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clusivity.
배타성, 특권층만이 누릴 수 있는 고급스러움 등으로 해석될 수 있는 이 단어야말로
현대 고급 기계식 시계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흐름을 가장 잘 표현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많은 매니아들은 나름대로의 서열을 머릿속으로 그려놓고 한단계라도 더 위로 올라가
남들과 구별되기 위해 안간 힘을 쏟으며, 타브랜드 오너들은 소유할 수 없는 '자사무브'가
들어간 시계를 소유하기 위해 비싼 비용을 지불하기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처음 보는 버전 아니신가요? 최신 버전입니다 ㅋㅋ 제가 만든건 아니니 부디 재미로만 봐주시길..)
포럼에서는 에보슈를 사용하여 고가의 시계를 만드는 제조사들에 대한 성토의 목소리가 끊이질 않구요.
(포러머들한테 성토당해서 저렇게 되신건 아니겠죠? ^^;)
이러한 exclusivity를 추구하는 것은 소비자 측 뿐만이 아닙니다.
각 브랜드들은 '타브랜드와 다를게 뭐야?' 라는 인식에서 조금이라도 멀리 벗어나기 위해
남들은 안쓰는 '자사무브먼트'를 개발하는 데에 사활을 걸고 덤벼들고 있습니다.
세월의 검증을 받은 에보슈를 가져다가 아름답게 수정하여 그들만의 개성미 넘치는 시계를 만들어내던 것이야말로
스위스 고급 시계의 '전통'이었음에도, 가장 전통적이라는 하이엔드 브랜드들 마저도,
겉으로는 태연한척 하지만 사실은 굉장히 열심히, 사용하던 에보슈들을 단종시키고
모든 시계를 자사무브화 하기 위해 발에 땀이 나도록 뛰고 있구요.
이러한 시류를 조금 일찍 읽고서 한발 빠르게 움직였거나,
이런 흐름에 포커스를 잘 맞춰 적확하게 후발주자로 뛰어들었다거나
한 브랜드들 정도 되어야 그나마 여유가 좀 있어보이는 형국이랄까요.
아직도 대부분의 시계를 에보슈를 수정해서 만들고, 자사무브라고 하는 것도 여전히 타브랜드에도 들어가는
르마니아 계열을 사용하는 브레게는, 어떤 매나이들에게는 마치 '시계 껍데기만 만들줄 아는 회사' 라는 식으로
뭇매를 맞습니다. 이런 행보는 '전통의 수호'라기 보단 '시대에 뒤떨어짐'으로 받아들여지기 일쑤입니다.
(모든 자사무브가 피게71보다 '더 좋은' 무브인것 만은 아닐텐데...)
사실 저 스스로도 이런 exclusivity의 추구 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면서도,
(좀더 정확하게는, 비슷하면서도 분명히 다른 originality를 추구합니다만 ㅋ)
저는 exclusivity가 왠지 모르게 좀 싫습니다. 정확히 표현해내기 쉽지않은 어떤 거부감 같은 것이 듭니다.
'이 시계는 왜 좋아?'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실제 더 자세한 지식이 있든 없든 간에 무심코,
'이 시계는 ㅁㅁㅁ(브랜드)이라서 좋아. 너는 잘 모르겠지만.'
이라고 대답해 버리게 될 것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그런데 이런 exclusivity 에서 한걸음정도 물러나 있는 듯한 이레귤러한 브랜드가, 재미있게도 그 어떤 브랜드들보다도
exclusivity를 치열하게 추구해야 할 것만 같은 위치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추가적인 노력 없이도 태생부터가 100% 인하우스화 되어있고,
무브먼트의 성능은 말할 것도도 없거니와 역사와 전통, 새로운 기술력까지도 어느하나 빠질 것 없고
컴플리케이션 분야에서는 이미 최고의 수준을 갖추었다는 표현도 전혀 부족하지 않을 브랜드,
몇몇 하이엔드 브랜드의 고급 컴플리케이션은 아직도 태반이 이 브랜드의 에보슈를 베이스로 하고 있고,
단순히 사용되는 수준을 넘어 이 에보슈는 '배타성'만 보장된다면 자기들이 스스로 개발한 무브보다
더 좋은 무브임을 타브랜드들이 가격으로 스스로 증명해주고 있는..
(스위스 시계 학교 무브 교육에 쓰인다는 jlc cal. 920)
그런 브랜드임에도,,
진입장벽은 스틸 스포츠시계 제조사 수준까지 내려와 있고,
금이 아니고서는 허용되리라 생각하기 힘든 수준의 컴플리케이션도 스틸로 턱턱 만들어줍니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세간으로부터 자신보다 낮은 곳에 포지셔닝 되어있는 것으로 평가받는 브랜드들에도
에보슈를 꾸준히 공급해왔고, 지금도 여전히 공급하고 있습니다. 이 에보슈를 공급받아 장착한 브랜드의 특정 모델은
그 브랜드의 최고급 모델이 되거나, 때로는 역사에 남을 먼치킨 모델로 기록되어 두고두고 회자되기까지 합니다.
남들은 갖지 못하는 나만의 것. 배타성을 그 본질로 하는 exclusivity.
이런 시장 전체를 흐르는 시류와는 무언가 분명히 다른 예거만의 독특한 행보를, 저는 mercy 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스스로에게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여 최고를 추구하고 그에 걸맞는 능력을 갖추되
그 가치를 배타적 독점이라는 수단을 통해 견고히 하는 것이 아니라
아래든 위든 구분없이 나누고 공유하고,,
그럼으로 인해 내 가치가 내려가는게 아니라
남의 가치가 올라감을 경험하는.. 그런 브랜드.
이런 방향성이, 제가 평소 추구하는 가치와 너무도 닮아 있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기에, '추구'합니다 ㅠ).
그래서 제가 이렇게 예거를 좋아하는가 봅니다.
(어떤 회원님 말씀대로, 브랜드 로열티가 대단하네요. 제가 봐도요 ㅋㅋ)
그건 다 돈을 좀 더 잘 벌기 위한 포지셔닝에 불과한 것이 아니냐, 돈벌기 위한 수단에 너무 놀아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
아주 틀린 말은 아닐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이런 시각으로 전부를 바라보게 되면, 결국 시계시장 전체를
다 부정하는 것 밖에는 되지 않겠죠.
스포츠에서 이타적인 플레이 (예를들어 자신의 득점보다는 어시스트에 더 집중하는)를 하는 선수를 두고서
'저것도 결국 다 어시스트로 자기 스텟 쌓아서 연봉 더 올리려고 하는건데 뭐.' 라고 치부해버린다면
도대체 무슨 재미로 스포츠 경기를 관람할까요. 다른 선수를 살리고 팀을 살리면서 자신도 마음껏 활약을 뽐내는
그 선수의 플레이가 좋으면 그냥 그 자체로 열광하는 거죠.
궁극적인 목적은 좀더 오래 살아남으면서 좀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한 것이어도 좋습니다.
그냥 저는 예거가 지금 걸어가고 있는 이 길이 마음에 듭니다.
누가 저에게, 평생 예거의 시계를 소유할 것인가 하고 묻는다면 솔직히 자신있게 yes라 대답하기는 힘들지만,
최소한 어떤 형태로든 '예거로 인해 그 가치가 올라간 시계'는 하나 이상 반드시 소유할 것이라는 데에는 어느정도 확신이 생기네요.
기계식 시계의 세계를 떠나지 않는 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