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퍼스로의 여행, 일곱번째
두시간동안 쓰다가 날렸던 전적이 있어서 이번에는 진짜 짧게 써보렵니다. 날아가기 전에 말이죠.
[뼈아픈 고백]
뷔세가 떠나고 함디 챠티가 맡은 이후의 오퍼스 시리즈는 내외부적으로 저런 상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해봅니다. 아우라가 꺼진거죠. 하지만 오퍼스 6에 이어 꾸준하게도 오퍼스 7을 만들어낸 함디 챠티. 2007년 바젤에는 오퍼스 7이 공개되었습니다.
[오퍼스7의 아이디어 스케치, 왼쪽의 옆면 두께를 눈여겨 보시길]
새로운 오퍼스의 아버지는 안드레아스 스트렐러 르노앤파피공방에서 수련한 당시 나이로 36세인 비교적 젊은 장인이었습니다.
오퍼스 7의 아이디어는 간단하면서도 혁신적입니다. 크라운을 감싸고 있는 트리거를 눌러서 시간과 분, 파워 리저브를 나타냅니다. 그리고 무브먼트를 구조적으로 아름답게 훤히 드러나게 만든다는 것이죠.
그리고 성인이 된 여러분들께서 잘 알고 계시다 시피 가장 단순한 것이 가장 어렵습니다.
오퍼스 7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고 자료를 모으면서 저는 동화 한편이 생각났습니다. Thumbellina 라는 안데르센 원작의 오래된 동화 말이죠.
[엄지공주 짱]
아, 이런 엄지공주라니.. 이거 말고 동화 버전으로 돌아가보죠.
아르누보풍으로 그려진 엄지공주와 꽃의 요정 왕자님이네요. 엄지공주의 스토리는 매우 단순합니다. 꽃에서 태어난 엄지사이즈의 미녀가 개구리, 풍뎅이, 두더지들의 결혼 요구를 뿌리치고 제비의 도움으로 꽃의 요정 왕자님과 결혼을 한다는 얘깁니다. 해피엔딩이죠. 하지만..모든 이야기에는 꼭 행복한 등장인물들만 있는건 아닙니다.
[비운의 주인공]
불행한 사람도 있게 마련이죠. 엄지공주가 얹혀살던 들쥐 아줌마의 중매로 조만간 늘씬한 미녀를 거느리겠구나 하고 생각했던 두더지 아저씨는 사라진 엄지공주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을 겁니다. 돈도 많고 성실하고 주변에 인망도 높은 이 신사가 무슨 죄가 있단 말입니까?(대머리에 시력이 안좋고 배가 나온게 죄라면... 죄...)
왠 엄지공주에 두더지 아저씨 얘기냐 싶으시죠??
[셋중에 누가 안드레아스 스트렐러 입니까?]
이 사진을 보고 처음 떠오른 이미지가 너무 강렬했던 탓입니다. 음.. Sorry Andreas~
어떤 시계던 제작자의 의지와 과거가 투영되어 있다고 생각하게 된건 역시 비에니 할터때문입니다. 그의 오퍼스 3는 스팀펑크 이미지가 너무 강했었죠. 그리고 그건 그의 부친이 가졌던 직업과 연관을 짓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오퍼스 7에 투영된 이미지와 느낌은 엄지공주 그 자체이고 엄지공주를 그렇게 그리워할 사람은 역시 그와 결혼해서 한이불 덮는 사이가 된 꽃의 왕자님은 아니겠지요. (한 3년 살면 가족끼리 이러지 말자고 그럴겁니다...)
50개 한정 제작된 오퍼스 7은 45밀리의 사이즈에 60시간의 파워리저브를 가지고 있습니다. 50개중에 일부는 저렇게 다이아를 박아준 모양이네요.
오퍼스 6부터 해리윈스턴의 흔적은 미미해지고 있습니다. 온전한 독립제작자의 시계가 되어 가고 있네요. 그나마 플래티넘과 블루의 칼라만이 해리윈스턴의 상징입니다. 용두쪽에 작게 남은 세개의 기둥하구요. 오퍼스 7은 어쩌면 지금까지 나온 오퍼스 중에서는 가장 저렴하고 저평가되고 있는 시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아이디어와 독창성은 뛰어나다는 생각입니다.
보석이 34개나 쓰인건 시간과 분, 파워리저브를 각각 나타내야하는 구조적 문제때문일 것입니다. 게다가 세컨드휠이 생략된 바람에 구조도 새로 설계를 해야했죠. 안드레아 스트렐러는 르노앤 파피공방의 트러블 슈터 출신입니다. 무브먼트 전문가죠. 그가 새롭게 설계한 무브먼트가 들어가 있다는 것만으로 오퍼스 7은 가치가 있습니다.
가운데 돌아가는 캠은 하트 모양으로 생겼네요. 그리고 무브먼트가 훤히 보이는 이런 구조.. 괜찮습니다. 앞면이 좀 더 기하학적으로 아름답지만 말이죠.
돌아가는 톱니 디스크들은 마치 꽃이 춤을 추는 느낌이 들기도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무브먼트를 지탱하고 있는 것은 나비모양의 브릿지입니다.
아르누보의 건축물에서 저 무브먼트 브릿지의 모티브를 따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만..
[엄지공주를 모티브로 한 목걸이 장식]
엄지공주가 더 정확하지 않을까 싶네요. 본인 입으로 엄지공주를 모티브로 했다고 말하기는 뭐했겠죠. 너무 어린애 같다고 놀릴지도 모르고.. 엄지공주 얘기가 나오면 당연히 두더지 얘기도 나오지 않겠습니까. 음...
이거든 저거든 아르누보 양식의 그래픽에서 모티브를 얻은건 확실해 보입니다.
무브먼트를 가공하는 과정의 모습조차 아름답습니다.
안드레아스 스트렐러의 초기작인 Zwei 는 둘이라는 뜻의 독일어입니다.
손목시계와 회중시계의 두개를 만들어서 그랬는지..
푸시 스위치를 누르면 시간이 아니라 날짜를 나타내는 두가지 기능이 있어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군요. 하지만 이쪽도 왠지 이쁩니다. 이 시계를 보고 저는 이 제작자에게 호감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보는 사람의 마음을 잡아끄는 소박하고 고졸한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그리고 푸쉬버튼으로 디스플레이를 바꾸는 이 아이디어는 오퍼스 7으로 이어지는 단초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버터플라이라고 불리웠던 오퍼스 7 이후로 그가 만들어낸 작품은 나비라는 뜻의 Papillion(빠삐용) 입니다.
좀 더 명확해 지고.. 기능적으로도 치밀해진듯 보입니다. 보석수도 확연하게 줄었구요.
14.9밀리로 엄청 두꺼웠던 오퍼스에 비해
두께도 많이 줄였죠. 옆면까지 아름답습니다.
시간과 분을 동시에 볼 수 없었던 오퍼스에 비해 시간과 분을 동시에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정확한 시간을 알수 없죠. 시간을 본다는 의미보다는 시계 자체를 감상한다는 요구에 충실한 아름다운 시계입니다.
또다른 시계인 Cocon 입니다. 이건 무슨 뜻인가 찾아봤더니 고치라는 뜻이라네요. 이사람 나비 매니아인가 봅니다.
타원형의 케이스도 맘에 들고 오프센터의 다이얼 배치도 좋습니다. 다양한 형태의 길로쉐가 자리집고 있지만 과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역시나 무브먼트 브릿지는 나비군요.
우아하고 아름답고 기능에 충실한 시계입니다. 무브먼트의 모양도 그렇고 피니싱도 참 맘에 드네요.
그의 가장 최근작은 아마 2012 바젤페어에 출품한 시간의 지배자 챕터3 일겁니다. 카리 보티레이넨과 협업한 작품이죠.
GMT 기능이 있는 시계입니다.
나잇 데이 인디케이터와 세컨 타임존이 롤러 형태로 움직이는 재미있는 시계죠. 하단의 롤러가 두개인점을 주목하시길
크라운에 위치한 모노푸셔 스위치를 누르면 세컨 타임존이 나타나는 슬라이딩 형태의 구조입니다.
상당히 매력적인 구조이고 디자인입니다. 디자인 자체가 완벽하다고는 말하기 힘들지만 무브먼트의 디자인과 슬라이딩 아이디어는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롤러 형태로 표시되는 세컨 타임존도 두개의 롤러가가 시간에 따라 한쪽으로 밀리게 설계되어 숫자가 크게 보입니다. 그동안 크게 인상적인 작품을 내지 못했던 시간의 지배자 프로젝트에 비로소 의미가 있는 작품이 나왔다는 평이 지배적인데 그래도 저는 안드레아 스트렐러 본인의 이름을 걸고 만들어낸 작품이 더 마음에 듭니다.
우리는 모두 가지지 못한 것, 가질뻔 했으나 잃어버린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사랑을 마음에 품고 평생을 살아갑니다. 대표적인 것이 첫사랑이죠. 최근 히트했던 건축학 개론이라는 영화는 이런 공통된 정서에 기대 크게 흥행했습니다. 가지지 못한 것이 더 아름답다. 안타깝지만 그것이 인생의 쓰디쓴 진실이겠지요.
저의 소설과 달리 어쩌면 안드레아스 스트렐러는 그냥 나비가 좋은 아무 생각 없는 시계 장인일지도 모릅니다. 그에게서 두더지 신사의 풍모와 엄지공주에 대한 안타까운 연정을 읽어내는 것은 무언가 극적인 내면의 동기를 부여하고픈 저의 작고 얄팍한 감수성일지도 모르겠네요. 훌륭한 시계 장인에게 저의 이런 해석이 누가 되지 않았으면 싶습니다.
오퍼스 7에서 시작하고 코콘을 거쳐 빠삐용에서 완성한 그의 절실한 나비 사랑, 혹은 엄지공주에 대한 애달픈 연서에 여러분은 마음이 움직이시는지요?? 저는 움직입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 한때 가질 수 없는 어떤 것들에 한번쯤은 마음을 빼앗겨본 사람이기 때문은 아닐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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