수함을 좇는 분들에게는 되려 반가움으로 다가올 겁니다. 다이얼 중앙에 가지런히 꽂힌 바늘의 마감이나 간격도 훌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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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일과 날짜는 어떤 기능보다도 실용적입니다. 두 개의 디스크를 회전시켜 다이얼에 난 작은 창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둘을 다 가지려면 다이얼의 균형은 일정부분 포기해야 합니다. 블랑팡은 불균형에서 비롯된 어색함을 평범하지 않은 메커니즘과 디스플레이로 잠재우는 고급스러운 방식을 구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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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일을 가리키는 불에 구운 파란색 바늘은 미적으로도 매우 중요합니다. 이 작은 바늘 하나가 시계의 분위기를 환기시킵니다. 자정이 되면 바늘은 한 칸씩 앞으로 움직입니다. 일요일이 지나고 월요일이 찾아오면 바늘은 눈깜짝할 사이에 가장 먼 곳을 향해 날아갑니다. 두 개의 창으로 표시하는 날짜도 자정이 지나면 빠르게 넘어갑니다. 두 개의 디스크로 10단위와 1단위 숫자를 따로 표시하기 때문에 미세한 높이 차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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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프와인딩 칼리버 6950GC는 프레드릭 피게의 칼리버 1150을 토대로 합니다. 두 개의 배럴과 메인스프링에 힘입어 72시간의 파워리저브를 제공합니다. 시간당 진동수를 21,600vph(3Hz)가 아닌 28,800vph(4Hz)로 설정한 건 라지 데이트와 레트로그레이드 메커니즘에 충분한 토크를 제공하면서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서일 겁니다. 6개 자세에서 조정을 마친 칼리버 6950GC는 프리스프렁 밸런스를 채택했습니다. 밸런스 휠에는 살짝 휜 네 개의 살이 있고, 그 사이에 있는 움푹 패인 공간에는 오차를 수정하는 네 개의 나사가 박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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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은 고급시계로는 부족함이 없는 준수한 수준입니다. 표면은 제네바 스트라이프로 장식했고, 모서리는 매끄럽게 다듬었습니다. 금으로 제작한 볼 베어링 로터는 벌집을 모티프로 한 기요셰 패턴으로 현란하게 꾸몄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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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색 악어가죽 스트랩은 골드 케이스와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립니다. 땀이 많은 분들에게는 케이스와 같은 소재로 제작한 메시 브레이슬릿이라는 대안이 있습니다. 빌레레 라지 데이트 레트로그레이드 데이는 레드 골드와 스테인리스스틸 모델로 출시됐습니다. 리뷰 모델의 가격은 2699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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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 년 전 블랑팡은 기계식 시계의 미래를 제시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6대 걸작은 고전의 반열에 올랐고, 블랑팡은 럭셔리 브랜드로 우뚝 섰습니다. 그 사이 기계식 시계는 빠르게 변화했고, 새로운 유행이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하고 있습니다. 워치메이킹이 추구하는 가치는 앞으로도 변하겠지만 블랑팡이 빌레레를 통해 보여준 스타일은 영원할 겁니다. 


제품 촬영: 
권상훈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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