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상을 떨치고 나온 복귀 전에서 LA 엔젤스의 오타니 쇼헤이가 멀티히트를 기록하며 타자로서의 재능을 증명했습니다. 곧 투수로서의 위력도 다시 확인시켜 주겠죠. 이처럼 투타를 겸하는 오타니의 등장으로 메이저리그가 더욱 흥미로워 지고 있습니다. 역할의 세분화, 포지션마다 사용하는 근육이 다른 현대야구에서 투수와 타자를 동시에 잘 해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오타니를 두고 이도류라고 부르며, 아구계에서는 이미 멸종된 종이라 여겼기 때문에 그에게 열광하게 됩니다. 이도류는 두 개의 검이나 도를 사용함을 의미합니다. 상황에 따라 하나로 공격하고 다른 하나로 방어하거나, 아니면 동시에 공격하거나 방어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양 손에 쥔 두 개의 칼을 자유자재로 다뤄야 하는 무척 어려운 전제조건이 따릅니다.
스타워즈에서의 이도류
시계업계에는 오타니와 같은 이도류가 존재합니다. 시계와 주얼리를 양립하는 브랜드들이죠. 역사적으로 이도류는 주로 주얼리 브랜드가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으로 까르띠에를 들 수 있죠. 파리에서 시작한 주얼러는 러그의 개념을 확립해 회중시계에서 손목시계의 시대로 이행시킨 산토스 워치, 제1차 세계대전의 종전을 기리며 탱크의 실루엣을 딴 탱크 워치를 선보이며 본격적인 워치 메이커의 대열에도 뛰어들게 됩니다. 드물게 피아제 같은 반대의 예도 있습니다. 피아제는 무브먼트를 만드는 회사로 시작했지만 얼마 뒤 자사의 시계를 선보였고, 그 이후로는 주얼리 워치와 주얼리를 내놓으며 이도류의 대열에 들어섭니다.
아는 사람만 안다는 오메가의 주얼리. 컨스텔레이션 링
모든 주얼리 브랜드나 시계 브랜드가 이도류 전환에 성공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스와치 그룹과 전략적인 제휴를 맺었던 티파니는 거액의 위자료(계약 위반에 따른 보상금)를 문 다음 시계에서 최소의 볼륨만 유지하고 있습니다. 다아이몬드의 왕으로 불리며 다이아몬드에서 최상의 포지션을 지녔던 해리윈스턴은 오푸스 시리즈와 공격적인 확장으로 시계 분야로 진출했지만, 비슷한 포지션의 그라프는 시계에서 여전히 뚜렷한 족적을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오메가를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그들이 주얼리를 다루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이는 본질적으로 다른 두 개의 분야에서 성공을 거두는 일이 쉽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반클리프 아펠의 포에틱 컴플리케이션, 레트로그레이드를 메커니즘을 다이얼로 풀어냈다
주얼리 브랜드 관점에서 본다면 시계로 성공하기 어려운 이유는 기술적인 문제가 가장 큽니다. 고지식한 시계 매니아의 시각에서 시계는 디자인 50과 무브먼트 50으로 나뉩니다. 주얼리 브랜드는 주얼리를 다루는 탁월한 감각과 디자인 헤리티지를 지닌 덕분에 절반에 해당하는 디자인에서 비교적 어렵지 않게 적응합니다. 하지만 기계식 무브먼트는 그들에게는 매우 이질적이며 상당히 커다란 벽과 같이 다가오게 됩니다. 가장 성공적인 이도류인 까르띠에만 해도 과거에는 르쿨트르(예거 르쿨트르) 무브먼트나 현대에 들어서는 그룹차원의 지원이 없었다면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최근 그들이 잠정적으로 접은 파인 워치메이킹(컴플리케이션)을 보면 분명합니다. 가장 전통적이며 가장 보수적이지만 시계시장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컴플리케이션 분야에서 까르띠에는 리치몬트 그룹의 맏형답게 자본의 위력을 수 많은 신제품으로 보여줬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습니다. 스포츠 워치의 파급력이 만들어 낸 크고 두꺼운 케이스는 크고 두꺼운 무브먼트를 만들어도 된다는 면죄부를 주었지만, 이것은 시계를 오래도록 보아온 매니아 즉 컴플리케이션의 실제 소비자인 이들까지 허용한 면죄부는 아니라는 점을 간과한 탓입니다.
1927년 반클리프 아펠의 레트로그레이드 회중시계, 포에틱 컴플리케이션에 영향을 주었다
웨 디씨&웨 다이 에
한편 두 개의 칼을 휘두르고 싶었던 디올은 슬그머니 칼 하나를 칼집에 집어 넣었습니다. 범용 무브먼트의 떨어지는 매력이야 말할 것도 없고, 디자인과 소재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마이너스 성장을 거듭합니다. 결국 시계 시장의 성장이 둔화되자 하나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작년부터 바젤월드에서 시계 부스를 철수하고 단독으로 주얼리 위주의 전개를 보이고 있는 상황입니다. (시계의 축소에도 영향이 있지만 워치 페어 참가에 대한 최근의 회의적인 시각도 작용했으리라 봅니다) 또 다른 하나는 반클리프 아펠입니다. 쿼츠 무브먼트를 탑재해 시계의 꼴을 빌어온 주얼리라고 해도 무방한 주얼리 워치를 제외하고는 제법 공들였던 포에틱 컴플리케이션이나 피에르 아펠로 대표되는 남성용 시장에서는 낙제에 가까운 성적표를 받아왔습니다. 여기에는 앞서 언급했던 주얼러가 느끼는 장벽과 여러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합니다. 기계식에서는 피아제에서 공급받은 무브먼트를 탑재하기 때문에 온전히 반클리프 아펠의 것이 될 수 없다는 태생적인 한계. 그리고 그간 쌓아온 시계의 아카이브가 거의 전무해 시계 다운 디자인을 확립해야 하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한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결정적으로 에나멜과 주얼리로 만든 다이얼과 외부의 기술력(무브먼트)이 결합한 포에틱 컴플리케이션의 기법과 스토리 텔링은 신선했지만 남성, 여성 모두에게 어필하지 못했습니다. 디자인은 컨셉을 충실하게 반영했다고 할 수 있지만 메커니즘은 소수 취향의 남성만을 타겟으로 삼는 오류를 범합니다. 무브먼트와 같은 기술적인 관점에서 시계를 바라본 경험이 부족했고, 이것은 남성이 주역인 시계 시장을 간과했다는 결과로 돌아옵니다. 간혹 웨 디씨&웨 다이 에 (Heure d’Ici&Heure d’Ailleurs) 같은 뚜렷한 남성용 모델을 내놓았지만 GMT 워치임에도 다이얼에 감춰놓은 리버럴함과 위트를 이해하지 못하면 시간을 읽기가 어려웠습니다. 에르메스의 타임 서스펜디드처럼 기능적으로 별 쓸모가 없지만 위트를 양념으로 버무려내야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시계는 여유롭고 풍요롭던 시계 시장의 성장기에나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뿐, 지금은 회사의 가용 자원을 톡톡히 낭비한 결과물로 인식됩니다.
스위치 히터. 좌투수에는 우타자가, 우투수에는 좌타자가 유리한 점을 파고들어 투수에 따라 타석 위치를 달리하는 타자
내년부터 반클리프 아펠은 SIHH에서 퇴장해 파리에서 단독 전시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몇 년 전부터 업계에서 떠돌던 이야기이기도 하고 워치 페어 참가에 대한 시각 변화를 반영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워치 페어의 최고 무대 중 하나인 SIHH에서 퇴장이라는 사실은 분명히 시계 시장에서 후퇴를 의미합니다. 시장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반응하는 일은 회사로서 극히 당연하지만, 반클리프 아펠이 호방하게 이도류를 표방하고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았던 점을 고려한다면 인내심이 부족하거나 시계에 대한 그간의 요란했던 열정이 진심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언젠가 시장이 예전만큼의 호황을 맞이할지도 모릅니다. 그럼 칼 하나를 거둔 반클리프 아펠이 다시금 두 개의 칼을 휘두르는 날이 올지 모르겠습니다만, 그 때는 이도류가 아닌 스위치 히터라고 불러야 하는 게 합당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