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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UFACTURE VISIT ::

튜더 매뉴팩처 방문기

KIMI-7

조회 3894·댓글 13

- 튜더 매뉴팩처 전경

 

타임포럼은 워치스앤원더스 제네바 2024가 한창인 지난 4월 11일 스위스 르 로클(Le Locle)의 튜더(Tudor) 매뉴팩처를 방문했습니다. 제네바에서 차로 약 2시간을 달려 도착한 르 로클은 인구가 1만명 정도 되는 소도시이지만 17세기부터 스위스 시계 산업의 중추 역할을 자처한 곳으로 인근의 라쇼드퐁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재된 바 있습니다. 제니스, 율리스 나르당 등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수의 제조사를 비롯해 합성 루비, 사파이어 크리스탈, 세라믹 부품을 생산하는 코마두르(Comadur)나 헤어스프링을 만드는 니바록스(Nivarox-FAR) 같은 스와치 그룹의 자회사도 르 로클에 터를 잡고 있습니다. 마을 어귀를 지나 얼마간을 더 내달리면 목가적 풍경에 둘러 쌓인 튜더 매뉴팩처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 옥상에 설치한 태양광 패널

 

이전까지 튜더 시계의 조립은 제네바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부품 및 무브먼트 공급처와 연계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르 로클에 새로운 거처를 마련했습니다. 튜더 매뉴팩처는 2018년에 착공해 3년만인 2021년에 준공됐으며, 2023년 3월 공식 개관했습니다. 5층으로 구성된 건물의 면적은 5,500제곱미터에 달하며 전체 부지는 10,642제곱미터입니다. 쥐라 산맥에 위치한 르 로클은 겨울이면 기온이 크게 내려가 땅이 얼고 봄이 오면 얼었던 땅이 녹기를 반복해 지반이 단단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건물을 짓는데 그리 우호적인 환경은 아닙니다. 게다가 2020년에는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예기치 못한 사건이 터지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르 로클은 외진 곳이라 상대적으로 그 여파가 심하지 않아 공사에 큰 차질을 빚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튜더 매뉴팩처 바로 옆에는 튜더가 2016년에 설립한 무브먼트 제조사 케니시(Kenissi)가 있습니다. 긴밀한 협업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튜더 매뉴팩처와 케니시는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붉은 색의 튜더 매뉴팩처와 달리 케니시의 외관은 회색이어서 둘의 성격이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현재 140여명이 튜더 매뉴팩처에 출근하고 있으며 케니시에는 그보다 많은 인원이 근무 중입니다. 튜더 매뉴팩처에서 몇 발자국만 이동하면 롤렉스 건물이 있습니다. 롤렉스의 일부 제품을 생산했던 곳이었으나 지금은 사무를 담당하는 소수의 인원만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 응접실 내부

 

- 오이스터 프린스 서브마리너

 

-1930년대에 생산된 튜더의 시계

 

매뉴팩처를 방문한 인원들은 조만간 펼쳐질 탐험을 앞두고 한 자리에 모여 짧은 휴식을 취했습니다. 방문객을 맞이하는 응접실에는 레고로 지은 튜더 매뉴팩처 모형을 비롯해 올 블랙스 같은 튜더의 파트너와 관련된 소품이 가득했습니다. 튜더의 발자취를 담은 헤리티지 모델도 전시되어 있는데요.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제품은 사각 시계였습니다. 호주에서 발견된 이 시계는 1930년대에 생산된 제품으로 현재까지 발견된 튜더 시계 가운데 가장 오래된 시계라고 합니다. 튜더가 1930년대에 시계를 제작했음을 알 수 있는 증거인 셈입니다. 

 

- 매뉴팩처 내부에 그려진 벽화

 

 

이제 매뉴팩처의 심장부로 진입할 시간입니다. 워치메이커가 입는 가운과 방진용 덧신을 신고 건물 지하로 이동합니다. 튜더와 관련된 여러 요소를 묘사한 그림으로 벽을 가득 채웠습니다.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벽화를 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합니다. 지하 복도를 지나가면서 튜더 매뉴팩처의 건설 과정을 기록한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지하에는 건물 내부의 온도와 습도를 일정한 수준으로 유지해주는 HVAC(난방, 환기, 에어-컨디셔닝) 설비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화재가 날 경우를 대비해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는 한편 질소를 이용한 건식 화재 진압 설비도 마련했습니다. 건물 바닥은 침수를 막기 위해 멤브레인 방수 시공을 했습니다. 튜더 매뉴팩처는 에너지 절감에도 만전을 기울였는데요. 이를 위해 건물 외벽에는 세이지 글라스 유리를 설치했습니다. 세이지 글라스는 유리 색을 변화시켜 투과되는 태양광의 양을 알아서 조절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덕분에 사계절 내내 실내 온도를 적정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습니다. 추가로 옥상에는 442개의 친환경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 전기를 충당한다고 합니다. 

 

- 재고 창고에서 조립 부서로 부품을 전달하는 통로

 

다음으로 도착한 곳은 튜더 매뉴팩처에서 촬영이 허가되지 않는 몇 안 되는 곳 중 하나인 재고 창고입니다. 튜더는 효율성을 증대하고자 자동화된 재고 관리 및 물류 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 모든 것은 전산화되어 있으며 철저하게 통제됩니다. 이곳에는 시계 생산에 필요한 모든 부품은 물론이고 무브먼트까지 저장되어 있습니다. 워치메이커가 필요한 부품을 주문하면 로봇이 부품을 꺼내 트레이에 옮겨 담고 컨베이어 벨트를 통해 전달합니다. 하지만 모든 업무가 로봇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로봇이 다룰 수 없는 부품, 예를 들면 브레이슬릿 링크는 사람이 트레이에 담아야 합니다. 이런 이유로 재고 창고에는 반드시 사람이 상주한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인원은 총 5명입니다.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재고 창고에서 넘어온 부품은 카트에 담습니다. 워치메이커는 카드 키를 이용해 자신이 주문한 부품인지를 확인한 뒤 부품을 넘겨 받습니다. 철저한 재고 관리 덕분에 워치메이커는 시계 조립에 필요한 만큼의 부품만을 소지할 수 있습니다. 임의로 부품을 유출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조립 부서에는 가장 많은 인원이 모여 있습니다. HVAC 시스템이 쾌적한 환경을 위해 1시간에 3~5회 공기를 순환시킵니다. 천장부터 바닥까지 공기가 흐르며 먼지나 이물질이 조립 부서 내부를 부유하는 것을 방지합니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워치메이커는 4명이 한 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1명은 다이얼 조립, 1명은 바늘 장착, 나머지 2명은 케이싱을 담당합니다. 4개의 테이블은 기계부터 서랍 속 내용물과 구성까지 완전히 동일합니다. 이들은 같은 시기에 같은 업무를 배웁니다. 일종의 전우조 같은 개념인데요. 팀워크를 통해 목표 의식을 강화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들은 파트를 옮겨 다니며 시계 제조에 필요한 기술을 차례차례 습득합니다. 같은 공정을 반복할 경우 능률이 떨어지기 때문에 순환근무를 합니다. 모든 시계를 다룰 수 있는 완전한 워치메이커로 육성하는 것이 종국적인 목표입니다. 인상적인 점은 많은 공정이 자동화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시계를 조립하는 것은 워치메이커의 몫이지만 일부 주유 과정은 로봇이 진행하며 바늘 장착은 워치메이커와 로봇이 함께 하는 반자동 방식입니다.

 

 

시계에 문제가 있으면 바로 워치메이커에게 보내 수정할 수 있도록 품질 관리 부서는 조립 부서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품질 관리 부서에서는 출하되는 모든 튜더 시계를 테스트합니다. 품질 관리는 TPC(Tudor Perfomance Control)TMC(Tudor Master Chronometer Control)로 나뉩니다. TMC는 마스터 크로노미터 인증을 받는 제품, TPC는 그 외 나머지 제품을 대상으로 합니다. 작년에 새롭게 단장한 품질 관리 부서는 완전한 자동화 시스템을 갖췄습니다. 넓은 공간은 테스트를 진행하는 기계가 채우고 있습니다. 이곳에 설치된 기계의 무게만 대략 46톤에 달한다고 합니다. 자동화 테스트 시스템은 24시간 365일 쉬지 않고 가동합니다. TPC 기계가 대부분이고 TMC는 비중이 낮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수가 적습니다. 하지만 마스터 크로노미터 인증을 받는 시계가 늘어날 것이기에 향후에는 TMC 기계가 더 많아질 겁니다. TMC 기계를 관리하는 인원은 2명입니다. 모든 것이 자동화되어 있기 때문에 2명이 교대로 근무하면 문제가 없다고 합니다.

 

- 다양한 TMC 설비

 

- METAS의 워치메이커

 

마스터 크로노미터 인증을 받는 시계는 정확성, 파워리저브, 방수, 항자성 테스트를 거칩니다. GPS 신호를 바탕으로 24시간 동안 바늘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기계도 있습니다. 품질 관리 부서 한 켠에는 스위스 계측학 연방학회(METAS) 직원들이 머무는 공간이 있습니다. 마스터 크로노미터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매뉴팩처에 METAS 직원이 상주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테스트를 통과한 시계는 로봇에 의해 브레이슬릿을 장착하는 워치메이커에게 전달됩니다. 브레이슬릿을 연결하면서 시계에 문제가 없는지를 최종 검수합니다. 이상이 없으면 포장 후 발송합니다. 스페셜 에디션을 위해 케이스백에 인그레이빙을 하는 작업도 이곳에서 이루어집니다. 튜더는 완제품을 재고로 쌓아두지 않습니다. 모든 시계는 생산과 동시에 전세계 튜더 매장으로 보냅니다. 튜더는 이 같은 재고 관리 시스템을 '노 스톡 어프로치(No stock approach)'라고 부릅니다. 상품의 이력을 면밀히 추적하고 효율적인 생산 관리를 위해 이 같은 방식을 도입했다고 합니다. 

 

 

튜더 매뉴팩처를 뒤로 하고 케니시로 이동합니다. 케니시는 움직임(Movement)이라는 뜻의 그리스어인 키네시스(Kinesis)에서 유래했습니다. 튜더의 무브먼트를 생산하는 케니시는 ETA와 셀리타가 양분하다시피 한 에보슈 무브먼트의 틈새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후방 기지이기도 합니다. 현재 케니시는 튜더를 제외하고 7개 회사(브라이틀링, 샤넬, 노케인, 포티스, 태그호이어, 벨앤로스, 울트라마린)에 무브먼트를 공급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샤넬은 케니시와 산업 동맹 조약을 맺고 케니시의 지분 일부를 인수했습니다. 관계자에 의하면 추가로 2개 회사와 계약 세부 조건을 협의 중이며, 빠르면 내년에 이들 회사에 무브먼트를 납품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메이저 브랜드냐는 필자의 질문에 관계자는 미소를 띤 채 흥미로운 브랜드라고 힌트를 줬습니다. 케니시는 머지 않아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도 개발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 RFID 태그가 내장된 키트

 

여러 공정이 기계에 의해 이루어지지만 무브먼트 조립만큼은 워치메이커가 담당합니다. 워치메이커 벤치는 컨테이어 벨트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워치메이커가 자신에게 할당된 작업을 마무리하면 무브먼트는 자동으로 다음 단계를 수행하는 워치메이커에게 전달됩니다. 미완성된 무브먼트는 RFID 태그가 내장된 키트에 장착된 채로 컨테이어 벨트를 따라 이동합니다. RFID 태그를 통해 무브먼트의 이동 경로를 추적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제품의 품질, 생산성, 조립 과정을 개선하기 위한 데이터를 수집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무브먼트 크기에 따라 키트 색이 다른데 파란색은 대형, 초록색은 중형, 빨간색은 소형입니다.

 

 

이곳에서 완성된 모든 무브먼트는 케니시에서 진행하는 자체적인 테스트를 거친 뒤에야 비로소 스위스 공식 크로노미터 인증 기관(COSC)으로 향합니다(주 : 자체 테스트에서 허용하는 하루 평균 오차는 -2~+4초). 크로노미터 인증을 획득하고 돌아온 무브먼트는 오토매틱 모듈과 바늘을 장착하고 케이싱에 집어넣습니다. 이후 마지막 관문인 마스터 크로노미터 인증을 위한 테스트에 돌입합니다. 

 

- 튜더 블랙 베이 58 GM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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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접실로 돌아와 간단한 식사를 하는 것으로 짧았던 여정은 끝이 났습니다. 그간의 경험으로 미루어봤을 때 튜더 매뉴팩처와 케니시는 상당한 수준의 자동화 공정을 이룩한 상태였습니다. 무브먼트 조립이나 일부 공정은 여전히 사람의 손에 의해 이루어지지만 나머지는 모두 기계와 로봇이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시계 산업이 이 정도로 자동화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인간이 개입할 여지가 줄었기 때문에 관리나 생산성 측면에서 효율이 높고, 영업레버리지 효과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생산량이 많은 브랜드이다 보니 이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계 가격이 크게 오른 상황에서 튜더의 시계가 우수한 상품성으로 인기몰이를 하는 건 이런 배경이 뒷받침됐기 때문일 겁니다. 한편으로는 공정이 자동화될수록 사람의 손길이 점점 줄어들기에 기계식 시계가 주는 아날로그 감성과 가치가 점점 퇴색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곱씹어 보는 계기가 됐습니다. 이상으로 튜더 매뉴팩처 방문기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