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화상통화를 하는데 너무 보고싶어서 눈물이 다 납니다.
앞으로 3주 지나야 만날 수 있는데, 정말 보고싶네요.
놀라셨을 것 같습니다만 저는 조금 애매한 정체성을 가졌습니다.
좋은 의미로는 '세계인' 이라 할 수 있지만,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가족을 이루고 있습니다.
저는 입양인입니다.
한국에서 이렇게 말하면 혀를 차며 안됐어 하시는데, 전혀 그런거 아니고요 즐겁게 잘 자랐습니다.
아버지는 1/4 독일인, 3/4 네덜란드인이고, 어머니는 1/2 프랑스인, 1/2 영국인입니다.
4개국어에 능통해야 하는데, 어려서는 독일, 프랑스에 살았지만 형제들 모두 영어학교에 다니고 영국으로 고등학교, 대학을 가서 슬프게도 영어 외엔 잘 못해요.
3살때 입양되었고, 3살 많은 쌍둥이 형 누나와 재미있게 살았습니다.
형이 싸움을 되게 잘해서 동양인이라고 놀리는 애들은 마구 때려줬어요.
저는 지금도 형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요.^^
부모님이 어렸을 때부터 한국인 유학생을 가정교사로 둬서 형제들이 다 한국말을 꽤 잘 하는데, 나중에 보니 경상도 사투리를 배웠습니다.
대학은 동양사를 전공하고, 한국에서 국문과 대학원도 다니면서 글쓰기를 많이 배웠어요.
원래 물건욕심은 없었지만, 럭셔리 업계에 관심이 있어서 대학때 인턴을 해봤고, 그 후 여차저차하여 럭셔리업계에 다시 뛰어들게 되었고, 중간에 경영대학원을 다니면서 마케팅을 배웠습니다.
결혼을 24살에 해서 18살인 큰애는 벌써 대학생, 16살인 둘째는 내년에 대학교에 갑니다.
아내는 싱가폴 출신 화교라서 아이들은 다 동양인이고, 특이하게 엄마 성을 따르도록 했어요.
부모님의 권유로 제 성을 중간이름으로 넣고 엄마 성인 Lu를 쓰고, 저도 Lu로 바꿨습니다.
입양인인 것이 언제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며 바꾸라고 하셨는데, 잘 한 것 같아요.^^
애들 학교때문에 다들 영국에 사는데, 사진의 아이는 제가 입양한 막내딸입니다.
저도 입양을 통해 좋은 환경에서 행복하게 살았으니까 한 명 입양해야 할 것 같아서 마음만 먹고 있다가 작년 봄에 입양했습니다.
동유럽 출신인데 친부모님 모두 생사불명이래요.
지금은 언니오빠, 엄마랑 영국에 가있는데 앞으로는 중국어가 중요하다고 중국 유치원에 다녀요.
그래서 사진의 친구들이 중국애들입니다.
입양 전에 받은 사진인데, 너무 사랑스러워서 지금도 매일 파일을 열어서 봅니다.
이때가 3살이었고, 지금은 4살 6개월이 되어서 아래처럼 숙녀가 되었습니다.
가족은 혈연도 중요하지만 함께 살면서 서로 아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생각해요.
입양을 하고보니 부모님께 더 감사하게 되고,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저희집은 형이랑 누나도 한명씩 입양한 입양 가족인데, 이젠 저도 그 대열에 동참했고, 아이들도 입양을 할 거라 믿어요.
아이들은 지금 모두 영국에서 학교를 다니고 아내와 막내딸도 영국에 가 있는데, 큰애들과 떨어져 있을 때보다 훨씬 힘드네요.
큰애들 보러 간 것도 있는데, 막내딸 학교 등록하러 갔어요.
The Royal School 이라고 5~18세까지 여자애들만 다니는 학교인데, 가을에 입학시킨다고 집 사야된대요..정말 극성엄마죠..ㅋ
혹시 입양인에 대해서 궁금한 점이 있으면 물어보셔도 실례 아니니까 괜찮습니다.
저도 한국에서 부모님 찾기를 몇 번 시도해 봤는데, 바구니에 담겨진 발견장소 외에 아무 자료가 없어 못 찾았어요.
그런데 인천의 화교들이 모여사는 동네에서 발견되었다는 것만 아는데..아내는 제가 화교일거래요.^^
직장에서도 저를 한국말 할줄 아는 화교로 알고 있어요.(제가 그렇다 한 건 아니고, 그냥 당연히 그런줄 압니다)
앞으로 예거 모임에도 나가보고 싶은데, 국문학을 공부한 덕분에 글로는 꽤 하고, 한국어 배운다고 언어학도 공부했는데 이론과 실제가 달라서 발음도 안좋고 말도 잘 못합니다.
영어로 말은 못해도 읽고 쓰는 것은 잘 하시는 분들 많잖아요..그런 상황입니다.
집에서는 영어만 쓰는데, 아내와 아이들은 중국어로도 대화하고, 싸울때는 각자 자기 말을 쓰기로 했어요.
그래서 아내는 중국말로 화내고, 저는 독어나 불어로 막 되는대로 아무 말이나 소리지르면 웃겨서 금방 풀려요.
한국어 서신이나 이메일 왕래는 많이 했지만 이런 커뮤니티에 들어와서 활동해본 것은 처음인데, 한국의 숨결이 느껴져서 너무 좋습니다.
진짜 제가 화교인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한국 인천이 제가 발견된 곳이니 한국 출신일거라 믿고 있거든요.
혹시 입양인이라는 것 때문에 커밍아웃으로 생각하지 마시고, 그냥 "저 제주도 출신인데 캐나다에 이민왔어요. 딸이 엄마랑 놀러가서 너무 보고싶어요."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저는 입양인의 비애나 혼란없이 '같이 사는 것이 가족' 이라고 배우면서 자랐거든요.
제 딸에 대한 평가도 부탁드리는데..무조건 예쁘다고 마시고 있는 그대로 솔직히 평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너무 보고싶어 죽겠어서 이렇게 뭔가 끄적이기라도 해야 할 것 같아요..아아아....ㅠㅠ
블랑팡에 대해서라도 써볼까요???
댓글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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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릿99
2013.03.11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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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천
2013.03.11 11:58
호를로스님은 정말 저를 포함한 회원님들을 여러번 깜짝 놀라게 해주시는군요!
까면 깔수록 숨어있던 더 큰 매력이 자꾸 뿜어져나오시네요 ㅋㅋ
좀더 까보면 더 많이 나올 것 같습니다 ㅋㅋㅋ
오래 계시면서 천천히 계속 까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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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를로스
2013.03.11 12:08
제가 양파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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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럿
2013.03.11 16:32
호를로스님 글솜씨는 한국어가 모국어인 대부분의 한국인들 보다 더 대단하신거 같은데 백그라운드를 듣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사진 올리신 막내 딸은 정말 예쁘네요. 빨리 다시 보고싶을거 같아요.
앞으로도 많이 놀래켜 주시고 좋은글 마니마니 써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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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세이코
2013.03.11 21:02
전 첫사진 보고 따님이 오른쪽 구석의 안경쓴 아인줄 알았습니다.. 국제유치원에 유명외국배우의 딸과 호를로스님의 따님이 친구란걸 자랑하시려는줄로 알았죠,,
밤에 타포 보고있는걸 탐탁치 않게 여기는 안사람한테 실례를 무릅쓰고 호를로스님의 이야기를 했더니 엄청난 관심!!!을 보이네요..좀 더 꼬시면 정모에도 나올 분위기 입니다ㅎㅎ 저도 글을 멋있게 쓸수 있으면 좋겠는데 제 느낌의 백분의 일도 전하지 못해 답답하고 아쉽네요..정말 멋있는 분이시군요 호를로스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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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를로스
2013.03.12 00:40
프랑스에도 한국출신 입양인들이 꽤 많고, 그 중 부유한 가정으로 입양되어 교육을 잘 받고 성공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저도 솔직히 오래전에 한국 방송사에서 취재요청을 받았는데, '입양인으로서의 고난' 을 극복한 성공사례 쪽으로 몰고가려 해서 거절했습니다.
성공한 입양인들은 한국 방송의 입맛에 맞을만한 슬픈 스토리를 갖고 있지 않아 국내에 방송될 기회가 적을 것입니다.^^
그리고 대부분 여성들(아내 친구들)은 저희 업계에 있는 사람과 만나는 것을 흥미로워하는데, 실제로 보면 실망 비슷한 것을 합니다.
부인께서도 비슷하시리라 예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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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메이라
2013.03.11 21:46
"입양" 이라는 단어가 다르게 보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단어의 개념이 바뀌는 순간이네요.
호를로스의 마음이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마지막 사진이 가장 예쁜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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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kstyle
2013.03.12 00:31
오랜만에 훈훈한 감동의 글 잘 읽었습니다^^ -
밸런스휠
2013.03.12 02:05
이곳에서 이런 가슴 따뜻해지는 글을 읽게 될 줄이야.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입양이라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일텐데 용기 있고 훌륭하신 결정에 존경심을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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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전한
2013.03.12 09:55
여러모로 많은 생각을 가지게끔 해주신 내용이네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행복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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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크상
2013.03.12 13:08
아 전 아들만 둘인데 따님이 너무 이쁘군요. 사랑하고 이뻐하는 마음이 너무 잘 느껴집니다. 저도 아직 어린 아들 두녀석이 조금더 크고 저의 상황역시 나아진다면 입양을 생각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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션군
2013.03.12 15:10
훈훈한 글 정말 인상깊게 읽었습니다..
저도 입양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해본 적이 있기에 더욱 그런 것 같네요..
혜성같이 등장하셔서 매일 엄청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시는 호를로스님..
타포에 오신 걸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더불어 다양한 관점과 가슴 따뜻한 얘기를 들려주셔서 감사하구요..
사실 전 예거동은 방문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었지만..(아직 예거 모델들두 경험해보지 못했습니다..ㅠ)
요즘 자주 들르면서 예거의 분위기에 젖어들게 되었습니다..
자주 오셔서 좋은 글들 남겨주시길 바라며..
예거동 뿐만 아니라 다른 브랜드 포럼에서두 뵙길 기대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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션군
2013.03.12 15:26
참 따님에 대해서 한 말씀 부탁하셨는데요..
두번째 사진(입양전 사진)은 사실 다소 무표정해서 이쁘지만 인형같은 느낌인데 반해..
첫번째 사진은 장난기가 엿보이는 귀엽고 예쁜 여자애의 느낌..
그리고 세번째 사진은 저두 모르게 미소가 지어지는 사랑스러운 꼬마공주의 느낌이네요..
호를로스님과 부인분을 비롯한 가족들의 아이를 향한 사랑과 마음이 고스란히 투영되어 발현된 느낌이라고 하면..
오버이려나요.. ㅋ
정말 많이 보구 싶으시겠어요..
담엔 아빠 품에 안겨 환하게 웃는 따님의 사진 기대해두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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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를로스
2013.03.12 23:36
확실히 처음하고 많이 달라졌습니다.
뽀뽀하고 놀다보면 사진찍을 생각을 못해서 같이 찍은 사진이 거의 없는데, 앞으로는 같이 찍어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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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기매냐은식~
2013.03.12 17:50
제 둘째 형이 불임 부부라서 딸 둘을 입양해서 삽니다..
목사님인데 형수가 고생은 지지리하면서도 애들은 정말 사랑하며 살지요..
할아버지때부터 아들들만 줄줄 나오는 우리 집안 내력때문에 딸 둘 데려와서 사는데 너무 부럽더군요. ㅎㅎ
집안 내력답게 저도 첫째가 아들이라..둘째가 고민됩니다. 흠~
그나저나.. 아이가 보고싶으셔서 어쩐데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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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를로스
2013.03.12 23:38
서구사회와 달리 동양에서는 전통적 인식때문에 입양이 쉽지 않을텐데, 훌륭한 형님과 형수님이시네요.
한국에서 입양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바뀌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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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궁
2013.03.15 00:31
좋은글 잘보고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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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닉
2013.03.15 01:07
말그대로 가슴이 따스해지는글이네요.
애기들은 항상 이쁩니다 -
源の神風
2013.03.15 01:15
적지않은 나이임에도 이래저래 결혼을 미루다보니
입양에 대한 부분도 생각했더랬습니다만.... 싱글인 경우에는 쉽지 않은 현실이더군요.
아쉬운 마음에 후원을 하고 있긴합니다만
살갑게 마음 전하고 싶은 부분은 어찌할 도리가 없더라구요.
이런 글을 읽으면 참 만감이 교차합니다.
반갑고 언제 오프에서 뵐수있으면 참 기쁠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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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닉
2013.03.15 01:16
아....참고로 대한민국 국적법상 호를로스님은 출생과 동시에 대한민국국적을 취득한 대한민국국민 맞습니다. -
dbgksduf
2013.03.17 07:28
차분하고 논리적인 글솜씨에 놀라고
호를로스님의 형편에 놀라고
예쁜 딸아이를 보면서 또 놀랍니다
(애독자로부터...) -
Hyde
2014.03.26 17:42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글입니다.
아....아이 사진에서 환한 미소가 ^^...저정도면 안보고 싶을래야 안볼수가 없을정도로 사랑스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