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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의도하긴 커녕 예상도 못한 방향에서 자꾸 글이 올라와 일단 제가 예거 스틸 마스터컨트롤의 구매자임을 밝힙니다.

 

1. 나의 첫 고급시계 예거

 

저도 700만원 정도 주고 예거 마스터 스틸 모델을 구입한 사람입니다.

돈 몇푼에 자존심을 팔기 싫어 리치몬트에 부탁하지 않고 직접 매장 몇 곳을 돌면서 할인받고 샀는데요,

수천만원의 시계를 무심하게 집어들 구매력은 아닐지라도, 큰 고민없이 하이엔드의 엔트리 정도 붙들 수 있는 여유는 있어서 처음엔 바쉐론을 하나 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거 매장 직원들이 "바쉐론도 좋은데 우리것도 싸고 좋아요" 라고 설득해서..직업정신을 살려 비슷한 기능에 싸고 좋은 예거를 샀습니다.

 

처음부터 예거의 고급시계를 구매하신 분들과 엔트리를 구입한 저의 소비자로서의 느낌에는 큰 차이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만, 예거 직원들은 IWC나 롤렉스를 언급하면서 시계구입이 처음인 제게 친절히 안내해 주었습니다.

바쉐론이 상위브랜드라는 것을 주지시키며 "상급의 바쉐론보다 가격은 훨씬 싸면서 품질은 크게 못하지 않다!" 는 판매전략이 저를 붙들었던 것입니다.

 

 

2. 내적 혼란과 자기부인

 

당시에는 시계에 관심이 없이 하나 필요해서 산 것인데, 구입후 관심이 급증해 이것저것 뒤적이다보니 "젠장, 바쉐론 살걸!" 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러면서 마음속에는 "예거가 바쉐론보다 못할 것도 없지!" 라는 영양가없는 자기위안이 시작되더군요.

자기위안이 계속되다보니 "예거는 바쉐론과 경쟁하는 브랜드야. 듀오미터를 봐, 얼마나 훌륭해!" 라는 인위적 만족과 함께 "바쉐론보다 예거가 매출이 많으니 좋은 브랜드지. 조만간 예거가 시계업계를 평정할거다!" 라는 자기최면에 빠졌고, 마음은 혼란의 도가니가 되었습니다.

 

그 후 바쉐론과 예거의 실적을 담은 자료를 손에 넣었으나 도저히 열지 못하겠더군요.

제가 상상하던 것과 다른 양상을 보이면 어쩌나 하는 마음을 '보나마나 예거 압승' 이라는 거짓 믿음으로 가리면서 버텼습니다.

 

 

3. 나는 모순덩어리

 

그런데, 제 성격이 이상한건지 일하는 내내 그 파일 생각만 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고, 결과는 '모든 지표 바쉐론 압승!' 이었습니다.

 

이후 이틀정도 공황상태가 왔습니다.

주말을 겪으며 마음을 추스리고 교회에서 기도도 하고 나서 새로운 마음으로 두 브랜드를 비교해보니 제가 오래 전부터 바쉐론과 예거의 상황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좀 더 러프한 자료이긴 했지만 바쉐론 살까 하는 마음이 들고 나서 리치몬트 시계쪽 자료를 열심히 봤거든요.

다 알았지만 한순간 "내가 가진 브랜드가 나의 사회적 레벨이다." 라는 오류에 빠졌던 것입니다.

 

 

4. 모든 것을 받아들인 후련함

 

이런 일련의 과정을 겪으며 소비자의 마음을 심각하게 느끼게 되었고, 이에 더하여 전자제품으로 한방 더 먹고 나서 "예거 시계가 정말 싸고 좋은 시계구나!", "이런 것이 진짜 경쟁적인 럭셔리 브랜드지!" 라는 건강한 만족감을 얻고나서 시계보러 드나들던 타임포럼에 용기를 내어 글을 올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생각해보니 제가 예거의 판매자에게 설득된 부분은 '상위 브랜드인 바쉐론보다 싸고 품질은 크게 못하지 않다' 였음이 새삼 기억났습니다.

판매자와 저 모두 합의한 내용을 왜 부정했던 것일까요?

 

답을 잘 모르겠어서 그냥 직업병의 일종이었다고 결론내렸고, 일반 소비자들도 그런 오류에 빠지리라는 것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5. 결론

 

제 경험과 타임포럼에서 논의되는 내용들을 보며 새로운 '소비자의 약점'을 알게되었고, 앞으로 적극 활용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포럼에 글을 올리면서 어느덧 초심과 달리 소비자가 아닌 판매자의 입장에 서게 되어서 공부는 되었지만 재미는 좀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자해지의 마음과 함께 소비자로서의 제 마음을 나누고자 일련의 과정을 적는 것입니다.

 

소비자들이 마켓의 분리와 브랜드의 서열에 대해 당연히 받아들인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고,

저의 혼란기 마음과 비슷한 마음을 가진 분들도 있다는 것에 만족감과 안도감, 신기함 등이 어우러진 묘한 감정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물론 저는 직업병 때문에 강한 폭풍혼란을 겪었으나, 다른 분들은 이정도까지는 아니시겠지만요.

 

어쨌거나 여러분들 덕분에 저도 많이 배워가면서, 브랜드서열 논쟁을 통해 기억이 되살아나며 혼란스러웠던 마음의 앙금이 아직 남았음을 발견하기도 했으며, 이젠 그 앙금마저 훌훌 털어낸 것 같습니다.

이런 내용을 적고나니 냉정한 판매자인 척 하지만 실은 편협하고 용렬한 소시민이었음을 스스로와 많은 분들께 들키는 것 같아 부끄럽습니다.

그래도 잠시나마 예거빠 였고, 지금은 건강하게 예거를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이라 여겨주시면 좋겠고, 부끄러움에도 불구하고 예거팬들과 함께 건강한 '팬심'을 누리고자 함을 알아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모적인 브랜드 서열 논쟁은 이걸로 종지부를 찍고, 댓글로도 그런 내용은 삼가해주시기를 강력히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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