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El fenómeno입니다.
우선 이 글은 제 일기를 게시판에 올릴 수 있는 형태로 다듬었습니다. 일기장의 글을 포럼에 게시하는 점 죄송합니다. (__)
첨단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는 요즘, 기계식 시계가 주는 아날로그적 감성은 남자의 심장을 뛰게 합니다.
기계식 시계를 좋아하게 된 후로 줄곧 생각해왔습니다.
'나는 기계식 시계 그 자체를 좋아하는 것이지, 남이 알아보고 띄워 주는 시계가 좋은 것은 아니다.'라고 말이죠.
그런데 어느 순간 소위 말하는 인기 브랜드의 인기 모델이 손목 위에 있었습니다.
그 시계들은 애타게 원하는 시계도 아니었고, 마음에 꼭 드는 시계도 아니었습니다.
정처 없이 여러 시계가 제 손목을 거쳐 갔고, 그로 말미암은 손해는 늘어 갔습니다.
그렇게 의미 없는 기변을 계속하다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시계와 함께 사진도 좋아하는 저는 우연히 비슷한 시기 카메라에 대한 고찰을 먼저 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이때 카메라만 혹은 시계만 생각했다면 스스로 답변을 내리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어째서 FF 보디와 L 렌즈 그리고 캐논이 아니면 안 되는가?
어째서 좋아하지도 않는 대중적인 브랜드의 시계만 사고 있는 것인가?
어째서 내 가슴 속 깊은 곳의 애타는 감정을 외면하는가?
처음으로 DSLR을 들이고 한강으로 출사를 나갔을 때 카메라가 보급기라는 이유로, 번들 렌즈라는 이유로,
펜탁스라는 이유로 무시 받았던 게 생각났습니다.
처음으로 기계식 시계를 사고 만족하고 있는데 롤렉스, 오메가, 브라이틀링, 태그호이어가 아니라
아리스토라서 무시 받았던 게 생각났습니다.
(펜탁스와 아리스토를 비하하고자 하는 마음은 전혀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두 브랜드 모두 격하게 아낍니다.)
머리가 복잡하거나 마음이 싱숭생숭할 때라면 '잠시 쉬어가도 괜찮지 않을까?'란 생각을 했습니다.
빠름 빠름 빠름을 강조하는 세상에서 빠른 업그레이드만을 추구하고 있던 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돌아본 모습에는 주관과 열정은 온데간데없고, 물 위에 뜬 낙엽처럼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대세를 따르고 있었던 듯합니다.
어쩌면 외로웠나 봅니다. 일반 대중이 알아주지 않는 고독한 길을 홀로 걸으려니 말이죠.
그래서 유명 브랜드의 밸류와 그에 편승하여 관심을 받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남의 시선보단 내가 중심이 되는 삶을 추구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고립시키는 결과를 낳고 말았습니다.
공든 탑은 무너지지 않는다고 했거늘...
제가 지금까지 쌓아온 것은 허무하게 재로 변해버렸습니다.
좋아하는 것에 대해 체념을 하고서 그동안 신경 쓰지 못했던, 쓸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작은 것을 보는 눈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가진 커다란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다 타버렸다면 다시 쌓을 것입니다.
이젠 물 위로 솟은 고립된 바위가 아닌 물속을 자유롭게 노니는 물고기 같은 존재가 되려 합니다.
비 내리던 어느 늦가을, 시계 생활의 전환점을 맞이하였습니다.
대중의 관심도 좋지만...
새로운 길을 개척해보고 싶습니다.
파트너(시계)와 함께라면 더는 외롭지 않을 것입니다.
비가 내리는 가을의 내장산을 한가로이 느끼는 사치를 즐기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어째서 예거를 좋아하는 걸까?'
예거를 생각하니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게 두 가지더군요.
◈생산하는 모든 시계를 자사의 매뉴팩쳐 안에서 해결하는 브랜드
◈지향하는 이념과 철학을 뚝심 있게 밀고 가는 브랜드
생각하고 있자니 자연스레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줄곧 '겸손하지만 비굴하지 않고, 자신 있지만 오만하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제가 본능적으로 예거에 끌리는 이유 같습니다.
예거의 기술력은 이미 업계 최고(세이코와 함께)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심지어 제왕 파텍이나 독보적이라 평가받는 랑에조차도 예거보다 위에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생산하는 모든 시계를 자사의 매뉴팩쳐 안에서 해결하는 것은 파텍이나 랑에조차도 하지 못한 일입니다.
(이 부분을 자세히 알고 계시는 분께서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이런 엄청난 기술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자만하지 않고 꾸준히 기술 개발에 노력하고, 스틸 소재의 시계를 생산합니다.
최고를 지향하지만, 최고가 되기 위해 신념을 굽히지 않는 브랜드입니다.
주저리주저리 사설이 길었습니다만,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예거가 좋은 이유는 '그냥'인 듯합니다.
좋아하는 것에 굳이 이유는 필요 없습니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요?
어느샌가 예거는 제 마음속 안식처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그렇게도 천천히 느껴지던 시간이 어느새 세월이 흘러 성인이 되고, 남을 의식하고, 자신을 거짓된 미소로 포장하고,
세상의 기준에 나를 맞추고 있다는 생각에 씁쓸해집니다.
이젠 제 감정에 더 충실해지려 합니다.
-기계식 시계를 사랑한 Fenómeno 중에서-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