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 여행 속 작은 여행 : 시계 액세서리 메이커 라포트(Rapport)
꿈에 그리던 시계를 고군분투해 손에 넣은 다음 날 아침, 거짓말처럼 다른 시계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일은 초보 시계애호가가 흔히 겪는 증상(?)입니다. 지름 이외에는 특별한 처방전이 없는 이 증상은 책상 한 켠을 차지한 시계들과 마주하며 끝이 납니다. 증상의 경중에 따라 다르긴 해도 통장의 잔고와 맞바꾼 소중한 시계를 책상 위에 두는 행위는 커다란 위험을 수반합니다. 어린아이가 집에 있거나 애완동물을 키우는 환경이라면 아주 끔찍한 결과가 기다립니다. 그리고 시계를 그냥 놔둔다는 사실 자체가 찜찜합니다. 보유 시계가 2, 3개를 넘어 나만의 컬렉션이 시작되려 한다면 더욱 안전한 시계 수납공간의 필요성을 느낍니다.
수 많은 시계 브랜드, 그 브랜드에서 만들어 내는 수 많은 시계는 아마 죽을 때까지 전부를 경험할 수 없을 겁니다. 시계 세계를 경험하다가 보관함 같은 시계 액세서리를 찾아 떠난 여행은 생각보다 싱거울지도 모릅니다. 시계에 비하면 그 세계의 크기와 깊이가 좁고 얕으니까요. 게다가 이 세계는 양극화되어 있어 저가거나 아니면 시계 가격과 맞먹는 고가로 쏠리는 경향이 강합니다. 제품의 만듦새와 가치가 적당하다고 여겨지는 제품 찾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은 편이죠.
영국의 라포트(Rapport)는 지금도 잉글랜드 메이드를 고수하는 회사입니다. 시계 보관함은 물론 워치 와인더, 반지나 귀고리 같은 소품 보관함을 만드는 회사로 미드-하이 레인지 가격대의 제품군을 운영합니다. 이들의 역사는 1898년에 시작됩니다. 창업자인 모리스 라포트가 약관 20세에 완성한 시계가 라포트의 초석이 되지만, 아쉽게도 시계 브랜드 라포트는 큰 족적을 남기지 못한 모양입니다. 다만 회중시계와 함께 워치 스탠드를 제작했었는데, 이것이 지금의 라포트를 있게 한 시발점이 되지 않았나 합니다.
시계 보관함의 요건은 무엇보다 시계를 안전하게 보호함입니다. 보관함 외부의 환경으로부터 시계를 지켜야 함을 의미하나, 어느 제품이라도 이 구실을 못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시계 보호의 또 다른 역할은 시계를 수납하는 과정에서 시계 표면에 손상을 가하지 않아야 합니다. 보관함 내부에 부드러운 섬유나 가죽을 사용하는 이유입니다. 여기서 조금 개념을 확장하면 브레이슬릿을 장착한 시계를 수납했을 때 쿠션이나 홀더가 적당한 탄력을 지녀 브레이슬릿에 강한 힘을 가하지 않아야 합니다. 장기간 보관했을 때에 브레이슬릿의 형태에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은 미적인 역할입니다. 그 자체로 아름다워야 하며 보관함의 가격을 결정하는 가장 큰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왼쪽부터 케이스 지름 45mm, 41mm, 38mm, 36mm
라포트의 라비린스 컬렉터스 박스는 보관함의 기능적인 요건을 훌륭하게 충족합니다. 유리 덮개가 아닌 본체와 같은 소재인 나무 덮개는 시스루 백이 아닌 솔리드 백과 같아서 내부를 볼 수 없지만 견고함을 더합니다. 보관함 내부는 부드러운 스웨이드를 사용했고, 홀더는 쿠션 모양의 기본형태와 그 바깥쪽에 끼울 수 있는 링 모양 부품이 한 조를 이뤄 대부분의 남성용 시계를 문제 없이 수납할 수 있습니다. 시계 간 간격도 충분하게 고려되어 있어 지름 45mm 내외의 큰 시계의 수납에도 큰 문제없어 보입니다. 미로를 뜻하는 모델명 라비린스는 보관함 표면의 페인팅으로 구체화 되어 있습니다. 빨강과 검정의 다소 도발적인 배색이지만 낮은 채도와 표면의 적절한 광택을 버무려 고급스러움으로 치환했습니다. 보관함 내부나 힌지의 마무리에서도 이 모델이 지향하는 가격대를 드러냅니다.
시계 보관함의 구매를 고려했거나 구매했다면 다음 타겟은 워치 와인더입니다. 없으면 모르지만 있으면 상당히 편리한 도구입니다. 데이트 기능의 자동 무브먼트가 가장 흔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와인더의 필요성은 분명합니다. (물론 고인물 시계애호가들은 예외입니다. 그들은 동력을 다해 멈춘 시계를 살리지 않고 그대로 착용한 뒤, 시간이 맞지 않은 채 착용중임을 인지하며 당당하기까지 합니다. 간혹 공격적인 성향은 그게 뭐가 문제냐며 되레 따지기도 합니다) 와인더의 필요성, 즉 사용 목적은 시계가 멈추지 않고 계속 작동하도록 하는데 있습니다. 시계를 착용하는 시점이 언제든 현재 시간을 표시해 새로 와인딩하거나 시간을 세팅하는 과정을 생략하도록 함입니다.
와인더의 그레이드는 나누는 기준은 다양하지만, 시계에 무리를 주지 않고 적정한 동력을 공급할 수 있는가, 소음 그리고 외관을 척도로 삼을 수 있겠습니다. 자동 무브먼트는 로터를 이용해 동력을 공급하는 특성상, 오버 와인딩의 안전장치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적절한 수준의 동력 저장상태, 즉 메인스프링의 토크 곡선에서 완만한 구간을 유지해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하루 회전수(Rotations Per Day)를 세세하게 결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워치 와인더는 시계의 특성상 집에서 중요한 공간에 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관장소는 침실일 확률이 크고 서재가 있다면 서재일 확률도 적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공간에서 소음(그리고 진동)은 중요한 요소이며 와인더의 수준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되 작동을 인지하지 못할 만큼의 저소음이라면 좋을 것입니다. 마지막인 외관은 보관함처럼 인테리어 소품이자 크기가 커지면 가구의 역할까지 겸해야 하므로 고급스러움이 따라야 합니다.
라포트 라인업의 특이점은 시계 보관함과 워치 와인더를 함께 다루는 것입니다. 전자기기에 가까운 와인더는 가죽이나 목재를 다루는 회사에 있어 이질적이지만 시계 액세서리라는 더 큰 카테고리 안에 두고 소화하고 있습니다. 라포트 워치 와인더 라인업은 비교적 다양한 편이며 최대 12개의 시계를 수용하는 모델도 있지만, 주력은 미드-하이 레인지 가격대입니다. 1, 2구 제품 비중이 높은데요. 2개의 시계를 수용할 수 있는 포뮬러 더블 워치 와인더 카본 파이버는 전체 제품군에서 중간에 해당하지 싶습니다. 외관을 카본 파이버로 둘러 가벼워 보이는 예상과 달리 제법 무겁습니다. 케이스 무게는 안정적인 고정과 진동을 고려한 결과라고 여겨집니다. 케이스의 주 소재는 나무이며, 깊은 색감과 광택을 머금은 피아노 마감의 상단 부는 소재를 가늠케 합니다. 2개의 시계를 나란히 수용하며, 바로 아래의 터치식 LCD 창으로 조작합니다. 주 전원 스위치는 뒤쪽에 있지만 한번 전원을 넣은 후에는 조작할 일이 거의 없으므로 위치는 문제되지 않을 듯 합니다. 워치 와인더의 회전 방향은 물론 600, 900, 1200, 1500, 1800, 2100 (Rotations Per Day)으로 세세한 회전 수 선택이 가능하며, 높은 회전 수까지 지원되는 점이 특징입니다. 한밤중이 아니라면 와인더 소음은 거의 느껴지지 않으며, 시계를 고정하는 홀더의 텐션도 적당해 보입니다.
마지막은 휴대 가능한 트래블 케이스로 실용성이 도드라집니다. 아직 라비린스 컬렉터스 박스만큼 10개의 시계를 채울 수 없거나, 여행이나 출장 시 시계와 함께 하지 않으면 불안함을 느끼는 시계애호가에게 적합한 제품입니다. 3개의 시계를 수납할 수 있으며 가운데는 1구형 트래블 파우치로 변신합니다. 요즘 추세인 컴팩트 한 시계 박스 구성에 있어 빠지지 않는 트래블 케이스와 비슷합니다. 트래블 케이스 내부는 스웨이드를 사용했고, 외부의 가죽은 탄탄한 소재로 보호기능을 수행하는 동시에 고급스러운 색감과 촉감을 드러냅니다.
여기까지 시계애호가 생활에 있어 보다 윤택한 시계 생활을 가능하게 할 제품을 살펴봤습니다. 길고 긴 시계 세계로의 여행 도중 소소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시계 액세서리로의 여행도 계획해 봄이 어떨까 싶습니다.
P. S. 시계 살 돈이 부족할 때야 말로 이 여행의 적기입니다.
타임포럼 뉴스 게시판 바로 가기
인스타그램 바로 가기
유튜브 바로 가기
페이스북 바로 가기
네이버 카페 바로 가기
Copyright ⓒ 2024 by TIMEFORUM All Rights Reserved.
게시물 저작권은 타임포럼에 있습니다. 허가 없이 사진과 원고를 복제 또는 도용할 경우 법적인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