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둘째가 생겼습니다. 애낳고 산후조리 하던 마나님께서 뜬금없이 큰애 데리고 여행 다녀오면 어떻겠냐고 하더군요. 산후조리를 좀 조용히 해야 하는데 큰애가 처갓집에 오래 있으면 심심할 것 같기도 하고 저도 근질근질할 것 같다며. 생각없이 오케이 한것이 일의 발단이었습니다.
우선 장소를 물색했습니다. 겨울의 동남아는 표가 비싸도 너무 비싸더군요. 패스, 중국과 일본이 후보에 올랐는데 중국은 표는 싸지만 좀 무섭기도 하고 추울 것 같았습니다. 그나마 가본적도 있고 기온도 적절한 간사이 지방이 물망에 오릅니다. 오사카-교토-고베를 잇는 관광의 명소죠. 먹을거리도 많습니다. 간사이 사람들은 먹어서 조진다 끝을 본다는게 괜히 나온 말이 아닙다.
[예행연습 삼아 먹은 모스 버거의 오코노미야끼 버거. 괴랄한 맛입니다]
가도 그만 안가도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막판까지 표를 구하는 걸 미뤘습니다. 그랬더니 가격이 세금 포함해서 32만원까지 떨어지더군요. 제주항공 최고예요. 그렇게 표를 구하고 동선 파악과 호텔 예약을 합니다. 아이가 있으니 호텔은 확실하게 구해야 합니다. 아니면 길거리에서 노숙자 코스프레를 해야할 신세. 겨울에 그러면 곤란하지요.
저는 호텔패스라는 사이트와 익스피디아, 아고다. 이렇게 세군데를 즐겨 이용합니다. 호텔패스가 제일 싼가 싶었는데 익스피디아가 좀 더 싼 경우도 있더군요. 혹시 여행 갈때 호텔 예약하실 분들은 같은 호텔 같은 기간을 이 세군데에 크로스체크 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예약이 되고 안되고 가격이 싸고 비싸고.. 각자가 다릅니다. 예를들어 이번 여행 같은 경우 오사카의 호텔은 익스피디아가 훨씬 싸고 예약도 잘 된 반면.. 고베쪽은 호텔패스가 선택의 폭도 넓고 예약도 잘되더군요.
항공과 호텔 6박예약에 100만원 정도가 들었습니다. 12월 20일부터 26일까지 6박 7일. 비행기표가 그렇게 밖에 안구해져서 어쩔 수 없었는데요. 음.. 시간을 되돌릴 수 없지만 가끔씩 무슨 생각으로 그랬을까 하고 돌아보게 됩니다. ㅎㅎㅎ
아이 데리고 여행 가는 걸 무슨 대단한 용기나 기술이 필요한 걸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신데.. 사실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그냥 여행이 주는 즐거움을 다 포기하고 아이에게 집중하면 되는 일이죠. 애가 뭘하고 싶은지.. 뭘 먹고 싶은지, 컨디션은 어떤지.. 등등. 그러면 여행은 왜 가냐구요? 그러게 말입니다. -_-;; 해병대 캠프 일주일가는 느낌으로 가시는 겁니다. 시간은 지나가게 되어 있고 언젠가는 여행도 끝이 나는거죠. 그러면 인생이 좀 더 쉬워집니다. 음..
사실 오사카로 여행 장소를 잡은 이유중에 가장 큰 건 아시아 최대규모의 수족관인 해유관(가이유칸)이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평소 물고기를 좋아하는 아이의 취향을 고려한 것이죠. 돌이 되기도 전에 다녀오긴 했지만 그건 정말 기억이 안날테니.. 다시 한번 가볼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오사카 2박, 고베 2박, 다시 오사카로 돌아와 2박 하는 일정을 잡았습니다. 고베에 대해 기대가 컸고.. 맛있는 음식도 좀 먹고 온천도 하고 나라에도 가려고 계획을 짰지요. 그리고 다하고 오긴 했습니다. 마치 무슨 퀘스트 뛰는 용사 캐릭터 같은 느낌이었지만 말이죠.
출발하면서 찰칵
애랑 전철로 김포공항까지 갑니다. 그리고 비행기로 슝~ 제주 항공에서는 빵하고 주스를 주더군요. 그게 어딥니까.
도착하자마자 호텔로 가는 전철에서 집에 언제가냐고 칭얼대던 녀석이 호텔에 도착하니 안면을 바꿉니다. 일본에는 여러번 왔지만 이 호텔이 제일 좋은 곳이네요. 난카이선 난바역과 바로 붙어있는 스위소텔 난카이입니다. 4성급인데.. 시설이며 전망이 끝내주더군요. 멋진 야경은 마음을 두근거리게 합니다. 아이든 어른이든 말이죠.
저녁먹고 간식으로 사온 먹거리들, 일본 편의점에는 없는게 없습니다.
멋진 야경을 보다가 고개를 돌리니 아이는 아빠랑 숨바꼭질을 하자고 하네요. 음.. 뭔가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잠시 듭니다.
이런 야경이라면 역시 미녀 아내가 옆에 있어야 그림이 되는것일진대 옆에는 이제 겨우 똥오줌 가리는 코찔찔이가 있다니..
나름 분위기 잡는 아들 녀석을 보니 이거 크면 여자 깨나 울리는 물건이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기도 합니다. 지가 무슨 잠옷 모델이라고. 호텔에 비치된 아이용 잠옷을 입혀봐도 아이에게는 한참 큽니다. 저정도 크면 여행 데리고 다니라는 의미겠지요. 하하하. 그러게요. -_-;;
아침이 밝았습니다. 커튼을 열고 잤더니 일출에 잠이 깹니다. 제 인생에서 손으로 꼽을만한 일출입니다. 이걸 잠자다가 보다니. ㅎㅎㅎ
아침이 밝아오는 거리.. 이 쪽이 난바 파크스라는 복합 개발 단지가 보이는 뷰입니다.
어제 사온 컵라면으로 아침을 때웁니다. 무슨 메밀국수네요. 스프만 네종류, 그중에 액상이 두개..
식어버린 만두도 넣고 먹으니.. 제법 전문점에서 만든 남방 소바 맛이 납니다. 가격은 제법 비싸지만 맛이 그럴듯한게 일본 라면의 특징이죠.
우리가 묵은 스위소텔 난카이. 밖에서 봐도 먹어주는 호텔입니다. 좋은 호텔이 사실 여행의 큰 요소를 차지하지요.
아직은 아빠나 아들이나 힘이 있습니다.
하카다에서 비롯한 돈코츠 라면의 명가 잇푸도가 호텔 근처에 있습니다. 안가볼수가 없지요.
이 집 라면 먹으러 헤매던 기억이 주마등처럼 떠오릅니다. 그때는 우는 애를 매달고 먹었죠.
근데 어째 아드님 표정이 심상치 않네요. 먹는둥 마는둥.. 뭐가 기분이 안좋은지.. 자꾸만 나가자고 합니다. 흑흑..
결국 맥도날드로.. 귀국할때까지 하루 걸러 한번은 맥도날드의 해피밀을 먹습니다. 하.. 한국에서도 잘 안가는 맥도날드. 그래도 포켓몬 장난감을 주는 건 좋더군요. 저런 장난감이 자꾸만 쌓입니다.
애를 굶길수야 없으니까요.
생각이 나서 벽시계도 하나 찍어봅니다. 위블로 벽시계네요.
호텔에서 나와서 가이유 킷푸라는 티켓을 하나 샀습니다. 일본은 아시다시피 교통 요금이 비싸죠. 하지만 3살 미만의 아이는 교통요금 면제. 왠만한 시설의 입장료도 면제입니다. 그래서 이건 하나만 사면 되지요. 2천엔이 좀 넘는 금액인데 가이유칸 입장료가 원래 2천엔입니다. 오늘은 가이유칸에 갔다가 하루종일 지하철을 타고 돌 생각입니다.
마치 그림같은 펭귄 친구들.
물속에 들어가면 아주 물찬 제비가 따로 없네요.
돌고래쇼를 놓친게 못내 아쉽습니다. 끝무렵에야 겨우..
저만큼 아쉬운 사람들이 돌고래가 물마시는 거 구경하네요.
이 수족관은 거대 수조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오키나와에 있는 것보다는 평면에서 밀리지만 높이로 따지자면 거의 3층 높이에 육박하는 거대 수조안에는 고래 상어도 있습니다. 가이유킷푸에서 보듯이 수족관의 마스코트요. 아이콘이죠.
기도하듯 한곳을 보는 물고기들은 밥주는 사람을 기다리는 겁니다.
수족관은 언제 가도 마음이 차분해지고 신기하니 좋습니다.
고래상어가 등장했네요. 귀엽습니다.
의외로 대가리가 작다는 느낌..눈이 앞쪽으로 몰렸습니다. 고래는 포유류인데 고래 상어는 어류입니다. 아마도 제일 큰 어류가 아닐까 싶군요.
고래 상어가 작아보일만큼 수조가 크죠. 중간에 정어리떼로 형성된 피쉬볼이 보입니다.
크리스마스 기념..산타의 서비스
이 한장면을 보려고 계획한 여행이 여차저차해서 일주일짜리 장기 탁아가 되어버렸다니.. 역시 일의 시작과 끝은 영 달라질 수 있는겁니다. ㅎㅎ
우리 큰 아들은 이런거 참 뚫어지게 잘 봅니다. 아이답지 않게 말이죠. 커서 횟집을 하거나.. 동물학자가 되지는 않을까요? 일식 주방장이 될수도 있을듯.
해파리, 역시 식재료죠.
종류가 많기도 합니다. 노무라 입깃 해파리가 제일 무섭다고 글로 배웠습니다.
마치 인테리어의 일부같은 해파리
키워보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0.5초 정도? 죽으면 냉채 해먹으면... 안...될까요???
수족관 구경을 마치고 뭔가 걸려있어서 가봅니다. 원피스 전시회를 하네요. 만화 원피스에 관련된 원화나 기타 등등의 전시회인 모양입니다.
공짜인줄 알았더니 수족관 구경보다 비싸요. 당연히 패스~
덴포잔을 떠나 미리 가이드북에서 봐둔 우메다로 향합니다. 거기엔 향고래가 있지요.
넘어져도 빈손으로 일어나지 않는 우리 태이군은 벌써 장난감 하나를 획득했습니다. 고래 상어를 사주려고 했더니 펭귄을 고르더군요. 여행내내 안펭귄이라는 애칭을 지어주고 자기 동생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난데없이 자식이 셋이 되어버린..
우메다는 오사카 북쪽 지역의 중심지입니다. 신촌쯤 되겠네요.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HIP5라는 곳은 거대한 고래 조형물로 유명합니다. 태이와 제가 좋아하는 향고래죠.
겨우 백화점에 매달아놓은 조형물을 보러 온거냐?? 하시면 아이와의 여행을 할 자격이 없습니다. 아이가 보고 싶어하는 건 이런거거든요. 중간에 도톤보리의 카니도라쿠라는 게 전문점에서 손을 흔들어주던 왕게도 참 좋아했습니다. -_-;;
아마도 실제크기대로 제작되었을것 같은 향고래는 박력이 훌륭합니다. 색상만 빼면 나무랄데가 없군요. 눈까지 표정이 살아있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향고래는 포유류중에서 가장 깊이 잠수하는 잠수 챔피언입니다. 최고 2000미터의 심해까지 30분만에 잠수하지요. 잠수해서 뭐하느냐 하면 사냥을 합니다. 이 멋진 녀석들의 먹잇감은 심해저에서 사는 대왕 오징어구요. 저 날카로운 이빨과 뾰죽한 주둥이는 대왕 오징어를 잡기 위해 진화해온 결과물입니다. 평소 동물의 왕국 향고래편을 태이랑 같이 스무번쯤 보다 보니 저도 아는척 하게 됐습니다.
아기고래는 귀엽군요. ㅎㅎ
고래 구경을 마치고 밥먹으로 왔습니다. 태이를 생각해서 돈까스를 시켰는데..
가게 이름을 보아하니.. 이집도 내공이 좀 있는 집인듯.
비쥬얼이 훌륭합니다. 돈까스도 좋지만 밥이 진짜 끝내주는군요.
보기만해도 먹음직스러운 돈까스.. 하지만 태이군 입맛에는 안맞나 봅니다. 이렇게 맛있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결국 제가 다 먹었지만 코로 먹었는지 입으로 먹었는지 생각이 잘 안나죠.
유모차에 태이를 태우고 다니며 이런저런 장식 구경도 하고
명절 분위기를 좀 느껴봅니다. 하지만 도시의 분위기는 다 비슷비슷한거죠. 이틀차를 마치고.. 다음날 고베로 이동하면 달라지겠거니.. 생각을 해봅니다.
호텔로 가기전 커피 한잔과 빵을 시켜놓고 태이와 나눠먹습니다. 빵은 태이도 좋아하고 잘 먹는군요. 확실히 일본 빵집이 맛있기는 합니다. 21일 저녁을 뒤로하고.. 이제 아침에 일어나면 고베로 넘어갈 시간. 예약해놓은 호텔은 치산이라는 비즈니스 호텔 체인인데 고베는 스쳐지나간 기억밖에 없어서 슬슬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행은 준비가 살짝 모자라야 재미있는 법. 짐을 대충 정리하고 잠자리에 듭니다. 다음에는 고베 풍경과 아리마 온천 이야기를 들려드리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