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 시계제조사 우르베르크(URWERK)의 신작, UR-100 스페이스 타임(SpaceTime)을 소개합니다. 1997년, 젊은 워치메이커 펠릭스 바움가트너(Felix Baumgartner)와 디자니어 마틴 프레이(Martin Frei)가 의기투합해 탄생한 우르베르크는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의 개성 강한 컬렉션으로 20여 년 만에 고급 시계 업계에서 확실하게 자신들의 입지를 다졌습니다. 연간 150개 미만의 매우 적은 수량의 시계를 제조하는 회사임에도 우르베르크의 라인업은 꽤나 다채롭고 각각이 주는 매력과 울림이 적지 않습니다. 그리고 올 하반기 새롭게 선보이는 UR-100 스페이스 타임은 우르베르크의 저력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줍니다. 그럼 어떠한 시계인지 함께 보실까요?
UR-100 스페이스 타임은 언뜻 봐서는 이전의 우르베르크 컬렉션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이유인즉, 원더링 아워(Wandering hours)의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탄생한 독자적인 새틀라이트 컴플리케이션(Satellite complication)을 적용한 특유의 디스플레이 방식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새틀라이트 타임 디스플레이를 조금 쉽게 설명하면, 4면에 숫자 인덱스를 프린트한 3개의 디스크(일명 오비탈 아워 새틀라이트)가 오픈워크 가공한 카루셀(말 그대로 회전목마에서 착안함) 안에서 끊임없이 회전하며 하단의 분 단위 눈금을 표시한 트랙을 가리킴으로써(60분 단위로 해당 시도 함께 변환) 시간을 표시하는 형태를 가리킵니다.
새틀라이트 타임 디스플레이 방식이 워낙 특이하고 아이코닉하다보니 브랜드 입장에서는 포기할 수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것만이 다가 아닙니다. 다이얼 양쪽에 절개된 틈을 따라 서서히 회전하는 화살촉 모양의 레드 컬러 핸드로 또 무언가를 표시하고 있는데요. 우르베르크의 설명에 따르면, 20분 단위의 지구 자전 거리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아시다시피 지구는 태양을 중심으로 일 년에 한 바퀴씩 돕니다. 이를 공전이라고 하는데요. 또한 지축을 따라 하루에 한 바퀴씩 스스로 회전하는 자전 운동을 합니다. 적도를 기준으로 지구의 시간당 자전 평균 속도는 약 1,670km/h에 달하는데요. 사실 이 정도의 속도는 어떠한 비행기보다도 빠른 속도로 회전하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느끼지 못할 뿐이지요.
UR-100 스페이스 타임은 10시 방향의 오픈워크 트랙과 핸드를 통해 지구의 자전 평균 속도를 기준으로 20분마다 지구가 움직인 거리(약 555km)를 표시합니다. 반면 2시 방향의 오픈워크 트랙을 통해서는 20분간 지구가 태양 주위를 회전한 궤적, 약 35,740km에 달하는 거리를 보여줍니다. 사실 이러한 유형의 애스트로노미컬(Astronomical, 천문) 정보를 손목시계에 표시한다고 해서 크게 임팩트가 있거나 실제 유용하게 활용될 일은 없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러한 정보를 표시하는 기계식 손목시계는 세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만은 틀림없죠. 바로 이 지점에서 우르베르크가 지향하는 브랜드의 방향성과 컬렉션의 아이덴티티가 엿보입니다. 이들은 지난 컬렉션이 입증하듯 시계 외형부터 무브먼트 등 하나부터 열까지 남들과는 다른 것을 추구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UR-100 스페이스 타임의 최초 아이디어는 브랜드 설립자이자 마스터 워치메이커인 펠릭스 바움가트너가 그의 아버지 게리로부터 선물 받은 19세기 펜듈럼 클락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합니다. 구스타브 산도즈(Gustave Sandoz)라는 워치메이커가 제작하고 1893년 시카고에서 열린 세계박람회에 출품된 이 펜듈럼 클락은 당시 유행한 레귤레이터 스타일의 다이얼을 보여주는데, 흥미롭게도 3개의 각기 다른 핸드가 시간이 아닌, 적도에서의 지구의 회전 거리를 표시한다고 합니다. 3개의 핸드로 이 같은 정보를 표시하는 아이디어는 UR-100 스페이스 타임에도 고스란히 적용되었죠. 다만 바움가트너는 그나마 실용적인 이유로 한 핸드는 분을 가리키도록 했지만요.
UR-100 스페이스 타임은 스틸(일부 티타늄)과 블랙 PVD 코팅 마감한 티타늄 두 가지 버전으로 출시됩니다. 공통적으로 케이스 직경은 41mm(세로 폭은 49.7mm), 두께는 14mm로 이전 세대 우르베르크 시계들(ex. UR-210, UR-105 시리즈 등)과 비교하면 사이즈가 제법 컴팩트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또한 우르베르크의 변화의 움직임이라 할 수 있는데요. 최근 시계 업계의 트렌드가 오버사이즈에서 다시 클래식한 사이즈로 회귀하는 추세다 보니 그간 사이즈와는 무관한 행보를 보여줬던 이들조차 이러한 흐름을 무시할 수는 없었던 모양입니다.
무브먼트는 새롭게 개발된 인하우스 자동 칼리버 UR 12.01를 탑재했습니다(진동수 4헤르츠, 파워리저브 약 48시간). 앞서 언급했듯 독자적인 새틀라이트 컴플리케이션을 이어 적용하면서, 사파이어 크리스탈 케이스백을 통해 구멍이 송송 뚫린 특유의 로터 디자인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해당 풀 로터는 베어링에 가해지는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오버-와인딩을 예방하는 일명 플래니터리 터바인(Planetary turbine, 유성 터빈)에 의해 제어됩니다. 생각해보면 우르베르크가 이렇듯 로터 형태를 그대로 노출한 적도 거의 없었기 때문에 UR-100의 케이스백은 뜻밖의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참고로 UR 12.01의 베이스 플레이트는 리차드 밀을 통해 어느 정도 친숙해진 신소재 ARCAP로, 다이얼 면으로 노출한 오픈워크 카루셀은 알루미늄으로, 그리고 시를 표시하는 3개의 회전 디스크(오비탈 새틀라이트 아워스)는 베릴륨 브론즈 소재로 각각 제작했습니다.
UR-100 스페이스 타임은 여느 우르베르크 시리즈들과 마찬가지로 소량씩 전개하는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스틸 버전인 UR-100 아이언(Iron)과 블랙 PVD 티타늄 버전인 UR-100 블랙(Black) 각각 25피스씩 한정 제작되었습니다. 두 버전의 리테일가는 4만 8,000 스위스 프랑(CHF)으로, 이전 우르베르크 시리즈에 비하면 가격대도 상대적으로 조금 더 접근 가능한 수준으로 낮췄습니다. 가격 또한 앞서 언급한 사이즈와 더불어 브랜드의 새로운 변화를 보여줍니다.
- 흡사 SF 영화 속 오프닝을 연상시키는 UR-100 스페이스 타임의 공식 영상도 함께 감상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