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초 스위스 발레드주 르상티에에 위치한 예거 르쿨트르(Jaeger-LeCoultre)의 매뉴팩처를 방문했을 당시, 40여 년 경력의 마스터 워치메이커이자 하이 컴플리케이션 워크샵 수장인 크리스찬 로랑(Christian Laurent) 씨가 기자단을 맞이하며 가장 먼저 보여준 시계 중 하나가 듀오미터 스페로투르비용(Duomètre Sphèrotourbillon)이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로랑 씨는 듀오미터 스페로투르비용을 매우 자랑스럽게 소개하면서 듀오미터 라인에 담긴 그랑 메종의 높은 기술력과 크로노미터급의 정밀한 시계를 만들기 위해 기울인 수많은 노력들을 회고했습니다. 결정적으로 이를 계기로 필자 역시 듀오미터 컬렉션에 더욱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고, 듀오미터에 담긴 독보적인 듀얼-윙®(Dual-Wing®) 컨셉에 매혹되기 시작했습니다.
- 듀얼 윙 컨셉을 적용한 첫 매뉴팩처 칼리버 380
듀얼-윙®, 하나의 시계, 두 개의 독립된 메커니즘
예거 르쿨트르 매뉴팩처 소속 워치메이커들이 듀오미터를 최초 개발할 당시 목표로 세운 도전 과제는 크로노미터급의 뛰어난 정확성을 갖춘 새로운 유형의 컴플리케이션 시계였습니다. 그리고 그 도전을 위한 비밀 무기가 바로 하나의 시계 안에 그 이름처럼 ‘양 날개(Dual-Wing)’로 펼쳐진 두 개의 독립된 기어트레인을 갖춘 ‘듀얼 윙’ 컨셉입니다. 듀얼 윙 컨셉을 적용한 무브먼트는 두 개의 배럴을 통해 각각의 기어트레인으로 안정적인 동력을 공급하며, 그중 하나는 시간을 표시하는데 주력하고, 다른 하나는 특정 컴플리케이션 기능(크로노그래프나 타임존 변경 등)을 관장하는 식으로 작동합니다. 혹자는 이를 은유적으로 표현하길 ‘하나의 시계, 두 개의 두뇌’ 또는 ‘하나의 시계, 두 개의 심장’이라고 하는데, 저는 두 표현 모두 듀얼 윙 컨셉을 얼마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봅니다.
기본적인 시간 표시 외 컴플리케이션 기능이 추가되면, 특히 대표적으로 크로노그래프를 일례로 들면, 크로노그래프 기능(푸셔) 작동시 보통의 시간 또는 캘린더를 표시할 때 보다 무브먼트 자체에 순간적으로 더 많은 동력을 요구하게 됩니다. 크로노그래프 스타트와 스탑, 리셋을 관장하는 견고하고 헤비한(?!) 부품들(실제로 이중 몇은 중첩된 세트형 구조임)을 움직이려면 그만큼 배럴에서 갑작스레 많은 동력을 공급받아야 하고, 이는 자연스레 기어트레인에 무리를 주게 됩니다. 또한 순차적으로 파워리저브가 줄거나 밸런스의 진폭(진동각)이 급락하는 현상이 발생하는데, 후자의 경우 결정적으로 시계의 정확성에 악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예거 르쿨트르는 전통적인 컴플리케이션 시계(특히 크로노그래프)의 구조적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이론상으로는 간단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복잡한 메커니즘을 숨기고 있는 듀얼 윙 컨셉을 개발, 완성하게 된 것입니다.
듀오미터 크로노그래프의 출시
그렇게 2007년 듀얼 윙 컨셉을 처음으로 도입한 듀오미터 크로노그래프(Duomètre Chronograph)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두 개의 배럴과 두 개의 독립된 기어트레인을 통해 각각의 동력을 공급하는 형태(둘 사이에 동력은 서로 교환되지 않음)의 시계가 이전에도 없진 않았지만, 적어도 흔히 볼 수 있는 종류는 아니었기에 출시 당시 듀오미터 크로노그래프는 시계애호가들 사이에서 많은 화제를 모았는데요. 설계상의 유니크함은 말할 것도 없고 조작의 혁신성 또한 돋보였던 것이 단 하나의 크라운으로 트윈 배럴을 각각 와인딩할 수 있는데, 크라운을 시계 방향으로 돌리면 시간을 표시하는 배럴에 동력을 제공하고,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리면 크로노그래프 기능을 제어하는 배럴에 동력을 제공하는 식으로 매우 독창적이고 신선한 것이었습니다.
듀오미터 크로노그래프 출시를 기점으로 듀얼 윙 컨셉을 적용한 듀오미터 라인이 하나의 컬렉션으로 자리를 잡는 동안, 이후 몇몇 브랜드들(ex. 태그호이어, 쇼파드 등)도 듀얼 윙과 흡사한 컨셉을 일부 모델에 제한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했는데, 이 사실만 보더라도 예거 르쿨트르가 컴플리케이션 제조 분야에 새로운 한 혁신적인 대안을 제시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의 푸셔로 스타트, 스탑, 리셋을 순차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모노푸셔 타입으로 작동하는 듀오미터 크로노그래프는 다이얼의 기능 배열 또한 신선했습니다. 다이얼 상단 두 개의 분리된 서브 다이얼이 각각의 기어트레인에 작용하는 기능을 표시하는데 두 카운터가 대칭을 이루는 특유의 디자인은 이후 듀오미터 라인을 드러내는 하나의 특징으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각각의 카운터에 다른 컬러의 핸즈를 사용한 것(시분초는 골드 핸드로, 크로노그래프 관련은 블루 핸드로 각각 표시)도 가독성을 고려한 위트가 돋보입니다.
여기에 다이얼 6시 방향에는 별도의 카운터와 함께 1/6초 단위로 빠르게 움직이는 점핑 세컨드 핸드(Jumping seconds hand, 불어식 표현은 Seconde Foudroyante)를 더해 다른 어떠한 크로노그래프 시계에서도 볼 수 없는 이색적인 디스플레이를 보여줍니다. 점핑 세컨드 핸드는 크로노그래프 기능과 함께 연동하며, 크로노그래프 기능의 리셋 혹은 크라운을 당겼을 때 센터 크로노그래프 핸드와 함께 순간적으로 점핑하며 영점으로 복귀합니다. 이같은 제로 리셋 메커니즘의 비밀 아닌 비밀은 레귤레이팅 부품 중 하나의 축에 두 개의 이스케이프 휠을 추가함으로써 가능해졌으며, 리셋 시 리턴 투 제로(return to zero) 해머가 하트 캠을 치면서 센터 크로노그래프 핸드로 이어지는 휠과 함께 다른 한쪽에 맞물린 스타(별) 모양의 휠을 레버가 건드리면서 점핑 세컨드 핸드 역시 영점으로 복귀하는 구조입니다.
그리고 다이얼 양쪽에 오픈워크 처리된 면을 통해 노출된 무브먼트와 함께 각기 다른 파워리저브를 표시하는 점 또한 듀오미터이기에 가능한 독창적인 디스플레이입니다. 이렇듯 듀오미터는 듀얼 윙 컨셉에 충실한 혁신적인 설계와 함께 특유의 개성적인 디스플레이로 누구나 한눈에 예거 르쿨트르 시계임을 알 수 있게 합니다. 전통적인 컬렉션인 리베르소나 마스터 시리즈와 달리 특정 컨셉에 집중한 컴플리케이션 라인업으로만 채워진 듀오미터가 단기간에 그럼에도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도 듀오미터만이 가진 고유의 아이덴티티와 오랜 시계 제조 전통이 이룩한 기술력에 경의를 보내는 이들이 많기 때문일 것입니다.
- 듀오미터 퀀템 루너
듀오미터 라인의 진화
듀오미터 크로노그래프(2007년)의 성공으로 듀오미터 라인은 이후 캘린더 & 문페이즈 버전인 듀오미터 퀀템 루너(2010년), 히브리스 메카니카 시리즈로 첫 선을 보인 다축 투르비용 & 플라이백 설계가 돋보이는 듀오미터 스페로투르비용(2012년), 세컨 타임존(GMT) 및 월드타임을 독창적으로 표시하는 듀오미터 유니크 트래블 타임(2014년), 기존의 스페로투르비용을 바탕으로 초정밀한 문페이즈 컴플리케이션을 추가한 듀오미터 스페로투르비옹 문(2015년) 순으로 다채롭게 진화하고 있습니다. 이번 타임포럼 스페셜 아카이브 컬럼에서는 예거 르쿨트르 듀오미터 컬렉션의 주요 라인업을 일목요연하게 한 포스팅으로 정리해 소개합니다.
- 듀오미터 라인에 적용된 스페로투르비용
라인업
Duomètre Chronograph
듀오미터 크로노그래프
- 듀오미터 크로노그래프 핑크 골드 Ref. Q6012521
- 듀오미터 크로노그래프 핑크 골드 Ref. Q601244J (부티크 에디션)
듀얼 윙 컨셉을 적용한 첫 듀오미터 라인업으로 상징적인 의의를 갖습니다. 현재 매장에서 판매되고 있는 모델은 모두 핑크 골드 버전으로, 공통적으로 케이스 직경은 42mm 두께는 13.6mm이며, 무브먼트는 인하우스 수동 380 칼리버를 탑재했습니다. 실버 그레인 다이얼(Ref. Q6012521)과 중후한 느낌의 슬레이트 그레이 컬러 다이얼(Ref. Q601244J) 두 가지 버전 중 참고로 슬레이트 다이얼 모델은 부티크 한정 에디션입니다.
- 듀오미터 크로노그래프의 케이스백과 탑재된 380 칼리버
총 445개의 부품과 47개의 주얼로 구성된 380 칼리버는 듀얼 윙 컨셉을 적용한 첫 듀오미터 칼리버로서 시간당 진동수는 21,600(3헤르츠), 파워리저브는 약 50시간을 보장합니다. 트윈 배럴과 독립적인 기어트레인을 갖추고 하나는 시간 표시를, 다른 하나는 크로노그래프 기능 작동을 제어합니다.
Duomètre Quantième Lunaire
듀오미터 퀀템 루너
- 듀오미터 퀀템 루너 화이트 골드 Ref. Q6043420
- 듀오미터 퀀템 루너 핑크 골드 Ref. Q6042421
- 듀오미터 퀀템 루너 핑크 골드 Ref. Q6042422
- 듀오미터 퀀템 루너 핑크 골드 Ref. Q604244J (부티크 에디션)
2010년 SIHH서 첫 선을 보인 듀오미터 퀀템 루너는 가장 성공적인 듀오미터 라인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국내에서도 꾸준히 좋은 반응을 얻고 있으며, 현재 총 4종의 모델이 출시되었습니다. 크로노미터급의 정확성을 보장하기 위해 개발된 독자적인 듀얼 윙 컨셉을 캘린더 및 문페이즈 컴플리케이션과 함께 참신하게 결합한 듀오미터 퀀템 루너는 다이얼의 인상적인 레이아웃 뿐만 아니라 저먼 실버를 바탕으로 구석구석 세심하게 마감한 무브먼트 또한 시계에 가치를 더합니다.
- 듀오미터 퀀템 루너에 탑재된 381 칼리버
랑에 운트 죄네도 사용하는 저먼 실버(니켈, 구리, 아연 등으로 구성된 합금 소재)로 제작한 메인 플레이트와 브릿지가 로듐 코팅한 일반 브라스계 무브먼트와는 또 다른 특유의 고급스러운 느낌을 선사합니다. 소재의 특성상 피니싱 과정에서 더욱 아름다운 광택을 내며, 예거 르쿨트르는 코트 드 제네바, 페를라주, 앵글라주 등의 피니싱과 함께 열처리한 블루 스크류와 길트 마감한 인그레이빙 등을 추가해 사파이어 크리스탈 케이스백을 통해 무브먼트를 감상하는 재미 또한 쏠쏠합니다.
Duomètre Unique Travel Time
듀오미터 유니크 트래블 타임
- 듀오미터 유니크 트래블 타임 핑크 골드 Ref. Q6062420
- 듀오미터 유니크 트래블 타임 화이트 골드 Ref. Q6063540
2014년 최초 런칭한 듀오미터 유니크 트래블 타임은 로컬 타임(현지 시각) 외 홈 타임, 즉 세컨 타임존을 동시에 표시하는 GMT 기능의 시계로 흥미롭게도 다이얼 10시 방향 서브 다이얼에 세컨 타임존의 시를 별도의 디지털 디스크(점핑 아워)로 표시하고, 보통 분침을 생략하는 다른 GMT 시계들과 달리 별도의 미닛 핸드를 추가해 보다 즉각적으로 세컨 타임존의 시간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24시간 단위를 표시하는 여느 GMT 시계의 디스플레이 방식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매우 유용하며, 시를 점핑 아워 형태로 표시하는 방식 또한 모듈의 참신한 설계를 돋보이게 합니다. 기존의 칼리버를 바탕으로 새로운 기능 하나를 추가하더라도 타성에 젖지 않고 뭔가 새로운 시도를 끊임없이 하는 예거 르쿨트르의 진정성은 이런 작은 디테일에서도 빛을 발합니다. 뿐만 아니라 다이얼 6시 방향에 사실적인 월드 맵과 함께 낮밤 인디케이터를 추가해 전 세계 다양한 타임존의 시간대를 어림할 수 있습니다. 보다 정확한 타임존은 케이스백에 인그레이빙된 24개 타임존 대표 도시와 +- 표시를 통해 확인할 수 있어 월드타이머로서의 역할까지 합니다. 여행 및 출장이 잦은 이들에게 여러모로 적합한 시계가 아닐까 싶습니다.
Duomètre Sphèrotourbillon
듀오미터 스페로투르비용
- 듀오미터 스페로투르비용 핑크 골드 Ref. Q6052420
- 듀오미터 스페로투르비용 핑크 골드 Ref. Q605244J (부티크 에디션)
파인 워치메이킹의 정수를 대변하는 투르비용, 그것도 두 개의 축을 따라 각기 다른 빠른 속도(각각 30초, 15초마다)로 회전하며 중력을 상쇄하도록 고안된 바이-액시스 투르비용(Bi-axis Tourbillion), 즉 다축 투르비용 설계를 듀얼 윙 컨셉과 접목한 오직 예거 르쿨트르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독자적인 컴플리케이션 라인업입니다. 또한 초 단위까지 정밀한 조정이 가능한 혁신적인 플라이백 세컨드 기능을 지원해 케이스 2시 방향의 푸셔를 누르면 투르비용 케이지의 회전 운동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스몰 세컨드 핸드를 순간적으로 영점으로 복귀시킬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제로 리셋을 지원하는 투르비용 시계를 제조하는 브랜드는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트윈 파워리저브 인디케이터와 함께 다이얼 12시 방향에는 24시간 표시로 세컨 타임존을 표시하고, 시와 분을 표시하는 오프센터 다이얼 외곽에 포인터 핸드 타입으로 날짜를 표시하는 방식 또한 효율적인 설계를 돋보이게 합니다.
듀오미터 스페로투르비용은 핑크 골드 혹은 플래티넘 케이스로 선보이며, 공통적으로 케이스 직경은 42mm 두께는 14.1mm이며, 무브먼트는 인하우스 수동 382 칼리버를 탑재했습니다(진동수 3헤르츠, 파워리저브 약 45시간). 다이얼은 실버 그레인 다이얼 외 슬레이트 오펄린 다이얼을 사용한 부티크 에디션도 함께 출시됩니다.
Duomètre Sphèrotourbillon Moon
듀오미터 스페로투르비용 문
- 듀오미터 스페로투르비용 문 플래티넘 Ref. Q6086520 (리미티드 에디션)
2015년 SIHH서 첫 선을 보인 듀오미터 스페로투르비용 문은 듀오미터 컬렉션의 다섯 번째 라인업으로, 기존의 듀오미터 스페로투르비용을 바탕으로 퍼페추얼 캘린더를 상회하는(?!), 이론상 3,887년에 단 한 번의 조정만이 필요할 정도로 고도의 정확성을 자랑하는 문페이즈 디스플레이를 통합하여 예거 르쿨트르만의 독자적인 아스트로노미컬 워치(천체 시계)를 완성했습니다. 듀오미터 컨셉에 문페이즈를 최초 적용한 퀀템 루너와는 또 완전히 다른 느낌을 선사하며, 기존의 스페로투르비용과 마찬가지로 다축 플라잉 투르비용과 함께 플라이백 세컨드 기능을 제공합니다. 한편 그레인 마감된 실버-화이트 다이얼 아래 살포시 숨겨진 밤하늘을 연상시키는 문페이즈 디스크는 라피스 라줄리 소재를 사용하고 골드톤의 달과 별 모양을 더해 더욱 서정적인 느낌을 자아냅니다.
- 듀오미터 스페로투르비용 문과 389 칼리버
총 476개의 부품 중에 티타늄 케이지와 실린더형 밸런스 스프링을 포함한 스페로투르비용 관련 부품수만 105개에 달합니다. 지름 42mm 두께 14.3mm 크기의 플래티넘 케이스의 앞면은 물론, 사파이어 크리스탈을 삽입한 측면(오픈워크 가공됨)과 시스루 형태의 케이스백을 통해서도 아름답고 독창적인 하이엔드급 무브먼트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이런거 하나 소장하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