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COVID-19, 이하 코로나19)의 세계적인 확산으로 지난 4월 말 개최를 앞두고 돌연 취소된 워치스앤원더스(Watches & Wonders, 구 SIHH)가 오는 9월 중국 상하이에서 재개될 예정입니다. 관련해 워치스앤원더스의 주최자인 스위스 고급시계재단(Fondation de la Haute Horlogerie, FHH)은 7월 23일자로 발표한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워치스앤원더스가 9월 9일부터 13일까지 상하이 웨스트 분트 아트 센터(West Bund Art Center)에서 펼쳐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 W&W를 주최 주관하는 고급시계재단의 매니징 디렉터이자 의장인 파비앙 루포(Fabienne Lupo)
코로나19가 야기한 팬데믹 상황이 유럽 일부 국가와 오세아니아 국가 정도를 제외하곤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현실에서 고급시계재단 및 워치스앤원더스 참여 브랜드들이 합의한 이같은 결정은 사실 당혹스럽기 이를 데 없습니다. 관련해 지역 담당자들 및 미디어 관계자들에게 미리 귀띔으로라도 공유한 정보가 없었기 때문에 말 그대로 기습적으로 접한 소식입니다. 게다가 하필이면 코로나19의 발원지로 거론되는 중국에서 개최를 이어가겠다는 속셈도 헤아리기 쉽지 않습니다. 이러한 시국에도 변함없이 세계 럭셔리 시장의 큰손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중국을 다분히 의식하고 있음은 물론 스위스 시계 업계의 위기가 장기화될 것이라는 불안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보입니다.
- 스와치 그룹의 스위스 비엘 본사
실제로 스와치 그룹(Swatch Group)과 리치몬트 그룹(Richemont Group)이 연달아 발표한 올해 상반기 리포트를 보면, 스와치 그룹은 전년도 대비 매출액이 43.4%나 급감해 약 3억 스위스 프랑(CHF)의 영업 이익 손실이 발생했고, 리치몬트 그룹은 2020년 1분기 수익이 전년도 대비 약 47% 감소한 19억 9,000만 유로에 그쳤습니다. 21세기 들어 전례 없는 손실에 직면한 이들 그룹은 올해 하반기 어떤 식으로든 영업 이익을 회복하기 위한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전망되는데요.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리치몬트 그룹은 소속 브랜드들이 대거 참여하는 워치스앤원더스를 통해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겠다는 의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반면 스와치 그룹이 의외로(?) 이렇다 할 액션을 취하지 않고 차분하게 대처하는 모습이 대조적입니다. 스와치 그룹은 올 초 코로나19 위기가 불거지기가 무섭게 프레스티지 브랜드들이 참가하는 타임 투 무브(Time to Move 2020) 행사를 전격 취소했고, 이후 별다른 업데이트 없이 묵묵히 대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2019년 SIHH 파네라이 부스 전경
- 2019년 SIHH 피아제 부스 안 풍경
오는 9월 9일부터 13일까지 열릴 워치스앤원더스 상하이에는 랑에 운트 죄네(A. Lange & Söhne), 보메 메르시에(Baume & Mercier), 까르띠에(Cartier), IWC, 예거 르쿨트르(Jaeger-LeCoultre), 파네라이(Panerai), 파르미지아니 플러리에(Parmigiani Fleurier), 피아제(Piaget), 퍼넬(Purnell), 로저드뷔(Roger Dubuis), 바쉐론 콘스탄틴(Vacheron Constantin) 이상 총 11개 브랜드들이 참가할 예정입니다. 앞서 4월 워치스앤원더스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공개한 각 브랜드별 2020년 주요 신제품들을 비롯해, 과거 홍콩에서 개최된 워치스앤원더스 포맷을 떠올릴 때 특별히 중화권 고객들을 겨냥한 몇 종의 스페셜 리미티드 에디션도 추가로 선보일 것으로 짐작됩니다. 상하이 웨스트 분트 아트 센터에 마련될 전시장에는 전시 브랜드들의 개별 부스뿐만 아니라, 랩(LAB)으로 명명한 전시 브랜드들의 혁신적인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특별 쇼케이스 부스와 새로운 제품의 론칭 소식 등을 알리는 오디토리움, 그리고 마스터 아티산(장인)과 워치메이커들의 제작 및 조립 시연을 감상할 수 있는 메티에 갤러리(Métiers gallery) 등이 추가로 마련될 예정입니다.
- W&W 2020 디지털 플랫폼으로 공개한 주요 신제품들
워치스앤원더스 상하이는 퍼블릭 오픈 행사가 아닌 미리 초대장을 받은 소수의 미디어, 리테일 관계자, 일부 VIP 고객들만 방문할 수 있는 익스클루시브 이벤트 형태로 진행된다고 합니다. 참고로 타임포럼은 아직 워치스앤원더스 상하이 행사 취재 여부를 결정짓지 못했습니다. 현 코로나19 시국에서의 중국이라는 국가적 특수성과 비자 발급 문제, 출장 후 2주간의 자가 격리 등 여러 크고 작은 리스크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워치스앤원더스 상하이 관련해 추가로 업데이트 되는 사항이 발생하면 따로 공유하도록 하겠습니다.
한편 스위스 제네바에서는 제네바 워치 데이즈 2020(Geneva Watch Days 2020)가 오는 8월 26일부터 29일까지 4일간에 걸쳐 열립니다. 양대 메이저 워치 페어인 워치스앤원더스 제네바와 바젤월드가 연달아 취소되는 와중에도 불가리, 브라이틀링 등이 주축이 된 제네바 워치 데이즈 2020는 올해 안에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는데요. 결국 8월 말로 일자를 확정하고, 참가 메종도 17개까지 늘어난 상태입니다. 유럽 국가들 중 특히 스위스, 프랑스, 독일 등이 코로나19 방역 관리에 성공함으로써 최근 들어 낙관론이 강해진 영향이 없지 않아 보입니다.
- 올해 초 두바이에서 열린 LVMH 워치 위크 풍경
참가 브랜드는 알파벳 순으로, 아티아(Artya), 보베(Bovet), 불가리(Bvlgari), 브라이틀링(Breitling), 칼 F. 부쉐러(Carl F. Bucherer), 차펙(Czapek), 드 베튠(De Bethune), 페르디낭드 베르투(Ferdinand Berthoud), 지라드 페리고(Girard-Perregaux), 제랄드 젠타(Gerald Genta), H. 모저 앤 씨(H. Moser & Cie.), 루이 모이네(Louis Moinet), 모리스 라크로와(Maurice Lacroix), MB&F, 루즈(Reuge), 율리스 나르당(Ulysse Nardin), 우르베르크(Urwerk) 이상 총 17개 브랜드입니다. 올해 열리는 시계 행사 중에서는 현재까지 가장 많은 브랜드들이 참가하는 셈입니다. 다만 국내 시계애호가들에게는 아직 생소한 독립 시계 브랜드들이 다수 포함돼 있는 점이 앞서 소개한 워치스앤원더스 상하이와 가장 큰 차이점입니다.
- 역사 속으로 사라진 바젤월드
반면 올해 개최 취소는 물론, 다가올 2021년에는 LVMH 그룹 소속 시계 브랜드들과 함께 롤렉스(Rolex), 파텍필립(Patek Philippe), 쇼파드(Chopard), 샤넬(Chanel), 튜더(Tudor)까지 이탈하겠다고 밝혀 사실상 공중분해 위기에 처한 바젤월드(Baselworld)가 새로운 투자자를 만나 가까스로 기사회생해 아워유니버스(HourUniverse)로 새롭게 거듭납니다.
- 바젤월드의 뒤를 이어 새롭게 출범한 아워유니버스
관련해 구 바젤월드 주최자였던 MCH 측은 7월 23일 발표한 보도자료를 통해 "시계, 주얼리, 젬스톤 인더스트리를 위한 새로운 컨셉의 글로벌 플랫폼인 아워유니버스를 론칭한다"고 공표하고, 비투비투시(B2B2C), 즉 기업간 전자상거래를 위시로 한 혁신적인 플랫폼을 365일 상시 가동하면서 오는 2021년 4월 워치스앤원더스 제네바 개최 기간에 맞춰 바젤에서도 새로운 쇼를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다만 아워유니버스 관련 디테일한 사항들에 관해서는 말을 아끼면서 오는 8월 말에 추가적으로 공개하겠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렇듯 2020년 전례 없이 닥친 코로나19 상황으로 시계 업계도 격변의 한 해를 보내고 있습니다. 여전히 잔존하는 감염 위협에도 불구하고 재빨리 경직된 상황을 타개하고자 하는 스위스 시계 업계의 간절한 노력이 돋보이는 가운데, 하반기에는 그나마 조금 더 역동적인 소식들을 전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 반과 우려 반이 동시에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여러분들의 의견은 어떤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