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젤월드 빌딩이 대대적으로 바뀌면서 부스를 바꾼 브랜드가 대부분입니다.
이미지에 조금 더 세심하게 신경쓰는 브랜드는 한번 정하면 한 5~10년 오래 사용할 부스니까 디자인을 아예 이름난 건축가에게 맡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에르메스의 경우 다른 브랜드와 달리 아예 부스를 특유의 오렌지 천으로 다 감싼 다음, 짠~ 하고 테이프 커팅에 준하는 오픈식을 했습니다.
우리나라로 얘기하면 앞으로 사업이 잘 되게 해달라는 고사와 같은 과정일까요?
베일을 벗은 파빌리온은 나무 소재를 사선의 격자로 구성한 자연 지향적 건축입니다.
부스 디자인은 2013년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여겨지는 프리츠커 건축상을 수상한 일본 건축가 토요 이토(Toyo Ito)가 담당했습니다.
기존 부스에 비해 2배 크기인 1,040 평방미터에 높이는 9미터입니다. 다른 부스의 건축의 크기도 대충 가늠할 수 있겠네요.
안이 보일듯 말듯 반투명한 건축이 특징적인 토요 이토만의 스타일이 에르메스 시계 파빌리온에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금속 골조를 나무판넬로 감싼 형태인데 실제 나모와 풀을 군데 군데 장식한 모습이 마치 자연사 동물원에 온 기분입니다.
현대적인 다른 부스에 비하면 매우 유기적인 형태입니다.
모서리에 위치한 뱃머리 모양의 입구로 들어가면 조약돌처럼 생긴 전시 구조물과 구름처럼 몽글몽글 매달려 있는 조명이 인상적입니다.
흰 벽에도 자연의 영상을 비춥니다.
첫날에는 오프닝 행사를 하느라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에르메스 시계의 대표와 감독, 그리고 수줍은 듯 서 계신 토요 이토 건축가의 한 말씀도 이어졌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올해 에르메스의 시계는 어떠할까요? 그 전에 역사 잠깐 짚고 넘어 갑니다.
에르메스가 시계를 제작한 건 1912년입니다. 1837년 회사를 창립한 티에리 에르메스의 4대손인 자클린이 착용한 손목 시계가 첫 시계였는데
회중 시계에 가죽을 감싸 손목에 착용할 수 있었던 포르트-오이뇽(porte-oignon : porte는 문, oignon은 양파라는 의미)이란 이름의 시계였습니다.
당시 이미 손목 시계가 출현했지만 회중 시계에 고리를 단 변형 모델이 혼재하던 시기였고 에르메스는 특유의 가죽 기술을 적용한 셈입니다.
간간히 시계를 제작해오던 에르메스는 2003년 보셰 매뉴팩춰 플러리에와 제휴를 맺고 자사 무브먼트를 제작하기 시작했고 2006년 이 회사의 지분 25%를 인수해서
이 관계는 더욱 끈끈해졌습니다. 보셰 매뉴팩춰 플러리에는 현재 파르미지아니 산하 무브먼트 제조사입니다.
에르메스도 조금씩 시계를 자사 무브먼트로 교체하고 있는 중입니다.
지난 번 타임포럼에서 리뷰한 드레사지 시계가 자사 무브먼트 탑재 모델로 대표적이죠. --> https://www.timeforum.co.kr/7029601
동시에 이 무브먼트를 탑재한 유니크 피스와 한정판들을 매년 바젤월드에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1912년 포르트-오이뇽을 그대로 복각한듯한 모델, 인 더 포켓(In the Pocket)을 전시해 놓았습니다.
에르메스 창립 연도를 이름으로 삼은 H1837 셀프와인딩 무브먼트를 탑재한 팔라듐 소재의 회중 시계입니다.
24개 한정판인 이 시계는 가죽 끈이 매달려 있는데 동시에 손목 시계처럼 착용할 수 있는 가죽 케이스도 제공합니다.
케이스는 에보니 컬러의 바레니아 가죽으로 제작했는데 형태를 잡고 바느질하는데에만 10시간 이상 소요된다고 하는군요.
또 다른 회중 시계로는 아쏘 포켓 볼뤼트(Arceau Pocket Volutes)가 있습니다.
언뜻 보면 그냥 조각인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습니다만 자세히 보면
인덱스를 화이트 골드로 넣은 그랑푀 에나멜 다이얼을 가진 회중 시계인데 이 시계는 또 다른 극강의 금세공 기술을 보여줍니다.
오랫동안 에르메스의 창조자로 활동한 앙리 도리니가 디자인한 실크 스카프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는데요.
회색으로 처리한 화이트 골드, 미러 폴리싱의 화이트 골드, 그리고 옐로 골드를 함께 붙인 세공입니다. 미묘하게 다른 삼색 금이 조화를 이룬 모습입니다.
골드 마퀘트리라고 부르는 이 작업에만 150시간 이상 걸렸다고 하네요.
유니크피스답게 케이스와 스트랩은 악어 가죽입니다.
올해 에르메스가 가장 내세우는 시계는 아쏘 타임 서스펜디드(Arceau Le Temps Suspendu 38mm)입니다.
아쏘 타임 서스펜디드는 2011년 에르메스가 독립 시계 제작자 쟝-마크 비더레히트와 손잡고 제작한 시계입니다.
언듯 보기에는 그냥 시와 분, 날짜를 알려주는 기능만 있는 시계인 것 같지만 9시 방향의 푸시 버튼을 누르면
날짜 표시 핸즈는 숫자 인덱스 4, 5 사이로 사라지고 시침, 분침은 12시 방향으로 가게 됩니다.
이 시계의 컨셉은 시간을 잊고 잠시 쉬어가라는 개념을 담고 있는 시계죠. 덕분에 제네바 그랑프리 등의 여러 시계상을 수상했습니다.
지름 43mm 케이스의 남성용 시계로 나왔고 이번에 38mm는 여성용 시계로 나왔습니다.
여성용 시계라 해서 동일한 형태의 작은 크기가 아닌 것이 눈길을 끕니다. 아예 새로운 무브먼트를 넣고 다른 방식을 구현했습니다.
4시 방향의 날짜창 대신 스몰 세컨드를 넣었는데 자세히 보면 24가 표시되어 있어 24시간계인가 착각할 수도 있지만
실제 움직이는 것을 보면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초침입니다. 게다가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아갑니다.
왜 이런 기능을? 이라고 말하면 딱히 할 말은 없고 작은 '재미'라고 할까요?
시간을 알기 위해 시계를 착용하는 시대가 아니지 않습니까. 시간에 대한 색다른 접근이라고 보면 될 듯 합니다.
기존 43mm의 타임 서스펜디드 제품에는 블루 다이얼을 가진 플래티넘 케이스 모델을 추가했습니다.
아쏘 컬렉션에는 그 외에 문페이즈 라인을 조금 작게 만든 아쏘 프티트 륀(Arceau Petite Lune)을 추가했습니다.
아쏘 립스틱(Arceau Lipstick)이라고 매년 새로운 색상의 스트랩을 소개하는 여성 라인입니다.
화사한 핑크 립스틱을 떠올리게 만드는 스트랩인데 가죽 컬러가 정말 그러네요.
기존 모델에서도 신제품은 나왔는데 케이프 코드 GMT(Cape Cod GMT)입니다.
케이스백에는 에르메스의 심볼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그 외에 드레사지 크로노그래프, 클리퍼와 아쏘 라인에 스포츠 버전도 추가했습니다. 전체적으로 조금씩 라인업을 늘려가는 모양새입니다.
드레사지 크로노그래프(Dressage Chronograph)입니다.
클리퍼 스포츠(Clipper Sports)입니다.
마지막으로 에르메스의 또 다른 행보를 보여주는 야심작, 예거 르쿨트르와 손잡고 제작한 애트모스(Hermes Atmos)를 소개합니다.
이미 오래 전 에르메스는 자체 무브먼트 제조는 안되었기 때문에
예거 르쿨트르는 물론 바쉐론 콘스탄틴, 오데마 피게, 율리스 나르덴 등에서 제조한 무브먼트를 가져 왔습니다.
이는 시계 전문 브랜드가 아닌 주얼리, 패션 브랜드에서 해 온 수순이라 둘의 만남이 새로운 건 아닙니다.
예거 르쿨트르는 자체적으로 디자이너 마크 뉴슨, 그리고 크리스털 제작사인 바카라(Baccarat)와 손잡고 애트모스를 제작한 바 있습니다.
이번에 에르메스와 예거 르쿨트르가 만난 에르메스 애트모스는 생 루이(Saint-Louis)와 함께 제작했습니다.
한국에도 수입된 적이 있는 크리스털 회사로 18세기부터 시작한 크리스탈 업계에서 최고로 여겨지는 회사입니다.
언뜻 모양을 보면 골프공 모양입니다.
1930년대 이미 에르메스가 골프공 모티브로한 회중 시계를 개발하는 등 디자인면에서는 재미있는 시계를 이미 선보인 바 있습니다.
사진을 찾아보려니 이 사진뿐이네요.
(출처 http://home.watchprosite.com/show-nblog.post/ti-791513/)
아무튼 알려진 마구용품뿐 아니라 골프 관련 용품도 간혹 내놓은 적 있고 최근 공 모양의 탁상 시계를 내놓은 데 이어 이번에는 공모양의 애트모스까지..
라인업을 보강 및 강화하고 자사 무브먼트를 추가하면서 점점 흥미진진해지는 에르메스 시계 소식이었습니다.
사진 : Picus K, manual7, Pam Pan, Hermes Wat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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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진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