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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

Rest In Peace

알라롱

조회 5753·댓글 83

이제 고이 잠드소서

 

작년 스와치 그룹의 수장 니콜라스 G 하이에크가 사망했습니다. 비교적 건강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도 소식이었지만, 사무실에서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 더 놀라웠습니다. 생전 시계를 위해 살았던 하이에크였기에 그런 죽음이 어쩌면 행복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일부 미디어에서는 폭군으로도 불리기도 했지만 그가 없었으면 스위스의 시계 업계가 이렇게 되살아나지 못했을 겁니다. 일본에 의해 주도된 쿼츠 상용화는 스위스에 있어 제대로 걸려버린 파운딩이었습니다. 쿼츠처럼 한방도 빗나가지 않은 정확한 펀치를 신나게 두드려 맞고 죽기 일보직전까지 갔지만 구사일생으로 목숨만은 건졌습니다. 그 때 암바까지 마무리로 들어갔으면 아마 지금쯤 저 같은 시계 덕후도 생겨나지 않았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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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장 : 야 눈감아봐. 뭐가 보이냐?

이등별 : 네. 깜깜한 것이 아무것도 안보입니다. 

병장 : 그게 남은 네 군생활이다. ㅋㅋㅋㅋ 

스위스 시계 업계의 1970년대는 대충 이런 이런 느낌이었을 겁니다.


겨우 목숨을 부지한 스위스 시계 업계는 회생의 길을 걷게 됩니다. 시기적으로 보면 1970년대는 쿼츠의 본격등장에 아주 깜깜한 암흑기였고, 1980년대에 접어들어 서서히 빛이 비치게 되죠. 사업적인 감각이 있었다면 이 무렵, 시계 업계에 투자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몇몇은 있었을 겁니다. (베팅은 폭락장에서라는 명언이 있죠.ㅋㅋㅋ)

 

롤프 슈나이더(1935-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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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름다운 포토샵은 율리스 나르딘 본사 작품입니다. 제가 한것이 아니니 오해마시길

롤프 슈나이더의 75회 생일 맞아 발표된 프릭 롤프75. 2010년 75개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발매

사진의 주인공이 롤프 슈나이더


4월에 사망한 율리스 나르딘의 CEO였던 롤프 슈나이더도 그 중 한 명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1983년이면 기계식 시계의 미래가 어찌될지 장담하기 어려웠던 시점일 겁니다. 그 해 마린 크로노미터 빼면 별거 없던 율리스 나르딘을 과감하게 인수해서 지금까지 성장시켰습니다. 아스트롤라비움 갈릴레오 갈릴레이, 플라네타리움 코페르니쿠스, 텔루리엄 요하네스 케플러 같은 천문워치 시리즈, 프릭(Freak), 제 맘대로 루드비히 퍼페츄얼이라고 부르는 사용하기 편한 퍼페츄얼 캘린더 등. 아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율리스 나르딘을 말할 때 이 사람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바로 닥터 루드비히 오커슬린. IWC의 아이콘이 커트 클라우스라면 율리스 나르딘에는 이 사람입니다. 앞서 말한 천문 3부작 시리즈 같은 모델을 비롯하여 율리스 나르딘의 주요 라인업이 그의 지휘하에 완성되었습니다. 지금은 시계박물관의 관장으로 가 있는데 롤프 슈나이더 체제에서 그만한 업적을 이룰 수 있었던 건 오커슬린의 공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오크슬린이라는 좋은 장수를 알아보는 눈이 슈나이더에게 있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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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이 슈나이더. 오른쪽이 루드비히 오크슬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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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퍼(실리시움)기술로 만드는 율리스 나르딘의 팰릿 포크


율리스 나르딘은 몇 가지 부분에서 굉장한 면이 있습니다. 독립 메이커(요즘 그룹에 속하지 않은 독립 메이커들 힘듭니다)인데다가 규모가 아주 크다고도 하기 어렵지만 있을 건 다 있습니다. 여전히 ETA 베이스도 사용하지만, 인하우스 자동 무브먼트 역시 가진 매뉴팩처죠. 그리고 요즘 한창 주목을 받고 있는 실리콘(실리시움) 기술. 스와치 그룹과 파텍 필립진영에서 주도적으로 가져가고자 하는 것인데, 롤프 슈나이더의 인터뷰를 보면 CSEM에 기술 개발을 의뢰한 것은 율리스 나르딘이 가장 먼저라고 한 바 있습니다. CSEM은 나노 테크놀로지를 비롯해서 각종 기술 개발을 대행하는 회사인 듯 한데, 대주주가 스와치 그룹으로 알고 있습니다. 실상 스와치 그룹이 세운 회사로도 볼 수 있는데 그러다 보니 우리에 의해 완성된 기술을 슬쩍 인터셉트 당했다라는 뉘앙스도 인터뷰에 있었죠. 프릭 의 최신버전을 보면 이 실리시움 기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실리시움은 CSEM의 클라이언트인 몇몇 메이커 이외에는 볼 수 없는 상황(프레드릭 콘스탄트 같은 곳도 있긴 있습니다만)에서 율리스 나르딘은 그것을 적용하는 메이커의 하나일 수 있었던 겁니다. 여기에 라인업을 보면 ETA 베이스를 사용했더라도 매력적인 모델이 많습니다. 컴플리케이션을 제작하는 능력도 능력이지만 무엇보다 유니크하죠. 슈나이더가 새롭게 만들어낸 율리스 나르딘이라는 메이커에는 진보라는 정신이 담겨 있는 듯 합니다.

 

제랄드 젠타(1931-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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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랄드 젠타 <Wikipedia>


여름이 한창이던 8, 전설적인 시계 디자이너. 콧수염이 멋드러졌던 제랄드 젠타가 사망했습니다. 전설적이다. 세계 최초. 이런 단어는 늘 조심스럽습니다만 젠타에게 만큼은 주저할 필요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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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부터

오데마 피게 로얄 오크, 파텍 필립 노틸러스, IWC의 인제니어, 오메가 콘스텔레이션, 불가리의 불가리불가리.

 

제가 가지고 싶은 시계나고요? 맞기도 한데 이것은 제랄드 젠타가 디자인했던 시계 리스트의 일부 입니다. 이것 말고도 파텍 필립 엘립스, 유니버설 제네바의 폴루터, 바쉐론 콘스탄틴의 222와 일본의 세이코에서도 젠타의 디자인이 발견됩니다. 바쉐론 콘스탄틴의 222는 로얄 오크, 노틸러스, 인제니어에 비해 잘 언급이 되지 않는 편입니다. 생산량 자체가 그렇게 많지 않았던 것이 이유일 수도 있고, 사실 먼저 발표된 로얄 오크에 가려졌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222의 디자인 베이스는 사실상 지금의 오버시즈로 이어졌고 다시 다듬어 지게 됩니다. 비교적 근래에서는 까르띠에의 파샤 드 까르띠에를 했고요. 아무튼 한 사람의 손에서 이렇게 유명한 모델들이 탄생했다니 놀랍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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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제랄드 젠타 브랜드가 불가리의 라인업으로 흡수되기 전의 모델로 젠타스러운(?) 디자인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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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형태의 도날드. 미키 버전의 이미지를 못찾은 관계로 꿩 대신 오리


제랄드 젠타는 후에 자신의 이름을 건 메이커를 런칭합니다. 제랄드 젠타 시계에서는 디자인에서 몇몇 특징적인 부분이 부각됩니다. 독특한 팔각형 베젤, 더 독특한 크라운(Di…dildo?), 점핑 아워와 레트로그레이드이죠. 미키 마우스와의 콜라보레이션도 특징의 하나였는데 일본 시장에서는 미키 마우스 버전이 가장 인기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골프채를 든 미키의 중고 모델이 가장 비쌌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취향타는 시계 중에서는 중고가가 나름 선방했던걸로..) 지금은 아시다시피 불가리 산하로 들어갔다가 아예 라인업으로 통합되었는데, 사실 메이커의 이름으로만 남았었지 사실상 젠타 자신은 꽤 이전부터 관여를 하고 있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시계 디자이너 출신으로 이름있거나 이름을 건 메이커가 있지만 제랄드 젠타 만큼의 인물이 다시 나오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고 또 그 점이 아쉽습니다.

 

조지 다니엘스(1926-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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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다니엘스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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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섬에서 열리는 바이크 레이스는 대략 이런 분위기입니다. 레이스 이미지로 본 맨섬의 풍광은 꽤 괜찮아 보입니다.




조지 다니엘스의 코엑시얼 이스케이프먼트


며칠 전에는 조지 다니엘스 박사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다니엘스 박사는 잉글랜드 서부 해안에 맨 섬(Isle of Man)이라는 곳에서 살았습니다. 예전에 읽었던 일본의 평론가 야마다 고로의 인터뷰에서 하필 인터뷰를 하기로 한 날이 맨 섬에서는 열리는 바이크 레이스((Isle of Man TT)와 겹치는 바람에 관전에 방해가 되어 열 받았다는 뉘앙스가 인터뷰 전반에 묘사되어 있던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곳에 다니엘스 박사 살고 있는 이유의 하나가 그 레이스 때문이라 열이 살짝 받을 만도 합니다만아무튼. 조지 다니엘스의 업적의 하나는 잘 알려진 대로 코엑시얼 이스케이프먼트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오메가의 코엑시얼 이스케이프먼트입니다. 회중시계용으로 개발된 그것을 오메가에서 손목시계 용으로 가져가면서 개량에 개량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어떤 메커니즘을 다시 소형화, 최적화가 쉽지는 않은가 봅니다. 코엑시얼 이스케이프먼트가 적용된 오메가 칼리버 2500의 경우 리비전 A,B,C를 거쳐 올해에는 리비전 D까지 나왔으니까요. (인하우스인 칼리버 8500의 경우 코엑시얼을 설계의 중심에 두었을 법도 한데 이 녀석도 리비전 B가 나왔죠) 코엑시얼 이스케이프먼트의 궁극적인 목적은 아주 처음 나왔을 때 잘못 알려진 주유의 불필요성이 아니라 부하가 가장 심한 부분인 이스케이프먼트에 부하를 분산시키는데 있습니다. 그로 인해 동력의 효율성, 안정화가 높아지게 되면 시계의 정확성까지 기대해 볼 수 있게 되는 거지요. 지금의 오메가에서는 마케팅적인 부분이 적지 않다고도 말하기 어렵습니다만아무튼 조지 다니엘스의 죽음으로 손목 시계의 시대에 들어와서 영향력이 미비해진 영국 워치메이킹 역사가의 맥이 더욱 약해질 듯 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여행이라는 책을 보면 짐 맥퀴엔이라는 증류소의 매니저가 이렇게 말을 합니다. ‘내가 지금 이렇게 만들고 있는 위스키가 세상에 나올 무렵, 어쩌면 나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지도 몰라. 그러나 그건 내가 만든 위스키거든. 정말이지 멋진 일 아니겠어?’ 라고요. 올 해가 아직 두 달 넘게 남았지만 시계 업계의 많은 인물이 떠난 해입니다. 기계식 손목 시계의 전성기와 쇠락, 부활을 직접 체험한 세대들의 나이를 보면 무리가 아니긴 합니다. 롤프 슈나이더, 제랄드 젠타, 조지 다니엘스. 이들이 떠났더라도 짐 맥퀴엔의 말처럼 이들이 남겨놓은 위대한 정신, 위대한 디자인, 위대한 발명은 후대에도 멋지게 기억될 겁니다.

 

당신들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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