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오른쪽이 블랑팡(프레드릭 피게)의 자동 크로노그래프 칼리버 1185. 가운데가 오데마 피게, 왼쪽이 바쉐론 콘스탄틴으로 베이스를 공유합니다.
바쉐론 콘스탄틴이 칼리버 5200으로 최근 자동 크로노그래프 에보슈의 공용화에서 일부 벗어나게 되었습니다만, 오데마 피게는 여전히 딜레마입니다.
하이엔드의 경우, 일관성을 이유로 매뉴팩처로 전환을 꾀합니다. 물론 하이엔드 에보슈를 공급해왔던 프레드릭 피게(블랑팡에 흡수), 예거 르쿨트르가 그룹 외 메이커에 공급을 중단한 점도 이유의 하나가 됩니다. 일관성이라고 하면 기획에서 완성에 이르기까지의 일관성을 의미하는데, 외부 무브먼트를 사용한다고 하면 이것이 흔들릴 가능성이 발생합니다. 외부의 무브먼트라고 하더라도 에보슈로 공급받아 수정을 하여 탑재해온 하이엔드이므로, 범용 무브먼트(에보슈)를 탑재하는 메이커들과는 사정이 좀 다릅니다만. 의도와 달리 무브먼트가 제공하는 기능이나 배치에 부득이하게 디자인을 맞춰야 하는 일은 인 하우스 무브먼트 체제를 완전히 정비하지 못한 2000년 초중반 하이엔드들 사이에서 종종 있었습니다. 또 같은 에보슈를 탑재하는 일(대표적인 예가 자동 크로노그래프입니다)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는데, 수정 여부를 떠나 이는 차별화와 개성을 발휘하는데 걸림돌이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따라서 과거와 같이 자신만의 무브먼트를 개발하여 사용하는 것이 올바른 하이엔드의 방향성이 되었고, 시기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가 인식하는 하이엔드 들은 이를 따르게 됩니다. (*물론 여전히 진행형인 곳도 적지 않습니다)
파네라이 칼리버 P.2002
오메가 칼리버 8500
그룹에 속한 메이커, 하이엔드를 제외한 케이스로 파네라이나 오메가를 들 수 있는데요. 역사적으로 본격적인 시계 생산 경험이 없었던 파네라이는 가치 상승을 목적으로 그룹의 지원을 받습니다. 상당히 많은 수의 인 하우스 무브먼트를 가지게 되는데 이는 자체적인 개발력도 있었겠지만, 그 기초는 파네라이가 속한 리치몬드 그룹이 운영하는 개발팀에서 이뤄집니다. 당시 개발팀의 수장이었던 에릭 클라인의 지휘아래 칼리버 P.2002 같은 시리즈가 탄생하고, 현대적인 생산기반도 이 무렵 닦아집니다. 오메가도 유사한데 오메가는 파네라이에 비하면 매뉴팩처로서의 역사가 깊지만, 쿼츠 등장 이후 ETA를 베이스로 시계를 만들다가 코액시얼을 도입하며 ETA 베이스 + 코액시얼 체재로 이행합니다. 과도기 시절 프레드릭 피게의 자동 크로노그래프의 설계를 전용한다거나 하는 움직임도 있었는데, 결국 인 하우스 무브먼트를 보유하게 되나 설계는 오메가가 속한 스와치 그룹 산하 ETA가 거의 전담하게 됩니다. 니바록스가 이를 거드는 수준이었고 프레드릭 피게는 공동 개발에 참여할 예정이었으나 발을 빼죠. 그래서 오메가의 매뉴팩처를 가보면 일부는 ETA가 관장하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됩니다. 이같이 그룹이 관여하는 이유는 파네라이와 동일합니다. 가치 상승이 목적이며 실제로 오메가는 스와치 그룹의 브랜드 분류에서 럭셔리 그룹으로 승격하게 되는데, 시기상 인 하우스 체제를 갖추게 된 다음에 진행된 바 있습니다. (만 여전히 오메가는 사람들의 인식에서 럭셔리로 분류되지 않는 대중지향적 브랜드의 성격이 더 강하며, 제품 전체의 피니시에서도 이를 스스로 시인하는 부분이 적지 않습니다)
브라이틀링 칼리버 B01
마지막으로는 독립 메이커들의 케이스나 하나로 모으기 쉽지 않습니다만 ETA 영향권을 주로 볼 수 있겠습니다. ETA의 공급 제한으로 영향을 받은 메이커들은 여기에서 탈출하여 스스로 안정적인 공급을 택하기 위함이겠으나, 이 경우 포지셔닝의 영향을 줄 만큼 무브먼트의 구성이나 수준이 상당부분 상승하는 단점(?)이 눈에 띕니다. 즉 가격 상승을 유발하게 되면서, 원래의 장점이 흔들릴 여지가 생깁니다. 브라이틀링이 대표적인데 ETA 탑재 시기에 비해 인 하우스 무브먼트 탑재 모델은 가격이 상승한 가격표를 달고 나오게 됩니다. 물론 인 하우스 탑재에 따른 장점들을 고려해야겠죠.
까르띠에 칼리버 1847 MC
크게 세 가지 케이스로 봤습니다만, 공통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인 하우스 무브먼트를 만들어서 탑재하면 일관성, 개성, 차별화를 근본적으로 이룰 수 있게 되며, 스스로의 가치를 끌어 올릴 수 있게 되는 것은 분명합니다. 다만 최근 예외적인 사례가 가끔 등장하는데 까르띠에의 칼리버 1847 MC 같은 예입니다. 까르띠에는 엔트리 모델에서 ETA의 탑재 비율이나 수량이 상당한 메이커입니다. 칼리버 1904 MC 를 중심으로 ETA를 대체 중이었으나 칼리버 1847 MC를 만들어 냈는데, 전투기 운용에서의 하이로우 전략과 비슷해 보입니다. 칼리버 1847 MC는 로우에 해당되며 수량을 담당하게 될 듯합니다. 무브먼트의 대략적인 모습을 보면 고급스러운 구성과 무관해 보이며 대량으로 만들기에 적합한 구석이 많아 보입니다. 따라서 지금까지 대체적으로 매뉴팩처에서 생산한 인 하우스 무브먼트는 고급이라는 상식이 통했으나 이를 수정해야 할 때가 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IWC에서도 ETA의 칼리버 2892, 7750을 대체할 인 하우스 무브먼트가 출격한 채비를 하고 있지만, 그 구성이나 설계에서 이들 범용 무브먼트를 능가할 것 같지는 않아 보입니다. 대신 칼리버 1847MC와 같이 생산 수량을 대체하는 목적에는 충실하리라 생각되는군요.
즉 매뉴팩처로 전환의 핵심은 인 하우스 무브먼트의 생산이고 이것은 앞서 말한 장점들을 가져오고 스스로의 가치를 끌어 올리게 됩니다만, 최근에는 지금까지의 흐름이자 가치 상승의 요인이었던 고급구성의 인 하우스 무브먼트 = 매뉴팩처와 달리 대량생산을 목적으로 한 형태도 등장하며 과거에 볼 수 있었던 대중지향적 생산의 매뉴팩처형태로도 일부 회기하고 있다고 보면 좋을 듯 합니다.