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고전의 아름다움
(part 2)
2011년 6월 17일
소고지음
Call St. matthew , Carravaggio
파트 원에 이어 쓰게되는 고전의 아름다움입니다. 생각보다 2편은 너무 지루하네요 -_ -;; 하지만 이렇게 학창시절 같은 지루한 시절도 있어야 더욱 깊게 시간을 이해할 수 있고, 촌음과 촌각 사이에서 보드랍게 스며나오는 신선한 아름다움의 과육을 새로이 음미할 수 있겠지.. 라는 마음으로 키보드를 잡았습니다.
바로크(Baroque)
‘삐뚤어진 모양을 한 기묘한 진주’라는 뜻을 가진 의미심장한 단어인 바로크 사조는 16세기부터 시작하여 17세기 로코코 사조와 함께 클래식의 기반이 되는 서양 예술을 의미합니다. 르네상스 예술의 특징이 ‘신’ 위주의 예술이 인간에게로 옮겨와 신과 인간 사이에 존재하던 예술이었다면, 바로크 예술은 그들 사이에 존재했던 균형이 신(神)을 완전히 떠나 단순히 화려하고 호사한 의식을 대변하는 예술이었습니다.
르네상스가 단정하고 우아한 고전양식을 내세우며 아름다움을 창조했다면, 바로크 예술은 지나친 장식과 거대하고 과장된 데커레이션, 무자비할 정도로 동적인 태세와 비실용적 과장, 극명한 대비의 효과를 사용하여 감상자를 압도하는 예술을 추구하였습니다.
The death of Socrates , Jacques Louis David
그리고 바로크와 로코코를 잇는 이 시기에 네덜란드 사람인 호이겐스(Christian Huygens, 1629-1695)가 태어납니다. 호이겐스는 진자의 원리를 발견하고 밸런스 스프링을 발명하게 되면서 본격적인 포켓워치 대중화(귀족적 대중화)를 열었습니다. 역사적으로는 루이 14세가 사망하게 되었던 시기였고, 많은 귀족들은 루이 14세때 억압되었던 자신들의 권력욕을 충족시키고, 그 권세를 과시하기 위해 예술가들을 고용하여 독자적인 실내 장식을 꾸미기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여러 귀족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은 하나의 새로운 양식이 되어 18세기를 찬란하게 빛나게 만듭니다.
로코코(Rococo)
시선을 분산시킬정도로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로코코양식의 실내
독재의 찬미와 과장, 감상자의 압도를 중요시하던 바로크 예술은 루이 14세의 사망과 함께 그 울타리를 벗어나 새로운 양식의 사조에게 자리를 내어주게 됩니다. 바로 로코코(Rococo) 미술이죠. 로코코미술은 18세기 파리의 귀족층을 중심으로 성행하였습니다. 루이 14세가 사망한 1715년 이후, 선왕의 무의미한 내부 전쟁과 분란, 어마어마한 국가부채, 과다한 세금에 허덕이던 프랑스는 루이 14세의 뒤를 이어 왕이 된 루이 15세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정치에서 그의 역할을 대폭 축소시키고. 루이 15세의 심복이던 오를레앙 필립 공작에게 대부분의 권력을 이양하게합니다. 한마디로 섭정기의 시작입니다. 당시 판단력과 결단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루이 15세는 선왕때 궁정이 있었던 베르사유에서 다시 파리로 궁정을 옮기는 일에만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고, 오를레앙 공은 왕을 따라 파리로 궁정을 옮기면서 섭정이라는 자신의 지위와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 자신의 집과 집무실 내부에 실내장식을 화려하게 꾸미고, 예술품들을 수집하고, 예술가들을 시켜 그 수집품들의 양식을 통일하라고 지시하게 됩니다. 이 때 바로크 시기의 주요 특징이었던 압도적이고 큼직큼직한 외부 장식들은 실내장식으로 들어오면서 섬세하고, 부드러워져 마침내 실내 장식의 한 양식으로 재해석되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브레게(A. R Breguet)
브레게의 초상화(좌)와
스와치 산하 브레게의 Breguet no.1160 GC 복각판(우)
이렇게 장식적이고 화려한 로코코예술이 유럽 전체에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었던 18세기 중반, 기계식 시계는 드디어 그토록 기다리고 있었던 한 사람을 만나 황금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 사람은 바로 브레게(Abraham-Louis Breguet, 1747~1823)입니다. 많은 TF 회원님들이 알고 계시듯이 브레게는 스위스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프랑스로 건너가 시계를 제작했던 카비노티에(우리말로 굳이 번역하자면 시계장인정도가 되겠군요.)였습니다. 그러니까 브레게의 예술과 그 사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스위스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성장하고 예술을 했던 환경인 당시 프랑스 예술 사조를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게 되는것이지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브레게가 프랑스에서 이토록 열심히 활동했음에도 오늘날 시계 생산의 중심지가 프랑스가 아닌 스위스가 된 까닭은 브레게가 스위스에서 태어났다는 대의도 있었지만 장-칼뱅의 제조기술 장려 정책과 종교개혁, 마지막으로 프랑스에서 종교혁명의 불길을 피해 온 수준높은 기술의 카비노티에들 덕분에 스위스는 시계예술의 수도(Capital of time)로서 굳건히 자리를 지키게 됩니다.) 어찌됐건 당시 브레게가 뿌리를 내리며 활동했던 그 곳 프랑스는 르네상스의 순풍을 타고 날아오른 바로크 양식과 한참 물이 오르기 시작하는 로코코 양식이 성행하며 유행을 선도하던 장소였습니다. 브레게는 이러한 예술적 감각과 여러 장인들을 등에업고 혁신적인 시계들과 발명품을 내어놓았고-많이들 알고계시겠지만 오버코일 밸런스스프링과 쇽 레지스턴스, 투르비용 등등- '시계'라는 분야를 함부로 아무나 따라만들 수 없게 하는 예술의 경지로 부상시킵니다.
왼쪽부터 George Graham, Thomas Mudge, John Arnold, Thomas Earnshaw, John Harrison
-사족: 물론 이 모든 것들이 전부 브레게의 독자적인 공으로 치부 할 수 만은 없습니다. 이 시기에는 브레게와 함께 여러가지 뛰어난 업적으로 지금까지도 업계표준(?)의 전설을 이룩한 여러 위인들이 공존하던 시기였으니까요. 보석을 베어링으로서 처음 사용한 Facio나, 데드비트와 실린더 이스케이프먼트를 개발했던 Graham(이분이 바로 압도적인 사이즈와 큼직한 크라운가드, 큼직큼직한 디자인으로 유명한 Graham이라는 브랜드의 시조입니다.)그리고 Thomas Mudge, 지금까지도 Arnold & Sons로 그 명맥이 유지되고 있는 John Arnold(크로노미터 시계의 개발) 그리고 Thomas Earnshaw, 마지막으로 John Harrison(1693-1776)까지 함께 시계를 제작하던 괴물들의 춘추전국 시기였죠. 이러한 카비노티에들의 튼튼했던 인프라가 있었기에 브레게는 당대 최고의 자리를 지키며 기계식시계의 황금기를 활짝 열어놓습니다. 스위스가 시계의 전설과 역사를 빌미로 마케팅의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는것도 바로 이 시기를 중심으로 이르는 것이지요. 갑자기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재미있는 어록을 남겼던 박 모 개그맨의 모습이 떠오르네요.
Thomas Earnshaw의 포켓워치 카빙
어찌됐건 바로크를 건너 로코코 양식이라는 길고 긴 강을 건너게 된 예술 사조는 이후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라는 새로운 양식을 만들게 되고, 역사적으로는 나폴레옹, 프랑스혁명, 민주화운동을 거치면서 오늘에까지 이르게됩니다. 물론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사실주의와 인상주의, 그리고 후기인상파를 거쳐 20세기 현대미술 이전까지의 예술을 모두 ‘클래식(커다란 범주에서의)’이라고 부르긴 합니다만 저는 이쯤에서 내리 이어져야 할 미술사조에 대한 설명을 잠시 접어야 할 것 같습니다. 무시하는건 아니지만 이후의 시계 디자인은 계속되는 정체와 모방의 시기를 거치며 예술적으로 잠시 휴식을 취하기 때문이죠.(물론 예술이라는게 칼로 무 베듯 뚝딱 끊어낼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로코코 이후 세기에 등장했던 예술적인 타임피스들을 비판한다는 것은 더욱 아니지만 이후 약 1세기 정도까지의 시계 디자인과 데커레이션, 마지막으로 기술은 이렇다 할 진보 없이 끊임없는 모방과 기법의 개선의 반복에 다름 없었습니다.)
작품명: PSP를 즐겁게 즐기고 있는 21세기 빨간마스크.
학창시절 친구들에게 영어 독해 질문을 자주 받아보신 대부분의 타임포럼 회원님들과 재미없는 이 글에 힘겹게 정신줄 가닥 가닥을 놓치지 않으신 소수의 TF 회원님들께서는 대강 그 흐름을 이해하셨겠지만 사실 ‘클래식’이라는 뜻에는 '바로크, 로코코, 르네상스를 포함하는 시대 사조'라는 뜻과함께 ‘고전’이라는 또다른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한 1000년 쯤 지나면 지금 우리가 ‘현대미술’이나 ‘팝아트’라고 부르는 모든 작품들은 아마도 몽둥이를 들고 가죽옷을 걸친 건장한 원숭이들(조상님 죄송합니다.)과 함께 우리의 1000년 뒤 후손들에게 '21세기 클래식'이라는 이름으로 불려도 그 의미가 상통한다는 이야기이지요.(커다란 범주에서의 클래식) 선사유적지에 있는 원시인의 모형의 몽둥이가 오늘날의 Stark industry(아이언맨 주인공의 무기회사)나 에르메스 급의 가죽옷을 걸쳤는지는 시간이 없어 마네킹에게 미처 물어보지 못했지만, 어찌됐건 약 천년 정도 후에는 우리를 대표하는 누군가의 마네킹이(아마 소녀시대나 김태희 쯤이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요즘 유럽도 한류라는데 저에게는 언제쯤 한류의 봄바람이 불어들어올지..) 우리 세대를 대표하는 ‘클래식’이 되어 표준으로 자리잡게되지 않을까요?
말이 나왔으니 현대 이야기를 조금 더 볶아보자면 예술사조가 어찌되고 클래식이 어찌되건 상관없이 오늘도 국방부와 민간세계의 시간은 이상없이 잘 흐르고 있고, 이에 발맞춰 오늘날의 시계 예술은 기존의 획일적이기만 하던 허물을 벗어던지고 본격적으로 불오오기 시작하는 순풍을 온몸으로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클래식을 지나 모던-클래식, 모던 디자인의 시계에서 바우하우스 그리고 공학의 발전을 등에 업고 시작하는 하이테크 디자인, 마지막으로 하이테크를 지나 미래지향적(Future-Orianted)이고 시대반항적(Avant-Garde)인 디자인이 그것입니다. 기계식 시계를 좋아하고 또 아끼는 한 명의 애호가로서 이 시대를 숨쉬고 있음에 깊게 감사하고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비록 구매할 수는 없겠지만) 오늘도 현대의 기술발전과 아방가르드의 예술사조를 흡수하며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는 새로운 사조의 시계가 매년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은 이러한 시계 디자인을 “내가 저 돈주고... 저 돈이 있다면 차라리 다른 걸 사고 남은 돈으로 자동차나 한 대 사야지.”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더 많으시겠지만. 그리고 4차원 예술품에 대해 무자비하게 관대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저조차도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할래야 이해할 수 없는 작품들이 연병장 3열 종대로 열두바퀴 반씩 매년 쏟아지고 있는 실정입니다만 ‘저 돈주고 저런 시계를 살 정도로 저 사람은 참 돈이 많은 사람인가보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하시는 여러분야 '사회지도층'분들의 꾸준하신 성원과 그분들께 채워주고, 만져주고 하면서 열심히 침을 튀기며 오늘도 스토리를 파는 예술가들이 쌓이고. 또 그렇게 한 50년 쯤 시간이 지나고나면, 어쩌면. 정말 어쩌면 그때는 아래와 같은 시계들이 유행을 타고 ‘인터넷 SA급 짝퉁’싸이트에서 가벼운 가격과 가벼운 마음으로 만나게 되는 날이 올른지도 모릅니다. 물론 그때쯤에는 또 새로운 '사회지도층'분들께서 다른 세계에서 다른 이해못할 예술품을 가지고 놀면서 안빈낙도와 고복경양의 단잠을 즐기고 계시겠지만 말입니다.
Azimuth의 시계. 10개 한정판으로 제작되었다는데..
디자인이 완성됨과 동시에(아직 제대로 된 설계에도 들어가지 않았음에도) 예약 및 입금이 다 끝났다고합니다..
진짜 이걸 사는 사람들이 비정상인건지.. 제가 비정상인건지.. 아니면 둘 다 비정상인지. 둘 다 정상인데 그냥 그런건지.
알다가도 모를 세상입니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