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ther of Ultrathin Highend
여기 태어나면서부터 너무나도 완벽했던 무브먼트가 있습니다.
1925년...아직 회중시계에서 손목시계로의 전환이 완전하지도 않던 그 시대에,
프레더릭 피게(Frederic Piguet; 이하 FP)의 초박형 손목시계 무브먼트인 Cal.21은 그렇게 완벽하게 태어났습니다.
물론 우아하게 수면위를 노니는 백조의 다리가 수면 아래에서는 열나게 움직이고 있는 것 처럼
FP Cal.21 도 세상에 나오기 까지는 15년이라는 인고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현 Blancpain Manufacture, 구 Frederic Piguet의 창립자인 천재 워치메이커 Louis Elysse Piguet의 아들 Henry Louis Piguet가 1911년부터 기울인 각고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FP 21은 1925년 Cal.99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직경 20.4mm(9 Ligne)에 1.74mm라는 매우 얇은 두께를 가지는 이 무브먼트를 제가 감히 처음부터 완벽했다고 말씀드리는 이유는...
이 무브먼트의 1.74mm라는 두께의 기록을 깰 수 있는 경쟁자들이 20년동안 없었으며,
20년 후 마침내 이 기록을 깬 루키들 또한 이 무브먼트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무브먼트 들이며,
이 무브먼트가 충격 흡수장치나 진동수(18000 A/h → 21,600 A/h) 정도의 경미한 수정만이 가해진 체 Cal.21 이라는 이름으로 1925년 그때 그 모습 그대로 2000년 초까지 계속 생산되었기 때문입니다.
FP Cal. 21(= Cal.99)의 1.74mm 라는 초박형 두께 기록은 이 무브먼트가 데뷔한 1925년에서부터 20년이 경과한 시점인 1946년에서야 Audemars Piguet가 초박형 무브먼트인 Cal.2003을 1.64mm 의 두께로 만들어냄에 따라 깨지게 됩니다.
20년이란 시간은 스위스 시계업계의 특허 만료 기간에 해당하기 때문에, 20년이 지난 시점에야 경쟁 무브먼트가 등장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특히, Cal.2003의 전신격인 AP Cal. 9˝ML이 1.64mm의 두께로 1938년 이미 존재 했음에도 극소수의 생산량과 작동의 불완전성으로 두께 기록 갱신으로 일반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과,
이 Cal. 9˝ML을 Cal.2003으로 개량하는데 Audemars Piguet/Vacheron Constantin/Jaeger Lecoultre가 모두 연합하여 달려들어(물론 일은 JLC가 다 했겠죠...ㅋㅋ) 간신히 발표만 한게 1946년이고 제대로 된 생산은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1953년부터 라는 건 당시 FP의 Cal.21이 얼마나 오버테크놀로지 였는지 보여주는 일입니다.
더더군다나 Cal.9˝ML조차 피게 가문의 설계였다는 소문도 있기 때문에,
Cal. 9˝ML을 바탕으로 만든 AP의 2003(= VC 1003 = JLC 803)이 20년간의 정체된 기록을 깨고 Trinity의 위엄을 빌어 아직도 빛나고 있지만
그 어머니 격인 존재는 FP Cal.21 임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아울러 JLC가 803을 바탕으로 본인들이 사용하기 위해 만든 JLC 839나 그 수정본인 JLC 849 또한 이쪽 혈통을 따르고 있는 것이죠.
결론적으로 말씀 드리자면, FP Cal.21은 메인 플레이트 위에 기어와 배럴, 밸런스휠을 얹고 그 위를 브릿지로 고정하는 형태를 가진 모든 초박형 손목시계 무브먼트의 직접적, 또는 정신적 어머니 격인 것입니다.
잠깐 사족을 붙이자면, 현재 울트라씬 전쟁을 벌이고 있는 피아제와 불가리의 초박형 시계들은 혈통상 FP Cal.21과는 다른 계통입니다.
그들은 Jean Lassale 이라는 브랜드의 Cal.1200 에서 시작해서 초박형 쿼츠 무브먼트인 Dinosaure, AP의 초박형 뚜루비용인 Ref.25643BA를 거쳐 이어지는 또 하나의 장대한 서사시의 일부입니다.
울트라씬 무브먼트에 대한 글은 제가 진즉부터 써보려고 했던 바였으나,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울트라씬 무브먼트에 대한 최고의 글이자 FP Cal.21에 대한 최고의 헌사는 링고님의 컬럼 <시계탐험 3 : 울트라슬림 심플와치 - 얇음의 미학> 이기 때문에 이를 링크해 드리고 이만 글을 줄이겠으며...
https://www.timeforum.co.kr/TFWatchColumn/87933
암튼 제가 오늘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떠들었던 이유는...
물론 샀으니까 빨기 위해서죠~ ^^
Blancpain Villeret Ultra Slim Ref. B3028-1542-55
2000년 블랑팡 창사 265주년을 기념하여 265개만 발매된 한정판 입니다
화이트 골드 케이스에 36mm의 크기를 가지고 있으며...
이 매끈한 엉덩이 안에 Mother of Ultrathin...FP Cal. 21을 품고 있습니다.
무브먼트가 안보여서 아쉬우시다고요? ㅎㅎ
이게 열립니다~ ^^
구하기 무진장 힘들었습니다.
프레더릭 피게-그리고 블랑팡...제 취향에 딱 들어맞는 시계죠...^^
블랑팡 시계는 여러개 가지고 있지만 빌레레 라인은 처음인데 생각보다 우아하고 스포츠 라인과는 완연히 구별되는 매력이 있어서 받자마자 심쿵했습니다.
아마도 조만간 스위스 고향으로 점검차 떠나보내야 할 것 같지만,
가기전 1-2주 간이라도 물고 뜯고 빨아볼 예정입니다.
고생대부터 이미 진화를 마치고 그때 그 모습 그대로 심해를 유영하는 상어처럼,
그때 그 시절, 이미 완벽한 모습으로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FP Cal. 21...
2000년 초 이후로 현행 블랑팡 라인업에서는 모습을 감추었지만, 언젠가 우리 곁으로 다시 돌아오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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