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io : 쿼츠 시대의 아이콘 G-Shock
1990년대 중반이후 일본에서는 G-붐이라고 불리는 G-Shock 수집붐이 있었습니다.
1946년 카시오 다다오에 의해 창업되어
소형 전자계산기 Casio Mini의 성공으로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한 Casio는
1974년 첫 시계인 Casiotron을 발매합니다.
그러나,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의 쿼츠 시계 기술을 가진 일본내의 Seiko와 Citizen에 고전하던
Casio는 1983년 새로운 개념의 손목시계 G-Shock를 발매하게 됩니다.
Triple Ten (3가지의 10)이라고 불리는 이 새로운 개념은
10 기압 방수(100m)방수
10년의 배터리 교환주기
10m의 자유낙하에서 견딜 수 있는 방충 능력을
가진 시계를 만드는 프로젝트였습니다.
이중 시계의 역사에서 시도되지 않았던 새로운 개념이 바로 10 m의 방충능력이었습니다.
마침 연구실이 10m 높이의 3층에 위치하고 있었으므로
개발팀에서는 연구실 창밖으로 시계를 떨어뜨려가며 방충성능의 향상을 위해
노력합니다.
그렇게 하여 1983년 Gravity(중력)의 약자인 G에 충격을 의미하는 Shock를
결합한 G-Shock가 탄생하게 됩니다.
그러나, Swatch와 함께 1980년대 이후 쿼츠 시대의 상징적인 시계가 된
Casio의 G-Shock에 대한 일본 국내의 반응은 매우 차가운 것이었습니다.
G-Shock가 폐기되지 않고 살아남은 것은 미국시장에서의 성공이었습니다.
그 후 1993년 Master of G의 조상이라고 할 Professional G-Shock 모델인
Frogman의 등장을 통해 비로서 Casio는 Seiko와 Citizen과 경쟁할 수 있는
내수기반을 갖추게 됩니다.
그 후 일본내의 G-Shock 매니아들의 Die-for 와치로 자리를 잡은 다양한 한정판의
Frogman들을 중심으로 G-Shock의 인기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나날이 높아져 갔습니다.
그리하여, 199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말에 이르는 기간 동안 G-Shock의 한정판이 발매되면
이 시계를 구입하려는 G-Shock 매니아들이 판매점 앞에 장사진을 치는 소위 G-붐을
일으키게 되는 것입니다.
그 결과로 1980년대에 소량 생산된 레어 아이템이며, G-붐 시대에 한정판으로 발매된
일부 모델은 발매직후 판매가의 10 배~40 배에 경매되는 기록을 남기기도 합니다.
2000년대 G-붐은 어느 정도 가라앉았고 G-붐으로 시계에 관심을 갖게된
일본의 매니아들은 G-Shock를 넘어 기계식 매니아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몇 년전부터 Frogman을 중심으로 일본의 G 붐 시대에 못지않은
G-Shock 수집 및 커스텀 붐이 일어나는 듯합니다.
그 동안 G-Shock는 플라스틱제의 스포츠용 시계의 이미지를 넘어 정장용 캐쥬얼용의
시계들로 범위를 확대해 왔으며, 최근에는 Tough Solar의 개념을 도입하여
Solar Cell과 전파 시계의 기술을 결합하여 편의성과 시계로서의 정확성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신제품들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TF는 기계식 시계 매니아를 넘어 전분야의 시계 매니아들의 모임이 되고자 하는 취지에서
TF 브랜드 포럼의 창설 게시판의 하나로 Casio 게시판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1990년대 중반이후 일본에서는 G-붐이라고 불리는 G-Shock 수집붐이 있었습니다.
1946년 카시오 다다오에 의해 창업되어
소형 전자계산기 Casio Mini의 성공으로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한 Casio는
1974년 첫 시계인 Casiotron을 발매합니다.
그러나,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의 쿼츠 시계 기술을 가진 일본내의 Seiko와 Citizen에 고전하던
Casio는 1983년 새로운 개념의 손목시계 G-Shock를 발매하게 됩니다.
Triple Ten (3가지의 10)이라고 불리는 이 새로운 개념은
10 기압 방수(100m)방수
10년의 배터리 교환주기
10m의 자유낙하에서 견딜 수 있는 방충 능력을
가진 시계를 만드는 프로젝트였습니다.
이중 시계의 역사에서 시도되지 않았던 새로운 개념이 바로 10 m의 방충능력이었습니다.
마침 연구실이 10m 높이의 3층에 위치하고 있었으므로
개발팀에서는 연구실 창밖으로 시계를 떨어뜨려가며 방충성능의 향상을 위해
노력합니다.
그렇게 하여 1983년 Gravity(중력)의 약자인 G에 충격을 의미하는 Shock를
결합한 G-Shock가 탄생하게 됩니다.
그러나, Swatch와 함께 1980년대 이후 쿼츠 시대의 상징적인 시계가 된
Casio의 G-Shock에 대한 일본 국내의 반응은 매우 차가운 것이었습니다.
G-Shock가 폐기되지 않고 살아남은 것은 미국시장에서의 성공이었습니다.
그 후 1993년 Master of G의 조상이라고 할 Professional G-Shock 모델인
Frogman의 등장을 통해 비로서 Casio는 Seiko와 Citizen과 경쟁할 수 있는
내수기반을 갖추게 됩니다.
그 후 일본내의 G-Shock 매니아들의 Die-for 와치로 자리를 잡은 다양한 한정판의
Frogman들을 중심으로 G-Shock의 인기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나날이 높아져 갔습니다.
그리하여, 199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말에 이르는 기간 동안 G-Shock의 한정판이 발매되면
이 시계를 구입하려는 G-Shock 매니아들이 판매점 앞에 장사진을 치는 소위 G-붐을
일으키게 되는 것입니다.
그 결과로 1980년대에 소량 생산된 레어 아이템이며, G-붐 시대에 한정판으로 발매된
일부 모델은 발매직후 판매가의 10 배~40 배에 경매되는 기록을 남기기도 합니다.
2000년대 G-붐은 어느 정도 가라앉았고 G-붐으로 시계에 관심을 갖게된
일본의 매니아들은 G-Shock를 넘어 기계식 매니아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몇 년전부터 Frogman을 중심으로 일본의 G 붐 시대에 못지않은
G-Shock 수집 및 커스텀 붐이 일어나는 듯합니다.
그 동안 G-Shock는 플라스틱제의 스포츠용 시계의 이미지를 넘어 정장용 캐쥬얼용의
시계들로 범위를 확대해 왔으며, 최근에는 Tough Solar의 개념을 도입하여
Solar Cell과 전파 시계의 기술을 결합하여 편의성과 시계로서의 정확성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신제품들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TF는 기계식 시계 매니아를 넘어 전분야의 시계 매니아들의 모임이 되고자 하는 취지에서
TF 브랜드 포럼의 창설 게시판의 하나로 Casio 게시판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Frogman Real Balck
이 게시판이 G-Shock와 Casio의 시계들에 열광하는 매니아들의 낙원으로 성장하기를 기원합니다.
2006. 9. 1.
대표 운영자 링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