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포럼은 1월 14일부터 17일까지 열리는 제29회 국제고급시계박람회(SIHH) 취재차 스위스 제네바 현지에 와있습니다. 오늘부터 4일간 총 35개 브랜드를 돌며 다양한 신제품을 접하게 되는데요. 개막 전 SIHH 2019 하이라이트 신제품을 국내 온라인 매체 중 타임포럼에만 미리 공개한 브랜드가 있습니다. 전통의 하이엔드 워치 메종 바쉐론 콘스탄틴(Vacheron Constantin)이 그 주인공입니다. 이에 오늘 아침 엠바고가 풀린 바쉐론 콘스탄틴의 따끈따끈한 화제작을 스페셜 컬럼 형태로 보다 특별하게 타임포럼 회원님들께 가장 먼저 소개합니다.
Traditionnelle Twin Beat Perpetual Calendar
트래디셔널 트윈 비트 퍼페추얼 캘린더
바쉐론 콘스탄틴의 신작, 트래디셔널 트윈 비트 퍼페추얼 캘린더(Traditionnelle Twin Beat Perpetual Calendar)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놀라움을 안겨줍니다. 전혀 다른 두 개의 진동수를 가진 트윈 비트, 즉 듀얼 프리퀀시(Dual-frequency) 워치라는 점과 심지어 해당 진동수를 필요에 따라 간편하게 모드처럼 변경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우선 외형상으로만 봤을 때, 두 개의 밸런스와 이스케이프먼트, 그리고 각기 다른 트랜스미션 시스템을 갖춘 형태는 사실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독립 시계제작자 프랑수아 폴 주른(François-Paul Journe)과 아르민 스트롬(Armin Strom)의 시계들이 대표적인 예로, 이들은 서로 연결된 진동체가 양쪽의 진동수가 같으면 공명에 의해 에너지를 서로 교환한다는 ‘레조낭스(Resonance, 공명)'의 원리를 응용해 같은 진동수로 박동하는 독자적인 듀얼 밸런스 & 레귤레이팅 시스템을 자사의 손목시계 컬렉션에 도입한 바 있습니다. 조금 다른 예지만 로저드뷔(Roger Dubuis)의 콰토르(Quatuor)처럼 같은 진동수로 작동하는 4개의 밸런스를 통해 투르비용과 흡사하게 중력의 변화를 상쇄하고자 하는 특이한(?) 컨셉의 시계도 있습니다.
- F. P. 주른의 크로노메트리 아 레조낭스 무브먼트
하지만 바쉐론 콘스탄틴의 트래디셔널 트윈 비트 퍼페추얼 캘린더는 앞서 열거한 시계들과 완전히 다른 지향점을 보여줍니다. 동력은 하나의 커다란 배럴에서 나오지만 각기 다른 기어트레인과 이스케이프먼트 구조를 갖추고, 하다 못해 밸런스 형태 또한 다릅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각 밸런스의 진동수가 5배 가까운 차이가 있습니다. 한쪽이 초당 10회(시간당 36,000회, 5헤르츠) 진동하는 하이비트라면, 다른 한쪽은 초당 2.4회(시간당 8,640회, 1.2헤르츠) 진동하는 로우비트입니다. 현대의 손목시계를 언급할 때 보통 로우비트라 하면 초당 5회(시간당 18,000회, 2.5헤르츠) 진동하는 시계를 가리키는 경우가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바쉐론 콘스탄틴의 트래디셔널 트윈 비트 퍼페추얼 캘린더는 이보다도 약 2배 가량 느리게 작동하는 1.2헤르츠 진동수에 도전했습니다.
- 앙투안 마틴의 슬로우 러너
초당 2회(시간당 7,200회, 1헤르츠) 진동하는 익스트림 로우비트 손목시계다.
몇 해 전 독일계 스위스 독립 시계제작자 마틴 브라운(Martin Braun)이 설립한 앙투안 마틴(Antoine Martin)이란 브랜드가 슬로우 러너(Slower Runner)라는 이름으로 1헤르츠 진동수를 특징으로 하는 손목시계를 선보여 화제를 모은 적이 있는데요. 비슷한 시기 한쪽에서는 태그호이어(TAG Heuer)가 2011년 초당 1,000회(시간당 3,600,000회, 500헤르츠) 진동하는 마이크로타이머 플라잉 1000(Mikrotimer Flying 1000)와 2012년 초당 5/10,000회(시간당 7,200,000회, 1,000헤르츠) 진동하는 마이크로거더(Mikrogirder)와 같은 시계들로 기계식 하이비트 손목시계의 새로운 금자탑을 쌓아 올리는 동안, 앙투안 마틴처럼 시류에 완전히 반하는 로우비트 시계로 자신들만의 독창성을 인정받은 선례도 생겨난 것입니다.
- 태그호이어 마이크로타이머 플라잉 1000
평상시에는 초당 8회(시간당 28,800회, 4헤르츠) 진동하지만, 크로노그래프 기능 활성시 초당 1,000회(시간당 3,600,000회, 500헤르츠) 진동하며 전통적인 크로노그래프 시계들보다 125배나 빠르고 세밀한 시간 측정이 가능하다.
- 브레게 트래디션 인디펜던트 크로노그래프 7077
조금 다른 예지만 브레게(Breguet)가 2015년 바젤월드서 첫 선을 보인 트래디션 인디펜던트 크로노그래프(Tradition Independent Chronograph) 7077도 참고할 만하다. 이 시계 역시 양 방향의 독립적인 기어트레인과 이스케이프먼트, 밸런스를 갖추고 있으며, 하나(다이얼 우측 밸런스)는 3헤르츠 진동하며 시간을 표시한다면, 다른 하나(다이얼 좌측 밸런스)는 5헤르츠 진동하며 오직 크로노그래프 기능 작동시에만 움직인다. 580DR 칼리버는 시간 표시를 위해서는 55시간 정도의 파워리저브를 보장하지만, 하이비트 크로노그래프 기능 작동을 위한 파워리저브 시간은 고작 20여 분 남짓에 불과하다.
마이크로그래프, 마이크로타이머로 이어지는 일련의 익스트림 크로노그래프 시리즈에서 태그호이어는 더블 배럴과 함께 양 갈래로 분리되는 기어트레인과 이스케이프먼트, 밸런스(단 하이비트 쪽은 밸런스를 생략함) 설계를 통해 각기 다른 진동수로 박동하는 무브먼트를 하나의 시계 안에 품은 바 있습니다. 브레게 역시 조금 다르지만 유사한 선례를 남긴 바 있습니다. 이러한 원리는 바쉐론 콘스탄틴이 새롭게 선보이는 트래디셔널 트윈 비트 퍼페추얼 캘린더의 그것과도 상통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다만 트윈 비트 설계를 크로노그래프와 시간 표시 기능을 분리하는 목적으로만 활용한 전자의 브랜드들(태그호이어, 브레게)과 달리, 바쉐론 콘스탄틴은 이를 훨씬 더 복잡하고 정교한 하이 컴플리케이션(퍼페추얼 캘린더) 기능과 접목한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를 보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바쉐론 콘스탄틴의 신작은 해당 진동수를 사용자가 설정도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어느 브랜드에서도 본 적 없는 유니크한 시도이고, 관련해 이미 특허 출원 중에 있습니다.
- 트래디셔널 트윈비트 퍼페추얼 캘린더에 탑재한 칼리버 3610
트래디셔널 트윈 비트 퍼페추얼 캘린더의 심장이 된 인하우스 수동 칼리버 3610은 직경 32mm, 두께 6mm 사이즈를 갖는 그 기능에 비해 비교적 컴팩트한 무브먼트 안에 총 480개의 부품과 64개의 주얼을 갖추고 있습니다. 톱 플레이트와 브릿지 설계를 보면 베이스 칼리버를 짐작할 수 없을 만큼 완전히 새롭게 개발 제작된 무브먼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싱글 배럴은 모드 설정에 따라(로우비트, 스탠바이 모드를 유지할 때) 최대 65일간의 롱 파워리저브를 보장할 만큼 넉넉한 크기로 제작되었는데, 같은 리치몬트 그룹 내 랑에 운트 죄네(A. Lange & Söhne)의 대표적인 롱 파워리저브 시계인 랑에 31(Lange 31)을 2배 이상 상회하는 수준인데다, 50일 파워리저브로 화제를 모은 위블로(Hublot)의 MP-05 라페라리(LaFerrari)도 초라하게 하는 수치입니다. 그나마 견줄 만한 상대가 있다면 파르미지아니 플러리에(Parmigiani Fleurier)가 2016년 발표한 센피네(Senfine) 정도가 될 텐데(약 70일 파워리저브), 센피네가 상용화로 이어지지 않고 컨셉 워치로 그친 점을 상기하면 바쉐론 콘스탄틴의 하이 컴플리케이션 신작은 파워리저브 수치만으로도 우리에게 놀라움을 안겨주기에 충분합니다.
긴 파워리저브는 또한 그 표현처럼 영속적인 타임키핑을 추구하는 퍼페추얼 캘린더 기능과도 최상의 궁합을 이룹니다. 파워리저브가 짧은 퍼페추얼 캘린더 시계는 와인더가 따로 없으면 항상 손목에 착용하거나 틈틈이 자주 와인딩을 해줘야 하고, 만약 시계가 멈추게 되면 재조정을 해야 하기 때문에 자칫 퍼페추얼 캘린더 본연의 기능마저 발휘되지 못하는 불상사가 생길 수 있습니다.
반면 초당 10회(시간당 36,000회, 5헤르츠) 진동하는 하이비트 밸런스가 작동할 때(일명 액티브 모드 상태)의 파워리저브 수치는 어떨까요? 당연히 초당 2.4회(시간당 8,640회, 1.2헤르츠) 진동하는 로우비트 상태(스탠바이 모드) 보다 파워리저브 시간은 눈에 띄게 짧아집니다. 그만큼 하이비트 상태에서 토크 손실이 크기 때문인데요(이론상 동력의 약 70% 이상을 밸런스의 운동이 잡아먹기 때문). 그럼에도 여느 시계들보다는 긴 편인 4일간의 파워리저브를 보장해 퍼페추얼 캘린더 기능에 크게 영향을 미칠 일은 없습니다.
앞서 언급했듯 양 극단에 해당하는 두 개의 진동수는 케이스 8시 방향에 위치한 개별 푸셔로 모드 설정이 가능하며, 이를 다이얼 좌측에 위치한 인디케이터를 통해서도 가시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각 진동수 전환시에도 타임키핑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설계된 점도 주목할 만하며 관련해 역시나 특허 출원 중에 있습니다. 평상시 시계를 착용하고 활동할 때는 액티브 모드(하이비트)에 놓고, 미착용 상태일 때는 스탠바이 모드(로우비트)로 선택 전환하면 보다 여유롭게 시계를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다이얼 12시 방향에 각 모드별 잔여 동력 시간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파워리저브 인디케이터가 위치해 있기 때문에 실생활에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액티브와 스탠바이 모드 선택시 어느 한쪽의 밸런스만 작동한다고 해서 기어트레인도 하나만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시간 정보와 캘린더 정보를 표시하기 위해서는 양 기어트레인이 서로 길항하며 정상 작동해야 하는데요. 이때 배럴 안쪽에 위치한 기어 디퍼런셜(Gear differential), 즉 차동기어 부품이 작용하여 배럴에서 기어트레인으로 이어지는 동력의 배분과 메인스프링 토크 감소 효과까지 가능하게 해줍니다. 2개의 차동기어가 각기 다른 방향으로 동력을 전달하고, 이러한 작동을 통해 확보한 시간 정보를 각 인디케이션(핸즈)까지 전달하는 역할까지 담당합니다.
한편 캘린더 기능의 시계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점핑 디스크 형태가 불필요한 토크 손실의 한 요인으로 작용하는 점에 주목하여 일반적인 점핑 디스플레이 구조와는 차별화된 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 이를 가리켜 바쉐론 콘스탄틴은 스프렁 듀얼 기어 컴파운드 시스템(Sprung dual-gear compound system)으로 명명하고 있으며, 기존의 점핑 디스플레이 방식보다 4배 적은 토크만을 요구한다고 덧붙이고 있습니다. 언뜻 들어서는 크게 와 닿지 않는 표현인데, 다이얼 하단에 사파이어 크리스탈 면으로 노출한 캘린더 하부 부품을 보면 나선형의 복층 구조가 이를 설명하기 위한 것임을 어림할 수 있습니다. 하부와 상부 기어의 모양이 다른 양방향 기어를 중심으로 각각의 캘린더 기능을 제어하는 갈고리 형태의 클러치 레버와 작은 브레이크 부품이 놓여져 제 기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메종 역사상 최초로 도입한 트윈비트 시스템은 항상 두 개의 밸런스 중 단 한 개만이 진동하도록 설계되었으며, 각 비트별로 사용된 밸런스가 다르기 때문에 진동 속도의 갑작스러운 드랍시 정상 작동하기까지 오차가 발생할 수 있는(만약 밸런스가 하나라고 가정할 때) 불상사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서 강조했듯 두 밸런스의 형태도 아예 다릅니다.
하이비트(5헤르츠) 밸런스는 외부 요인에 크게 영향 받지 않고 운동의 관성을 유지하려는 성질을 갖고 있기 때문에 최대한 밸런스 크기를 줄여 등시성을 확보하고, 로우비트(1.2헤르츠) 밸런스는 외부 영향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크기를 상대적으로 더 크고 단순한 형태로 제작했습니다. 앞서 소개한 앙투안 브라운의 슬로우 러너가 24mm에 달하는 꽤 커다란 직경의 밸런스를 사용했던 점을 떠올리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될 줄 압니다. 그리고 각 밸런스별로 헤어스프링도 다른 걸 사용했습니다. 하이비트 밸런스에는 일반적인 굵기의 헤어스프링을 사용했다면, 로우비트 밸런스에는 이보다 1/4 정도 더 얇은 폭(0.0159mm)과 단면(0.0774mm)을 지닌 헤어스프링을 사용했습니다. 이는 사람의 머리카락보다도 얇은 수치입니다.
새로운 트래디셔널 트윈 비트 퍼페추얼 캘린더는 플래티넘 버전으로만 선보이며, 케이스 직경은 42mm, 두께는 12.3mm로 해당 시계에 담긴 하이 컴플리케이션 기능과 유니크한 무브먼트 설계를 고려할 때 상당히 컴팩트한 사이즈임을 알 수 있습니다. 어찌 보면 바로 이러한 측면에서 전통의 하이엔드 시계제조사로서의 위엄을 새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각 인디케이션을 표시하는 다이얼 역시 일반적이지 않고 유니크합니다. 상단부 다이얼은 골드 플레이트 바탕에 핸드 기요셰 패턴 마감하고 차분한 느낌의 슬레이트 그레이 컬러 처리했으며, 하단부 다이얼은 투명 사파이어 크리스탈을 사용해 흡사 스켈레톤 시계처럼 무브먼트의 기어트레인과 주요 부품 일부를 노출합니다. 역시나 사파이어 크리스탈(반투명) 글라스를 사용한 양쪽의 디스크로 날짜와 월을 나란히 표시하며, 각각의 포인터 핸드는 케이스 우측면 크라운 하단에 위치한 별도의 코렉터로 조정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다이얼 6시 방향에서 윤년을 표시하는 별도의 인디케이터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파이어 크리스탈 케이스백을 통해 양방향 기어트레인과 각기 다른 이스케이프먼트와 밸런스를 적용한 독자적인 인하우스 수동 무브먼트를 감상할 수 있으며, 플레이트와 브릿지 전체를 또한 슬레이트 그레이 컬러를 가미해 로듐 도금 마감함으로써 다이얼 쪽 컬러와도 조화를 이룹니다. 새 인하우스 칼리버 3610 역시 제네바산 하이엔드 무브먼트를 상징하는 제네바 홀마크(제네바 실)을 받았으며, 1.2헤르츠 진동하는 밸런스를 지탱하는 밸런스콕 상단에 해당 인그레이빙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케이스 방수는 30m까지 지원하며, 스트랩은 라이트 그레이 컬러 미시시피산 앨리게이터 가죽 스트랩을 장착했습니다. 버클은 플래티넘 소재의 하프 말테 크로스 형태의 핀 버클을 사용했습니다.
새로운 트래디셔널 트윈 비트 퍼페추얼 캘린더(Ref. 3200T/000P-B578)는 유니크 피스나 한정판이 아닌 향후 레귤러 에디션으로 계속 출시될 예정입니다. 단 제품 특성상 매우 소량씩 제작될 것으로 보이며, 전세계 지정된 바쉐론 콘스탄틴 부티크에서만 구매가 가능합니다. 해당 제품 및 테크니컬 디테일 관련해 추가적으로 더 소개할 사항이 있다면 추후 바쉐론 콘스탄틴 SIHH 2019 리포트를 통해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바쉐론 콘스탄틴의 다른 SIHH 신제품 소식도 앞으로 많은 기대와 관심 바랍니다.
정말 엄청난 기술이 들어갔네요. 이런 새로운 컨셉의 시계들을 볼 때마다 그저 놀랍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