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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 게시글은 조회수1000 or 추천수10 or 댓글25 이상 게시물을 최근순으로 최대4개까지 출력됩니다. (타 게시판 동일)한참 시계에 미쳐있습니다. 과연 다른 회원분들도 이러신건지..
시계를 좋아한 건 꽤 오래된 일이지만 본격적으로 중독이 된 지는 얼마 안되는 초보입니다.
출근하면 컴퓨터 켜고 커피 한 잔 마시고 타포 - 이베이 - 크로노24 - 파네리스티.컴으로 이어지는 릴레이.
또 한 바퀴 돌고는 밥값은 해야지 싶어 이메일 체크. 순식간에 끝납니다.
또 한 바퀴 돌고.. 이제 일해야지 라고 생각을 하면서 손은 어느새 한 바퀴 더 돌리고 있습니다.
매일 타포만 쳐다보며 일도 제대로 안하고 혹시나 장터에 원하는 물건이 나올까봐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합니다.
갑자기 저의 시계생활이 음, 살짝 짜증이 납니다. 도대체 내가 뭐하는 짓인가..
이게 마약같아서 뭔가 잘못된 것 같기는 한데 도저히 끊지를 못하겠습니다.
문득 처음 시계를 '득'했던 때가 생각이 나며 지나간 세월이 주마등처럼 흐릅니다.
처음 시계를 접한 건, 초등학교 4학년때였는데,
11살의 어린 소년은 아버지로부터 어울리지도 않는 황금빛깔 Seiko 정장시계(중고)를 선물 받습니다.
만지면 닳을까 싶어 장농 속에 고이고이 모셔둔 시계는 어느 날 사라집니다.
아버지께서 다른 분께 선물로 주셨답니다. 많이 울었습니다. 제 첫번재 시계는 그렇게 날라갔습니다.
몇 년 뒤 중학교 입학을 하면서 무슨 브랜드였는지 생각도 잘 안나는 계산기형 전자시계를 선물 받았습니다.(아마도 Casio?)
연식이 조금 되시는 분들은 기억하실지도 모르겠는데 시계 아래쪽에 계산기 버튼들이 달박달박 붙어있던 모델입니다.
별 애착이 없어서였는지 어떻게 사라졌는지도 모르고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 다닐 즈음해서 또 하나의 선물을 받습니다.
라도.
아령의 무게에 작은 얼굴에 비해 무척이나 두꺼웠던 두께만 기억납니다.
다이얼에 보이는 닻이 빙글빙글 돌아가고, 흔들면 절컥절컥 소리를 내며 자동으로 '밥을 준다는데' 무척 감동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감당 못 할 무게와 두께로 일단 이 녀석도 책상 속으로..
언젠가 생각이 나서 뒤져봤더니 없습니다. 어머니도 모르겠다시고..
시계가 없어져서 슬펐다기 보다는 고가의 물건이 없어졌다는 안타까움이 더 컸습니다.
대학을 입학했습니다.
X구멍이 찢어질만큼 가난해서 공부는 부업이고 일이 주업이었던 시기였습니다.
잠시였지만 시계를 팔았었습니다.
세운상가였는지 낙원상가였는지 어디였는지 기억도 안나는 그 곳에서 20대 초반의 (학생을 빙자한) 나이어린 장사꾼이 오메가와 롤렉스(라고 쓰여있는)를 팔다가 단속반에 걸려 경찰서에서 며칠 숙식을 제공받았었습니다.
당시 경찰서는 참 무서운 곳이었는데, 고맙게도 밥도 주고 꿀밤도 주고 잠자리도 제공해주더군요. 어쨌건 불법은 역시 저랑 안 어울립니다.
또 시간이 흐릅니다.
어렵게 유학을 갑니다.
시간이 날 때는 시내 거리에 있는 시계방 앞에 서서 이건 무슨 모델 (2만원 짜리), 이건 무슨 모델 (1만8천원) 하면서 180만원 짜리 오메가 시계를 순식간에 1만8천원 짜리로 만들곤 했습니다.
'저거 언제 한 번 이 손목에 올려보나' 멍하니 서서 한참을 들여다 보곤 했습니다. (당근 1만8천원 짜리 말고 180만원 짜리 얘깁니다)
그리곤 결혼을 합니다.
스위스에 놀러갔다가 집사람 예물시계를 삽니다.
Chopard.
애기 코딱지만한 그 시계가 300만원 정도 한답니다.
제 평생 그렇게 비싼 물건을 산 건 처음이었는데 나름 부잣집에서 자란 와이프도 주저주저..
전 집사람에게 호기를 부리며 '사자. 까짓거.. 평생 하나 사는 건데..'
(지금 생각해보면 웃기는 얘기죠. 전 그 평생을 벌써 수십번을 살았습니다. 쩝)
그로부터 세월이 또 한 참 지나서, 이제 월급주는 직장도 있고 사회적 포지션도 어느 정도 되고 안정된 생활을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시계에 퍽 꽂힙니다. 연쇄살인사건의 시작입니다.
막 사 재낍니다.
Cartier 금통 & 쇠통. 웃기지도 않는 구찌와 기타 등등의 패션브랜드 시계들.
싼거 비싼거 누런거 까만거 막 들입니다.
그러다가 '아저씨 도대체 뭐하세염?' 집사람의 한마디에 정신이 확 듭니다.
대방출 시작. 그때도 타포가 있었는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어디에 얼마를 받고 어떻게 파는가도 몰라서 그냥 친척들에게 나눠줍니다.
(전 제 사촌이 그렇게 많은 출 처음 알았습니다)
그러고는 병이 고쳐진 줄 알았는데..
.
.
타포.
이게 사단입니다.
몇 년에 걸쳐 서서히 꺼져가던 심장에 불을 지릅니다.
이제는 급기야 라인을 타기 시작합니다. 시리즈가 시작된거죠.
다이버 시계. 파네라이. 각종 가죽줄 (뭔 종류가 그렇게 많은지..)
할 줄도 모르는 다이빙을 위해 구입한 다이버 시계가 벌써 여러개.
이태리란 나라에서도 시계가 생산이 되더군요. 파네라이만 벌써 세 개 아니 네 개(웨이팅 걸어놨던 제품 찾아가랍니다)
그리고 끝날 줄 모르고 계속되는 구글링.
이제 초등학교도 졸업 안 한 두 아들에게 고가의 시계를 계속 선물합니다. 과연 누구를 위한 선물일까요?
이런 정신없는 짓이 향냄새 맡을 때까지 주욱 계속 될 것 같아 불안합니다.
그래서 집사람이 내려주신 지혜로운 처방은,
"다 정리하고 한 방에 가세요"인데, 그간 어렵게 모은 이 손 때 묻은 자식들을 다 팔아먹는다는게 쉽지가 않습니다.
저 : 원체 마이너한 녀석들이 많아서 쉽게 팔리지도 않을 듯 한데.. 뭐 물론 팔고는 싶지만.. 어쩌구..
집사람 : 뻥치시고 있네. 팔고 싶지 않은거겠지. 왜 이러세요. 선수끼리..
오늘도 여전히 타포만 만지작 만지작 하고 있습니다. 어느덧 퇴근시간입니다.
타포랑 놀다만 가도 봉급을 주는 회사가 새삼 너무 고맙습니다.
퇴근할까 합니다. 집에가서 또 타포랑 놀아야지~
쓰고보니 참 영양가 없는 잡글인데 그냥 재미삼아 올렸습니다. 오늘 남은 시간도 모두 즐겁게 보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