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열 오크 오프쇼어는 로열 오크로 스포츠 하이엔드라는 새로운 장르를 확립한 오데마 피게가 스포츠 워치 시대의 도래를 예측하고 내놓은 모델입니다. 로열 오크의 기원인 Ref. 5402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냈지만 방수성능이 50m에 불과했고 (지금도 전통대로 여전히 50m) 격렬한 스포츠에 견디기에 적합하지 않은 울트라 슬림 무브먼트인 칼리버 2121을 탑재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보다 스포츠 성을 지닌 모델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로열 오크 오프쇼어가 등장하게 됩니다.
초기형 로열 오크 오프쇼어
그리하여 1993년 크로노그래프 기능에 100m 방수가 가능한 모델을 내놓습니다. 로열 오크에 비해 크고 두꺼워진 케이스는 보다 큰 충격을 견딜 수 있게 되었고, 당시 예거 르쿨트르의 무브먼트를 탑재하던 때로 탑재한 칼리버 2125(베이스 예거 르쿨트르 칼리버 889)는 칼리버 2121에 비하면 충격 등에 상대적으로 강해, 시계 내, 외로 스포츠 성을 충실히 드러내는 모델이었습니다. 2000년 오데마 피게가 예거 르쿨트르의 소유 지분을 매각하고 그와 함께 진행했던 인 하우스 자동 무브먼트인 칼리버 3120을 발표하고 본격 탑재를 시작합니다. 이것은 이전과 달리 다소 두꺼운 무브먼트로 주력 엔트리인 로열 오크 Ref. 15300를 비롯 스포츠 워치에 나름 최적화 된 형태가 특징이었습니다. 칼리버 3120은 곧바로 로열 오크 오프쇼어에 탑재하지 않고 한 동안 칼리버 2125나 개량형인 칼리버 2326 (베이스 예거 르쿨트르 899)를 탑재하다가 비교적 근래에 들어 칼리버 3120 베이스의 크로노그래프인 칼리버 3126/3840이 기본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이렇듯 무브먼트의 변화도 크지 않지만 1993년 이후 22년이 흐르는 지금까지 디자인 역시 큰 변화가 없는 점이 특징입니다. 최근 2, 3년이 변화가 큰 시점으로 볼 수 있는데, 크라운, 푸시 버튼이나 베젤을 세라믹으로 만드는 점입니다. 그 외의 디테일을 빼면 기본적으로 오리지날에 충실합니다. 이번 리뷰는 이 유명세에 비하면 올라오지 않았던 로열 오크 오프쇼어입니다. 이제는 로열 오크오프쇼어에도 기능이 다양해져 정확하게는 로열 오크 오프쇼어 크로노그래프라고 불러야 하는 모델입니다. 로열 오크 오프쇼어 크로노그래프에는 다이얼, 케이스 베리에이션이 다양한데요. 그 중 핑크 골드 케이스에 핑크 골드 톤의 다이얼, 스트랩과 인덱스 등에 블랙을 사용해 고급스러운 색상 조합과 뚜렷한 대비를 드러내는 Ref. 26470OR.OO.A002CR.01이 리뷰의 주인공입니다. 로열 오크 오프쇼어는 크게 두 개의 모델로 나눌 수 있습니다. 리뷰처럼 Ref. 26470으로 시작하는 모델과 Ref. 2640X이며, 전자가 오리지날 디자인 후자는 지름이 2mm 더 큰 42mm 케이스에 푸시 버튼이 사각형인 모델입니다. 후자는 한 때 오데파 피게의 엠버서더이기도 했던 F1 드라이버 루벤스 바리첼로를 위한 디자인으로 등장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정규 라인업에 포함되어 있는 모델입니다. 전자는 케이스와 같은 소재의 베젤을 사용하고 후자는 크라운, 푸시 버튼 이외에 베젤까지 세라믹을 사용하는 차이가 있습니다.
다이얼은 로열 오크 탄생 40주년은 맞이했던 2012년부터 태피스트리 패턴의 크기를 달리하는 방침을 적용합니다. 따라서 로열 오크 오프쇼어에서는 가장 패턴이 큰 메가 태피스트리를 사용합니다. 일명 와플 다이얼이라고도 부르는 반복형 사각 패턴이 가장 큽니다. 또 클래식 모델과 달리 사각 패턴 위에 다시 기요세 가공을 하지 않습니다. 패턴이 크기 때문에 기요세까지 넣으면 깔끔하지 않게 보일 수도 있을 테니까요. 다이얼 위에는 세 개의 카운터가 올라가 있습니다. 6시 방향 12시간 카운터, 9시 방향 30분 카운터, 12시 방향이 영구초침으로 영구초침의 위치가 다소 독특합니다. 예거 르쿨트르를 베이스로 사용할 때와 지금의 칼리버 3126일 때에도 이 배치는 변화가 없습니다. 즉 일체형 크로노그래프가 아니기 때문에 같은 크로노그래프 모듈을 계속 사용하고 있다는 의미인데요. 이 크로노그래프 모듈은 듀보아 데프라가 제작했으며 독특한 구동 방식을 지닙니다. 크로노그래프를 제어하는 핵심 부품은 캠 혹은 컬럼 휠인데, 로열 오크 오프쇼어 크로노그래프는 캠입니다. 하지만 일단적인 캠이 아닌 로테이팅 캠으로 입체적인 컬럼 휠을 평면화 시킨 듯한 형태입니다. 이것은 ETA의 칼리버 2894에 사용하는 로테이팅 휠과 유사합니다.
칼리버 3120
때문에 조작감이 궁금해 지는데요. 캠 베이스임에도 그간 계속 다듬어왔는지 컬럼 휠과의 조작감이 아주 도드라질 정도로 다르지 않습니다. 푸시 버튼을 눌렀을 때 스트로크가 예상보다 짧긴 하나, 스타트시와 스톱시 푸시 버튼을 눌렀을 때 압력 차이가 그리 느껴지지 않고 리셋도 제법 부드러워 솔직히 놀랐습니다. 스크류 다운 방식의 크라운을 풀면 포지션 0, 한 칸 당기면 포지션 1, 한 칸 더 당기면 포지션 2입니다. 포지션 0에서 수동 와인딩을 할 수 있고 크라운을 돌리는 감촉은 경쾌합니다. 포지션 1에서는 날짜 조정이 이뤄지며 특별한 점은 느낄 수 없었습니다. 포지션 2이 시간 조정이며 크라운을 돌리면 분침 기준으로 눈금 1, 2분 정도 크라운 연결을 위한 준비 회전(?)이 필요합니다. 때문에 직결감이 떨어지지만 조정시 지장은 없으며 그 다음부터는 즉각적인 반응이므로 무브먼트 특성으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것은 시간을 뒤로 돌릴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칼리버 3120은 파워리저브가 약 60시간입니다만, 칼리버 3126은 50시간으로 10시간 정도 짧습니다. 크로노그래프 구동을 고려한 차이라고 해석할 수 있겠군요.
다시 다이얼로 돌아와서 보면, 3시 방향의 날짜는 크로노그래프 모듈을 한번 거쳐 더 아래에 위치하므로 깊이가 드러납니다. 이것을 다이얼 안쪽에 단 사이클롭스 렌즈로 확대해 보완하게 됩니다. 커다란 검정색 아라빅 인덱스는 다이얼과 같은 골드 톤으로 테두리를 한 차례 감싸내어 입체감을 드러냅니다. 검정색 인덱스는 그렇게 야광이 강하진 않으나 보기와는 다르게 야광 기능을 하며, 바늘에 올린 것 역시 야광 기능을 합니다. 다이얼의 바깥쪽 경사진 플린지에는 전통대로 타키미터를 올려 다이얼을 조여주는 효과를 얻어내고 있습니다.
팔각형 베젤을 스크류로 고정한 케이스는 로열 오크 오프쇼어의 가장 큰 디자인적 특징이자 구조적으로도 특징이 됩니다. 케이스 백이 없는 모노 코크 케이스의 케이스 백의 대역은 베젤과 그에 연결된 글라스이며 따라서 그 틈 사이에는 방수를 위한 고무 패킹이 삽입되어 있습니다. 고무 패킹은 방수 능력의 차이만큼 로열 오크 오프쇼어가 더 두껍죠. 이 부분은 고심도 방수가 어려운 구조적 취약점이기도 했으나 다이버 모델이 등장하면서 300m 수준으로 향상이 되어 어느 정도 극복이 된 것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베젤과 케이스로 두 부분으로 크게 나뉘는 전체 케이스는 위 이미지처럼 완벽 가공해 일체감을 드러냅니다. 베젤과 케이스 모두 직선이 아닌 완만한 곡선을 그리고 있어 가공 난이도가 있겠으나 정확하게 정렬된 라인은 삼선일체가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물론 오데마 피게쯤 되는 브랜드에겐 당연한 수준의 피니시지만 말이죠.
케이스 표면은 무광의 헤어라인이 기본입니다. 헤어라인의 결, 적절한 깊이감 모두 빼어납니다. 유광 가공은 케이스의 베젤, 케이스의 측면으로 전체에서 일부지만 악센트와 면과 면을 연결하는 부드럽게 연결하는 합니다. 케이스 백은 시스루 백으로 솔리드 백을 줄곧 고집하다가 칼리버 3120 베이스를 사용하게 되며 시스루 백을 변경했습니다. 이 변경은 100m 방수 사양에서 기능적으로 문제가 없으며 사용자 입장에서는 무브먼트를 볼 수 있는 편이 더 즐겁습니다. 크로노그래프 모듈을 올린 형태의 칼리버 3126이므로 시스루 백에서는 칼리버 3120과 다름 없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 번 봐도 로터 표면에 각인한 오데마 가와 피게 가의 문장이 인상적이군요.
한 세대 전의 로열 오크 오프쇼어 크로노그래프에서는 터프한 혼 백(Horn Back)스트랩을 주로 사용했지만 이번에는 보통의 검정색 앨리게이터 스트랩을 사용하며, 황금색 스티치는 케이스의 소재와 색상을 고려한 것 같군요. 버클은 보통의 탱 버클입니다. 남성적인 디자인이며 두터운 케이스를 스트랩과 함께 단단하게 고정할 수 있도록 충분한 양감을 드러내는 점이 매력적이군요.
로열 오크 오프쇼어 크로노그래프는 오데마 피게에서는 브랜드를 지지하는 베스트의 셀러의 하나가 되었고, 20년이 넘는 시간을 충실히 쌓아나가며 이제는 로열 오크처럼 클래식의 하나, 즉 명작 스포츠 워치의 하나로 그 반열에 들어갈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세라믹을 제외한 큰 변화가 없는 이유도 더 이상 더할 것도 바꿀 것도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요. 크로노그래프에서 캠 방식을 하이엔드 무브먼트의 구성으로 고집하는 점은 아쉽지만, 홈 페이지에서도 이 점을 명기하고 있는 만큼 방식의 열세를 경험과 노하우를 통해 극복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합니다. 실제 조작감은 컬럼 휠 못지 않았으니까요. 이것을 제외하면 디자인, 피니싱 등 여러 면에서 경지에 오른 모델로 평균 정도의 손목 두께를 지니고 있다면, 꼭 경험해 볼 시계의 하나로서 가치가 있을 것 입니다. 로열 오크나 로열 오크 오프쇼어를 차려고 할 때 손목 두께를 가리는 점(라운드 케이스와 지름이 전부가 아닌)은 '날 쉽게 가질 수 없어' 라고 말하는 듯한 특유의 새침한 매력이 아닐까도 싶군요.
촬영 : 2nd Round 스튜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