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al] 아름다움으로의 초대 (Part 2)
아름다움으로의 초대
(Part 2)
전편 요약:
made in china.
전개
그 날(Made in China 사건)이후 저는 ‘시계란 다 소모품인가보다’하는 사고방식을 가지게 되었고, 4개월 간격으로 하나씩 시계를 주기적으로 망가뜨리게 됩니다. (의도하고 망가뜨린건 아니었습니다.) 부서진 시계들의 묘비명엔 애달픈 사연이 하나씩은 있었으니까요. 친구와 싸우다가 고장나고, 수련회에 놀러갔다가 파괴되고, 바닷가에 놀러갔다가 침수되고, 시계차고 축구하다가 폭발(?)하는 등등. 이렇게 저렇게 여러 시계를 해먹다보니 시간은 어느새 저를 대학생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시간은 따끈따끈한 새내기가 되어 상경하리라는 꿈을 가슴에 안고 하루하루를 보내던 고3, 그중에서도 수능을 몇 달 앞으로 둔 진짜배기 고등학교 3학년이던 시기. 부모님께서는 저를 위해 커다란 선물을 하나 해주십니다. 그것이 바로 명품시계의 세계와 저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부모님께서 저의 손을 붙잡고 데리고 갔던 그곳은 백화점. 평소 사주는 옷만 입고, 해주는 밥만 먹고 자란 저로서는 영화보러 갈때나 지하 식당, 어쩌다 여자친구와 찾던 VIPS 방문을 제외하고 쇼핑을 위한 장소로서는 정말로 오랜만이었던 백화점 나들이였습니다. 화려한 샹들리에가 머리 위에서 하늘거리고 세련된 머리와 당당한 걸음걸이로 제 옆을 스치는 수 많은 사람들.., 그 사람들의 곁에서 퍼져나오는 은은한 향수냄새. 저에게 백화점의 첫 인상은 길을 걷다가 줍는 만원짜리의 행복같은 그런 신선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환상에 취해 걷고 있다보니 어느새 저의 눈앞에는 저마다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시계 매장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결정한 모델은 은은한 흑진주 빛깔이 감도는 DKNY의 시계였습니다.
DKNY를 알게 된 것도, 알마니나 BOSS의 존재를 알게 된 것도. 그리고 SEIKO의 시계가 그렇게 만만한(?) 녀석들이 아니란 사실을 알게 된 것도 모두 이때부터였습니다. 뿐만아니라 가격이고 기술력이고, 그것이 황금이고 플레티늄이고를 떠나 당시 저의 눈에는 다른 어떤 시계들보다 저의 그 시계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웠습니다. 백화점 할로겐 불빛을 받아 유려하게 빛나는 몸체와 산뜻하고 부드러운 손맛이 있는 메탈 브레이슬릿. 그리고 그 짜릿한 촉감이란.. 손에 쥐고있다는 그 자체만으로 저를 황홀하게 했었습니다. 어쩌다가 시계의 존재를 잠시 망각하고 있다가도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서 무의식적으로 시계를 바라볼 때면, 그때 그 시계는 제게 아름다움의 극한을 보는듯한 황홀경을 선물했습니다. 뽕(?)을 맞는 기분이라고 해야하나요?(물론 실제(?)뽕은 한번도 안맞아봤습니다만..) 어찌됐건 이 시계는 그 당시 제가 가진 최고의 보물이었으며, 4년이 지난 지금도 언제 어디에서든지 가볍게 차고 나갈 수 있는 훌륭한 시계로 남아 있습니다.
-뱀꼬리: 많은 시계애호가들이 패션브랜드의 악세서리로서의 시계나 토탈브랜드의 시계를 부정적으로 평가하신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처음 시계를 좋아하기 시작하고 하나하나 알아가던 시절에 저 역시도 제 시계가 다른 사람들의 입에서 한낱 싸구려 팔찌(?)로 오르내리는 모습을 보면서 상처도 많이 받았었지요. 하지만 제가 DKNY의 그것을 차면서 느꼈던 행복감과 만족감은 다른 애호가들이 시쳇말로 툭툭 비난하면서 상처를 줄만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정말로 오랜 시간이 걸렸죠. 저 역시도 매스티지 브랜드(Masstige Brands; 프리스티지 브랜드 전략을 펼치며 뛰어난 품질관리와 대량생산을 통해 단가를 맞추는 새로운 브랜드를 칭한다, COACH나 Louis Quattroz, MCM같은 브랜드들이 대표적입니다)의 그것을 싫어하던 시절이 있었고, 싫어하다 못해 증오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시계를 사랑한다면 시계를 뛰어넘어 시간 전반에 아우르는 모든 것들을 사랑할 수 있어야하고, 시계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과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사람들을 감싸줄 수 있어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간혹 시계 애호가분들께서 지인들의 시계를 보며 지적 아닌 지적을 하시는 경우가 있죠.. 취향은 존중해주어야 합니다. ‘그 돈으로 그 시계를 사는’ 사람이 있기에 ‘그 시계’가 여태까지 멸종되지 않고 꾸준히 존재하는 것이고, 그 시계를 만드는 브랜드는 그 돈으로 멸종하지 않기위해 꾸준히 발버둥칠테니까 말이죠. 정말로 그 시계가 별로라면 딱히 제가 걱정하지 않아도 자연도태 할겁니다. 문제는 그 시계가 그만한 벨류가 있느냐는거죠. 선택은 소비자의 몫입니다. 선택에 조언을 할 수는 있지만 문제될게 없는 상품을 구매하는 소비자를 나무랄 권리는 없다는거죠.
그래서 지금도 저는 제 DKNY시계와 친구의 알마니 시계를 좋아라합니다. 아직까지 그 브랜드들의 정체성이 명확해보이진 않다는 사실을 제한다면 말이죠.
위기
‘미친놈’ 소리를 듣게 되는 과정에도 단계가 있듯 저 역시 처음부터 무작정 시계를 좋아라 했던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니까 한창 미친소 파동과 촛불시위가 들불처럼 번지던 시기에 대학생이 되었던 저는 세상이 MB니 광우병이니 하는 판국에 ‘대학생’이나 되어가지고 내가 과연 어떤 동아리에 들어가야 지식인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것일까 하는 철학에 빠져 허우적댔죠. 사실 제가 동아리를 가입하게 된 건 그렇게 고결한 의도도 아니었습니다. 장담컨대(저도 그랬고) 대학을 다니는 78% 이상의 남자들이 동아리를 가입하고 활동하는 이유는 단 두 글자로 요약할 수 있을 겁니다. 바로 ‘여자’때문이죠. 저는 미술동아리를 들어갔었습니다.(마술 아닙니다.) 전공은 공학인데 열심히 쫓아다니던 여학우가 미술을 좋아하는 인문학도였었기 때문이죠. 선사시대에 왠 미친놈이 벽에다가 그려놓은 1등급 한우 벽화에서부터 잭슨플락의 ‘돈 벌기 참 쉽죠잉~’스러운 미술까지 가리지 않고 찾아가며 열심히 공부했습니다.(고등학교 수능 칠때보다 더 열심히 했습니다.) 그녀와 전시회라도 한 번 더 갈수 있을까, 그녀가 (공학을 전공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문학과 예술분야에 조예가 깊어 보이는)나를 한번이라도 다시 만나줄까 해서 정말 손가락에 쥐가 나도록 외우고 또 외웠습니다. 그녀는 저를 좋아했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저를 좋아했던 건 아니고 ‘미술을 이야기하는 저의 대뇌피질 변연계’를 좋아했었죠. 그러니까.. 전시회는 나랑 가고, 지는 농구하는 남자친구를 만나더군요.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보니 여자는 물론이고, 학점은 이미 명왕성을 한계속도로 날아가고 있었습니다. 아아, 이런 나쁜X. 군대나 갈걸.
저는 올라오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홧김에 잡지를 사보기 시작했습니다. 에스콰이어, GQ, Luel, 노블레스, Mans Health, Maxim부터 시작해서 모터트렌드, 월간에세이, 인물과사상, Paper, PC사랑, Luxury, Heren,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스파클, 심지어는 Ceci에 여성동아까지... 학교 서점에 들어오는 잡지란 잡지는 다 사서 봤던 것 같습니다. 한 3~4개월을 그랬던 것 같네요. 왜 잡지였는지는 지금도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제가 센스가 떨어져서 그녀에게 차였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저는 모던한 현대남성의 모든 것들이 모두 잡지에서 시작되는것이라고 믿었거든요. 그렇게 잡지의 달인이 되어가던 4개월차의 어느 날. 저는 우연히 잡지의 한 페이지에서 아래의 시계를 마주하게 됩니다.
Vacheron Constantin 'Metiers d'Art Tribute to Great Explorers'
“오우~ 이 시계 죽이는데?
한 100만 원쯤 하려나? 밑에 모델명이 쓰여 있네. 얼만가 인터넷으로 한번 찾아봐야겠다.”
......?!?!?
“엑? 미국달러로밖에 표시가 안되어 있네~ 그래서, 이게 얼마지? 일십백천만... 만.. 1달러에 천이백원이니까.. 그러니까..
만??? 만이라고? 이 시계가 사.. 사만달러?(오천만원씩이나) 한단 말이야? 다이아몬드도, 금덩이도 아닌것같은게?“
Amerigo Vespucci
충격이었습니다. ‘학교-학원-집’, ‘교과서-교재-컴퓨터’의 세계가 전부인줄 알았던 저는 VC의 위풍당당한 십자 엠블럼 앞에 처참하게 무릎을 꿇렸습니다. 한줌 애기주먹만한 저 시계 한 개가 왜 그리 비싸야 하는 것인가? 이 시계가 그렇게나 값어치 있는 물건이었는데 나는 여태껏 무얼 하느라 저렇게 중요한 것의 존재유무조차 모르며 살고 있었는가? 등등 갖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죠. 이후 저는 자체조사와 검색, 지인들을 통한 눈요기, 마지막으로 매스미디어를 통해 ‘시계’라는 또 다른 세계를 접할 수 있게 되었고, ‘명품’은 가방이나 차(車), 와인이 전부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초반에는 시계를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환상의 선물’로만 여기고 무조건 추앙하고 떠받들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때는 기기병(속, 같은 카테고리 안에 있는 물건을 사고, 팔기를 반복하며 재미를 느끼는 증상)에 걸려 아르바이트란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시계를 위한 돈벌이에 열광하던 시절도 있었죠. FC(Frederic Constant)를 사니, 론진이 눈에 아른거리고, IWC를 사니 JLC가, JLC를 사니 롤렉스가 저를 가만히 두지 않았습니다. 말 그대로 병(病) 이었습니다. 한창 바쁠 때는 과외 3개에 술집 아르바이트, 번역아르바이트와 홈페이지 관리를 하며 돈을 버는데 혈안이 된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타임포럼’이라는 커뮤니티에서 많은 분들과 생각을 교류하고, 또 실수하고 그리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길 반복하며 저는 제가 사랑했던 ‘시계’의 모든 것들과 한없이 어리기만 했었던 자본주의 속 애송이에서 한 꺼풀의 허물을 벗어던지고 한 번 더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한 번 날아보기 위해 기꺼이 번데기가 되어버린 저의 모습을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 성장하기 위해 이렇게 글을 남기고 있습니다.
군대 후임 녀석들 중에 한 놈이 미국의 힙합 뮤지션들을 정말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녀석이 있었습니다. 처음 그 녀석을 봤을 때 앨범을 수집하고, 근황을 스크랩하고, 노래 한 곡 한 곡을 정성을 다해서 평가하고, 외우기는커녕 잘 읽지도 못하는 팝송 가사를 인쇄하여 두꺼운 사전 한 개와 함께 손수 번역 하는 모습들이 너무 열정적이고 멋져보였죠. 그래서 저는 처음에 그 후임이 어디 유학이라도 하다 온 녀석인 줄로 착각했습니다. 하지만 알고보니 그 녀석의 집은 충청북도 제천. 제천에서도 아주 깡촌에 있는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게다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그곳에서만 보냈고 해외는커녕 제주도도 못 가본 녀석이었죠. 솔직히 처음에 저는 그 친구를 속으로 비웃었습니다. 힙합씬이 좋다면서 힙합의 본고장에도 한 번 못가본 녀석이, 빌보트 사이트에 있는 뉴스 하나 마음대로 번역도 못하는 녀석이 무슨 주제가 된다고 힙합을 좋아한다고 하는건지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그 친구는 저의 그러한 시선 따위는 아랑곳 않고 자신의 팬심을 꾸준히 지켜나가더군요. 제가 그 후임 뒤에서 흘려 넣던 딴지와 조롱 섞인 목소리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그 친구는 계속해서 힙합을 듣고, 또 행복하게 번역했습니다. 그제야 저는 그 친구가 소름끼치도록 힙합을 사랑하는 녀석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자신의 실수, 미숙함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꾸준히 자신의 마음이 원하는 것들을 찾아 정진하는 묵묵한 모습. 그런 모습이 진정으로 아름답다는 것을 제 눈으로 확인하게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지금 그 후임과 비슷한 마음을 가지고 여러분 앞에 섰습니다. 번역의 미숙함 때문에, 잘못된 정보 때문에, 혹시 모르는 필자의 실수로 인하여 제가 부끄럽고 또 민망한 상황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시계를 좋아하고, 또 시계를 사랑하는 마니아들의 따뜻한 관심. 그것 하나만 믿고, 겁 없이 타임포럼에 글을 써보겠다고 도전장을 내밀어봅니다. 실수는 두렵습니다. 다른 회원님들의 웃음 섞인 조롱도, 제가 모자란 글을 가지고 여러분께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것도, 행여나 저의 잘못된 지식이 제 글을 믿어주시는 수 많은 TF 회원님들께 실(失)이 될까 두렵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저는 이 일이 즐겁습니다. 모자란 글을 통해 여러분들과 소통하는 것도 즐겁고, 제가 뛰어놀(?) 수 있는 이 공간이 타임포럼이라는 사실 또한 행복합니다. 비록 제가 Perez나 Odetz처럼 비싼 시계들을 가볍게 접할 수 있는 유복한 환경과 오일킹들에 둘러싸여 ‘위대한’ 시계들을 장난감 다루듯 다룰 수 있는 세상에서 게임을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그 열정만큼은 Perez나 Odetz에 뒤지지 않도록 여러분들과 열심히 소통하려 합니다.
여러분들과 함께 다양한 시계, 다양한 시간에 대해 이야기하며 행복한 여행을 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여러분들과 열심히.. 열심히 여행을 하다보면 언젠가는 우연히, 길을 가다가,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마지막으로 커피숍에서 주문을 하다가. 정말 우연히 다른 사람 손목에 올라간 멋진 시계를 발견했을 때. 그때 제가 "시계 멋지시네요.. 그런데 혹시 TF 회원이십니까?" 라고 여쭈었을 때. 그분께서 활짝 웃으시며, "아, 네. 반갑습니다. 저는 TF의 xxx입니다. 회원님은요?"라며 즐겁게 인사를 나눌 수 있게되는 그 때를 기약하기 위해. 저는 지금도 기꺼운 마음으로 시계 여행을 떠날 짐을 꾸리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 말은 말이죠.. 잘부탁드린다..는 얘깁니다.
<The Fighting Termarie> 1838
Joseph mallord william turner(1775~1851)
-이 그림은 물과 소통했던 화가, 영국 근대미술의 아버지인 윌리엄 터너가 말기에 그렸던 그림입니다.
마지막 항해를 마치고 해체되러 가는 배에 대한 격려와 동경의 메시지가 담긴 작품인데 '해체'라는 사건이 이제 막 시작하려는 저의 첫 글과 첫 시도에
어색하게 보일수도 있으시겠지만, 석양이 새로운 태양이 떠오를 것을 예고하듯. 해체되는 배 역시 새로운 배의 일부가 되어 새로운 여행을 떠날것임을
의도하는 마음으로 위의 그림을 사용하였습니다. 죽음이 또다른 시작이라는 사실을 작품으로서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터너의 마음처럼 말이죠...
.....
다시한번, 잘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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