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퍼스로의 여행, 네번째
오퍼스 네번째 이야기는 새끈한 시계 사진 한장으로 시작해 보지요. 얼마전에 끝난 바젤 2012에서는 당연히 오퍼스 12가 발표되었지만 제가 보기에는 이 시계가 더 재미있어 보였습니다. 보기만 해도 미래 지향적이고 뭔가 근사한 느낌이 드는 이 시계의 이름은 바로 익스트림 1(X-trem 1)입니다.
[차고 있으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것 같은 느낌마저 주는 익스트림 1 : 하지만 기능은 시간과 분만 나타내는 단순한 물건임, 아 맞다 뚜르비용..]
미래인의 시계일 것만 같은 이 시계의 작동 구조는 간단하면서도 강렬합니다. 내부의 자석이 시계의 좌우에 배치된 시간과 분의 인디케이터에 맞춘 구슬을 움직이다가 끝까지 가면 다시 아래로 돌아오는 레트로그레이드 구조입니다. 초침은 뚜르비용이 대신하고 시계의 뒷면은 마치 URWERK의 시계 같기도 합니다. 매뉴얼 와인딩에 시간 조정도 뒤에서 하네요. 정확한 시간을 읽기도 힘든 이 시계는 아마도 지금까지 극복해야할 가장 큰 과제중에 하나인 자성을 시계 내부로 끌어들였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줘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시인성은 개떡같다능..)
사실 이런 시계를 턱하니 차고 다니는 사람이면.. 시간이 뭐 중요하겠습니까. 온 세상이 자기 스케쥴에 따라 움직일텐데 말이죠. 너무 부러워서 욕이 목구멍까지 튀어나오다가 소심하게 걸립니다. 부럽네요. 쩝~
오퍼스4의 이야기에 시작부터 익스트림 1을 먼저 꺼낸 이유는 두 시계의 제작자가 모두 크리스토프 클라레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워치메이커에 비해 그다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이 아저씨가 얼마나 대단한 천재이고 탁월한 사업가인지는 이제부터 말씀드리기로 하지요. 최대한 간략하게..^^ 우선 퀴즈부터 하나 풀어보실까요?
이 셋중에 누가 크리스토프 클라레일까요??
이런 시답잖은 문제도 퀴즈라고?? 하면서 화를 내신다면 당신은 진정한 시계 매니아~!!(<라고 쓰고 심각한 시계 오타쿠라고 읽습니다.) 과거로부터 시험을 찍기로 일관한 사람들이라면 아마도 가운데 훤칠하고 잘생긴 사람이 아닐까 조심스레 찍겠지만 정답은 오른쪽에 있는 훤한 이마(앞 대머리..)의 중년 신사입니다. 그가 바로 셰도우 워치메이커, 무브먼트의 마술사라고도 불리우는 크리스토프 클라레죠.(나머지도 궁금하신 분을 위해서 왼쪽부터 로저 드뷔, 피터 스피크 마린, 크리스토프 클라레입니다.) 피터 스피크 마린은 꼭 베컴같이 생겼네요. 조금 늙은 베컴..
사람을 외모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되지만 이 아저씨는 왠지 장난꾸러기 같기도 하고 뭔가 속에서 재미있는 꿍꿍이를 꾸미고 있을 것 같기도 한 그런 느낌이 첫인상에서 느껴지네요. 이 사진이 아마도 가장 잘 나온 프로필이 아닌가 싶은데 외모로 여자들을 막 홀리고 그랬을 것 같은 느낌은 별로 없습니다. 그렇다고 천재적인 시계 장인 같지도 않고 성공한 사업가의 이미지가 제일 잘 어울리네요. 하지만 현실은 무시무시한 워치 메이커.. 게다가 성공한 시계 사업가. 문무겸비라는 말은 이런 사람을 일컫는 말인 것 같습니다. 그는 오퍼스4의 제작자인 동시에 앙뜨완 프레지우소가 만든 오퍼스2의 무브먼트 공급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런가.. 오퍼스 2와 4는 형제같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2004년 바젤에 등장한 오퍼스4는 전작과는 달리 작동에 대한 문제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형태며 기능이 기존의 전통적인 시계가 가지고 있던 것들을 깨는 파격을 보여주지도 않았습니다. 모두 20피스가 생산되었는데 그중에 두개는 다이아몬드 세팅이 들어간 스페셜 에디션이고 나머지는 모두 플래티넘으로 제작되었습니다. 플래티넘과 사파이어 블루는 해리윈스턴을 상징하는 컬러이기도 합니다.
지름은 44밀리의 다소 큰 시계이고 탑재된 기능은 미닛 리피터와 카루셀 뚜르비용, 시간과 분을 표시하며 뒷면에서는 커다란 문페이즈와 날짜까지 표시하고 있습니다. 흔히들 무브먼트가 아름다운 시계를 보면 시계를 돌려차고 싶다고들 하지요. 이 시계는 그런 흔한 말이 농담이 아니라 실제로 적용되는 이야기입니다.
그걸 가능케 하는 것이 이 돌아가는 러그 시스템인데 간단하게 시계의 앞뒤를 바꿀 수 있습니다.
뚜르비용의 우아한 움직임과 무브먼트를 보고 싶다. 미닛리피터의 해머가 공을 때리는 걸 감상하고 싶다면 이쪽면을 앞으로 차면 되구요.
아름다운 문페이즈를 감상하고 싶다면 이쪽면을 이용하면 되겠지요. 저라면 여자 만날때는 문페이즈, 시덕들 모임 갈때는 반대쪽을 이용하겠습니다. ^^ 사용된 무브먼트의 구체적인 사진은 아래와 같습니다.
이쪽면이 문페이즈를 구동시키는 쪽인것 같고..
이쪽이 미닛리피터와 뚜르비용 쪽인 것 같네요. 공과 해머가 눈에 띕니다. 저는 무브먼트 전문가가 아닌 관계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합니다만.. 앵글라쥐며 페를라쥐. 모든 가공이 끝까지 간 아름다운 무브먼트라는 말은 할 수 있겠네요. 오퍼스 시리즈에는 제작자의 코멘트가 있는 비디오가 한편씩 있는데요. 오퍼스 4에 대해 크리스토프 클라레가 설명하는 이야기를 들어보시려면 유튜브에서 해리윈스턴 오퍼스4로 검색해 보시면 됩니다. (링크가 안되서 이정도로만..^^;;) 그의 말을 들으니 오퍼스4가 지향하는 바는 이제 음지에서 양지로 나온 독립 시계제작자들의 꿈이 아닌가 싶습니다. 묵묵히 무브먼트를 개발하며 그림자로 살아가다가 오퍼스 시리즈로 각광받기 시작한 카비노티에의 자부심 같은 것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오퍼스4는 상당히 아름답습니다.
특히나 제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이 문페이즈입니다. 달의 모양을 사실적으로 정교하게 새긴 거대한 문디스크는 그 자체로도 예술적이지만 다이얼의 청명한 푸른색과 어울려 마치 꿈같은 장면을 연출합니다. 미드나잇 블루라는 말이 이토록 잘 어울리는 작품이 또 어디에 있을까 싶네요. 개인적인 기호지만 저는 문페이즈를 참 좋아합니다. 그래서 이런 글도 쓴적이 있지요. 부끄럽지만.. 문페이즈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은 한번쯤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아 링크 붙입니다. (문페이즈란 무엇인가? http://blog.yes24.com/blog/blogMain.aspx?blogid=dunan&artseqno=5049963)
1962년생인 크리스토프 클라레는 어린 시절부터 시계를 갖고 놀다가 16세에 제네바의 시계학교에 입학함으로써 본격적인 업계 생활을 시작합니다. 1987년에 바젤페어에 미닛리피터를 채용한 작품으로 데뷰한 이후로 그의 특기는 미닛리피터로 대변되는 차임워치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모든 종류의 복잡 시계에 대해 통달한 무브먼트의 달인이라고 할 수 있죠. 로저 드뷔와 일하면서 시계에 대한 실제 경험도 많이 쌓았고 자신이 설립한 회사에서 무브먼트 제조는 물론 완제품 생산까지 하고 있는 인하우스 메이커를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흔히들 오퍼스 시리즈의 홀수는 혁신적이고 짝수는 보수적이라고 합니다. 비에니 할터의 경이로운 오퍼스 3가 나온 이후에 다소 보수적인 복잡시계인 오퍼스 4가 나와서 그런 도식이 이후에도 굳어진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렇게만 본다면 크리스토프 클라레는 다소 보수적인 무브먼트 제작자이자 워치메이커라는 생각을 가지실법도 합니다만 사실 그는 어지간한 복잡 무브먼트를 제작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아방가르드라는 말에 걸맞는 복잡시계를 꾸준히 만들어 오고 있는 혁신가이기도 합니다.
그의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는 이 무브먼트들의 사진은 그가 만들고 있는 무브먼트들의 일부입니다. 그리고 이 각각은 억대를 호가하는 하이엔드 워치들의 심장이기도 하지요.
대충만 헤아려도 이렇게 많은 시계들이 크리스토프 클라레의 무브먼트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처음 보는 브랜드와 시계들도 있습니다만.. 눈에 익은 율리스 나르덴의 로얄블루 팬텀도 있군요. 미스테리 뚜르비용을 채택한 저 시계도 클라레의 작품이라니 입이 떡 벌어집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과거에 타임포럼의 씨알님이 남겨놓으신 게시물을 그대로 가져온 건데요. 저의 부족한 글보다는 그 글을 보시는 것이 더 도움이 되지 않으실까 싶습니다.
보시다시피 크리스토프 클라레는 장르를 가리지 않고 그 실력에 과연 한계가 있을까 싶은 시계 장인이자 무브먼트 제작가이고 성공한 브랜드를 이끌고 있는 사업가입니다. 2003년부터는 장 듀낭이라는 브랜드로 복잡 시계를 만들어 왔는데 장 듀낭은 스위스의 라커 예술가라고 하네요. 왜 브랜드 명을 장 듀낭으로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런 멋진 시계들을 꾸준히 만들어 오고 있습니다.
팰리스라는 이름의 멋진 작품. 로터가 아니라 수직운동을 하는 오실리테이터가 에너지를 축적합니다. 이런 형식을 좌우로 풀어내서 해리윈스턴브랜드로 만들기도 했지요.
시간의 지배자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멋진 작품입니다. 문페이즈와 요일표시도 원통형으로 돌아가는군요. 뚜르비용에 크로노그래프, 레트로그레이드까지 모여있는 복잡시계입니다.
달력 표시가 돌아가는 원통형으로 나타나는 샤바카의 무브먼트 구조
실제 시계는 이런 모습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이 녀석은 무브의 설계도 설계지만 표시 방식도 혁신적인 듀얼토우. 크리스토프 클라레 브랜드로 출시되었습니다. 본격적인 아방가르드 워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나이트 이글이라는 버전도 있는데 카리스마는 이쪽이 짱이군요.
요건 뚜르비용 오비탈이라는 작품의 무브먼트, 파워리저브가 측면에 나타나는 형태입니다.
장 듀낭 브랜드로 시계를 만들어오던 크리스토프 클라레는 최근 들어 자신의 이름을 딴 크리스토프 클라레 브랜드로 시계를 만들고 있습니다. 아마도 동업에 문제가 생겼거나 자신의 이름을 달고 라인을 새로 만들 이유가 생긴것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보는데요.
가장 오른쪽에 있는 아트피스같은 전통적인 멜로디, 차임 시계가 원래의 주특기라고 사람들이 생각할때 클라레는 무브먼트의 설계와 시간 표시가 혁신적인 듀얼토우 시리즈, 미닛 리피터가 듀얼타임존과 결합된 아다지오도 만들었습니다. 바젤 2011년 전시회에서 인기를 끈 블랙잭이라던가 바카라같은 오락적인 시계부터 올해 등장한 익스트림 1까지 최근의 크리스토프 클라레가 보여주는 행보는 본격적인 아방가르드 워치메이커가 되기로 마음을 먹은 것 같은 느낌입니다.
[도-박에 환장한 아저씨라는 명성을 안겨준 블-랙-잭 : 설마.. ㅎㅎ]
이 분야에서는 역시 URWERK을 이끌고 있는 펠릭스 바움가트너가 짱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다른 의미에서 클라레 아저씨의 존재감이랄까 카리스마는 굉장합니다. 오히려 그가 해놓은 일과 하려고 하는 일에 비하면 주목을 못받고 있다는 생각이 든달까요?? 역시 얼굴이 잘생겨야 광이 나는 건 시계 업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기발한 발상과 실천력으로 블랙잭이나 바카라 같은 시계를 만들어 내는 클라레 아저씨는 근엄한 시계 근본주의자 느낌의 필립 듀포와는 궤를 달리하는 워치메이커라고 생각합니다. 시계란 재미있어야 한다, 기발해야 한다. 사람들의 눈길을 잡아끄는 기계 기술의 결정이어야 한다.. 는 생각이 머릿속에 박혀있는게 아닌가 싶어요.
다시 오퍼스 4로 돌아가서..
이 우아하고 아름다운 시계는 보시다시피 두께가 묵직합니다. 손목에 올리기 부담스럽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하지만 두개의 시계를 한개 값에 살 수 있다 그 두개를 동시에 가지고 다닐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정도는 감수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퍼스 4가 채택한 뚜르비용은 카루셀이라고 불리우는 뚜르비용입니다. 일반적인 뚜르비용과 카루셀은 구조에서 차이가 나는데 카루셀 쪽이 좀 더 고급스러운 기술이라고 해야할 것 같습니다. 게다가 미닛리피터는 성당에서 울리는 종소리를 재현했다고 합니다. 카루셀 뚜르비용의 구조는 이 사진을 참고해주세요.
[봐도 이해가 안가는 구조라는.jpg]
저도 이해는 잘 안가지만.. 카루셀 뚜르비용이 좀 더 우아해 보이는군요. 더 비싸다는 건 말안해도 아시리라 믿습니다. 블랑팡이나 브레게 같은 하이엔드 워치에 채용되는 뚜르비용이 대부분 이런 형식일 것 같습니다.
오퍼스 4는 브레게로부터 이어온 시계 기술의 모든것이(크로노 그래프하고 퍼페츄얼 캘린더 빼구요..) 집약된 예술품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오퍼스중에 하나라는 생각도 들고 실제로 소장하고 싶다는 욕구도 생기네요. 아마도 푸른 밤하늘에 뜬 저 달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달에 홀렸는지도..)그리고 이 놀라운 예술품을 만들어낸 워치 메이커 크리스토프 클라레는 과거에 안주하지 않고 그의 공방에서 지금도 직원들과 함께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고 혁신적인 시계를 만들까를 고민하는 현재 진행형의 워치 메이커입니다. 오퍼스 시리즈의 제작자들은 모두 천재라는 수식어가 부끄럽지 않은 사람들이지만 일에 대한 열정과 성과면에서 크리스토프 클라레를 뛰어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지는 의문이네요. 까면 깔수록 속이 계속 나오는 양파속처럼 우리는 앞으로도 많은 시계에서 그의 흔적을 발견하고.. " 아, 역시 이것도.."라는 탄성을 계속 되풀이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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