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COVID-19, 이하 코로나19)의 여파로 얼마 전 갑작스레 개최가 취소된 워치스앤원더스 제네바(Watches & Wonders Geneva, 구 SIHH)가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극적으로 부활했습니다. 오늘(4월 25일)자로 워치스앤원더스 참가 브랜드들이 일제히 2020년 주요 신제품들을 공개했는데요. 올해 창립 265주년을 맞은 하이엔드 시계제조사 바쉐론 콘스탄틴(Vacheron Constantin)의 특별한 신제품 몇 점을 한 자리에 모았습니다. 함께 감상하시죠!
Les Cabinotiers Astronomical Striking Grand Complication – Ode to music
캐비노티에 아스트로노미컬 스트라이킹 그랜드 컴플리케이션 – 오드 투 뮤직
바쉐론 콘스탄틴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전례 없이 캐비노티에 컬렉션에 힘을 싣고 있습니다. 18세기 무렵부터 스위스 제네바 캐드릴에 위치한 메종의 유서 깊은 건물 맨 위층 공방을 칭하는 이름에서 유래한 캐비노티에는 메종의 가장 특별한 주문 제작 시계들을 통칭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캐비노티에 컬렉션으로 선보이는 시계들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원-오브-어-카인드 타임피스(One-of-a-kind timepiece)’, 즉 유니크 피스가 대부분으로 당장의 판매를 목적으로 한 것이라기보다는 메종의 파인 워치메이킹 기술력과 메티에 다르(Métiers D’Art, 공예예술) 노하우를 집결한 일종의 ‘쇼(Show)’ 피스적인 성격이 강합니다. 다시 말해 해당 모델을 샘플로 고객이 원하는 디자인이나 인그레이빙 등을 가미해 자신만의 시계를 소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름도 긴 캐비노티에 아스트로노미컬 스트라이킹 그랜드 컴플리케이션 – 오드 투 뮤직은 언뜻 봐서는 2017년 발표한 캐비노티에 셀레스티아 아스트로노미컬 그랜드 컴플리케이션 3600(Les Cabinotiers Celestia Astronomical Grand Complication 3600)을 떠올리게 합니다. 같은 해 열린 제17회 제네바 시계 그랑프리(Grand Prix d’Horlogerie de Genève, GPHG 2017)에서 기술상에 해당하는 메캐니컬 익셉션 워치(Mechanical Exception Watch Prize) 부문을 수상한 성공적인 전작과 비교하면 결정적으로 베이스 무브먼트가 다릅니다. 투르비용 베이스가 아닌 미닛 리피터 베이스로 2013년 패트리모니 컬렉션으로 데뷔한 칼리버 1731을 사용한 것입니다. 베이스 칼리버가 3.9mm정도로 얇기 때문에 퍼페추얼 캘린더와 아스트로노미컬 컴플리케이션 모듈을 추가해도 비슷한 사양의 다른 그랜드 컴플리케이션 시계들에 비하면 케이스 두께가 제법 얇은 것이 특징입니다.
- 칼리버 1731
‘음악을 향한 헌사(Ode to music)’라는 뜻의 부제에서도 헤아릴 수 있듯, 이 시계는 미닛 리피터 본연의 기능에 충실하면서도 스트라이킹 사운드에 대한 각별한 이해와 애정을 담고 있습니다. 관련해 바쉐론 콘스탄틴은 올해부터 자사의 리피터 등 차이밍 워치(Chiming watches)를 통틀어 '라 뮤지끄 뒤 떵Ⓡ("La Musique du TempsⓇ)' 컬렉션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캐비노티에 아스트로노미컬 스트라이킹 그랜드 컴플리케이션 – 오드 투 뮤직 역시 라 뮤지끄 뒤 떵Ⓡ 컬렉션에 속하면서 영국 런던에 위치한 유서 깊은 레코딩 스튜디오인 애비 로드 스튜디오(Abbey Road Studios)와의 협업을 통해 해당 미닛 리피터 사운드의 레코딩 작업을 통해 해당 시계의 사운드 임프린트를영원토록 보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온 디맨드(On demand) 방식으로 작동하는- 시와 쿼터(15분 단위), 분 단위를 타종하는- 미닛 리피터 기능 외 다이얼 전면에 퍼페추얼 캘린더와 문페이즈, 일출/일몰 시간, 그리고 균시차(Equation of time)를 표시합니다. 특히 균시차는 평균 태양시(상용시)와 진태양시의 차이를 직관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태양을 형상화한 오픈-팁 핸드를 추가했습니다. 균시차의 원리는 대략 이렇습니다.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 지구의 궤도가 원형이 아닌 타원형이기 때문에, 또한 지구의 축이 궤도면에서 24도 각도로 기울어져 있는 것을 감안하면, 태양이 정점에 위치한 두 지점 사이의 시간은 일 년 내내 같지 않습니다. 평균 상용시와 실제 태양시의 24시간은 12개월 동안 단 4번만 일치하며, 1년에 보통 -16분에서 +14분까지 차이가 납니다.
다이얼 상단에서부터 별도의 어퍼처(창)로 요일, 월 그리고 윤년을 함께 표시하고, 3시 방향에는 구불구불한 뱀을 연상시키는 서펀타인 핸드(Serpentine hand)로 날짜를 가리킵니다. 4시~5시 방향 사이에는 하지/동지점과 춘/추분점, 그리고 해당 조디악 사인(별자리)까지 표시하는 회전 디스크 형태의 디스플레이가 놓여져 있고, 6시 방향에는 게이지 형태로 낮/밤 길이를 표시하는 인디케이터와 양 갈래로 일출/일몰 시간대를 함께 표시하는 포인터 핸드 형태의 인디케이터가 위치해 있습니다. 또한 9시 방향에는 고도로 정확하게 작동하는 문페이즈 디스플레이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반면 사파이어 크리스탈 케이스백을 통해 드러낸 무브먼트 면을 통해서는 북반구에서 바라본 하늘을 담은 스카이차트와 별자리, 항성시를 회전 디스크를 통해 전시합니다. 항성일과 평균일의 차이는 고정된 외부 블루 디스크와 하단의 움직이는 디스크의 차이를 통해 확인할 수 있으며(매일 약 4분씩 빨라짐), 현 월은 노란 화살표로 표시합니다.
미닛 리피터와 퍼페추얼 캘린더, 천문의 운행을 보여주는 아스트로노미컬 컴플리케이션까지 망라한 캐비노티에 아스트로노미컬 스트라이킹 그랜드 컴플리케이션 – 오드 투 뮤직 모델(Ref. 6620C/000R-B656)은 직경 45mm, 두께 12.54mm 크기의 핑크 골드 케이스로 선보이며, 총 600개의 부품과 36개의 주얼로 구성된 인하우스 수동 칼리버 1731 M820로 구동합니다(진동수 3헤르츠, 파워리저브 약 60시간). 물론 제네바산 고급 시계 무브먼트임을 공인하는 제네바 홀마크(Hallmark of Geneva, 제네바실)를 받았고요.
Les Cabinotiers Grand Complication Split-seconds Chronograph - Tempo
캐비노티에 그랜드 컴플리케이션 스플릿 세컨즈 크로노그래프 – 템포
듀얼 타임, 스플릿 세컨즈 크로노그래프(라트라팡테), 퍼페추얼 캘린더, 문페이즈, 균시차, 투르비용, 미닛 리피터 등 무려 24개 컴플리케이션을 망라한 바쉐론 콘스탄틴 손목시계 제조 역사상 가장 복잡한 기능의 손목시계가 탄생했습니다. 회중시계로는 2015년 창립 260주년을 기념해 57개의 컴플리케이션을 망라한 Ref. 57260이 메종 역사상 나아가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기계식 시계로 기네스 기록을 보유하고 있지요.
더블 사이드, 즉 케이스 앞뒤로 이 복잡한 기능들을 모두 보여주는데, 앞서 보신 캐비노티에 아스트로노미컬 스트라이킹 그랜드 컴플리케이션 – 오드 투 뮤직 모델과 달리 앞뒤 완벽하게 대칭을 이루는 케이스와 쉽게 탈착이 가능한 스트랩 교체 시스템을 적용해 언제든 원하는 쪽으로 착용할 수 있습니다. 앞서 파텍필립이 케이스 앞뒤 면을 전복할 수 있는 리버서블 형태의 케이스를 그랜드 컴플리케이션 모델인 그랜드마스터 차임(Ref. 6300)에 시도한 바 있지만, 바쉐론 콘스탄틴은 대칭 케이스와 교체 가능한 스트랩 시스템을 이용해 케이스 앞뒤의 경계를 허물고 있습니다. 또한 기능적으로도 20가지 컴플리케이션을 담은 파텍필립의 그랜드마스터 차임보다 바쉐론 콘스탄틴의 캐비노티에 그랜드 컴플리케이션 스플릿 세컨즈 크로노그래프 – 템포가 더욱 복잡함을 자랑합니다.
시간 및 크로노그래프, 캘린더 기능을 표시하는 각 서브 다이얼은 완벽하게 대칭을 이루고 있습니다. 좌측 상단의 현재 시각을 표시하는 다이얼 안쪽에는 24시간 단위로 세컨 타임존을 표시하는 다이얼이 포개어져 있고, 맞은편 우측에는 초와 분 카운터, 좌측 하단에는 요일과 날짜, 맞은편 우측에는 월과 윤년을 각각 표시합니다. 퍼페추얼 캘린더인 만큼 시계가 정상 작동하는 한 2,100년까지 별도의 조정이 필요 없습니다.
반대쪽 다이얼로는 천문학 정보 중 균시차와 일출/일몰, 낮/밤 길이, 그리고 이론상 무려 1,000년에 한 번의 조정만 요구될 만큼 고도의 정밀함을 자랑하는 문페이즈 디스플레이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특히 문페이즈 디스플레이는 흔히 접할 수 있는 디스크 형태가 아닌, 레트로그레이드 방식으로 작동하는 포인터 핸드가 해당 월령을 사실적으로 이미지화한 모양을 가리키는 식입니다. 반면 12시 방향 오픈워크 처리된 면으로는 메종을 상징하는 말테 크로스를 형상화한 개성적인 투르비용 케이지가, 그리고 그 앞에는 구불구불한 서펀타인 포인터 핸드로 동력의 잔량을 표시하는 파워리저브 인디케이터가 위치해 있습니다.
- 새로운 그랜드 컴플리케이션 칼리버 2756
캐비노티에 그랜드 컴플리케이션 스플릿 세컨즈 크로노그래프 – 템포 모델(Ref. 9740C/000R-B692)은 핑크 골드 케이스로 선보이며, 워낙 많은 기능을 망라한지라 케이스 직경은 50mm, 두께는 21mm에 달합니다. 총 24개에 달하는 컴플리케이션 기능은 완전히 새롭게 자체 개발 제작한 단일 무브먼트 안에 녹아 들어있습니다. 무려 총 1,163개의 부품과 40개의 주얼로 구성된 인하우스 수동 칼리버 2756는 시간당 18,000회 진동하고(2.5헤르츠), 파워리저브는 약 65시간 정도를 보장합니다. 역시나 제네바 홀마크를 받았고요. 단 1점 제작된 유니크 피스이지만, 아뜰리에 캐비노티에 서비스를 통해 고객이 원하는 소재와 컬러를 적용해 주문 제작이 가능합니다.
Les Cabinotiers – The Singing Birds
캐비노티에 – 싱잉 버즈
캐비노티에 – 싱잉 버즈는 그 이름만 들었을 때는 리피터 시계 같지만, 시간만 표시하는 타임온리 시계입니다. 올해 캐비노티에의 테마인 '라 뮤지끄 뒤 떵Ⓡ'에서 얻은 영감을 나름대로 위트 있게 재해석한 시리즈라 할 수 있습니다. 메종의 유구한 메티에 다르 기술력을 이용해 다이얼 안에 정교하게 표현한 새들이 비록 실제로 지저귀진 않지만, 우리의 상상 속에 나타나 노래를 들려줄 것만 같습니다.
- 캐비노티에 – 싱잉 버즈 – 허밍버드
다이얼은 양쪽으로 분할된 두 겹의 층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시간을 표시하는 우측의 하부 트랙은 케이스 소재에 따라 핑크 골드 혹은 화이트 골드 소재의 플레이트 위에 전통 방식 그대로 로즈 엔진턴 테이블 기기를 이용해 핸드 기요셰(Hand-guilloché) 패턴을 새겼습니다. 모델에 따라 그린, 브라운, 블루, 버건디 각기 다른 컬러를 입힌 점도 특기할 만합니다.
- 캐비노티에 – 싱잉 버즈 - 블루 제이
반면 좌측 상부 다이얼에는 스위스 전통 샹르베 에나멜링(Champlevé enameling) 기법을 활용해 미리 얕게 파놓은 다이얼 위에 얇은 브러시로 미네랄 베이스의 반투명 컬러 에나멜 도료를 여러 겹에 걸쳐 채워 넣고 고온의 가마에서 구워내는 과정을 반복해 허밍버드(Hummingbird, 벌새), 블루 제이(Blue jay, 큰어치), 블루 티트(Blue tit, 푸른박새), 로빈(Robin, 개똥지빠귀) 4가지 각기 다른 종류의 새를 실감나게 표현했습니다. 핸드 기요셰와 샹르베 에나멜 두 이질적인 메티에 다르 테크닉을 한 다이얼에서 모두 접할 수 있기 때문에 여느 메티에 다르 제품 보다 시각적인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 캐비노티에 – 싱잉 버즈 - 블루 티트
그럼 시간은 어떻게 표시할까요? 일반적인 아날로그 핸드를 생략했기 때문에 처음 시계를 접하게 되면 갸우뚱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 중에 혹시 2015년 발표한 메티에 다르 사보아 일루미네(Métiers D’Art Savoirs Enluminés) 컬렉션을 기억하는 분이 계실까요? (>> 관련 타임포럼 뉴스 바로 가기 클릭) 케이스 형태와 다이얼의 디자인 코드가 다르긴 하지만, 메티에 다르 사보아 일루미네와 캐비노티에 – 싱잉 버즈는 탑재한 무브먼트가 같습니다. 우측 하부 다이얼(120도 부채꼴 형태의 판)에 부착한 골드 아플리케 아워 마커로 구획되는 미닛 섹터를 따라 시를 표시하는 숫자가 나타나 가리키는 식입니다. 이때 시를 가리키는 숫자가 위에서 아래로 천천히 끌려 내려가는 듯한 형태를 띄기 때문에 드래깅 아워(Dragging hours) 디스플레이로 칭합니다. 또한 이러한 메커니즘 자체를 새틀라이트 아워 컴플리케이션(Satellite hour complication)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4개의 암에 숫자를 표기한 3개의 디스크가 마치 위성처럼 회전하면서 시간을 표시하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입니다. 조금 다른 예지만 독립 시계제조사 우르베르크(URWERK)가 선호하는 타임 디스플레이 방식이기도 합니다. 다만 우르베르크와 달리 바쉐론 콘스탄틴은 해당 새틀라이트 아워 모듈을 다이얼 하부에 감추고 결코 드러내지 않는다는 차이가 있지만요.
- 캐비노티에 – 싱잉 버즈 - 로빈
캐비노티에 – 싱잉 버즈 4가지 버전 공통적으로 케이스 직경은 40mm, 두께는 12.37mm입니다. 이중 세 버전은 핑크 골드 케이스로, 한 버전은 화이트 골드 케이스로 선보이고 있습니다. 무브먼트는 베이스 두께가 2.45mm에 불과한 자동 울트라-씬 칼리버 1120을 기반으로 새틀라이트 아워 모듈을 얹어 수정한 1120 AT를 탑재했습니다(진동수 2.75헤르츠, 파워리저브 약 40시간). 구조적으로 두꺼울 수 밖에 없는 컴플리케이션 모듈을 추가했기 때문에 울트라-씬 베이스 고유의 매력은 반감되는 측면이 있지만, 그럼에도 베이스 두께가 워낙 얇기 덕분에 수정을 하고도 비교적 얇은 케이스 두께가 가능해진 셈입니다. 투명 사파이어 크리스탈 케이스백을 통해 제네바 홀마크를 받은 독자적인 무브먼트도 감상할 수 있습니다.
- 칼리버 1120 AT
캐비노티에 – 싱잉 버즈 컬렉션 역시 각각 1피스씩 제작된 유니크 피스이며, 4가지 버전의 샘플 모델을 바탕으로 아뜰리에 캐비노티에 서비스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새로운 디자인의 시계의 주문 제작이 가능합니다.
이상으로 바쉐론 콘스탄틴의 2020년 캐비노티에 컬렉션의 주요 신모델들을 살펴봤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보다 대중적인 오버시즈, 피프티식스, 트래디셔널 라인의 신제품들로 찾아 뵙도록 하겠습니다. 계속 관심 있게 지켜봐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