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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님이 올리신 자넷잭슨의 결혼식 이야기를 보니 인상깊었던 결혼식이 기억나네요..

 

자넷잭슨이 500명으로 제한된 인원을 초대하는 것처럼 한국에서도 초대장을 받은 사람만 들어갈 수 있는 결혼식이 간혹 있습니다.

연예인이나 재벌 등 가십거리가 될 만한 사람들의 결혼식은 대체로 그렇고, 정치인이나 경제인 중에서도 이런저런 이유로 하객을 제한하고 취재를 금하는 경우가 있지요.

 

제가 결혼하기 전의 일이니 아마도 2005년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당시 비리 혐의를 막 벗은(의혹은 여전) 정치인의 자녀와 역시 경제사범으로 한 번 감옥까지 다녀오신 분의 자녀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저는 잘 모르는 사람들인데,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중요한 결혼식이 있는 관계로(실은 가기 싫으셔서ㅋ) 부모님이 참석하실 수 없어 제가 대신 가게 되었습니다.

"들어갈 때 사정을 잘 말하고, 결혼식 끝날 때까지 앉아있다가 인사하고 와야한다."

 

들어갈 때 사정을 잘 말씀드리고(물론 다른 결혼식이 있다고 하지 않고 거짓으로..ㅋ) 자리에 앉았습니다.

혼주들이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만한 정도의 유명인은 아니지만, 스캔들중인 사람들이어서 그랬는지 하객 제한은 물론 취재까지 금하더군요.

무겁고 지루한 분위기에 친구도 없이 혼자 있으려니...담배 생각이 간절히 났고 주례사는 자장가로 들렸지요..

어느덧 제 몸은 의지와 무관하게 호텔 밖으로 나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습니다.

마음속은 갈등으로 꽉 차 있었지요...'그냥 집에 갈까? 가고싶다..ㅜㅜ'라는 마음으로...

 

 

담배를 두 개 째 무는 순간 어떤 아가씨가 "안녕하세요" 하더군요.(외모는 그닥)

"결혼식 손님이시죠?"

"네."

"혹시 그만 보고 가시는 중이세요?"

"왜요?"

"그냥 가실거면 그 스티커 저 주시면 안될까요?"

 

결혼식 들어갈 때 하객의 옷깃에 스티커를 붙여 표시를 해줬는데, 그 스티커를 붙이고 하객인 척 들어가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명함을 주는데 보니 처음보는 언론사 기자더군요..(인터넷 찌라시였던 것 같은데 그쪽을 잘 몰라서..)

나중에 식사를 하네 어쩌네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다가 제가 무표정하게 대답도 하지 않고 담배만 피우고 있었더니...

"10만원 드릴께요~"

하더군요!

 

10만원...별거 아닌 돈이라 할 수도 있지만 별 상관도 없는 결혼식 스티커를 10만원이라면...

알겠다고 하려다가 민망해서 잠시 머뭇거리는데..

"30만원 드릴께요. 더는 못드려요..."

아..이게 웬일입니까! 너무 받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할지...

 

제 표정을 살피던 그 기자는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서 막 세더니 '제발 도와달라'고 애원하더군요.

저는 너무 민망해 주위를 일단 살핀 뒤 일단 발렛파킹 맡긴 차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차가 나옴과 동시에 도망치듯 30만원을 손에 쥐고 옷깃의 파란 스티커를 그녀의 손에 넘겨주었습니다.

 

 

차에 타서 조금 가다가 문득 한가지 생각이 났습니다.

남자는 파란색, 여자는 빨간색 스티커를 붙여줬었는데...그 기자는 여자...

미안하긴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ㅋㅋ

 

 

결혼식이 순수한 혼인 이상의 여러 의미(?)를 담은 하나의 이벤트가 되었기에 그런 해프닝도 생겼던 것 같습니다.

결혼은 정말 중요하지만 예식의 형태와 축의금, 화환, 하객의 숫자와 질(?) 등 신경써야 할 불필요한 요소들도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특히 간혹 볼 수 있는 자신의 화환을 눈에 잘 띄는 곳에 놓으려는 하객의 행태는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진심이 담겨야 할 축가를 위해 혼인 당사자와 일면식도 없는 가수나 전문 연주팀을 부르는 것도 그렇고..

때로 축의금을 받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경우 오히려 "돈 많다고 자랑하냐? 재수없다."는 욕도 많이 먹습니다.

애매한 사이의 경우 청첩장을 안 보내면 서운해하거나 무시한다 생각하기도 하고, 보내면 '이럴때만 돈내러 오란다'며 언짢아하기도 하고...

 

아이를 키우다보니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는데, 제 아이는 간소한 결혼을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두세시간 쓰고 버릴 화환이나 하객 숫자는 특히...

거품은 시계가 아닌 결혼식에서 먼저 빠져야 할 것 같네요..^^

 

 

P.S. 쓸데없이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역시 결혼 문화에 대해 뭐라 할 만한 자격이 없는 사람이고, 요즘 결혼식에 대해 비난하고자 할 의도는 없으니 혹시라도 기분나쁘신 분이 계셨다면 오해였으며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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