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HH 2017] Richard Mille Report
시계를 차에 비견한다면 리차드 밀(Richard Mille)의 시계는 F1 경기에 출전하는 F1 레이스카에 해당할 것입니다. 실제로도 F1 레이스카의 디자인과 첨단 소재에서 컬렉션의 영감을 얻는 리차드 밀은 올해는 F1 경기의 전통적인 명가인 맥라렌(McLaren)과의 긴밀한 파트너십을 바탕으로 한 인상적인 신제품을 선보였습니다.
또한 SIHH 부스 중앙에 맥라렌-혼다 F1 팀의 최신 머신인 MP4-31의 실물을 전시해 많은 관람객들의 발길을 멈추게 했습니다. 신제품 개수는 적지만 어떻게 임팩트를 주고 무엇을 강조해야할 지 리차드 밀은 언제나 그렇듯 본능적으로 간파하고 있었습니다.
RM 50-03 Tourbillon Split Seconds Chronograph Ultralight McLaren F1
RM 50-03 투르비용 스플릿 세컨드 크로노그래프 울트라라이트 맥라렌 F1
신작 RM 50-03 투르비용 스플릿 세컨드 크로노그래프 울트라라이트 맥라렌 F1은 맥라렌과의 협업으로도 화제를 모았지만, 스트랩을 포함한 시계 전체 무게가 40그램을 넘지 않아 그 놀라운 무게로도 주목을 받았습니다. 실제 현장에서 시계를 들어보고 착용해 본 결과 40그램이라는 무게는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만큼 매우 가볍고 인상적이었는데요. 리차드 밀은 이 시계를 두고 세계에서 가장 가벼운 기계식 크로노그래프 시계라고 주장할 정도입니다.
리차드 밀은 지난 10여 년간 시계 외장 소재로는 사용된 적이 없는 혁신적인 소재들(ex. 일련의 카본 계열 신소재, 알루식, 리탈, 쿼츠-TPT 등)을 연구하고 궁극적으로 경량성과 내구성에 포커스를 맞춰왔지만, 신작 RM 50-03 투르비용 스플릿 세컨드 크로노그래프 울트라라이트는 기존의 실험적 행보에서 기술적으로 한 발 더 나아간 느낌입니다.
경이로운 무게의 케이스 제작을 위해 리차드 밀은 협력사인 신소재 개발 기업 노던 씬 플라이 테크놀로지(North Thin Ply Technology, 이니셜로 줄여서 NTPT® 컴퍼니)의 연구진을 통해 2015년 영국 맨체스터 대학에 설립된 국립 그라핀 연구소(National Graphene Institute)와 손잡고, 기존의 카본 베이스 첨단소재인 카본 TPT™에 스틸에 비해 6배 이상 가볍고 200배 정도 단단한 혁신적인 투명 나노 소재인 ‘그라핀’을 주입함으로써 탄소(카본)의 물리적 속성을 월등하게 개선시킨 그라프(Graph) TPT™라는 완전히 새로운 소재를 개발했습니다. 그리고 이 그라프 TPT™를 인하우스 케이스 팩토리인 프로아트(ProArt)를 통해 고도로 정밀한 CNC 머신으로 제작에 성공한 것입니다.
- 전자 현미경으로 확인된 그라핀 결정
여기서 잠깐, 저를 포함해 여러분들에게도 '그라핀(Graphene)'이라는 소재가 많이 생소하게 들릴 줄 압니다. 그라핀에 관해 좀 더 덧붙이자면, 탄소원자로 이루어진 얇은(원자 1개의 두께) 막을 가리키는 용어로서 물리적 화학적 안정성이 뛰어나 초고속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 활용도가 높아 과학자들로부터 ‘미래의 신소재’로 불리고 있습니다. 그라핀은 2004년 영국 맨체스터 대학 물리-천체학 대학원의 앙드레 가임(Andre Geim) 교수와 콘스탄틴 노보셀로프(Konstantin Novoselov) 교수가 주축이 된 공동연구팀에서 최초로 그라핀을 분리시키는데 성공했으며, 6년 후인 2010년 두 사람은 그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리차드 밀에 의해 시계 케이스 제조에 응용되기에 앞서 그라핀은 맨체스터 대학과도 관계된 후원사이자 맥라렌의 계열사인 맥라렌 어플라이드 테크놀로지(McLaren Applied Technologies)에 의해 수퍼카에 사용할 신소재로써 연구되고 있었다고 하는데요. 리차드 밀과 맥라렌의 인연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노던 씬 플라이 테크놀로지와 맥라렌 어플라이드 테크놀로지의 공동 연구 개발로 수 차례의 품질 관리 및 검증 테스트를 거쳐 그라프 TPT™를 생산할 수 있는 솔루션을 개발, 이를 리차드 밀 시계에 독점 공급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입니다.
그런데 신제품 RM 50-03 투르비용 스플릿 세컨드 크로노그래프 울트라라이트 맥라렌 F1 시계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적어도 외관상으로는 기존의 TPT™ 혹은 NTPT® 카본 케이스와 구분이 쉽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육안으로는 TPT™ 카본인지 새로운 그라프 TPT™인지 일반인들은 당최 구분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라핀은 추출물 자체가 투명하고 나노 입자로 구성되어 투과성이 우수하기 때문에 TPT™ 카본 베이스에 그라핀이 주입되어도 외적으로 드러나는 성질의 변화는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고로 새로운 그라프 TPT™로 제작한 케이스 역시 기존의 TPT™ 카본 계열과 마찬가지로 특유의 불규칙한 결이 그대로 느껴집니다.
리차드 밀의 공식 자료에 따르면, 2차 가공된 카본 TPT™ 케이스는 600여 개의 층에 달하는 병렬 필라멘트로 구성돼 있으며(각 층의 최대 두께는 30 마이크론에 불과), 이를 그라핀이 함유된 초고밀도 합성수지에 침전시킨 후 CNC 기기로 점착시키면서 각 층의 방향을 45°씩 회전시켜 층을 쌓아 올린 다음 6기압의 압력으로 120°C의 온도에서 가열하는 과정에서 점차 케이스가 견고해진다고 합니다. 베젤, 미들 케이스, 백케이스로 세 분할된 멀티 피스 케이스를 이런 식으로 각각 제조한다음 다시 고가의 밀링 머신으로 다듬음으로써 리차드 밀 고유의 케이스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참고로 케이스 가로 직경은 44.5mm, 세로 폭은 49.65mm, 두께는 16.1mm이며, 두 개의 니트릴 오-링 씰을 추가해 50m의 생활 방수를 보장합니다.
스트랩 포함한 시계 총 무게가 40그램이 채 되지 않는다면 무브먼트의 무게는 어느 정도나 할까요? 놀라지 마십시오. 스켈레톤 가공한 투르비용 스플릿 세컨드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의 총 중량이 고작 7그램에 불과합니다. 과장을 좀 섞으면 깃털처럼 가벼운 무게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울트라라이트’라는 시계의 이름에도 부합하는군요.
여느 리차드 밀 컴플리케이션 무브먼트들과 마찬가지로 RM50-03 칼리버 역시 오데마 피게 르노 & 파피(APR & P)와의 협업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앞서 출시된 RM 008과 RM 50 시리즈와 비슷한 기능의 스플릿 세컨드 크로노그래프 & 투르비용 조합의 수동 칼리버를 베이스로 새로운 시계에 걸맞게 몇 가지 눈에 띄는 수정을 가했습니다. 그중 압권은 앞서 언급했듯 무게에 있습니다. 7그램의 비밀은 베이스 플레이트와 브릿지 소재로 그레이드 5 티타늄과 카본 TPT™를 사용했기에 가능했습니다. 전체 스켈레톤 가공한 해당 플레이트와 브릿지는 리차드 밀 특유의 개성적인 코팅 & 피니싱을 거치며, 모서리의 앵글라주(베벨링)와 일부 스크류와 휠의 블랙 폴리싱은 일일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지고, 최종 조립 역시 한 명의 전담 워치메이커에 의해 조립, 테스트되었습니다. 그러나 무게가 가벼운 무브먼트라 해서 내구성을 포기한 것은 아닙니다. 그레이드 5 티타늄과 카본 TPT™ 소재 자체의 내구성과 인장 강도가 뛰어난데다 케이스와 마찬가지로 5,000g의 충격에도 견딜 수 있을 정도로 리차드 밀 워크샵 자체적인 엄격한 테스트를 거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전 컬럼휠 설계의 스플릿 세컨드 크로노그래프 칼리버에서 보다 개선된 스플릿 세컨드 시스템이 도입되었습니다. 스플릿 세컨드 기능을 관장하는 주요 클러치와 로커를 지탱하는 중앙 브릿지 소재부터 견고한 TPT™ 카본을 사용했으며, 새로운 디자인의 스플릿 세컨즈 클램프를 고안해 리차드 밀 측이 주장하는 이론상으로는 크로노그래프 기능 작동시 에너지 소비가 50% 가까이 감소했으며 동시에 클램프를 지탱하는 축의 마찰도 줄어들었다고 덧붙입니다.
다이얼 면으로는 12시 방향에 리차드 밀식의 파워리저브 인디케이터(RM50-03 칼리버의 경우 약 70시간)라 할 수 있는 토크 인디케이터를 표시하며, 9시 방향 서브 다이얼 링으로는 크로노그래프의 30분 카운터를, 6시 방향에는 스몰세컨드 핸드(초침)와 함께 12.4mm 직경의 투르비용 케이지를 노출합니다. 그리고 3시 방향에는 W(와인딩)-N(중립)-H(핸드세팅)을 각각 설정할 수 있는 펑션 인디케이터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크로노그래프 푸셔는 맥라렌-혼다 F1 팀 머신의 공기 흡입 덕트에서, 크라운의 형태 및 디테일은 실제 레이싱카에서 사용되는 휠 림에서 영감을 얻어 디자인되었다고 합니다. 매끈한 토노형 케이스 뿐만 아니라 다이얼 면과 크라운에 트리밍된 선명한 블랙/레드 컬러 대비 역시 이 시계에 영감을 준 맥라렌-혼다 F1 팀의 머신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합니다.
또한 그라핀은 케이스 외에 RM 50-03의 스트랩에도 주입되어 눈길을 끕니다. 이 또한 언급하지 않으면 육안으로는 확인이 어려운데, 러버를 사출하기 전 단계에서 나노 입자의 그라핀을 더함으로써 러버의 탄성이 증가하며 내구성이 우수해진다고 합니다. 이렇듯 독특한 배합의 스트랩은 리차드 밀의 스트랩 파트너사인 비위(BIWI S.A.)에서 생산해 독점 공급받고 있습니다.
RM 50-03 투르비용 스플릿 세컨드 크로노그래프 울트라라이트 맥라렌 F1 시계는 총 75피스 한정 제작될 예정이며, 리차드 밀 직영 부티크에서만 구매할 수 있습니다.
RM 35-02 Rafael Nadal New Version & RM 11-03 Jean Todt Limited Edition
RM 35-02 라파엘 나달 뉴 버전 & RM 11-03 장 토드 리미티드 에디션
이번에 보실 두 컬러 케이스 제품들은 엄밀히 말하면 이번 SIHH 신제품은 아닙니다만, 우리 포럼 및 국내에선 아직 소개되지 않은 비교적 최신 모델이기에 함께 간단하게 소개합니다.
팝한 레드 컬러 케이스가 돋보이는 RM 35-02 라파엘 나달 오토매틱 쿼츠-TPT 레드 모델부터 보시면, 지난해 선보인 첫 RM 35-02 라파엘 나달 에디션과 마찬가지로 NTPT® 카본과 쿼츠-TPT® 라는 자체적으로 개발한 신소재를 결합시켜 완성했습니다. 레드 컬러의 쿼츠-TPT®는 카본파이버와 실리카를 분해하여 45마이크론 미만의 아주 얇은 두께로 병렬 배치 방식으로 필라멘트 레이어(층)을 켜켜이 쌓은 다음, 특별히 리차드 밀 제품만을 위해 제작된 붉은색 수지를 이용하여 선처리한 후, 각 층마다 방향을 45° 변경시키는 자동 위치 시스템을 적용하여 적층시킵니다. 이어 오토 클레이브(일종의 가마)에 넣고 120°C로 가열 처리하는 식으로 이같은 케이스를 얻을 수 있게 됩니다.
이전 RM 35-02 라파엘 나달 에디션과 외관상으로나 스펙상으로는 바뀐 것이 거의 없습니다. 다만 스트랩 컬러와 소재가 이전의 옐로우 컬러 스트랩에서 케이스와 같은 레드 컬러의 러버 소재로 바뀌었습니다.
무브먼트는 전체 스켈레톤 가공한 자동 칼리버를 탑재했으며, 베이스 플레이트와 브릿지는 그레이드 5 티타늄을 바탕으로 샌드 블라스트 & PVD 마감을 거쳤습니다. 무브먼트의 시간당 진동수는 4헤르츠, 파워리저브는 약 55시간. 사파이어 크리스탈을 사용한 투명 케이스백을 통해서는 세라믹 볼 베어링을 사용한 리차드 밀 고유의 가변 지오메트리 로터 형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 블루 컬러 케이스가 인상적인 RM 11-03 장 토드 에디션입니다. 국제자동차연맹(Federation Internationale de l'Automobile, FIA) 회장이자 리차드 밀의 오랜 절친인 장 토드의 50주년 커리어를 기념하기 위해 제작된 시계로 알려져 있으며, 케이스 소재는 NTPT® 카본을 바탕으로 측면(미들 케이스)과 케이스백은 블랙으로, 베젤부는 블루 컬러를 사용해 제법 독특한 느낌을 줍니다. 제가 기억하는 한 리차드 밀이 NTPT® 카본을 베이스로 이러한 선명한 블루 컬러 케이스를 선보이기란 처음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또한 리차드 밀의 친구를 향한 애정(?!)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아닐까요?
무브먼트는 기존의 RM 11-03 시리즈와 동일한, 플라이백 기능을 지원하는 자동 크로노그래프 칼리버를 탑재했습니다. 스켈레톤 가공한 무브먼트를 케이스 앞뒤로 시원하게 노출하며, 다이얼에 크로노그래프 카운터 외에 오버사이즈 데이트를 표시하고, 무브먼트의 베이스플레이트와 브릿지는 그레이드 5 티타늄으로 제작했습니다. 진동수 4헤르츠, 파워리저브는 약 55시간.
RM 037 & RM 07-01 NTPT® Gem-Set
다음은 앞서 Pre-SIHH 소식으로 먼저 소개해드린 여성용 신제품 2종입니다. RM 037과 RM 07-01이 그것인데요.
관련 뉴스 참조 >> https://www.timeforum.co.kr/SIHH/14872897
독특한 물결 무늬 덕분에 어느덧 리차드 밀 남성용 컬렉션의 시그너처로 자리를 잡은 NTPT® 카본 케이스에 처음으로 다이아몬드를 세팅해 여성용 모델로 선보였습니다. 아시다시피 NTPT® 카본은 소재 자체가 가벼우면서도 표면경도가 높아 매우 단단하기 때문에 젬 세팅을 위한 프롱(다이아몬드를 고정하는 일종의 발)을 세공하는 것 자체가 모험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리차드 밀은 굳이(?!) 수고스럽게도 NTPT® 카본 바탕에 특수한 CNC 머신을 활용해 베젤 전체에 풀 파베 다이아몬드 세팅을 성공시켰습니다.
RM 037 모델의 경우 케이스 직경은 가로 34.4mm x 세로 52.63mm x 두께 13mm 사이즈로 제작되었으며, 베젤부는 물론 다이얼 중앙 골드 프레임에도 다이아몬드를 세팅해 특유의 고급스러움을 자랑합니다. 다이얼 면으로 시분 외에 오버사이즈 데이트로 날짜를 표시하며, 일부 스켈레톤 가공한 자동 무브먼트의 베이스 플레이트와 브릿지는 그레이드 5 티타늄으로 제작했습니다. 진동수 4헤르츠, 50시간 파워리저브.
타임온리 버전인 RM 07-01 모델은 케이스 가로 직경 31.4mm x 세로 45.66mm x 두께 11.85mm 크기로 제작되었습니다. RM 037과 거의 유사한 소재 선택과 디자인을 보여주며, 무브먼트 역시 가변 지오메트리 로터를 적용한 자동 칼리버를 탑재했습니다. 여성용 모델인만큼 다른 리차드 밀 모델에 비해 상대적으로 아담한 사이즈가 눈길을 끌며, NTPT® 카본 & 골드 케이스와 어우러진 다이아몬드 세팅의 효과로 럭셔리하면서도 스포티한 야누스적인 매력을 선사합니다.
이상으로, 신제품 개수는 비록 적지만 하나하나 강렬한 존재감을 자랑하는 리차드 밀의 SIHH 2017 리포트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